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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은 조선 중기 학자인 정지운이 쓴 <천명도설>의 한 구절에서 시작됐다. 이황과 기대승은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관한 이기론적(理氣論的) 해석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황은 이(理)와 기(氣)가 시간과 공간이 따로 분리해서 발동한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했다. 반면 기대승은 시간과 공간의 분리하지 않고 발동한다는 이론인 이기겸발설(理氣兼發說)을 설파했다.
사단칠정 논쟁이 현대 마케팅 학계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마케팅 학계에서 사단칠정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단(四端)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4가지다. 마케팅에서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칠정(七情)이다. 칠정은 <예기(禮記)>의 ‘예운’편에 나오는데 인간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접하면서 표현하는 자연적인 감정이다. 인간은 구태여 배우지 않아도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의 7가지 감정을 자연스럽게 가진다는 것이다.
홍성태 한양대 교수는 저서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에서 사단칠정에 즐거움(樂)을 추가해서 감성 마케팅의 사단팔정론(四端八情論)를 제시했다. 8정 중 기쁨과 즐거움, 사랑, 욕망은 긍정적인 감정이다. 소비자에게 만족감을 주고 구매동기를 갖게 한다. 긍정적인 감정은 동기요인이나 강화요인, 행복요인이라고도 한다. 반면 노여움과 슬픔, 미움, 두려움은 부정적 감정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제품과 서비스에서 적절하게 관리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불만족을 느끼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구매동기를 직접적으로 일으키지는 못한다. 다만 예방하는 과정에서 향후 새로운 마케팅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예방요인이나 불만요인, 위생요인이라고도 한다. 어떻게 8정을 마케팅에 활용할까? 소비자의 긍정적인 감정인 기쁨, 즐거움과 부정적인 감정인 노여움, 두려움을 활용한 마케팅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기쁨
기쁨(喜)은 감정발생의 원인이 분명하다. 자녀가 첫 월급을 받아 선물한 속옷은 부모에게 단순한 옷을 넘어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대부분 부모는 속옷을 입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한다. 속옷은 ‘속에 입는 옷’이 아니라 자식을 키운 ‘보람과 기쁨’을 일깨우는 용도로 바뀐 것이다.
기쁨(喜)은 상징성과 관련이 깊다. 기쁨을 이용한 대표적인 마케팅 사례는 샴페인이다. 프랑스의 샹파뉴(Champagne) 지방은 연간 평균기온이 낮아 포도를 재배하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다. 샹파뉴 와인은 신맛이 강해서 인기가 없었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사였던 동 페리뇽(Don Perignon)은 추운 날씨 때문에 발효를 멈췄다가 봄에 급속히 발효하다 터진 와인을 목격하고 스파클링 와인을 연구했다. 2차 발효를 통해 탄산가스가 유지되도록 만든 스파클링 와인은 ‘샴페인’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팔려나갔다. 샴페인은 단순히 기포가 올라오는 술이 아니다. 기포가 올라오는 스파클링의 특징은 기쁨을 상징하고 행사, 축하모임 등에 사용되는 와인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행복한 순간에서 샴페인을 사용하면 시각적인 효과가 어우러져서 기쁨이 더 커졌다.
기쁨을 마케팅에 활용한 또 다른 사례로는 코카콜라를 들 수 있다. 산타클로스의 모델은 선한 일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진 성 니콜라스라는 성직자다. 성 니콜라스가 붉은색 옷을 많이 입었기 때문에 산타클로스에게도 붉은색 옷을 입혔다. 코카콜라는 겨울에 판매가 부진했다. 브랜드의 상징색이 빨갛다는 데 착안해서 코카콜라를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에 연관시켰다. 코카콜라가 겨울에도 잘 팔린 것은 ‘맛의 승리’라기보다는 ‘상징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이때 활용한 감정이 기쁨이다. 기쁨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도록 만드는 마케팅 방법도 있다.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을 내세우는 광고는 기쁨의 간접경험을 시도한 것이다.
2. 즐거움
즐거움(樂)은 발생 원인이 분명하나 자기 스스로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에 해당된다. 사람은 정말 좋아하는 취미를 혼자 할 때가 많은 것처럼 즐거움(樂)은 혼자 느낄 때가 많다. 반면 기쁨(喜)은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나누는 형태로 여러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감정이다. 팔정의 개념 중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구별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기쁨은 내게 기쁨을 주는 상대가 있고 즐거움은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라고 보면 어떨까? 즐거움(樂)은 옷으로 개성을 표현하거나 화장을 하면서 느끼는 자기만족이다. 소비자의 즐거움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월트디즈니다. 월트디즈니의 만화영화와 제품들은 소비자에게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준다. 할리우드도 즐거움 마케팅으로 꿈을 이루게 해주는 곳이다. 한류도 사람들을 만족시켜서 생성된 열풍으로 볼 수 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을까? 그 자체가 즐거움의 마케팅 사례이고 이를 활용하는 것도 새로운 마케팅의 전략이다. 국내 브랜드인 할리스 커피(Hollys Coffee)가 중국에 진출할 때 중국 재벌과의 연회에서 직원들이 강남스타일의 춤을 췄다. 전날 즐거움의 기억을 바탕으로 다음날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역시 즐거움을 이용한 마케팅 사례가 아닐까?
3. 노여움
노여움(怒)은 인간관계나 특정 사안으로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마케팅에서는 소비자의 노여움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 피자배달이 지연될 때 소비자는 분노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30분 안에 배달하지 못하면 피자 값을 깎아주거나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업체의 약속은 시장에서 셀링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노여움도 잘 활용하면 마케팅 방법이 될 수 있다.
4. 두려움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1941년 의회에 보내는 연두교서에서 ‘4가지 자유’에 대한 연설을 했다. 4가지 자유는 언론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 궁핍의 자유, 두려움(懼)의 자유 등이었다. 가장 중요한 자유 4가지 중 하나가 두려움(懼)인 것을 고려할 때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삶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종교도 발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마케팅의 태반이 두려움을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마케팅 기회를 몇 가지 살펴보자.
인간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보험에 가입한다. 안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너무 크기가 작은 자동차는 꺼린다. 농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값이 비싸도 유기농 식품을 산다. 지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하철을 선택한다. 고객이 펀드를 산 뒤 값이 떨어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은행은 신뢰를 강조하는 광고를 한다. 금은방은 가짜 금반지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시키려고 보증서를 첨부한다. 두려움을 예방하지 않고 직접 활용할 때도 있다. 금연이나 마약 퇴치 등의 홍보에 쓰이는 공포 광고가 전형적인 사례다. 암에 걸린 폐와 마약에 절은 뇌 사진은 흡연이나 마약복용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한다.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즐거움(樂)을 더해서 사단팔정과 마케팅을 접목한 것은 한국의 마케팅 학자만 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이다. 한국 기업과 제품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경쟁력을 높이면서 한국의 마케팅 이론도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브랜드 관련 이론을 많은 국내 사례로 풀어낸 홍 교수의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를 한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sirh@centerworld.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이면서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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