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Marketing Classics-4

리서슈머 시대, 소비자는 똑똑하다

107호 (2012년 6월 Issue 2)





편집자주 패션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패션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어느 누구도 패션을 벗어나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패션은 인간 삶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패션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됩니다. 정인희 교수가 Fashion Marketing Classics을 통해 흥미로운 패션 마케팅을 소개합니다.
 
“커피 가루, 제일 작은 크기로 갈아주세요.”
“어떤 기계를 사용하시죠?
“기계는 여러 가지 쓰는데 저는 가늘게 간 가루로 마시니까 제일 작게 갈아주세요.”
“어떤 기계를 사용하시는지 말씀해주셔야 거기에 맞게 갈아드릴 수 있어요.”
“그냥 제일 작은 크기로 갈아주세요.”
“그래도 어떤 기계를 사용하시는지 알아야….”
“제발, 해달라는 대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어느 커피전문점에서 목격한 손님과 매장 직원의 대화다. 여러 해 동안 커피를 마셔 커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커피에 관한 취향이 확실한 고객을 앞에 두고 이 기계에는 이 사이즈, 저 기계에는 저 사이즈라고 교육받은 직원이 자신의 지식수준에 고객의 요구를 끼워 맞추는 장면이다. 물론 커피나 커피 머신의 속성을 잘 모르는 소비자에게는 이러한 매장 직원의 질문이 훌륭한 서비스로 인식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판매원보다 제품의 지식을 훨씬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취미로 즐길 수 있는 제품에 대해서는 마니아층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오랜 시간 제품을 향유해 온 그들에게 갓 교육을 마친 직원의 어설픈 응대는 오히려 매장의 전문적 이미지 형성과 이에 뒤따르는 매출에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커피나 와인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커피나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더욱 잘 즐기기 위해 제품에 대해 공부한다. 그렇게 쌓은 지식으로 준()전문가가 돼 소비 과정에서 으스대는 재미도 누린다. 그러므로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며 현란한 지식을 뽐내는 손님에 맞서 함께 전문지식으로 대꾸할 수 있는 판매원이 필요한 것이다.
 
컴퓨터나 카메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컴퓨터와 카메라는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과 다른 소비 패턴을 가졌다.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는 보통 소비자가 구매 시점에서만 신모델이나 새로운 기능에 관심을 기울이는 제품인 반면 컴퓨터나 카메라의 경우는 당장의 구매 계획이 없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제품 혁신을 모니터링하는 마니아층이 존재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제품은 판매원 역시 마니아 수준의 정보를 갖추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응대를 하기 어렵다.
 
스포츠 용품이나 스포츠웨어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값비싼 요트나 골프 클럽을 구매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테니스 라켓이나 등산화를 구매할 때도 판매자의 전문성이 구매 결정을 좌우할 때가 많다. 단순하게 판매를 목적으로 매장에 고용된 인물인지, 아니면 판매자 스스로가 그 분야의 전문가인지가 구매 결정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 제품에 대한 조언과 권고를 해줄 때 고객은 판매자를 신뢰하고 쉽게 구매에 이르게 된다.
 
마케팅과 소비자행동 연구에서는 소비자가 어떤 구매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구매 상품에 관심을 두는 정도를 관여(關與·involvement)라고 한다. 이 관여는 제품이 무엇인가, 소비자가 누구인가,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커피에 관심이 없는 소비자는 모든 커피 맛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아무거나 주어지는 대로 받아 마신다. 그러나 커피 애호가는 커피 맛을 꼼꼼히 따지며 원산지를 체크한다. 후자의 경우에 소비자의 커피에 대한 관여가 높다고 한다. 또한 헤어드라이어보다 디지털카메라를 살 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더 많은 두뇌 에너지를 소비할 것이므로 디지털카메라는 헤어드라이어보다 더 관여도가 높은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퇴근 후 한 잔 마실 목적으로 구매하는 와인 한 병보다 중요한 손님을 접대하는 자리를 위해 고르는 와인이 더 높은 관여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와 같이 관여도가 높은 구매에서 소비자들은 더욱 자신의 지식과 취향을 중요시하며 보다 현명해지고자 한다. 때로 이들은 제품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무장한 후 프로슈머(prosumer)1 가 돼 내가 분양받은 아파트의 공간을 직접 디자인하거나 옷이나 신발의 디자인을 부분적으로 변경해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기도 한다.
 
