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Marketing Classics-6
편집자주
패션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패션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어느 누구도 패션을 벗어나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패션은 인간 삶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패션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됩니다. 정인희 교수가 Fashion Marketing Classics을 통해 흥미로운 패션 마케팅을 소개합니다.
이탈리아 북서부에서 프랑스 동남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안 지역을 리비에라(Riviera)라고 부른다. 꽃의 도시 산레모를 비롯해 모나코공국의 몬테카를로, 프랑스의 대표 휴양지인 니스와 칸이 연이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알프스 산자락이 지중해로 떨어지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해내는 이곳에서는 해마다 산레모 가요제나 칸 국제영화제 등 대형 행사가 개최된다. 그래서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별장을 소유하고 있거나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사시사철 매력적인 휴양객과 관광객이 붐비는 이 지역에는 속칭 명품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럭셔리 브랜드 매장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요즘 세계 어디를 가든 그 존재감이 막중한 SPA 브랜드 매장 또한 예전부터 있었던 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가(低價)가 경쟁력인 SPA 브랜드들이 럭셔리 브랜드들과 당당히 어깨를 견주며 경제적 여유가 넘치는 패셔니스타 고객들의 소비욕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세계 패션 시장은 양극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지속적으로 상권을 확장하는 동시에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부풀려 규모의 경제와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저가품들이 쏟아져 나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된 비(非)브랜드 제품들도 많지만 비슷한 가격으로 품질까지 보증되는 SPA 브랜드 제품들이 시장 구조를 재편하고 있는 실정이다.
LVMH(Louis Vuitton Moët Hennesy)는 고급 가죽 브랜드인 루이비통과 고급 와인 브랜드인 모에 헤네시의 통합으로 만들어진 거대 그룹으로 현재 주류(酒類), 패션, 향수와 코스메틱, 시계와 보석, 소매 유통, 기타의 6개 사업 부문에서 60개 이상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루이비통을 비롯해 지방시, 펜디, 로에베, 마크 제이콥스, 도나 카란, 겐조, 에밀리오 푸치 등 13개의 패션 브랜드가 이 그룹 산하다. PPR 역시 구찌를 비롯해 알렉산더 맥퀸, 스텔라 맥카트니, 이브 생 로랑, 발렌시아가 등 11개의 럭셔리 패션 브랜드를 거느린 대형 그룹이다. 2007년에 푸마를 인수하면서 스포츠·레저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럭셔리 패션 산업의 대기업들은 전통적인 패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상품 유형 간을 넘나들며 그 규모를 키우고 있다. 아르마니나 프라다처럼 디자이너 개인이 중심이 돼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이더라도 멀티 타깃을 대상으로 한 멀티 브랜드 전략과 공격적인 세계 시장 진출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즉 오늘날 럭셔리 패션 기업은 점점 거대해져 일종의 패션 제국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세계 시장 어디를 가나 중국에서 쏟아져 나온 저가 의류들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손꼽을 만한 유명 관광지가 아닌 지역의 가게들은 대체로 오후 1시간 동안 문을 닫고 쉰다. 하지만 노점에서 중국산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중국 상인들은 쉬는 시간 없이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렇게 중국 제품은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시간 경쟁력까지 갖고 있다. 칠레에는 중국인들의 억척스러움을 빗대 ‘중국 사람처럼 일한다’는 속담이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럭셔리의 반대편에서 비(非)브랜드 저가 제품과 공존하는 것이 SPA 브랜드다. SPA 브랜드는 가격이 아닌 ‘브랜드’로 저가 제품의 새로운 마케팅 패러다임을 창출해냈다. 즉 ‘값싼 옷 = No Style, No Quality’라는 등식을 깨트리고 유명 패션 디자이너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PR과 VMD(visual merchandising), 광고 등 여러 가지 촉진 전략을 활용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라와 H&M으로 대표되는 이들 SPA 브랜드는 ‘Made in Italy’ 혹은 ‘Made in France’ 등 원산지를 중요시하던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이름이 원산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주입하는 데도 성공했다. SPA 브랜드의 패션 상품들은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스페인, 모로코, 터키, 인도 등 여러 원산지 라벨을 각각 붙인 채 같은 매대에서 아무런 구별 없이 판매되고 있다. 더 이상 원산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어디에서 생산되건 브랜드 본사에서 품질 관리를 잘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옷들을 보며 소비자들은 스스로가 글로벌 시민임을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제 어떤 브랜드가 어느 나라 브랜드인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항이 됐다. 오트쿠틔르 디자이너들은 한참 전부터 이 나라 저 나라로 더 좋은 조건과 환경을 찾아 움직이고 있고 럭셔리 브랜드들도 인수합병에 따라 국적이 변경되곤 한다. 예컨대 이탈리아 스포츠 브랜드였던 필라는 2007년 지주회사인 SBI를 필라코리아가 인수함으로써 한국 브랜드가 됐고 독일 브랜드였던 MCM은 2005년 성주인터내셔널에서 인수해 한국 국적을 가지게 됐다. 또한 가끔은 국가 간 세제(稅制)의 차이를 고려해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본사를 이전하는 경우도 있다.
