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M 응답하라 1997

1990년대 콘텐츠 숨은 니즈 파악하고 드라마에 예능을 버무려 공감을 얻다

118호 (2012년 12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지은(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80년대를 추억하는 세대들이 점점 사회 저편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90년대를 기억하는 2030세대가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지금의 20대와 30, 이들은 최루탄에 대한 기억도, 가난에 배곯아 본 경험도 없다. 그들에게 복고는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아니라 H.O.T.의 캔디이며 나팔바지가 아니라 힙합바지다. 가까운 과거, 90년대의 방대한 문화 아이콘들, 우린 모두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 우리가 누렸고 즐겼고 미쳤었던 우리들의 90년대 이야기. 이들의 90년대는 더 없이 찬란했다. 현재 33, 1980년생 평범한 직장인 성시원, 그녀를 통해 우린, 화려했던 우리들의 90년대로 귀환한다. 들리나 90년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대여!!

-‘응답하라 1997’ 제작진이 밝힌 기획의도 중에서

 

CJ E&M이 선보인 드라마응답하라 1997’은 올 하반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난 6월 첫 방송 이후 주요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지속적으로 올랐고 9주 연속 케이블 TV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918일 마지막 회는 평균 시청률 7.55%, 최고 시청률은 9.47%(TNmS 리서치 조사)로 역대 케이블 TV 드라마 중 최고를 기록했다. ‘응답하라 1997’ 199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H.O.T. 광팬, 일명 ‘1세대 빠순이성시원, ‘시원바라기윤윤제를 비롯해 개성 있는 고등학생 여섯 남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2012 33살이 된 주인공들이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모이게 되고 이 중 한 커플이 결혼 발표를 하면서 추억 속에 묻어뒀던 1997년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펼쳐진다. ‘6명 주인공 중 결혼에 골인하게 된 한 커플은 누구일까?’라는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에 매회 에피소드 중심의 구성으로 재미를 더했다. 탄탄한 이야기 외에 1990년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섬세한 복고 재현, 기존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예능적 요소들이 드라마의 인기를 높였다.

9월 종영된응답하라 1997’의 여운은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응답하라라는 구절은 많은 곳에서 패러디되고 있고 90년대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문화, 경제 분야 등 사회 곳곳에서 활발해지고 있다. 기획, 연출, 편집까지 도맡으며응답하라 1997’의 성공을 이끈 신원호 PD를 만나 올해 큰 이슈를 불러일으킨 드라마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들어봤다.

 

산 넘어 산이었던 캐스팅 과정

‘응답하라 1997’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주인공 역을 맡은 정은지, 서인국의 감칠맛 나는 연기였다. 이 둘은 연기 경험이 거의 없고 인지도도 그다지 높지 않은 신인이었다.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많은 언론들은 신인 배우를 기용한 신원호 PD선견지명을 칭송했다. 그러나 사실 신 PD 입장에서는 큰 결심을 필요로 한 캐스팅이었다.

PD도 처음에는 주인공인 성시원과 윤윤제 역할에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특급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다. 하지만 드라마 PD 출신도 아닌 예능 프로그램만 해온 PD, 그것도 공중파도 아닌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에 출연하려고 하는 특급 배우들은 없었다. 좀 더 눈을 낮춰 그 아래 인지도와 인기를 가진 배우들을 접촉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미팅이나 해봅시다” “리딩이나 해봅시다라고 연락했으나 답변은 오지 않았다. 결국 신 PD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오디션을 통해 캐릭터에 부합하다고 판단된 서인국과 정은지였다. PD는 당시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PD들은 누구나이 대본을 가장 잘 소화해줄 친구이 대본을 가장 잘 흥행시켜줄 친구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오디션을 본 후 시원과 윤제를 정확히 읽는 친구는 은지와 인국이밖에 없었지만 욕심이 나서 이 둘보다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을 계속 접촉했어요. 우리도 결국 시청률로 장사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재미있게 만들어도 안 보면 그만이죠. KBS에서 CJ E&M으로 이직해서 처음 하는 작품인데, 그것도 예능이 아닌 드라마를 하려니 약간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캐스팅에 욕심을 조금 부렸는 데 안 됐죠. 애매한 배우를 쓰기보다는 차라리 아주 참신한 신인들을 내세우기로 전략을 세웠어요. ‘쟨 또 뭐냐보다는쟤네 뭐지라는 반응이 나을 것 같았어요. 진부함보다는 호기심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했고요. 오디션 결과 인국이와 은지에게 확신도 있었어요. 물론 100%의 확신이 아니라이게 낫겠지하면서 내린 선택이었지만 내가 결정한 전략이 더 나을 것이란 판단이 있었어요.”

