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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hinking - 대우일렉트로닉스 ‘미니’ 이혁진 책임연구원 인터뷰

“세탁기를 벽에 걸었다. 생존걸린 절박함이 혁신을 낳았다”

최한나 | 117호 (2012년 11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윤경미(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Small is beautiful.”

 

경제학자 슈마허가 주창한 이 문장은 경제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진리로 통한다. 모든 작은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힘이 세다. 아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종일 울기만 해도 단지 작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

 

액자나 시계 정도를 걸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벽에 세탁기가 걸렸다. 벽에 걸리기 위해 필연적으로 작아져야 했다. 줄였더니 예뻐졌다. 벽에 걸린 세탁기를 본 사람들은 십중팔구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는다. 아름다움은 효율성으로 이어졌다. 베란다 혹은 부엌 한 구석을 상당한 덩치로 차지하고 있던 세탁기가 벽에 걸리면서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세탁기 한번 돌리기 위해 몇 주간 빨래를 모아야 했던 수고로움이 사라졌다. 대우일렉트로닉스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벽걸이 세탁기미니(mini)’ 얘기다. ‘더 크게, 더 화려하게라는 트렌드에 반하는 파격적인 크기에 세탁기를 벽에 건다는 획기적인 발상이 만나 엄청난 반향을 불렀다. 미니는 출시 3개월 만에 1만 대 넘게 팔려나갔다. 미니를 디자인한 이혁진 책임연구원을 만나 벽걸이 세탁기의 탄생 과정을 들었다.

 

세탁기를 벽에 건다는 발상이 매우 신선하다.

 

어떻게 얻은 아이디어인가.

 

가전을 벽에 건다는 개념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공모전이나 콘셉트 전시회 등에는 종종 벽에 걸린 가전이 등장한다. 문제는 양산이다. 가전을 벽에 건다고 했을 때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도 처음에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출발했다. 연구소에서 다 같이 모여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세탁기가 있어서 불편한 점이 뭔지, 필수 가전인데도 불구하고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인지에 대한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모인 연구원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덩치가 커서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한번 돌리려면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세탁물을 넣고 뺄 때마다 몸을 굽혀야 해서 허리가 아프다등등. 그러다가 누군가 농담처럼공중에 매달아 버리면 어때?’라고 말했다. 다들 깔깔 웃다가그래, 그럼 한번 매달아 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목표를 세우니 차츰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공중에 띄워놓기는 어려우니까 벽에 매달아보자는 쪽으로 얘기가 진행됐다. 벽에 매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기존 세탁기보다 작고 가벼워져야 했다. 세탁기 본연의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장 작게 줄일 수 있는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부터 연구해야 했다. 진동과 소음도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세탁기가 벽에 붙으면 벽을 타고 더 크게 울리고 흔들려 진동과 소음이 커질 수 있었다. 벽을 뚫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세탁기를 걸려면 어떤 형태로든 지지대가 필요했다. 지지대를 설치하려면 벽을 뚫어야 했다. 전세 사는 사람들이 민감할 수 있는 요소였다. 옆집과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과연 현실화할 수 있을지 내부적으로도 반신반의했다.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았는데 개발팀과 협업이 잘된 케이스였다. 디자인팀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시도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때 개발팀에서 흔쾌히 오케이해줬다. 개발팀에서 적극 나서주면서 작업에 힘이 붙었다. 벽걸이 세탁기는 곧 전사적인 목표로 자리 잡았다. 예전에는 디자인팀은 여의도에, 개발팀은 부평에 떨어져 있었다. 2009년 말, 디자인팀이 부평으로 옮겨가면서 한 건물의 1, 2층을 나눠 쓰게 됐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고 제작 과정에서 의논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가서 얼굴 보며 대화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디자인과 제작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밀접하게 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미니를 제작하면서 난관이 많았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했나.

