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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수건 짜기 전략: 소포장, 초저가, 소형가전, 멤버십, 반값 제품
‘낭비(浪費)’와 ‘여유(餘裕)’. 사전적으로 달라 보이는 이 두 단어는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낭비는 기본적으로 여유로움을 전제로 해야 한다. 여유가 없다면 낭비란 있을 수 없다. 도스타인 베블렌(Thorstein Bunde Veblen)은 저서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부자들(유한계급)은 시간과 재물을 어떻게 ‘낭비하는가’를 주변에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여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인가를 드러내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낭비’를 보여주는 것이 여유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낭비 없는 삶’이란 ‘삶의 여유’가 없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12년 대부분의 조사자료를 보면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실제 삶에서 ‘낭비’의 요소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은 ‘소포장’ 제품이 필요하다(62.9%)고 했고 소형가전에 대한 선호(소형가전이 실속 있다 64.9%, 활용도가 높다 57.0%)도 높았다. 소비자의 87.2%는 중고용품을 구입해봤거나 고려하고 있었고 절대 다수의 소비자들은 초저가의 대형마트의 제품에 대해 구매 의향(90.3%)을 가지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낭비를 줄이려 하는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차원이라기보다는 실질적인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낭비’를 줄이려는 소비자들의 태도는 ‘심리적인 여유’가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대형마트에 대한 소비자의 이율배반적 태도: 머리 따로, 몸 따로
2012년에 대형마트는 두 번의 큰 선거(총선, 대선)를 거쳐가면서 ‘공공의 적’으로 자주 정치권의 공격 대상이 됐다. 소비자들도 대형마트가 지향하는 판매행위에 대해 그다지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대형마트의 초저가 상품은 소비자의 과소비를 유발한다거나(동의 66,1%, 비동의 12.2%), 영세상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대기업의 마케팅(동의 65.6%, 비동의 7.2%)이라거나, 소비자를 끌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동의 59.5%, 비동의 8.2%)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의 초저가 상품을 구매한 경험은 2011년 대비 19.3%포인트나 증가한 67.6%에 달했다(2011년 48.3%). 왜 이런 이율배반적인 결과가 나타났을까? 실제로 소비자들은 ‘돈’이 없었다. 78.5%의 소비자들은 2013년의 소득이 현재 수준이거나 현재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고, 38.5%의 소비자들은 생활비를 위해 대출을 한 상태(70.4%)였고, 2011년에 비해 경조사 때 현금을 선물하는 비중은 현저하게 감소했다(2011년 53.7% → 2012년 36.0%). 이렇게 경제적 여유가 없는 현실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소비를 할 ‘심리적인 여력’까지도 없애는 것 같다. 소비생활은 사회적 의미보다 자신의 필요여부만 따지면 된다는 현상(동의 66.5%, 비동의 7.1%)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재래시장은 대형마트를 이길 수 없다
실질적인 소득감소를 예상하는 소비자들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줄일 수 없는 지출은 존재하고, 또 어렵지만 늘려야 하는 지출항목도 존재한다. 소비자들이 응답한 2013년에 가장 늘려야 하는 지출항목 1순위는 ‘자녀 교육 관련 항목(학원비 등) (25.4%)’이다. 다음으로 식품비(17.9%), 여행(16.0%), 대출이자/대출원금 상환(15.7%), 세금/공과금(15.7%), 병원/의료비(15.2%) 등의 순이었다. ‘교육비’와 ‘여행경비’를 제외하고는 순소비지출이라기보다는 대체로 ‘비용’에 대한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는 달리 2013년 지출이 감소할 항목으로 꼽은 것은 1순위로 ‘외식(25.9%)’이었고 다음으로 ‘여행(16.7%)’ ‘가전 가구 등 생활내구재(13.6%)’ ‘스마트폰 등 IT제품(13.1%)’ ‘극장, 공연장 방문(12.0%)’순이었다. 전체적으로 2013년에 소비자들은 ‘순수 소비성 지출’은 현저하게 줄일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초저가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대형마트’를 향한 발걸음이 가속화될 가능성은 더 커질 것 같다. 정치권이나 비영리단체, 시민단체, 정부나 유관기관 등에서 사회적기업의 육성이나 재래시장 이용에 많은 의미부여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소비자의 사회적 선의(善意)가 구현되려면 심리적이든, 경제적이든 소비자들에게 제도적으로 사회적 기업의 상품이나 재래시장의 이용도 실질적인 소비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심리적인 여유가 없는 소비자들에게 사회적 선의(善意)에 대한 강요는 또 다른 심리적 스트레스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윤덕환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콘텐츠사업부장 dhyoon@trendmonitor.co.kr
필자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심리학과에서 문화 및 사회심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엠브레인에서 리서치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다수의 마케팅리서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현재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서 콘텐츠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디지에코) Issue & Trend, Issue Crunch 코너의 고정집필진이다. 저서로는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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