이러한 신 PD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제작진은 캐스팅의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로 완벽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지를 봤는데 여주인공인 정은지는 부산 토박이, 남주인공 서인국은 경상도 울산 출신이었다. 눈에 익숙한 배우가 아니었지만 두 신인 배우의 걸쭉한 부산 사투리와 톡톡 튀는 연기에 시청자들은 매료됐다.

 

드라마를 처음 해보는 PD의 새로운 시도

‘응답하라 1997’을 처음 보는 시청자들은 다른 드라마와 다른 스타일의 이 드라마가 약간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 같은 장면, 뮤직비디오도 아닌데 자주 깔리는 음악, 시트콤은 아닌 것 같은데 간간 터져주는 웃음 코드. 생소하지만 한번 보면 자꾸 보게 만드는 매력 있는 드라마의 탄생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드라마를 한번도 만들어보지 않았던 제작진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신원호 PD응답하라 1997’ 이전에 드라마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 2001 KBS에 공채 PD로 입사해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등 예능 프로그램을 주로 만들어왔다. 극본을 담당한 이우정 작가 역시 신 PD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예능 작가였다. 그녀는해피선데이: 12’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등을 썼다.

예능 PD로 활동해왔지만 신 PD는 드라마를 하고 싶어 1년 전부터응답하라 1997’을 기획했다. PD는 만드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콘텐츠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자격을 만들 때도 찍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참신한 결과물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해 거추장스러운 ENG 카메라를 빼고 6㎜ 카메라를 투입하기도 했다.

 

드라마가 처음인 신 PD는 우선 드라마 선후배, 작가에게 전화했고 실제로 방법론에 대한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정작 가장 본질적인 질문인 드라마를 어떻게 짜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구할 수 없었다. 본인 역시 누군가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은 어떻게 만드나요라고 물으면 정답을 이야기해줄 수 없고 답을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실행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하던 대로 하자였다. 전체 시놉시스, 콘셉트, 대본 등 모든 것을 작가와 함께했고 매회 촬영이 끝나면 다음 촬영 예정인 대본을 앞에 두고 재미있는 대사 한 줄을 넣기 위해 밤샘 회의를 했다. 기존 드라마의 경우 초반 시놉시스 공유 후 작가가 글을 써서 넘기면 PD는 대본을 받아 찍어서 방송으로 만든다. 어느 정도 분업화가 돼 있는 기존 드라마 제작 방식에 비해응답하라 1997’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식을 상당 부분 가져왔다. PD, 이 작가 등 주요 제작진 5∼6명은 밤샘 회의를 하느라 올해 2월부터는 거의 집에 못 들어갔다.

예능 PD로서의 경험은 새로운 드라마를 만드는 데 큰 장점이 됐다. 예능에서 빠른 호흡으로 밀도 있게 프로그램을 만들던 경험이 드라마 연출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응답하라 1997’에 시청자가 열광한 이유 중 하나는 기존 드라마에 비해 웃음 포인트가 많고 매회반전 엔딩이 있어서 끝까지 보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여주인공 시원의 남편이 누굴까로 시작했던 첫 회는 마지막 회 결정적 순간에 그 답이 공개되며 끝난다. 2주 차에는 준희가 좋아하는 사람이 동성친구인 윤제라는 것과 서울에서 전학 온에로지존학찬이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부끄럼쟁이라는 사실이, 3주 차에서는 2012년 현재 결혼을 발표한 커플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윤제와 시원이 아닌 학찬과 유정이라는 반전 등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했다.

PD치밀하게 플롯을 짜서 화장실도 못 가게 만드는 재미있는 드라마로 만들려고 했다. 예능 프로는 잠깐 놓치면 웃음 포인트가 두세 개 휙 지나가버려서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을 집중하게 한다. ‘응답하라 1997’은 코믹한 상황이 주는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시청자들에게 보다 큰 즐거움을 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디테일의 힘, 원칙에 충실하다

‘응답하라 1997’을 보고 있으면 걸쭉한 부산 사투리는 기본이고 출연 배우들이 입고 있는 옷, 쓰고 있는 물건 등 당시 시대를 보여주는 많은 소품들이 매우 디테일하다는 것에 놀란다. 제작진은 작품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칠판에 몇 가지 원칙들을 써놓고 이 원칙만은 우직하게 지키자고 합의했다. 치밀한 얼개, 확실한 사투리 등에 앞서 제일 위에 써놓은 원칙이 바로디테일의 힘이었다.

