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통신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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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날, 필자는 파리 시내에 있는 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매장을 찾았다. 곧 매장 문을 닫아야 하는 늦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점원들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필자를 친절하게 응대했다. 심지어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냉장고에서 이탈리아산 고급 생수까지 꺼내 줬다.
이날 방문은 에섹(ESSEC) 비즈니스스쿨의 ‘명품 소매 관리(Luxury Retail Management)’ 수업의 일부인 미스터리 쇼핑(mystery shopping) 실습의 일환이었다. 필자가 찾은 파리 명품 매장의 점원들은 모두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했고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응대했다. MBA에 오기 전 신세계에서 근무하며 직간접적으로 명품 브랜드를 많이 경험해 본 필자에게도 큰 인상을 남겼다. 에섹 비즈니스스쿨에는 명품 산업에 관한 풍부한 이론과 현장 실습 경험을 제공하는 특화 MBA 과정이 있다. 수업에서 다룬 내용을 소개한다.
명품이란 무엇인가
명품을 뜻하는 영어단어 ‘luxury’의 어원은 라틴어 ‘luxus’로부터 왔다. 비범함, 화려함과 같은 긍정의 의미와 무절제, 사치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고대에 명품은 종교행사처럼 신성한 의식이나 권위적 의식에 주로 쓰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세속적인 소비로 변해갔다. 특히 청나라 강희제나 프랑스 루이 16세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보여지듯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구분하는 도구로 쓰였다. 또 종교적이거나 신성한 믿음에 의해 정당화된 사회적 질서를 눈으로 보여주기 위해 쓰였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에서도 명품은 사회적 계층화를 촉진하는 새로운 필터로서 기능하고 있다. 명품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 가져다주는 만족감과 소유의 기쁨을 제공하지만 사회 계층의 재창조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명품이란 무엇일까? 품질이 좋고 예뻐야 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또 고객의 니즈보다는 꿈과 감성에 어필할 수 있어야 하며 엘리트들로부터 사랑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흔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특성을 가진 몇몇 브랜드들은 가족 기업 단위에서 거대 재벌로 빠르게 성장해왔다.
ESSEC 비즈니스스쿨의 데니스 모리셋(Denis Morisset) 교수가 명품 브랜딩 기술 과정에서 제시한 성공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브랜드의 유산과 문화를 혁신해 지속적으로 꿈과 신화를 창조해야 한다. 둘째, 브랜드에 영속성을 부여해야 한다. 셋째, 비교나 모방이 불가능한 독특함을 가져야 한다. 넷째,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고급스러움과 보편적인 접근성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마지막은 브랜드의 고유한 DNA를 통해 이 모든 것들을 강화하는 것이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펌인 인터브랜드에서는 매년 10월쯤 브랜드 가치를 기준으로 한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를 발표한다. 대표적 명품 업체인 루이비통, 구찌, 에르메스의 브랜드 가치는 최근 8년 동안 꽤 괜찮은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를 IBM이나 애플, 구글의 성장세와 비교해 보면 거의 성장을 하지 못한 것과 다름 없어 보인다. 그만큼 명품 브랜드의 소매전략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2013년 명품 시장의 6대 트렌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최근 명품 시장의 6대 트렌드에 대해 소개했다. 우선 이들은 기존 명품의 개념이 명품 브랜드에서 생산하는 의류나 가죽제품, 보석이나 화장품에서 점차적으로 예술작품과 가구, 기술 혹은 서비스로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의 개념이 “무엇을 가졌느냐”에서 “무엇을 체험했는가”로 재정의되고 있다는 말이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앞의 호수에 크리스탈 형태로 떠 있는 루이비통의 아일랜드 메종(maison)이 대표적이다. 이는 여러 가지 브랜드 제품을 한곳에 모아 브랜드의 통합된 이미지를 파는 플래그십 스토어와 유사하나 진일보한 개념이다. 육상과 연결된 지하 터널 한쪽 벽면에는 현대미술 작품들을, 다른 한쪽 벽에는 루이비통의 여행용 가방 컬렉션을 보여준다. 방문자가 명품 루이비통의 이미지에 압도되도록 만든 것이다.
두 번째 트렌드는 세계화와 디지털 혁명 등으로 명품의 성장에도 새로운 생태계가 필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전자상거래와 같은 새로운 유통 채널, 향후 10년의 수요를 책임질 신흥 시장, 상품 개발/소싱에 필요한 새로운 기술 등 명품 업체들이 새로운 기술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세 번째 트렌드는 명품의 양극화다. 명품 브랜드들을 세그먼트(segment)별로 구분하면 가장 아래에 다가가기 쉬운(accessible) 명품, 중간 단계에 열망하는(aspirational) 명품, 제일 높은 단계에 절대적인(absolute) 명품이 있다. 그런데 세계 경제 위기와 매스티지(mass+prestige, 대중적인 명품) 트렌드의 확산, 명품 할인 유통채널의 등장으로 인해 명품의 개념이 희석되고 있다. 이런 명품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가장 상위에 있는 절대적인 명품은 기대 이상의 매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이 상위 등급은 향후 명품 산업 전체의 예상 평균 성장률(5%)의 두 배에 달하는 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절대적인 명품이 되기 위한 브랜드들의 경쟁은 극에 달하고 있다.
네 번째 트렌드는 명품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커다란 로고나 화려한 디자인의 상품들을 통해 부자를 흉내내고 스스로를 과시하고자 했다면 이제는 명품 소비를 할 때 외부의 시선보다는 스스로의 만족감을 더 중요시하게 됐다. 명품 소비의 새로운 세대는 소비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하기도 하지만 브랜드의 역사와 상품 지식을 더 알고 싶어 하며 궁극적으로는 브랜드에 충성심을 갖게 되기를 원한다. 나아가 더 많은 소비자들이 명품의 가치를 감정할 수 있는 사람(connoisseur)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다섯 번째 트렌드는 세계 명품 시장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전체 명품 매출의 30%를 아시아가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최상위 브랜드로 한정시킬 경우에는 40%까지 상승한다. 보테가베네타, 구찌와 에르메스의 경우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가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10년 뒤에는 인도가 일본과 중국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 모리셋 교수는 예측한다.
마지막 트렌드는 명품 산업 내에서도 디지털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명품 브랜드가 자체 미디어를 가지고 있다. 브랜드 웹사이트, 소셜미디어, e커머스를 통해 디지털 마케팅을 실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채널을 결합한 통합(omni) 소매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필자는 수업을 들으며 산업화의 역사가 길지 않은 명품 시장에 대한 연구가 이토록 정교하게 이뤄졌다는 것에 놀랐다.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과는 물론 조금 다르겠지만 명품 브랜드 전략 중 몇 가지 부분을 선택해 섬세하게 적용한다면 일반 소비재 판매에서도 충분히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에섹(ESSEC Business School)은 1907년에 설립됐다. 파리 근교 세르지에 있다. 프랑스 엘리트 양성 고등교육기관인 상경계 그랑제콜(Grandes écoles)과 MBA과정을 포함해 8개의 학위 과정을 운영하며 다양한 분야의 비즈니스 리더를 양성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 4만 명 이상의 동문이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진휘 서울대 SNU MBA Class of 2014 (ESSEC Business School 교환학생) parole7749@gmail.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MBA과정에 재학 중이다. 신세계에서 HR업무를 담당하며 인사 및 노사관리 전반을 경험했다. 2013년에 ESSEC에서 교환학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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