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돋보기
편집자주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김상훈 교수가 이끄는 비즈트렌드연구회가 동아비즈니스리뷰(DBR)를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합니다. 학계와 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이 연구회는 유행처럼 흘러가는 수많은 비즈니스 트렌드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을 제시합니다.
서울 중구 쌍림동 CJ제일제당의 신사옥인 CJ제일제당센터. 지난 7월 이곳에 CJ그룹의 17개 외식 관련 브랜드가 한데 모여 있는 ‘CJ푸드월드’가 문을 열었다. 우선 CJ제일제당센터 지하 1층에는 비빔밥 전문점 ‘비비고(bibigo)’, 패밀리 레스토랑 ‘빕스(VIPS)’, 중식당 ‘차이나팩토리익스프레스(China factory express)’, 커리 전문점 ‘로코커리(Loco Curry)’ 등 CJ푸드빌의 대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있다. ‘행복한콩’(두부), ‘삼호어묵’(어묵) 등 CJ제일제당의 식품 브랜드 명을 그대로 따온 레스토랑도 자리를 잡았다. 특히 CJ제일제당 최초 제품인 설탕의 대표 브랜드 ‘백설’의 이름을 딴 ‘백설관’에선 불고기, 냉면 등 전통 음식을, 반세기에 걸친 제분업의 전문성을 살린 ‘제일제면소’에선 우동, 소면 등 다양한 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CJ 상품들을 총망라해놓은 슈퍼마켓인 ‘프레쉬마켓’이나 편의점인 ‘CJ올리브영’에 들러 간단한 쇼핑도 즐길 수 있다. 지상 1층에는 베이커리 전문점 ‘뚜레쥬르(Tous les Jours)’, 커피 전문점 ‘투썸커피’, 아이스크림 전문점 ‘콜드스톤’ 등 3개 매장을 한데 통합한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눈에 띈다. 쿠킹 스튜디오인 ‘백설요리원’도 주목해볼 만한 공간이다. CJ 임직원은 물론 주부, 어린이 등 다양한 고객층을 대상으로 전문 셰프가 쿠킹클래스를 진행하는 곳이다. 330㎡ 규모의 실내형 논밭인 ‘CJ더팜(The Farm)’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CJ제일제당의 대표 브랜드인 ‘햇반’의 원료가 되는 쌀과 두부(행복한콩) 원료인 콩이 심어져 있다. 도심 한복판에 마련된 농장이지만 인공 태양광, 펌프 등이 설치돼 있어 1년3모작을 통해 연 150㎏의 쌀을 수확할 수 있다.
[그림1] CJ 푸드월드 맵(지하 1층)
[그림2] CJ 푸드월드 맵(지상 1층) |
진화하는 플래그십 스토어
플래그십 스토어가 진화하고 있다. 유동 인구가 많고 브랜드 콘셉트에 부합하는 지역에 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플래그십 스토어는 원래 에르메스, 샤넬, 프라다, 루이비통과 같은 명품 패션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출발했다. 이들 명품 업체가 파리, 뉴욕, 런던 등 이른바 패션의 ‘메카’를 중심으로 선보인 초기 플래그십 스토어는 제품 홍보가 주목적이었다. 수익을 올리기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마케팅 수단으로 플래그십 스토어를 바라봤기 때문에 그 역할도 ‘홍보관’ 내지 ‘박물관’ 수준에 그쳤다. 공간 마케팅의 대가인 크리스티안 미쿤다가 그의 저서 <제3의 공간>에서 “플래그십 스토어야말로 고객이 자기 발로 찾아오는 3차원의 입체광고 현장”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플래그십 스토어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이 단계에서는 매장 내 디스플레이가 가장 중시된다. 인테리어와 상품이 어우러져 최적의 이미지 연출을 할 수 있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된다. 1세대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고객과의 소통 문제는 그다지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고객들은 제3자적 위치에 서있는 구경꾼에 불과했고 고객과 기업의 관계는 회사가 정성껏 전시해 놓은 제품을 고객이 군말 없이 쇼핑하는 일방적 관계였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리바이스나 델컴퓨터, 워너브러더스 등 많은 플래그십 스토어가 실패했다. 단순히 구경하는 공간으로서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하면 고객을 지속적으로 끌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성공하고 있는 플래그십 매장들은 고객의 시각뿐 아니라 청각, 촉각을 충족시켜주는 ‘체험 매장’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2세대 플래그십 스토어라 할 수 있다. 대표 주자는 단연 애플 스토어다. 애플 스토어에 가면 유리와 원목, 스테인리스로 꾸며진 멋진 디스플레이 공간도 감상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제품들을 만져보고 들어보고 하면서 직접적인 브랜드 체험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본사 연구개발 직원이 직접 고객과 대화를 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지니어스 바(genius bar), 전문 스태프가 사진, 영상, 음악 제작에 대한 노하우를 무료로 전수해주는 더 스튜디오(the studio) 등까지 갖추고 있어 이른바 종합 체험을 가능하게 해 준다. 애플 스토어 외에 눈여겨볼 만한 또 다른 2세대 플래그십 스토어로 일본 통신업체인 KDDI 디자이닝 스페이스를 꼽을 수 있다. 이곳 1층에선 F1 경주용 차를 전시해 놓고 방문객들이 마음껏 타볼 수 있게 한다. 자사의 초고속 인터넷망과 무선통신의 속도를 간접적인 은유를 통해 체험하게 하려는 노력이다. 이처럼 2단계 플래그십 스토어는 쌍방향 소통의 장이며 브랜드의 체험공간이다.