DDR, 삐삐, 마이마이(미니 카세트 플레이어), 축배 사이다, 콤비 콜라, 유행통신, 다마고찌 등 당시 유행했던 소품들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제작진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디테일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소품팀에서 구하기 힘든 건 PD, 작가가 직접 나서거나 제작진의 소장품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H.O.T. 팬클럽의 우비, 현수막 등의 아이템들은 실제로 당시 팬클럽 활동을 했던 김란주 작가의 소장품이었다.

여주인공인 시원의 방에 나오는 인형의 포즈가 장면에 따라 바뀌는 것도 디테일을 중시한 제작진의 노력 덕분이다. 곰인형은 시원과 윤제가 싸우면 귀를 막고 있고 윤제가 시원이 있는 방에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면 부끄러운 듯어머나하면서 입을 막는다. 매번 촬영 때마다 해당하는 포즈를 연출하려면 인형을 꿰매는 수고가 들어가지만 제작진은 이런 과정을 즐겼다. PD소품의 디테일에 신경을 쓴 이유는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재미를 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품들을 갖다 놓으면 제작진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이야기하게 된다. 가령나도 이거 있었는데하는 식이다고 말했다.

1990년대 노래, 드라마, 영화, 의상, 유행어 등 섬세한 복고의 재연은 시청자들에게 지난 시절에 대한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20∼30대는 물론이고 이들을 자녀로 둔 40∼60대도 드라마를 보며폭풍 공감을 할 수 있었다. 특히응답하라 1997’에 수록된 90년대 노래들은 장면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윤제가 시원에게 뽀뽀를 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양파의애송이의 사랑’, 윤제를 짝사랑하는 준희가 보낸 음악 선물인 K2슬프도록 아름다운’, 태웅이 시원을 보며 옛사랑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서지원의 ‘I miss you’ 등의 노래는 제목이나 가사 내용이 드라마 속 상황과 딱 맞아떨어져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제작진은 당시 학창시절을 보냈던 2030 세대들이 들었을 때, 맞다! 이런 노래가 있었지. 노래 참 좋았는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90년대, 특히 97년을 추억할 수 있는 노래들로 드라마 배경 음악을 선곡했다.

PD는 디테일한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만 하자고 했어요. 모르는 이야기를 그리면 디테일을 살려낼 수가 없으니깐요. 그런데 디테일을 중시하되 이것 갖고 장사하지는 말자고 했어요. 드라마인 만큼 디테일의 힘보다는 핵심인 이야기에 보다 충실하려고 노력했어요. 90년대라는 드라마 배경은 굉장히 좋은 소구 포인트가 되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여러 가지 정서-가령 복고에서 나오는 아련함과 그리움-는 분명히 있겠지만 디테일에 이야기가 가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어요.”

 

자유로운 현장 분위기

‘응답하라 1997’의 제작 현장 분위기는 매우 자유롭고 화기애애했다. 나이가 가장 어린 스태프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지 현장 최고책임자인 신 PD에게 편안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PD는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 여럿이 모여 편안하게 수다를 떨면서 점차 이야기를 좁혀 나가는 브레인스토밍 방식을 선호한다. ‘응답하라 1997’의 기획도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고 가는 가운데 탄생했다. PD응답하라 1997’의 기획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프로그램의 발상이 번뜩번뜩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가령 어느 날 갑자기 커피 마시고 있다가이경규를 필두로 중년남자 7명을 모아서 제목을 <남자의 자격>이라 하고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식으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말도 안 되죠. 저는 기획 회의 방식이 상당히 자유로운데 이런 식이에요. 마음 맞는 제작진과 밤새도록 농담 따먹기를 해요. 음담패설도 하고 별의별 잡스러운 이야기들을 하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가 던진 말에 다들 집중하게 되죠. 90년대로 이야기를 풀어보자는 말도 이런 식의 회의에서 나온 얘기예요. 누군가 중요한 화두를 던지면 그걸 기반으로 또 다른 이야기들이 퍼져나가죠. 그걸 걸러내는 것이 PD인 제가 할 일이고요. 누가 처음 이야기를 꺼냈냐고 물으면 아무도 기억을 못하는 브레인 스토밍 방식이죠. 90년대의 콘텐츠에 주목해보자고 정해져 가는 와중에 누군가 음악주점인밤과 음악 사이가 재밌다고 해서 스태프들이랑 술 마시러 가봤어요. 이곳에서응답하라 1997’ 기획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죠. 90년대 노래가 나오자 당사자들인 20대 후반 30대 초중반 친구들 외에 20대 초반 친구들도 그 시절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고 춤추는 걸 보면서 90년대 콘텐츠라는 것이 분명 소구력이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PD는 드라마 제작 현장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현장에서 좀 더 자유로운 이야기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것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20대 초반 젊은 친구들이원석같은 아이디어를 자꾸 던져줘야 드라마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좋은 의견은 바로 반영했다. 장면에 맞춰 곰인형의 포즈를 바꿔보자는 의견도 현장 스태프가 낸 아이디어였는데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어 신 PD가 그 자리에서 바로 받아들인 경우다.

