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ing&Communication
1. Why Simplicity Now? :
진화심리학과 정보처리패러다임의 변화
현대 로봇이 아직 하지 못하는 것은 놀랍게도 개와 고양이 구별하기 같은 단순한 것이다.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연산을 순식간에 해내는 최신 기능의 로봇이 생후 7∼8개월 된 인간 아기들이 너무도 쉽게 하는 그 간단한 구별을 하지 못한다니 믿기 어렵다. 사실 최근까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들 각각의 특징을 입력해 교집합을 구하고 공집합을 빼는 등의 연산을 통해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다리 4개, 머리/귀의 크기 및 각도, 꼬리/수염의 형태 및 길이 등 수백 개의 특징을 입력, 학습시켜 보지만 결국 로봇은 그 둘의 교집합을 찾아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의사 결정, 판단에 필요한 거의 모든 데이터가 입력된 로봇들이 얼굴인식, 감정인식 등 좀 더 어려운 과업에서 실패하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아기들은 어떻게 별 학습이나 지식 없이도 이들을 쉽게 구별할까? 어떤 방법을 사용하며 그 방법은 어떻게 습득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이 그간 정보처리 과정에 대한 우리의 생각, 접근방식을 새롭게 하고 있으며 소위 진화심리학, 행동경제학으로 이어지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이끌고 있다.
인간의 아기들은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사물을 인식한다. 생후 1∼2개월 된 신생아들에게 비탈면에서 공이 굴러 내려오는 장면을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아기들의 시각적 주의집중(visual attention) 시간을 측정해 그들의 사물에 대한 관심과 학습과정 등을 보는 실험이다. 이 연구의 가설은 우리는 생존에 필요한 꽤 많은 이론-여기서는 만류인력-을 가지고 태어나며 다른 정보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도 사물인식 및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아기들은 비탈을 굴러 내려오는 공에서는 바로 눈을 떼는 반면 비탈을 거슬러 올라가는 공에 훨씬 더 오래 집중을 함으로써 사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만류인력의 원리를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정보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연역적(top-down) 정보처리에 더 능숙하다고 말한다. 한눈에 알아내는 실력이다. 원시시대 더 큰 동물들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귀납적(bottom-up) 정보처리는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물에게 쫓기는 등 위급한 상황이 많았던 25만년 동안 빠르게 인식하고 의사 결정하는 방법은 우리에게 유전됐다고 설명한다. 덜 정확하더라도 정보를 단번에 처리하려는 동기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원리를 사용하면 정보처리가 빠르다. 즉각적 조치를 필요로 하거나, 깊이 생각할 가치가 없거나, 또는 자동화된 전형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렇다. 주변의 사물을 빨리 파악해서 위험에 처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생존방법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 축적돼 유전적으로 우리에게 전수된다. 일찍이 게스탈트(Gestalt) 학파는 이러한 지각방법을 소개했으며 현대 마케팅에서는 이를 형태인식욕구(need for closure)라고 표현한다. 즉, 개와 고양이를 두드러지는 원형 형태(prototype)로 간단히 차별화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본능적 욕구다. 얼마나 길고 크고 둥근지 등의 세부 정보는 배제하고 자신이 원하는 총체적(holistic) 형태로 빠르게 인식하고 처리하고자 하는 욕구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500원짜리 동전을 더 크게 인식한다. 정확한 사이즈 계산보다 덜 정확하지만 자신이 필요한 것을 위주로 인식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수만 년 동안 동물의 원형을 인식해 온 주관적 정보축소 또는 정보축약의 노하우가 숨어 있다. 정보축약의 노하우를 알아내는 것은 심리학자, 인지과학자들의 몫이지만 적어도 이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생존가치(survival value)’의 노하우다. 바로 자신의 욕구에 맞는 선택적 정보만 취득하는 ‘단순화’ 능력이다. 예를 들면 밀리언셀러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 교수는 천적관계인 족제비와 칠면조 실험을 통해 동물 세계의 정보 축약 메커니즘을 알 수 있으며 인간에게도 유사한 정보축약 유전코드가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
족제비 박제에 칠면조 새끼의 울음소리를 녹음해 넣은 후 칠면조의 반응을 보는 실험에서 자신의 천적이 자기 새끼의 울음소리를 낼 때 칠면조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살펴봤다. 이 연구에서 보면 놀랍게도 적에 관한 수많은 정보는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우리는 칠면조가 상당히 혼란스러워 할 것이라 추측하지만 실제 칠면조는 새끼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자신의 적인 족제비(사실은 박제)에게 깊은 애정 보이고 먹이를 날라다 줬다. 작은 뇌를 가진 새머리는 적이나 새끼에 대한 자세한 많은 정보를 넣을 공간이 없고 더구나 적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빠른 판단을 할 만한 중앙처리장치도 부족하다.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적의 공격에는 효율적 정보처리가 최고의 목표이고,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새끼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기 때문에 새끼의 울음소리가 선택되고 나머지 많은 정보들은 버려진다. 즉, 칠면조는 족제비 가슴의 빨간 털, 자기 새끼의 울음소리 등 두드러지는 한두 가지 특징에 반응한다. 치알디니 교수는 바로 이런 원리(principle)가 우리 인간에게도 많다고 설명한다. 마케팅 관점에서 그것은 소비자의 ‘욕구(needs)’다.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정보를 단순화하고 축약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순함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예정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꽤 자주 복잡한 정보도 단순하게 축약해 처리한다. 빠르게 처리하려는 비합리적 욕구 때문에 자주 덜 정확하고 왜곡해 처리하기도 한다. 이 같은 주관적인 정보처리가 빠른 변화와 적응에 더 유리한 방법이라는 것을 수만 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화심리학적 설명은 인간의 정보처리방법과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패러다임을 태도, 평가와 같은 인지적 패러다임으로부터 감정, 행동과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옮기고 있으며 휴리스틱(heuristic)에 의한 정보처리와 같은 마케팅 연구와 실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 Is Arousal Necessary?:
