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 성장, 매각 전략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지현(중앙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OB의 경영진은 지난 몇 년에 걸쳐 회사를 리더로 성장시키는 굉장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오비 경영진과 함께 AB인베브의 브랜드를 한국에서 성장시키고, 더 많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베스트 프랙티스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 카를로스 브리토 AB인베브 CEO
2014년 1월20일, 세계 최대 맥주 회사인 안호이저 부시인베브(Anheuser-BuschInBev, 이하 AB인베브)는 PE펀드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ohlberg Kravis Roberts, 이하 KKR)와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Affinity Equity Partners, 이하 어피니티)로부터 58억 달러에 오비맥주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2009년 AB인베브가 18억 달러에 오비맥주를 KKR과 어피니티에 매각한 후 불과 4년 반 만에, 그리고 세 배가 넘는 가격에 재인수를 결정한 것이다.
2009년 AB인베브가 KKR과 어피니티에 오비맥주를 매각할 당시 계약 내용에는 5년 후(2014년 7월)에 오비맥주를 재매입할 수 있는 옵션이 있었다. AB인베브는 이 옵션을 6개월 일찍 적용해 오비맥주를 인수했다. 오비맥주의 재인수에 대한 이유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국내 및 아시아 맥주시장을 공략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업계의 예측이다. 그러나 오비맥주의 기업가치를 간과할 수 없다. 오비맥주의 가파른 성장이 AB인베브의 재인수 옵션을 매력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과연 KKR과 어피니티가 소유했던 4년 반 동안 오비맥주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기업 가치가 급상승했을까?
2009년 이전까지 한국 맥주산업
국내 맥주시장은 전통적으로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양분해 왔다. 두 회사는 각각 소화기린맥주주식회사와 대일본맥주라는 이름으로 1933년 설립된 이후 80여 년 동안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국내 맥주시장을 발전시켜 왔다. 소화기린맥주는 해방 후 1948년 동양맥주로 회사명을 변경하면서 영문명으로 Oriental Beer, 즉 OB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는 당시 경쟁자였던 조선맥주보다 더욱 진취적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됐다.1
1952년 정부의 기업 민간불하 방침에 따라 두산그룹에 인수된 오비맥주는 1957년 조선맥주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에 처음 올랐다.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30년 이상을 60∼70%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며 순항해왔다.
동양맥주와 조선맥주 양사는 때로는 치열한 신제품 출시 경쟁, 판촉 경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우호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측면도 있었다. 해방 직후 국내에는 맥주병을 제작할 수 있는 설비가 없었다. 자체적으로 병을 조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요 맥주회사인 동양맥주와 조선맥주는 일제 강점기에 사용됐던 맥주병을 재활용했고 이런 현상은 양사 간의 경쟁강도를 완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해방 후에는 맥주 유통 경로에 변화가 일어났다. 해방 전 맥주는 주로 카페 및 유흥업소에서 판매되고 있었으나 해방 후 제정된 대리점 제도로 인해 공장에서 생산된 맥주는 모두 대리점으로 납품됐다. 대리점은 납품된 맥주를 다시 각 유통경로상의 중간 유통경로(도매상, 중간도매상, 소매상)를 통해 유흥업소에 판매했다. 1961년 양사는 ‘한국맥주판매주식회사(이하 한국맥주판매)’를 설립해 판매 대리점을 통합하기도 했다.2
안정된 과점체제에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동양맥주에 1991년부터 시련이 찾아왔다. 그룹 계열사인 두산전자의 페놀유출 사건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했다. 1995년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명을 오비맥주로 변경했지만 1996년 하이트로 사명을 바꾼 조선맥주에 마침내 1위 자리를 내주게 됐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두산그룹은 경영난 타개를 위해 벨기에 인터브루에 오비맥주 지분 50%를 매각했다. 실질적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었다.3
1994년 소주 시장의 강자 진로가 맥주시장에 진출했다. 미국의 쿠어스 사와 합작해 진로쿠어스를 설립했고 ‘비열처리 방식’을 사용한 카스 브랜드를 출시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또 하이트 브랜드로 성공을 거둔 조선맥주는 1998년 사명을 아예 하이트로 변경한다.
카스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9년, 오비맥주는 경영난으로 도산한 진로의 카스 맥주 브랜드와 생산설비를 인수했다. 맥주 시장은 다시 오비와 하이트의 양자 체제로 정리됐다.
2006년 인터브루와 암베브의 합병으로 설립된 ‘인베브’가 남은 지분을 모두 확보하며 오비맥주를 완전 인수했다. 하지만 시장은 하이트 쪽으로 기세가 넘어간 상황이었다. 카스를 제외한 진로의 소주 사업 등을 인수해 국내 주류시장의 최강자로 떠오른 하이트진로는 ‘맥스’ 등을 출시하며 선두 자리를 굳혔다.
PE펀드의 오비맥주 인수
2009년, 세계 유명 PE펀드 기업들과 맥주 회사들이 국내 시장을 주목하고 있었다. 국내 맥주 시장을 양분하는 기업 중 하나인 오비맥주가 매각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당시 오비맥주의 소유주였던 벨기에의 인베브(InBev) 사가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미국의 안호이저부시(Anheuser-Busch) 사를 인수하면서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고 이로 인해 오비맥주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후 인베브 사가 도이치뱅크(Deutsche Bank)와 JP모건(JP Morgan)을 오비맥주의 매각 주간사로 정하면서 오비맥주의 매각이 기정사실화됐다. 이들 매각 주간사는 잠재적인 매입 후보 기업들에 안내문을 보내면서 매각 작업을 시작했다.
오비맥주는 기존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에 관심을 보이던 외국계 PE펀드 기업들과 맥주시장에 진출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던 롯데그룹, 해외 유명 맥주기업들의 관심을 끌었다. 2009년 2월 예비 입찰이 시작됐다. KKR을 비롯, 블랙스톤(Blackstone), 칼라일(Carlyle) 등의 내로라하는 외국계 PE투자펀드 기업들과 SAB밀러(SAB Miller), 아사히(Asahi) 등 해외 맥주기업, 롯데그룹을 비롯한 국내 기업 등 총 15개 후보가 예비 입찰에 참가했다.
입찰 시작 당시 소유자인 인베브는 오비맥주의 가치를 약 20억 달러 정도로 평가했으나 입찰 참가자들은 오비맥주의 인수가격을 10억 달러 안팎으로 예상했다. 이러한 의견차이로 인해 매각 과정이 더디게 진행됐으며 오비맥주 인수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던 롯데그룹은 인베브의 예상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을 제시해서 입찰에서 탈락했다. 당시 높은 환율로 인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외국계 PE펀드 회사들과 비교해서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롯데그룹이 불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했던 3개의 PE펀드들, 즉 KKR과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AEP), 엠비케이 파트너스(MBK Partners)가 본입찰 참가자로 선정됐다.
본입찰에서는 어피니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우수했던 KKR과 MBK가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두 기업 간의 경쟁에서 KKR은 16억 달러를 제시해 18억 달러를 제시한 MBK보다 입찰액이 낮았지만 임직원 고용 승계와 자금 조달력 면에서 나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KKR은 인수가격을 두 번 올리면서 오비맥주의 인수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고 최종적으로 19억 달러를 제시하면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이후 본계약에서 세부적인 계약 내용을 조정해 18억 달러로 최종 계약을 마무리했다. KKR은 입찰 경쟁자였던 어피니티에 50%의 지분을 매각하면서 두 PE펀드가 오비맥주의 공동 주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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