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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Report

“핵심 사업과 무관한 아이디어, 단칼에 자른다”

김용준 | 88호 (2011년 9월 Issue 1)

세계 6 온라인 업체 바이두의 경영 철학
바이두, 만리장성을 넘어 당당히 세계에 서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의 두 축, ‘G2’를 이루고 있다. 실물 경제는 물론 사이버 비즈니스에서도 욱일승천하고 있다. 지구촌 최대 인구 국가답게 우선 네티즌의 규모가 압도적이다. 중국의 인터넷 이용 인구는 2011년 현재 4억50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의 2배, 인도의 5배에 해당한다. 게다가 인터넷 이용 인구는 매달 노르웨이의 인구보다 많은 600만 명씩 불어나고 있어 약 5년 뒤인 2015년에는 지금의 두 배에 가까운 7억5000만 명이 인터넷을 사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중국이 인터넷 등 온라인 분야에서 초일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미국, 일본의 인터넷 보급률이 75∼82%인 반면 중국은 32% 수준이다. 특히 농촌 지역의 경우 온라인을 통한 정보 교류와 관련 산업 부흥 등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또한 구글 철수 사태나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대한 차단 및 검열로 대표되는 시장 규제 역시 중국 온라인 산업 성장의 한계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 환경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글로벌 수준의 플랫폼과 서비스, 그리고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인재, 기술, 수익성을 가진 기업들을 다수 배출했다. 검색 엔진 분야의 바이두, 포털의 Sina, Sohu, QQ, 소셜네트워크 분야의 Kaixin, E-커머스 분야의 Taobao, 알리바바와 동영상 사이트 Youku 등은 이미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선도 기업이다.
 
그중에서도 바이두는 미국의 대표적 글로벌 온라인 회사인 구글, 페이스북, 야후, 유튜브, 윈도라이브 다음으로 일일 트래픽이 높은 세계 6대 온라인 기업이다. 이제 바이두는 단순히 중국을 대표하는 온라인 기업이 아닌 세계 온라인 산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이두는 2000년 1월 리옌홍(李彦宏)과 쉬용(徐勇) 두 사람이 베이징 중관촌에서 창립한 세계에서 가장 큰 중문 검색엔진업체다. 바이두는 ‘간단하고 의지할 수 있는’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고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설립됐다. 2005년 8월5일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고 2006년 12월에는 일본에도 진출해 2007년 3월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2008년 1월23일부터 정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百度(바이두)’ 두 글자는 중국 송대 시인 신치지(辛弃疾)의 ‘玉案·元夕’의 시구 “무리들 중에서 그녀를 수백 번 찾았다(寻她千百度)”에서 기원한다. ‘百度(바이두)’는 중문 정보 검색 서비스의 기술적 지향점을 선언하고 있는 상징적 문구인 것이다.
 
바이두는 평범한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아니다. 인터넷 관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바이두가 고객에게 전하는 차별적인 핵심 가치는 세계적 선진 기술을 기본으로 중국어만의 언어적 특성을 반영해 중국 인터넷 산업의 발전 현황에 맞는 중국 전문 인터넷 정보 검색·전달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선진적인 사업 구조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 큰 가치를 주는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가장 선도적 인터넷 기술 업체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바이두가 글로벌 경쟁 업체를 물리치고 당당히 중국 대륙 1위 검색 업체로 발돋움하게 된 핵심 성공요인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성공 키워드는 ‘동반성장’
바이두는 처음 시장에 진입할 때부터 줄곧 중국인의 생활에 맞는 인터넷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바이두의 대표 ‘리옌홍’의 목표는 단순히 개인 사업의 성공이 아니라 자국의 인터넷 관련 기술 수준을 제고하고 새로운 발전상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바이두의 핵심 기술은 ‘초련분석(分析)’을 기초로 한 검색 서비스다. ‘초련분석(分析)’이란 사이트에 연결된 횟수에 연동해 그 품질을 평가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이트가 화면 앞쪽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세계 여러 검색 사이트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지만 리옌홍은 최초 개척자 중 한 명이었다. 또한 바이두는 동시에 여러 개의 서버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검색을 할 때 자신과 관련성이 가장 많은 서버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정보의 검색·전달 속도를 높였다. 이에 바이두는 연결된 중문 홈페이지만 이미 20억 개를 초과한 세계에서 가장 큰 중문 인터넷 사이트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매일 138개의 국가에서 수억 차례에 걸친 정보검색을 처리하고 있고, 매일 7만여 명의 사람들이 바이두를 자신의 첫 사이트 페이지로 설정하고 있으며, 사용자들은 바이두를 활용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중문 정보를 얻고 있다. 2004년부터 “문제가 있으면 ‘바이두’하라!”는 말이 중국에서 유행하는 등 바이두는 검색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한편 바이두는 B2B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각종 소프트웨어 경쟁 순위 정보 및 광고 서비스, 그리고 대형 기업과 정부기관에 대한 정보 검색 및 관리 방안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바이두의 주요 B2B 사업 시스템으로는 CPC(Cost Per Click: 클릭당 과금)를 들 수 있는데 실제 효과(클릭 수)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는 인터넷 광고 방식이다. 바이두의 서비스는 고객을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경제 발전 상황을 고려할 때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바이두의 수많은 중소기업 고객은 대부분 인터넷 및 컴퓨터 지식이 부족하며 사장들의 학력은 고졸 이하인 경우가 많다. 인터넷 마케팅 역량과 기술이 부족하고 전문 인력들에 의한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중국만이 가지고 있는, 미국과는 다른 특징이다. 미국의 중소기업들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마케팅에 대한 노하우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 인터페이스만 좋으면 된다. 인터넷은 보조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툴인 셈이다. 구글이 중국 진출 후 기존 방식대로 중국에 고객 서비스 센터를 세우지 않은 것도 미국식 사고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바이두는 사업의 중심에 이러한 고객의 특성을 고려했고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 책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러 중소기업들이 인터넷 마케팅으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했다.
 
