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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 5년간 R&D 1조원…‘벤처신화’ 팬택, 부활의 신화 썼다

최한나 | 120호 (2013년 1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정수(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한국 벤처기업의 신화로 불리던 팬택의 승승가도에 제동이 걸린 것은 지난 2006년이다. 모토로라에서 선보인 레이저(RAZR)폰이 전 세계 핸드폰 시장을 휩쓸면서 해외 매출 비중이 높았던 팬택에 큰 타격을 줬다. 매출이 급락하고 국내 자금줄이 끊기면서 팬택은 결국 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이하 워크아웃·Workout)을 신청하는 신세가 됐다. ‘신화는 끝났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팬택은 워크아웃에 들어간 직후 곧바로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워크아웃 기간 내내 단 한 차례도 빼놓지 않고 흑자 행진을 지속하면서 국내외 시장점유율 및 투자자 신뢰를 회복했고 작년 말에는 5년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데 성공했다. 팬택의 턴어라운드 스토리를 분석했다.

 

워크아웃에 처하기까지

팬택은 1991년 당시 29세였던 박병엽 부회장이 직원 6명과 함께 만든 회사다. 처음에는 무선호출기(삐삐)를 만들었다. 창업 3년 만에 매출이 300억 원 규모로 늘었다. 2001년 현대큐리텔, 2005 SK텔레텍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이어 시장 변화에 발맞춰 핸드폰 사업으로 전환했다. 무선호출기보다 핸드폰에서 더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창업한 지 10년이 지나자 직원이 2000여 명으로 늘었다. 매출은 연간 1조 원으로 불어났다. 1990년대 이후 창업을 통해 매출을 조 단위까지 키운 제조업체는 팬택이 유일하다. 삼성전자가 창업 후 매출 1조 원을 달성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팬택의 성장 속도는 놀랄 만한 것이다. 그렇게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던 팬택에 위기가 닥쳤다. 2005년 말부터 불기 시작한 모토로라 레이저 열풍이 매서웠다. 모토로라는 출시 2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대 넘게 팔렸다. 누적 판매대수는 1억 대가 넘는다. 2001 10%대에 불과하던 모토로라의 세계 핸드폰 시장 점유율은 2006 20%를 넘어섰다. 레이저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 핸드폰 강자들이 모두 휘청거렸다. 해외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며 인지도를 높여가던 팬택 역시 뚝뚝 떨어지는 매출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 시장에 여파가 몰아쳤다. 중소업체로는 유일하게 자체 브랜드를 내걸고 핸드폰을 생산하던 VK가 부도를 맞았다. VK가 텃밭으로 삼던 중국 시장에 노키아와 모토로라 등 글로벌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거세지면서 채산성이 악화된 영향이 컸다. VK가 최종 부도처리 되면서 국내 핸드폰 브랜드 업체로 삼성과 LG, 팬택만 남았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팬택에 국내 금융권의 견제가 심해졌다. 위기 때 모기업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그룹 계열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찌감치 자금을 돌려받아야겠다는 은행이 늘었다. 자금 공급 한도가 줄거나 아예 끊어졌다. 당시 팬택은 무역금융 한도 축소 및 여신자금 회수 등으로 최소 4000억 원 이상의 운전자금을 은행에 돌려줘야 했다. 해외시장 매출 급감과 자금사정 악화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팬택은 결국 2006년 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워크아웃이어야 했다

워크아웃을 결정하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더 큰 문제는 채권단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당시 팬택의 주채권 은행이었던 산업은행을 포함해 전체 채권의 절반가량을 들고 있던 은행권에서는 법정관리를 종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머지 절반을 보유한 2금융권 채권자들을 설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당시 상황은 팬택에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워크아웃의 근거법이었던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 2005년 말 시효가 만료됐다. 기촉법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금난에 빠져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좀 더 쉽고 빠르게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도입된 한시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전체 채권자의 75% 동의만 얻으면 워크아웃을 개시할 수 있다. 하지만 기촉법이 시효를 다하면서 워크아웃을 원하는 기업은 채권자 100% 동의를 얻어야 했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1금융권에서 법정관리를 제안한 것은 팬택 채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소액 채권자들의 동의를 100% 받아내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택은 워크아웃을 원했다. 일반적으로 법정관리는 비즈니스를 포기할 확률이 높은 상황의 기업이 신청하는 것으로, 워크아웃은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시행하는 것이란 시장의 인식이 있었다. 이준우 부사장은해외매출 비중이 컸던 팬택에서는 대외적 이미지와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우리로서는 반드시 워크아웃을 성사시켜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팬택은 채권단을 설득했다. 일정 기간 시간을 주면 소액 채권자들을 만나 워크아웃 동의를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1금융권 채권자들은 2금융권 및 개인 채권자들로부터 채무조정안에 대한 동의를 받아내는 기간으로 3개월을 결정했다. 채무조정안은 팬택에 대한 201, 팬택앤큐리텔에 대한 301 감자안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지분가치가 크게 줄어드는 소액 채권자들의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2006 12월 말 소액 채권자 설득 작업이 시작됐다. 박병엽 부회장이 직접 나섰다. 박 부회장은 먼저 자신이 보유한 4000억 원대 지분을 전부 내놨다. 8000억 원대 회사 부채에 보증도 섰다. 회사를 반드시 살려내겠다며 전국에 흩어져 있는 채권자들을 만났다. 2금융권 관계자들과 개인 채권자들을 합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소액 채권자들은 수천 명에 달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도 어느 지방에 있는 채권자들을 만나 설명회를 갖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밤낮 없이 계속된 일정에 모두 지친 상황이었다. 박병엽 부회장 핸드폰이 울렸다. 인천 어느 노래방에 채권자 6명이 모여 당장 박병엽을 불러오라며 회사 관계자를 상대로 호통치고 있다는 내용이 전달됐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박 부회장은 당장 차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곧장 인천으로 향했다. 노래방에서 채권자들과 얼싸안고 노래를 부르며 밤을 새웠다. 결국 그 6명의 동의를 받아냈다. 3개월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매일 링거를 맞아가며 전국을 돌아다닌 결과, 소재 불명의 약간 명을 제외한 99.96%의 동의를 얻는 데 성공했다. 87개 단위 신용협동조합과 288개 새마을금고 등 2금융권 전체가 채무조정안에 동의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로 기촉법의 공백기에 남겨진기록으로 평가된다. 이렇게 해서 총 4558억 원의 출자전환과 1200억 원의 신규 자금 투입을 골자로 하는 채무조정안이 확정됐다. 그리고 2007 419일 워크아웃이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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