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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국가라고 모두 ‘이머징 마켓’은 아니다

DBR | 6호 (2008년 4월 Issue 1)
이머징 마켓이란 용어가 처음 생겨난 지 2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초기에 이 용어는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뤄낸 아시아 국가들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에는 동유럽 국가들을 주로 지칭했다. 시장주도형 경제 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은 새로운 이머징마켓으로 중남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인도, 러시아 역시 이 범주에 속하기 시작했다.
 
이머징 마켓에 속하는 국가의 숫자는 수십 개 이상이다. 하지만 이 범주 안에 드는 나라들은 각각 다른 상황에서 경제 발전을 이뤄왔다. 특히 이머징 마켓 내에서 크게 증가하고 있는 부유한 중산층들을 고려할 때 이 많은 나라들을 단 하나의 용어로 묶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이머징 마켓이라는 용어가 이제 빛을 잃고 있다고 진단한다.
 
와튼스쿨의 경영학 교수인 모로 귈렌은 “같은 범주 안에 여러 나라를 포함시키기 시작하면 그 범주가 갖는 의미가 퇴색한다. 한국, 싱가포르, 대만은 서로 비슷한 특색을 지니고 있지만 이 나라들을 인도, 멕시코,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폴란드 등과 같은 범주에 넣으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이머징 마켓이라는 용어는 스스로의 성공에 발이 묶였다”고 진단한다.
 
반면 귈렌의 동료 교수인 제럴드 맥더못은 비록 이머징 마켓의 정의가 불분명해도 여전히 그 용어가 원래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람들이 이머징 마켓이라는 용어를 점점 포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추가로 더 많은 국가들이 이 범주 안에 묶이면서 원래의 의미가 약간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용어가 전 세계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양분하려는 것이 아님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큰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국가들을 이 용어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의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완전한 수준은 아닙니다.”
 
제3세계’라는 용어의 허점
이머징 마켓이라는 용어의 창시자는 앙투안 반 아그마엘 이머징 마켓 매니지먼트(EMM) 회장이다. 세계적인 이머징 마켓 투자 전문가인 그는 세계은행 자본시장국 부국장으로 재직하던 1981년 태국에서 열린 투자회담에서 이 용어를 처음 만들어냈다. 아그마엘은 당시 태국이 소위 ‘제3세계’로 알려진 다른 가난한 나라들과 같은 범주에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제3세계라는 명칭이 태국은 물론 발전 가능성이 있는 다른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투자 심리를 꺾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사람들은 소위 제3세계 국가들을 무시했습니다. 정말 매력을 반감시키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감정을 가진 투자자들은 절대 이 국가들에 투자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태국에 살아봤기 때문에 태국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좋은 환경은 갖춘 나라임을 알았죠. 때문에 투자자들의 의욕을 북돋워줄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아그마엘은 처음 이머징 마켓이라는 용어를 1인 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 내외인 국가의 주식시장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 용어와 특정한 숫자와의 관련성은 점점 사라졌다. 현재 이머징마켓이라는 용어는 이머징 국가 경제 전체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한 국가의 1인당 소득이나 다른 통계 숫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와튼스쿨에 따르면 성장 기로에 있는 이머징 경제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법과 경제 규제, 계약 이행 등과 같은 그 나라의 경제적, 정치적 환경이다. 와튼스쿨에서 기업 윤리와 법률을 강의하고 있는 필립 니콜라스 교수는 숫자에 의거해 이머징 마켓의 정의를 내리는 것보다, 그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 사업 활동이 이뤄지느냐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국가의 경제 체제가 비공식적인 이해관계에 기반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갈 때는 이머징 경제라는 표현을 쓰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모든 시장 참여자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법에 기반한 투명한 경제 체제로 바뀔 때 이머징 마켓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과거 이머징 마켓을 정의할 때 우리는 소득이나 시장 유동성과 같은 숫자들에 의지해왔지만 사실 그 숫자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실제로 그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맥더못 교수는 구 소련 연방 해체 후 이머징 마켓의 특징을 가장 잘 규정짓는 열쇠는 정부에서 민간 부문으로의 빠르고 급격한 자본 이동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사유화라는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서 발생했다.
 
우리는 흔히 민간 부문에서 얼마나 많은 경제 활동이 이뤄지고 있느냐는 잣대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잣대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변화 하지 않은 나라들은 불황을 겪었고 급속한 변화를 한 나라의 경제는 거품 붕괴를 맞았습니다.”
동유럽과 중남미 경제 발전 양상을 주로 연구해 온 맥더못 교수는 경제 발달 속도의 차이는 그 자신이 명명한 소위 ‘초국가적 경제 통합 제도(trans-national integration regimes)’, 즉 EU나 NAFTA 등에 참여하느냐 여부와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제도들은 어떤 이머징 국가가 선진국 진입의 잣대로 평가받는 OECD에 가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진단해 줄 수도 있다.
 
이머징 국가들의 변화
와튼스쿨의 위톨드 하인츠 경영학 교수는 특히 최근 국제 상품시장의 활황으로 천연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머징 마켓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풍부한 천연 자원을 보유한 이머징 국가의 최근 움직임은 선진국과 투자자들이 이제는 이머징 마켓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이머징 국가들은 여전히 국제 시장과의 통합을 원하고 있고 자국 내 경제 기반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줄 해외 기업들을 받아들일 겁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그 과정에서 과거보다 더 높은 수익 분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식민지 시대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죠. 이런 국가들은 단지 개발 원조를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진국과 같이 일하지만 일하는 방식은 우리의 것을 고집한다’는 의미죠. 재미있는 점은 이것이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대하는 방식이었다는 겁니다. 이머징 국가들은 이제 과거 미국이 그들에게 쓰던 법칙을 동일하게 사용하려 합니다.”
 