도전과 집념, 리옌홍 리더십

그렇다면 ‘중국의 구글’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바이두의 리옌홍 대표는 어떤 사람일까?
바이두의 창업자 겸 CEO인 리옌홍은 2011년 포브스 선정 중국 부호 1위다. 리옌홍은 1968년 산시(山西)성 양취앤()의 평범한 노동자 집안에서 4남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학창시절 지나친 호기심으로 말썽을 많이 일으키기도 했던 리옌홍은 학급 규율위원이 되면서 모범생으로 거듭났고 칭찬받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가끔 아버지와 함께 봤던 ‘경극’에 매료돼 경극 배우가 되고 싶어 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가족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리옌홍은 베이징대 ‘정보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흥미가 있었던 리옌홍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의 커리큘럼에 실망했다. 정보경영학과는 이과과 아닌 문과였다. 그러나 그는 컴퓨터 공부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유학을 통해 꿈을 실현했다. 리옌홍의 성공을 향한 희망과 의지는 남달랐다. 그는 치열한 경쟁을 견디며 묵묵히 자신의 미래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에게 다가올 기회를 단단히 움켜 쥐어 성공을 위한 도약대로 삼을 수 있도록 단련해 온 그는 실수가 있을 때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놀라운 집중력과 잠재력을 쏟아붓는 의지의 사나이였다.
 
“나는 이상을 너무 원대하게 설정하지 않는다. 단지 매 단계 목표를 명확하게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룬 후 다음 목표를 세운다.” 바이두의 성공도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하지 않고 하나하나를 단계적으로 밟아 가며 더딘 걸음이지만 매일같이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물이다. 리옌홍이 인터넷을 가장 먼저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것을 향한 그의 끊임 없는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망이 결과적으로 중국 인터넷 산업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는 핵심 사업인 검색과 관련이 없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단칼에 잘라버리려 노력한다. 기업이 업계의 최고가 되고 승승장구하게 되면 많은 유혹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기업이 일정한 성과를 내고 이익을 내면 제2의 성장을 위해 다각화 전략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리옌홍은 바이두의 업()의 본질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검색엔진만을 성장기반으로 삼고 있다. 초심을 잃지 않고 한 가지에만 전념하는 그의 집중력이 120만 달러의 창업자금으로 출발한 작은 벤처기업을 중국 내 경쟁자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검색 엔진 구글을 물리치게 한 원동력이 된 셈이다.
 
리옌홍의 경영철학은 ‘목표를 정했으면 바로 행하고, 시류에 흔들리지도 동요하지도 말라!’이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침착, 화평, 관용, 인내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바이두를 경영하면서 줄곧 냉정하고 침착했다. 또한 그는 판단력, 인품, 열정, 경영 기술 경험이라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인재를 평가했다. 일반적으로 경영자들은 자신과 성격이 상반되거나 개성이 너무 강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리옌홍은 능력이 조금 부족하거나, 혹은 개성이 강한 직원들을 모두 포용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에게 융화됐다. 바이두의 기업문화는 크게 8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적재 적소에 인재 배치하기, 가장 우수한 최고경영진 구성하기, 아이디어 죽이기, 효율적으로 업무 전개하기, 초기의 어려움을 즐기기, 비즈니스 모델을 꾸준히 혁신하기, 실패를 인정하기, 그리고 작은 것에서부터 완벽을 추구하기다. 리옌홍의 ‘간단하고 의지할 수 있는’ 고슴도치형 리더십이 바이두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를 가능하게 했다.
 
현재 바이두의 브랜드 가치는 225억 달러, 2011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 선정돼 삼성, 페이스북과 비견할 만한 기업이 됐다. 바이두는 인재에 대한 욕심과 기술에 대한 집념, 그리고 사업가로서의 도전 정신으로 융합된 중국 대표 기업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많은 중국의 3세대 기업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김용준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kimyj@skku.edu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 텍사스대 MBA를 거쳐 노스웨스턴대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조교수, 중국 칭화대, 상하이 교통대, 홍콩 중문대학교 초빙 교수를 지냈다. 삼성오픈타이드차이나 초대 사장을 지냈고 현재는 성균관대 현대중국연구소 소장이며 최근 <차이나마케팅(박영사, 2011)>을 출간했다.
  • 김용준 김용준 | - (현) 한국마케팅 회장
    - (현) 성균관대 중국대학원장
    - (전)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조교수, 중국 칭화대(MBA) 객좌교수 등 역임
    - (전) 삼성오픈타이드차이나 초대사장
    - (전) 성균관대 중국전문대학원 설립 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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