자라와 H&M은 각각 스페인과 스웨덴의 브랜드다. 즉, 글로벌 패션 센터로 공인된 프랑스와 이탈리아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에 사업 확장 과정에서도 브랜드의 국가 이미지가 강조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 브랜드의 국적에 관심을 가진 것은 소비자 쪽이다. 그리고 이들이 럭셔리 이미지가 강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브랜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국적을 알게 된 소비자들은 오히려 호기심과 신선함,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글로벌 분업화가 만연한 오늘날, 원산지나 브랜드 국적이 아닌 브랜드와 자본이 마켓 파워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비록 가격이라는 축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패션 시장이 양극화되고 있지만 이들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들까지 양분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전적으로 한쪽 방향의 소비만을 하지는 않는다. 양극화된 시장을 통합하는 소비 패턴을 보이는 것이다.
가령 경제적인 능력이 되는 소비자들은 1000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브랜드 제품을 선택하는 동시에 자라와 H&M에서 10유로도 안 되는 티셔츠를 주저 없이 구매한다. 그것도 한 보따리 넘치게 아주 많이 구매한다. 어마어마한 가격 차이가 나는 두 종류의 옷을 믹스 앤드 매치해 입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자라나 H&M을 입는다는 사실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 것이다.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소비자들 역시 대개는 SPA 브랜드나 보세 의류를 이용하더라도 가끔씩은 스스로를 위한 선물, 혹은 인생의 고달픔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과소비를 하곤 한다. 그리하여 리비에라에도, 공항 면세구역에도, 한국의 백화점에도 럭셔리 매장과 SPA 브랜드 매장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럭셔리 제품, 고급 브랜드 제품, SPA 브랜드 제품과 보세 제품까지 잘 믹스 매치한 뒤 거리를 활보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최고급 레스토랑이나 일식집을 이용하는 소비자도 때로는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1000원짜리 김밥과 떡볶이를 먹는다. 이처럼 럭셔리 패션 소비자들도 SPA 브랜드 옷과 보세 의류를 즐겁게 소비하는 것이 오늘날의 세상이다. 고급 음식이 아닌 맥도날드가 최고 수준의 브랜드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자라나 H&M의 브랜드 가치도 어마어마하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가난할 때는 가격이 시장을 단절시키는 키워드가 될 수 있지만 ‘돈’ 걱정에서 다소 자유로운 세상에서는 가격에 의한 시장의 경계가 그리 굳건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모름지기 패션 산업에서는 가격보다도 개성과 연출이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정인희 금오공대 교수 ihnhee@kumoh.ac.kr
필자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과 기업에서 강의와 실무를 병행하며 일하다 2000년 3월부터 금오공대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패션 시장을 지배하라> <이탈리아, 패션과 문화를 말하다> 등이, 역서로 <재키 스타일> <오드리 헵번: 스타일과 인생> <서양 패션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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