30대 후반인 저는 예능 제작 현장에서 나이가 많은 편이에요.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젊은 친구들보다 창의성 측면에선 약간 부족할 수 있죠. 빛나는 원석 같은 아이디어를 언제까지 저 혼자 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젊은 친구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현장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주는 편이에요. 그들이 원석 같은 아이디어를 툭툭 던졌을 때 그걸 깎아서 제련하고 무엇을 보탤지 고민하는 것이 제가 하는 역할이죠.”

 

성공요인 및 시사점

90년대 콘텐츠에 주목한 통찰력 신원호 PD는 드라마의 성공 이유를 묻자언젠가는 나왔어야 할 이야기를일빠(가장 처음)’로 했을 뿐이라며머릿속에 계속 담아두다가 어느 프로그램이 나오면원래 저거 내가 하려고 했던 건데라고 말하는 PD들이 적지 않은데 다 의미 없는 이야기다. 먼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복고는 전략적인 선택인데 기존 7080년대에 초점이 맞춰졌던 복고를 그리 머지않은 과거였던 90년대로 주목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제작진은 90년대 콘텐츠에 대한 숨은 니즈(unmet needs)를 누구보다 빨리 간파하고 이에 주목했다. 특히 97년에 주목하고 이 시절에 대해 광범위하게 조사해 드라마에서 시대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고증하는 데 성공했다. 제작진은 이 시절을 현재의 대중문화 코드들의 원형이 만들어졌던 시기로 보고 드라마에 당시의 가요, 드라마, 영화 등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90년대의 대중문화는 지금의 문화와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진행형 형태의 초기 버전 같은 느낌을 준다고 판단한 것이다. 90년대 콘텐츠의 힘에 주목한 제작진의 통찰력은 드라마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7080 복고를 보면서 이질감을 느꼈던 2030 세대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90년대 이야기가 나오자 이 새로운 복고에 열광하고 공감했다.

일반적으로 히트 상품은 소비자 자신도 잘 몰랐던 잠재 욕구를 채워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소비자의 눈길을 잡기 위해서는 고객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발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응답하라 1997’ 제작진에게는 이러한 통찰력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주목받지 못했던 90년대를 섬세하게 고증해서 그 시절의 향수에 대한 시청자들의 욕구를 채워준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김나경 선임연구원은 ‘90년대와 통한 2012년의 복고형 감성코드라는 보고서에서 “90년대는 여러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구분 짓는 전환기였다. 경제적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는 시기였고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로 변화하는 시기였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90년대의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90년대에 대한 향수는 20대 후반∼30대 이상의 연령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고 분석했다.

②공감의 힘응답하라 1997’은 드라마 주인공들과 같은 세대인 20∼30대 외에도 이 시대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은 물론이고 40∼50대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감수하는 여주인공 시원을 보면서 10대들은완전 내 이야기같다며 좋아했다. 실제 그 시절을 경험했던 20, 30대는 워크맨, 삐삐는 물론이고 그 시절 즐겨 들었던 가요를 들으며 추억에 빠졌다. 40, 50대는 97, 98 IMF를 실제 겪은 주인공으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당시 정치상황에 공감했다. 주로 자녀들과 함께 시청하면서 시원이 이야기가 내 자식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연령대별로 공감하는 포인트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 밑바탕에는 90년대를 그리워하는 향수라는 깊은 공감대가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