각성과 감성, 그리고 단순화
인간이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정보 축약을 조금은 어렵게 만들어주는 각성(arousal)이 꼭 필요하다. 단순함이 효율적인 정보처리 과정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실제 우리가 단순함을 선호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단순함이 선호되기 위해서는 욕구, 동기와 같은 감정이 관여하는데 그 과정에서 각성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순함에 대한 관심은 2000년 초 갑자기 증폭됐지만 이미 1970년대 심리학의 유명한 Berlyn(1971) 모형은 단순함을 선호하는 데는 각성(arousal) 수준이 중요하며 각성 수준은 선호라는 감정과 깊이 연계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성(arousal)은 주의를 기울일 때 높아진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새로운 환경 및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적절한 주의(attention)를 하는 각성상태에 있게 되는데 너무 새롭고 낯선 정보에는 아예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는 낮은 각성상태이고 그 경우 우린 그 정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 정보에 자주 노출된다면 주의(attention)가 높아져 각성수준도 높아지는데 그것은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는(monitoring) 우리의 진화적 습성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만큼 각성상태가 높아지고 그럴수록 그 정보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Berlyne의 모형은 주변에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어느 정도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감정적으로 중립적이지만 관심이 커지고 각성수준이 높아질수록 긍정적인 가치가 높아지고 그것은 결국 선호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이미 너무 익숙해진 정보는 더 이상 주의집중을 하지 않게 함으로써 각성상태를 저하시켜 부정적 감정으로 연결된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실행에 있어 적정 수준의 각성을 촉발시키려면 적정한 수준의 단순함과 아울러 새로운 정보의 추가와 같은 약간의 복잡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해주고 있다.
각성수준은 정보처리의 유창성(processing fluency)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하면 소비자는 빨리 처리하는 정보를 더 좋아한다. 쉬운 정보는 빨리 처리되며, 그래서 더 선호된다는 이론이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그 선호는 익숙함(familiarity)에서 비롯된다. 익숙한 정보는 예측가능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반면 낯선 정보는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정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보 자체가 쉬워서든, 쉽게 처리하려는 진화적 동기 때문이든 확실히 단순한 정보 또는 자극은 선호된다고 할 수 있다.
단순한 감성 정보처리는 선호뿐 아니라 긍정적 행동과 의사결정에 필수다. 감정조절에 관여하는 뇌의 특정 부위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에 관한 최근 연구를 보면 이들은 기억능력 및 새로운 학습 등에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사회 부적응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그 어떤 종류의 의사 결정도 하지 못하는 결정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와 같은 아주 간단한 의사 결정도 하지 못했는데 그 원인은 다름 아닌 긍정, 부정 등 감성적 판단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 연구는 정보축약과 같은 능력이 생각하는 뇌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느끼는 감성 뇌의 역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의사 결정에 욕구(needs), 동기(motivation)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구매후기를 읽을 때 수많은 긍정적 후기보다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부정적 후기 하나에 더 민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진화적 가치를 더 가졌기 때문이다.
감성 정보 없는 너무 많은 정보의 나열은 효율성 저하뿐 아니라 의사 결정, 선호, 구매행동을 방해한다. ADD(주의집중장애·Attention Deficit Disorder)를 가진 사람들의 소비행동을 다각적으로 연구한 최근 연구를 보면 이를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연구에서 ADD 소비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지각했으며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의사 결정에 있어서는 단순한 소비 행동을 했다. 이들은 쇼핑몰에 있는 거의 모든 브랜드를 지각했으며 그 브랜드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훨씬 더 많은 구매 충동을 느꼈다. 이들은 특히 브랜드 또는 상점이 많아질수록 독특한 디스플레이나 스페셜 할인 등 단순한 특징에 더 많이 반응했다. 예를 들어 단순하고 잘 정리된 매장에서 구매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나 단순함을 선호하는 것은 복잡함을 고려하고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효율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복잡하면 할수록 더 단순한 정보를 추구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70%에 육박하는 소비자들은 계획하지 않은 브랜드 또는 제품을 구매한다. 충동구매는 최근 마케팅 환경에서 가장 많이 관찰되고 연구되는 현상 중 하나다. 일반 소비자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거의 ADD에 가까운 정보처리압박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더욱 단순한 정보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 복잡한 정보라도 단순한 특징에만 선택적으로 반응하려는 경향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시장에서의 빈번한 충동구매는 이러한 소비자의 정보축약, 단순화 방법 중 하나다. 주어지는 정보의 수, 내용과 관계없이 습관적으로 익숙한 방법으로 구매행동을 하면 간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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