 

벽에 걸기에도 부담이 없고 어느 정도의 세탁물도 소화할 수 있는 현재의 형태(550x600x292, 3)를 찾아내는 데만 1년 반 이상 걸렸다. 아무래도 벽에 걸기에는 작으면 작을수록 유리하다. 제일 처음 생각했던 크기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초기 모형을 만들어 주부단의 평가를 거쳤다. 이 정도로는 빨래를 너무 자주 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아 크기를 키웠다. 더 키워서 또 물어보고, 좀 더 키워서 다시 평가를 받았다. 크다는 의견이 많으면 다시 줄였다. 벽에 걸었을 때 지탱되는지를 보면서 소비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적정 무게와 크기를 찾았다.

 

또 하나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세탁기의 핵심인 모터다. 소음과 진동의 대부분이 모터에서 발생한다. 소음과 진동을 최소한으로 하면서도 미니에 들어갈 수 있게끔 크기가 매우 작은 모터를 만들어야 했다. 미니에서 모터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상하좌우의 라운드 사각 끝부분뿐이다. 작은 공간에 최적화된 모터 개발이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3㎏의 세탁기를 돌릴 수 있을 만큼의 출력은 나와야 했다. 다양한 크기의 모터를 만들고 번갈아 돌려가며 출력량과 소음을 측정했다. 모터가 크면 힘은 좋지만 소음이 커지고, 모터가 작으면 소음은 줄지만 힘이 약해진다. 모터의 크기를 조절해가며 수백 번, 수천 번 실험을 반복했다. 초저음 초소형 인버터 모터를 개발하는 데 1년 넘게 걸렸다. 또 세탁조와 몸체(캐비닛)가 돌면서 서로 부딪혀 내는 소음을 잡기 위해 세탁조-캐비닛 일체형 구조로 설계했다.

벽에 거는 과정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벽을 뚫어야 하는데 집집마다 벽의 재질이 다를 것이고 전세 사는 사람이면 주인 눈치도 봐야 할 것이다.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춰지고 크기와 무게가 정해졌을 때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가옥조사를 진행했다. 모인 자료를 토대로 여러 종류의 벽을 만들어 가상으로 설치해보고 완벽하게 고정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크기가 작고 적은 양도 자주 세탁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미니의 주요 수요층은 신혼이거나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일 것으로 예상했다. 워킹 목업(working mock-up)을 만들어 식구 수가 적거나 아이가 있는 직원들의 가정에 실제로 설치해서 사용해보도록 했다.

 

벽에 걸어둬야 할 뿐 아니라 세탁하면서 진동이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해 안정감을 줄 수 있도록 설계했다. 혹여나 떨어지거나 흔들리는 일을 막기 위해 무게중심을 아래쪽에 두는 하부중심구조로 만들었다.

 

세탁기는 물과 가까울수록 좋다. 작동 과정에 필연적으로 물이 필요하다. 급수와 배수를 위한 호스를 연결해야 한다. 세탁기를 다용도실이나 베란다 등 실내에서 안 보이는 곳에 설치하면 호스가 어디에 놓이든 크게 상관이 없겠지만 미니는 다르다. 부엌이나 화장실, 심지어 거실에도 설치될 수 있는데다 세탁기가 눈높이까지 올라와 있기 때문에 호스가 눈에 잘 띈다. 우리는 호스도 디자인의 일부로 봤다. 최대한 얇고 가늘게, 그러면서도 깔끔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미니는 세탁할 때 물이 많이 필요 없기 때문에 호스가 굵을 필요가 없다. 호스 지름이 1㎝가 채 안 될 정도다. 호스 입구에는 필터를 설치해 동전이나 보풀 등 이물질이 삽입될 가능성을 없앴다. 전기선과 급수 및 배수선을 한꺼번에 묶어 몰딩 처리해서 지저분한 느낌을 줄였다.

 

세탁기가 벽에 걸려 있다 보니 세탁기 문을 열었을 때 옷이나 물이 쏟아지거나 넘칠 우려도 있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내용물에 이상이 발생하면 경고음이 나도록 했다. 경고음이 울리면 문이 자동으로 잠겨 밖에서 열 수 없다. 그리고 자동으로 탈수가 진행된다. 안에 들어 있는 물이 다 빠진 후에야 잠금이 해제되고 열리도록 했다.