크레이그 스틸과 필 메이어스, 데이어드 미어먼 스콧은 저서 에서 시장에서의 진정한 성공의 비결은 창의성이나 영리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제품 개발이라고 강조했다. 데브 팻나이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역시 저서 에서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키워드는 바로 공감 능력(empathy)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주변 세상과 공감할 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뜻밖의 기회를 찾아낼 수 있듯이 고객과 공감해야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응답하라 1997’은 첫사랑과 90년대라는 키워드를 소재로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PD재미가 있니 없니, 수준이 높니 낮니 등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으려면 우선 시청자가 보게 해야 한다. 보게 하려면 공감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그래야 그 뒤에 펼쳐진 무한한 재미의 바다를 보여줄 수 있다. 그 산을 넘지 못하면 제 아무리 멋진 바다가 있다 해도 보게 할 방법이 없다. ‘남자의 자격을 만들 때도 시청자들로부터아 우리 아빠, 또는 남편도 저거 되게 하고 싶어하는데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기뻤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무언가 한마디라도 보태고 싶게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공감을 사는 프로그램들이다. 할 말이 생기게 하는, 화두를 던져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는데응답하라 1997’도 그런 이유 때문에 큰 사랑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③새로운 시도가 만들어낸 참신함 쏟아지는 드라마 속에서응답하라 1997’은 흔한 인기 배우 한 명 없음에도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했다. 이는 드라마를 한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제작진의 치열한 고민과 새로운 시도 덕분이다. 웃을 일이 많지 않은 현대인들에게응답하라 1997’은 예능 프로그램같이 군데군데 웃음 코드를 주입했다. 뮤직비디오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주 깔린 배경음악 역시 시청자들에게는 그 시절을 보다 감성적으로 느끼게 한 좋은 장치가 됐다.

PD는 처음 하는 드라마 제작에 앞서 기존 드라마를 따라 하기보다는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모르는 데 아는 척 하지 않고 우직하게아는 것만, 할 수 있는 것만으로의 전략으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한 작가는응답하라 1997’의 성공을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본 구성에서 작법이 기존 드라마와 상당히 다르다. 내레이션이 많은데 튀지 않고 잘 묻어난다. 드라마라면 결말을 향해 치밀하게 기승전결과 복선이 조직돼 나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응답하라 1997’은 여기에는 별로 관심 없다. 복선이나 기승전결은 있지만 모두 이야기 전체를 조직하기보다 회별로 묘사하고자 하는 정서를 살리는 데 쓰이고 있다. 접근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모든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존 드라마와 달리응답하라 1997’은 예능 프로그램 기획회의를 하듯 여럿이 모여 구상하고 더 큰 재미를 주기 위해 밤샘 회의를 거듭했다. 또 긴장감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예능식 편집을 도입해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조직이론의 대가 제임스 마치 교수는 1970년대 초바보스러움의 기술(technology of foolishness)’이라는 논문에서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혁신을 이뤄내려면 심각하고 딱딱한 표정으로 책상 앞에 앉아 경직된 마음으로 계산이나 분석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처음 보는 신기한 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자유분방하게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답하라 1997’이 섬세한 고증, 음악 드라마, 예능 접근법으로 기존 드라마의 틀을 깰 수 있었던 것은 제작진이 이전의 드라마를 따라 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기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예능식 편집을 도입해 즐겁게 드라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PD와 작가 등 핵심 제작진의 카리스마만 빛나는 현장이 아니라 모든 제작진 개개인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오고 가고 좋은 의견은 언제든지 드라마에 반영되는 분위기 덕분에 새로운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었다. 물론 예능 출신 PD가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드라마를 한다고 할 때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제작사의 열린 마음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도응답하라 1997’의 성공 요인 중 하나다.

 

참고문헌

CJ E&M 보도자료

LG경제연구원 Weekly 포커스(2012.9.19). 90년대와 통한 2012년의 복고형 감성코드

DBR 29(2009.3.15). 신동엽 교수의 경영 거장 탐구

일간스포츠(2012.9.18). 응답하라 1997, 열풍 몰아친 비결 세 가지

프레시안(2012.9.20). 응답하라 1997을 설명하는 다섯 가지 키워드

동아일보(2012.9.21). 결국 응답받은 ‘1997’…예능 출신 신원호 PD 드라마 첫 작품서홈런

경향신문(2012.9.28). 모두가확인응답하라, 신원호 PD!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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