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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혁신과 세 가지 역설

김남국 | 113호 (2012년 9월 Issue 2)

 

DBR이 이번엔 농촌으로 갔습니다. 재래시장(DBR 82), 지방정부(DBR 94)에 이어 기업 이외의 케이스 스터디 세 번째 대상으로 농업에 주목했습니다. 농업은 가장 오랜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려움에 직면한 산업 분야입니다. 규모의 경제와 첨단 기술을 무기로 가진 막강한 외국 경쟁자와 힘겹게 싸워야 하는데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농업 혁신을 지원할 만한 인프라나 자원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산업 전반의 경쟁력은 여전히 취약합니다.

하지만 일부 혁신가들은 농업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들은 불굴의 의지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며 성공 신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의 경험은 최첨단 빌딩에서 깔끔한 옷을 입고 근무하는 현대 기업의 경영자들에게 값진 교훈을 줍니다.

이번에 농촌 혁신 사례를 보면서 세 가지 역설을 떠올렸습니다. 첫째는척박함의 역설입니다. 척박한 환경은 우리에게 큰 좌절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이런 척박함은 생명과 창조의 원천입니다. 한 농부는 3년만 되면 뿌리가 썩어버리는 도라지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비료를 써가며 실험했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좌절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척박한 황토에 꽂아 두었던 도라지가 잘 살아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온갖 비료를 뿌리며 풍성한 환경을 제공해준 곳에서 도라지는 죽어버렸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는 썩은 상처를 밀어내고 새살이 돋듯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3년마다 척박한 환경으로 옮겨 심는 독특한 농법으로 이 농부는 20년 이상 수명을 이어간 도라지를 재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척박함은 강인한 생명력을 보장해주는 축복입니다.

두 번째로치밀한 전략기획의 역설입니다. 모든 상황을 감안해 치밀한 전략을 수립하면 성공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제 많은 경영대학에서 과학적 분석적 방법을 토대로 최적의 전략을 고안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시행착오(trial & error)방식은 매우 원시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수많은 혁신은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일어납니다. 버섯 재배 과정을 연구하던 한 농부는 배지(버섯균이 자랄 수 있도록 각종 재료를 모아둔 뭉치)를 개선하기 위해 재료 조합을 수백, 수천 번 달리 해가며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 큰 성과를 냈습니다. 이런 도전정신은 버섯 재배와 관련한 다른 혁신으로 연결되면서 성장의 기반이 구축됐습니다. 불확실성 시대에 미래를 예측해 최고의 전략을 수립하려는 것은 인간의 헛된 꿈일지도 모릅니다. 시행착오는 가장 오래된 혁신 방법론 중 하나이며 미래 예측이 어려워진 현대에 더욱 가치를 가집니다.

마지막으로잭팟의 역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횡재가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횡재는 그만한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혁신적 농업인들은 어렵지만 유통망을 스스로 개척했습니다. 대형마트나 도매 유통업체들의 달콤한 대박 유혹에 빠지기보다 힘들지만 스스로의 역량으로 유통망을 개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시류에 따라 인기가 좋은 품목을 대량으로 구매하지만 인기가 시들해지면 바로 거래처를 바꿉니다. 이들의 말을 믿고 과도하게 설비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농업인들이 많습니다.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개척한 유통망은 지속가능성을 높여줍니다.

이 밖에도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값진 교훈들을 농업 혁신 사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도라지 재배법 개발에 일생을 바친 이성호 옹의 집념을 뒷받침한 경구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태어난 이상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 한 가지는 해야 한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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