 

미니를 설치할 때 불가피하게 네 개의 구멍을 뚫는다. 구멍을 뚫고 지지대를 박아 미니를 매단다. 이때 지지대와 벽 사이에 4중 방진패드를 덧대 소음과 진동을 흡수하도록 했다. 뚫는 구멍의 크기는 최소화하려고 신경을 썼다. 아울러 이사 등으로 떼어내야 할 때는 직접 방문해 구멍을 막아주기로 했다.

 

세탁기가 벽에 걸려 있다 보니 시각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지나가다가 걸릴 수도 있고 눈높이에서 시야를 가릴 수도 있었다. 더 작게, 더 가볍게 만들려고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고민했다. 그리고 최대한 둥글렸다. 욕실에 걸릴 수도 있고, 부엌에 걸릴 수도 있고, 거실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어디에 둬도 무난할 수 있게끔 곡선을 활용했다. 모서리를 깎고 부드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뒀다.

 

심적으로 가장 부담이 됐던 것은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도전한다는 점이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된다. 최초는 그렇지 않다. 아이디어 차원에 머무르던 일을 처음으로 시도한다는 것은 상당히 긴장되는 일이었다. 세계 최초도 중요하지만 처음 나온 것이면서도 아주 괜찮아야 했다. 기능적으로는 불가능한 미션이 가능해졌는데 디자인이 별로라는 평가는 듣고 싶지 않았다. 통상 제품을 제작할 때는 한두 번 정도 디자인 보완 작업을 하는데 미니는 총 3차에 걸쳐 수정 보완 작업을 거쳤다. 이렇게 여러 번 작업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공을 많이 들였다.

 

세제 자동 투입구 같은 것이 수정 과정에서 추가된 기능이다. ()공간을 살리기 위해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다. 세탁기를 정면에서 보면 둥근 사각형이다. 문이 원형이므로 열고 닫히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이 둥글려진 각() 부분에 남는데 이 공간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일반 세탁기는 돌릴 때마다 세제를 넣어줘야 한다. 하지만 미니에는 왼쪽 윗부분에 세제 자동 투입구가, 오른쪽 윗부분에 섬유유연제 자동 투입구가 있어서 그곳에 각각 세제와 유연제를 채워두면 필요할 때마다 세탁기가 알아서 연결 부분을 열고 필요한 만큼 세제와 유연제를 내려쓴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동기 부여가 되기도 했다. 구체적인 작업이 진행되면서 회사 전체가 살짝 들뜬 분위기였다. 이 제품이 실제로 나오면 단숨에 이목을 끌 수 있지 않을까, 회사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다.

 

세탁기를 벽에 매달아야 한다는 데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도 있었을 것 같다.

 

기존 제품과 전혀 다른 방식의 제품이라는 점에서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때문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미니를 제작하면서 먼저 사용해보도록 한 사람들의 평가가 좋았다. 사용하기 전에는 어떻게 세탁기를 벽에 걸고 사용할 수 있겠냐며 걱정하던 사람들도 막상 사용해보면 기대 이상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연구소에서는 미니를 소비자와 함께 만든 제품이라고 한다. 미니를 만든 2년 여 동안 무수히 많은 필드 테스트(field test)를 진행했다. 문제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마다 주부들로 구성된 소비자단에게 실제 사용해보도록 하고 평가를 받았다. 소비자 평가를 최대한 반영해 수정하고 보완했다.

 

실제로 신제품 발표회에서 첫선을 보이며 언론에 공개된 이후 제품이 시판되기도 전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회사에 선주문 및 예약 구매에 대한 문의 전화가 빗발칠 정도였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자나 깨나 디자인을 생각한다(웃음). 물론 다른 회사 디자이너들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대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국내에서 대우표 가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같은 시장을 두고 삼성이나 LG와 경쟁해야 하는데 상대가 막강하다. 경쟁사에는 디자이너도, 그들이 내놓는 아이디어도 훨씬 많다. 그런 회사에서는 10개 정도 모델을 개발한다고 하면 그중 하나만 성공해도 대박이다. 소비자의 니즈를 읽어내는 일이 쉽지 않기도 하지만 내놓는 모델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우에서는 하나를 냈을 때 그 제품이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투입할 수 있는 재원이나 시간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데다 실패하면 극단적으로 말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때문에 일단 제품을 하나 내놓으면 그 제품을 가지고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러니까 아이디어를 미친 듯이 쏟아낸다. 어떤 아이디어가 먹혀들어갈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완성품이 나오기 전까지 수백 번 수천 번 보완하고 검토해서 정말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도록 노력한다. 생존이 걸린 절박함, 이것이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실패를 용인할 만한 여유가 없다.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하는 회의는 그야말로 전쟁터다. 직급을 막론하고 누구나 필사적으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제출한다. 주인 없이 부유(浮遊)한 기간이 길었다. 전사적으로 절박한 분위기가 깔려 있다고 보면 된다.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전 과정에 그런 분위기가 동력으로 작용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가.