[표1] 플래그십 스토어의 진화
브랜드 테마파크
그렇다면 CJ푸드월드는 어떤 공간인가? 한마디로 CJ푸드월드는 2세대 플래그십 스토어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향으로 확장한 3세대 플래그십 스토어라 할 수 있다.
(1) 360도 체험 문화공간
CJ푸드월드는 음식 원료인 쌀과 콩을 재배하는 CJ더팜에서부터 제일제면소(밀가루), 백설관(설탕) 등 음식 재료를 강조한 전통음식 매장, 빕스, 로코커리 등 다양한 외식 프랜차이즈와 쇼핑 공간까지 식품업 가치사슬(value chain)상의 모든 제품과 관련 서비스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360도 체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식품이라는 제품 특성이 이를 가능하게 했지만 아직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독특한 플래그십 스토어다.
이와 같이 가치사슬상의 모든 과정을 보여주는 게 왜 중요한가? 그것은 최근의 트렌드인 ‘진정성 마케팅’과 맞물려 있다. 소비자들은 친환경, 천연재료, 소박함 등에서 가치를 발견하며 ‘자연성(naturalness)’이 드러나야 참된 제품이라 믿는다. 이는 비단 식품뿐 아니라 키엘(Kiehl), 러시(LUSH), 아베다(Aveda)와 같은 화장품 브랜드나 생활용품, 의류에도 반영되고 있는 명백한 트렌드다. 예를 들어 두부요리 전문점인 ‘행복한 콩’에서는 콩과 간수 이외에 어떤 것도 넣지 않은 두부를 제조하는 과정을 직접 시연한다. 고객들은 시간표에 맞춰 나오는 ‘무첨가 두부’를 눈으로 확인하고 갓 만든 두부의 신선함을 바로 즐길 수 있다.
식품은 식문화라는 용어가 있듯이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의 핵심이 되는 문화요소다. 따라서 CJ와 같은 식품업체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체험공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성을 전달하는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
(2) 브랜드 통합공간
과거에는 이른바 ‘브랜드 포커스(brand focus)’라 해서 제조사 이름을 밝히지 않고 제품 브랜드 이름에 집중해 마케팅하는 방식이 유행했다. P&G나 유니레버가 ‘타이드(Tide)’ 세제나 ‘도브(Dove)’ 샴푸의 패키지에 회사 로고나 심벌을 보여주지 않는 게 대표적인 예다. 이는 각각의 브랜드가 개성을 가지고 정확한 타깃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최근 경기 불황과 더불어 인터넷을 통한 정보확산은 브랜드 포커스보다 ‘브랜드 통합(brand integration)’의 시대를 열었다. 패션이나 생활용품 기업들이 개별 제품 브랜드보다 기업 브랜드를 알리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여러 브랜드를 모아 놓은 편집매장이나 브랜드 통합 TV 광고가 유행하고 있다. 최근 국내 아이스크림 업체들의 광고만 봐도 콘이나 바 아이스크림 하나를 광고하기보다는 자사의 대표 브랜드 아이스크림들을 한꺼번에 광고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랜드 통합의 효과는 비용 절감의 측면도 있겠지만 제한된 자원인 고객의 주의(attention)를 한곳에 집중하는 마케팅 효율의 측면이 더 중요하다.
CJ푸드월드의 가장 큰 특징은 CJ그룹의 식품 관련 모든 브랜드가 한 장소에 통합돼 있다는 점이다. CJ푸드월드와 같은 브랜드 통합공간에 가면 고객들은 우선 자신이 잘 아는 브랜드들을 확인하게 된다. 빕스가 있고, 뚜레쥬르가 있고, 비비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고객들은 자신에게 낯선 새로운 브랜드를 보며 CJ 브랜드에 대한 지식을 업데이트한다. 예를 들면 “차이나팩토리가 CJ였어?” 하는 식이다. 그 후에는 처음 보는 브랜드를 발견하고 추론하는 즐거움을 추가로 얻는다. 예를 들면 “빕스버거가 뭐야? 빕스가 CJ 브랜드니까 빕스버거는 관계회사 정도 되나? 그럼 어떤 맛일까? 한번 먹어봐야지” 하는 식이다. 브랜드 통합공간에서는 이처럼 자연스럽게 브랜드 마케팅이 효과적으로 진행된다. 브랜드를 ‘학습’한 고객들이 친구와 지인들에게 입소문을 내기 때문이다. [그림3] CJ 푸드월드 밸류체인별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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