규모가 큰 기업과 작은 기업이 직접 경쟁한다고 가정하자. 어떤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을까. 많은 사람들은 규모가 큰 기업쪽에 베팅할 것이다. 큰 기업은 돈도 많고 인력도 풍부한데다 규모를 키우기까지 많은 경험을 축적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에서 재벌 체제가 고착화된 후 중소기업이 새롭게 재벌 반열에 오른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매출 1조∼2조 원대까지 규모를 키운 기업은 꽤 있었지만 이후 상당수는 재벌들과 경쟁하다가 몰락했다.
일부 경영학자들은 기업 규모가 클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이론이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상황에서는 이와 반대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만약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더라도 제품이나 서비스 차별화를 이뤄낸다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기업 규모와 성과의 관계에 대해 최근 눈길을 끄는 논문이 발표됐다. 세계 최고의 마케팅 학술지인 ‘Journal of Marketing’ 최신호(2008년 5월호, Vol.72, 1∼13)에 ‘중국과 인도 시장 진출의 성공 동력(Drivers of Success for Market Entry into China and India)’이란 제목으로 실린 조젭 존슨 미국 마이애미대 교수 등의 논문이 그것이다. 존슨 교수 등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부상한 중국과 인도에 진출한 기업의 성과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통계 분석을 실시했다. 가장 의외의 결과가 바로 기업 규모와 성과의 관계였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중국이나 인도에 진출한 기업은 규모가 커질수록 오히려 성과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의외의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존슨 교수 등은 “도요타나 GM 같은 거대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현대자동차가 중국에서 선전했다”며 “대기업들은 자원이 풍부하지만 관료주의 문제 등으로 현지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논문 저자들은 또 과거 성공에 안주하면서 ‘오만한(arrogant)’ 태도를 보인 것도 중국과 인도 시장에서 대기업이 고전한 이유로 풀이된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 성과는 한국 기업에 상당한 의미를 던져준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규모가 작고 돈이나 인력,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진국 시장에서 외국 거대 기업과 직접 경쟁하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 같은 신흥 시장이라면 얼마든지 성장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실제 미래에셋의 경우 거대 다국적 자산운용사에 비해 자본이나 네트워크, 인력 등이 매우 부족하지만 아시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특히 존슨 교수의 논문을 보면 아시아 신흥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더 큰 희망을 가질만한 추가적인 이유가 있다. 분석 결과 신흥시장과 경제적, 문화적으로 비슷한 기업의 성과가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보면 서구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해외 시장에 진출해왔지만 아시아 지역 국가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아직까지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다. 게다가 중국과 인도의 성장 잠재력은 무한하다. 이런 거대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곧바로 글로벌 플레이어로한 도약할 수 있다.
김남국march@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