 

어떤 입장에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에 가장 많이 기여한 디자인일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필요와 취향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제품 고유의 가치까지만 전달하는 디자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CD플레이어를 디자인한다고 하자. 소비자가 사용할 때는 우선 CD를 넣어서 잘 돌아가고 음악이 제대로 흘러나오면서 볼륨 조절이나 음악 선택 등 기본 기능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휴대하기 편하면서 색이나 모양이 마음에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디자이너의 욕심이 더해지면 이런저런 추가 기능이 붙고 그것을 치장하기 위한 군더더기들이 들어가면서 원래의 가치 이상을 지니는 제품이 된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제품의 가치는 10만 원어치인데 군더더기를 더해서 20만 원짜리를 만들어놓고 갖고 싶으면 20만 원을 내라는 식이다. 소비자가 필요 이상의 돈을 쓰게 되면 그것은 과소비다.

 

일본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를 좋아하는데 그가 디자인한 CD플레이어는 굉장히 심플하다. CD 커버색에 따라 CD플레이어의 느낌이 달라진다. 침실에 두든, 거실에 두든 크게 튀지 않고 주변과 잘 어울린다.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이나 개성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그런 제품에서는 소비자가 느끼는 만족이나 가치가 오래 유지된다.

 

가전은 수명이 긴 제품이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생명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당장의 유행이나 트렌드를 좇아서는 오래 가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 몇 년 전, 꽃무늬가 한창 유행했다.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 주요 가전제품마다 큼지막한 꽃들이 앞 다퉈 들어갔다. 우리도 내부적으로 꽃을 넣느냐, 안 넣느냐를 놓고 많이 고민했다. 지금 대세는 플라워 프린팅인데 당장 팔리는 추세를 따라서 꽃을 넣을 것이냐, 아니면 이제껏 해왔던 대로 잔잔하게 갈 것이냐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 대우가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1등 기업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트렌드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 1등도 아니면서 시장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우리 식대로 고집 피우다가 아예 외면받을 수도 있다.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가전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집이라는 한 공간에 여러 개가 함께 놓이기 때문에 다른 가전과의 조화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제품에 지나치게 튀거나 큰 무늬가 들어가면 다른 가전과 어울리지 못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국내 시장 트렌드는 굉장히 빠르게 바뀌는데 무조건 추종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그때의 결정이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가전에서 꽃무늬가 완전히 사라졌다. 한때의 유행이었던 셈이다.

 

미니는 디자인이 아이디어를 내서 기능적으로 완성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디자인이 주도적으로 활약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경영진이 많이 알아야 한다. ‘디자인 경영을 표방한다고는 누구나, 어느 기업이나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체다. 의사결정의 최상위 단계에 있는 분들이 디자인에 관심을 갖고 많이 알아야 한다. 경영진이 디자인을 모르면 디자이너들과 대화할 수 없다. 의사소통이 안 된다. 최고경영진이 디자이너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아이디어에 동감하며 의도를 이해할 수 있어야 디자인이 제품으로 연결될 수 있는 추진력을 얻는다. 기존 제품과 많이 다른,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나와도 엉뚱하다거나 어이없다고 내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전문 디자이너만큼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지식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결단이 내려지지 않으면 아무리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도 사장될 수 있다. 경영진 마인드가 디자인 친화적이지 않으면 디자이너가 의사결정권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 디자이너가 윗분 취향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디자인이 살아남는 쪽으로 머리를 굴리게 된다. 시장과 소비자보다는 의사결정권자를 우선하기 쉬워진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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