정보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힘입어 집안에 있어도 온 세계와 교류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소비자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 속에서 생활한다. 커피숍에 앉아 대화를 나누다가도 궁금한 것이 생기면 지체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검색한다. 지하철이나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e메일을 확인하고 트윗을 날리며 쇼핑을 한다. 스마트 기기들은 각종 자료의 작성과 어려운 계산까지도 자신들을 사용하라고 유혹한다.
 
소비자의 신분으로 생산해내는 정보량 또한 엄청나다. 이들 정보는 살아서 움직이는 특성을 가진다. 당연히 사이버 공간을 통해 많은 정보가 오고간다. 이러한 정보 교류는 지인(知人)들 사이에서도 일어나지만 익명의 다수들 사이에서도 발생난다. 자연스럽게 온라인 구전(口傳·WOM·word of mouth)이 이뤄진다.
 
게다가 기업들은 이런 소비자들을 부추기는 촉진 활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한다. 상품 홍보 페이지를 링크시킨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경품을 추첨해 주거나, 신제품을 준 뒤 직접 사용해본 후 체험 후기를 올리게 하거나, 기업 홍보 대사 역할을 부여하고 특정 혜택을 주는 블로거(blogger)단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스스로가 기업을 대신해 정보를 전파시키는 주역이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기업이 직접 유통시키는 정보보다 소비자들이 직접 생산해 제공하는 정보를 다른 소비자들은 더 신뢰한다는 사실이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몰의 구매후기는 해당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는 고객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점포나 텔레비전 홈쇼핑 채널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유용하게 이용하는 정보원이다. 인터넷 쇼핑몰 입장에서는 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과 인기, 평가를 한눈에 파악하고 다른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그러나 소비자는 기업의 필요에 부응하는 온라인 활동을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비록 취미활동으로, 혹은 기업의 촉진전략에 따라 주어지는 혜택을 목적으로 인터넷 세상의 여론을 조성하기 시작했지만 같은 활동을 하면 할수록 많은 정보를 가진 전문가가 돼간다. 정보가 많아지면서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비교하며 예측한다. 이른바 리서슈머 (researsumer·researcher+consumer·연구하고 탐색하는 전문가적 소비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의 지식 검색이나 네티즌이 함께 만들어가는 백과사전 같은 것을 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데 헌신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아마도 자신이 아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사람들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풍부한 상품 지식과 쇼핑 지식을 가진 소비자들은 커뮤니티나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신의 전문성을 뽐낸다. 프로슈머처럼 단지 자신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구매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현상을 정확히 알고 정보를 제공하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상품을 탐색하고 연구한다. 그래서 단순히 정보가 많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좋은 정보도 많은 것이 오늘날의 가상공간이다.
 
옷에 대해 생각해보자. 소비자들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옷을 입어왔다. 옷에 정말 관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스타일은 스스로가 잘 안다. 게다가 옷과 관련된 패션 라이프스타일 유형은 다양한데 판매자는 이들 모두의 사정과 심경을 헤아릴 수 없다. 따라서 가상공간에는 옷차림과 코디네이션에 대해 패션 상품 구매 조언을 해주는 전문 소비자도 많다. 그들은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옷차림과 코디네이션 방법을 조언하고, 연예인이 입고 출연한 상품을 소개하고, 패션 잡지의 각종 정보를 필터링한다. 이들의 조언을 받은 다른 소비자들도 점점 똑똑해진다.
 
일반적으로 판매원에게는 “네, 그렇지만…(Yes, but…)”의 화법으로 고객에게 응대하라고 가르친다. 소비자가 틀린 요구를 하더라도 일단 긍정을 한 후 바른 의견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또 소비자는 왕이라고 한다. 이 또한 소비자가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존중하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권위만 행사하려는 소비자 외에도 나름대로의 학습과 연구를 통해 전문가가 된 소비자, 판매원보다 더 많이 알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소비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업은 현명한 소비자를 인정하고 그들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정인희  금오공과대학교 교수  ihnhee@kumoh.ac.kr
 
필자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과 기업에서 강의와 실무를 병행하며 일하다 2000년 3월부터 금오공대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패션 시장을 지배하라> <이탈리아, 패션과 문화를 말하다> 등이, 역서로 <재키 스타일> <오드리 헵번: 스타일과 인생> <서양 패션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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