하인츠 교수는 어떤 한 국가의 경제가 비상(emerging)하는 특정한 순간은 없다고 강조했다.
경제의 비상은 한 순간에 켰다 껐다하는 스위치가 아닙니다. 하나의 국가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검은색이나 흰색이 아니라 회색과 같은 미묘한 색조입니다. 러시아와 브라질 경제에서 작동하는 원동력 중 미국에 존재하지 않는 원동력은 없어요. 관건은 그 국가들이 지닌 영향력과 국가 제도가 경제의 불확실성을 어떤 식으로 조율하느냐죠.”
 
최근 세계 경제는 인도와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와튼스쿨 연구진들은 중국과 인도가 아직 이머징 마켓을 졸업할 정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장 큰 이유는 빈부격차다. 인도와 중국 경제 모두 손에 금 주머니를 쥐고 있지만 빈부격차와 사회 불평등 문제는 심각하다. 대부분의 국민은 여전히 가난 속에서 살고 있다.
 
와튼스쿨의 마샬 메이어 교수는 특히 중국의 심각한 도농(都農) 격차를 우려했다.
어떤 중국인들은 유럽이나 북미 거주자 못지않은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시골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상하이처럼 동남부 해안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수입은 내륙 시골 지역보다 10배 이상 높습니다. 중국의 자본시장 구조나 고정자본 투자 상황을 보면 중국이 이머징마켓을 졸업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1가구의 가처분 소득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니콜라스 교수 역시 인도와 중국이 아직 이머징마켓의 위치를 탈피할 상황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내가 기업가라고 가정하고 싱가포르에서 계약을 체결한다고 합시다. 나는 우려하거나 거리낄 것이 없다고 느낄 겁니다. 하지만 인도와 중국에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라면 사정이 다르죠. 비록 그들은 외부인들에게 기회의 문이 열려있다고 말하지만 인도나 중국의 제도에 그저 의지하는 것은 불안합니다. 중국과 인도가 법에 근거한 체계적 제도들을 확립해 나가고 있지만 단순히 계약서에만 의존하는 것은 어리석죠.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귈렌 교수는 주목할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룩한 나라들도 다시 쇠퇴할 수 있음을 유의하라고 지적했다.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유국이었습니다. 하지만 페론 정권을 비롯한 연이은 군부 독재로 경제는 크게 쇠퇴했죠. 1990년대 민영화의 물결 속에서 다시 상당한 성공을 거두는듯 했지만 결국 2001년 금융 위기를 맞았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높은 교육률과 풍부한 천연 자원을 고려할 때 아르헨티나 경제의 추락은 대단한 수수께끼입니다.”
 
다른 예로 레바논이 있다. 1960년대 레바논은 활발한 무역과 높은 1인당 국민소득으로 ‘중동의 스위스’라는 별칭을 얻었다. 하지만 내전에 휘말린 레바논은 다시는 이전의 높은 경제적 지위를 되찾지 못했다. 아프리카에서도 순탄한 경제 성장의 길을 걷다 갑자기 문제가 터져버린 국가들이 많다고 귈렌 교수는 지적한다.
 
이머징 마켓, 영원히 이머징할 것인가?
이머징 마켓 경제가 가진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에게는 여전히 교본이 될 수 있다. 이들 나라는 아직 이머징 마켓에도 근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귈렌 교수는 일부 이머징 국가를 이머징 마켓이란 범주 안에 완전히 고착화시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처럼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는 이제 이머징 마켓이 아니라 선진국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가 넘습니다. 이는 중남미, 서남아시아,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가 중공업 중심에서 지식기술 산업 중심으로 완전히 변화했다는 거죠. 지식 산업으로의 경제 중심 이동은 한국 경제가 영원히 번영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겁니다. 이제는 한국을 성숙한 선진국으로 인정할 때가 왔습니다.”
 
귈렌 교수는 경제적 번영을 이루는 방법은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모든 국가들이 각기 다른 위치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경제 성공을 이뤄내는 방법도 각각 다르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이머징 마켓 전문 투자회사인 소기업지원펀드(Small Enterprise Assistance Funds)의 최고경영자(CEO)인 버트 반 데어 바트는 이머징 마켓이야말로 펀드 전체 자본의 최대 15%를 투자해야 할 중요성을 지닌 그룹이라고 평가했다.
이머징 국가들의 경제 성장률은 앞으로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고, OECD 가입국의 평균 성장률도 넘어설 전망입니다. 다시 말해 이머징 국가들은 현재 선진국들을 따라잡고 있는 거죠. 언젠가는 이머징 마켓이라는 단어 앞에 굳이 ‘투자가치가 있는(investment-worthy)’란 수식어를 붙이는 일이 불필요할 때가 올 겁니다.”
 
바트가 정의한 이머징 마켓에는 진정한 시장 개혁을 도입하지 않거나, 집권층이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어 민간 투자 도입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나라들은 속하지 않는다. 그 예가 짐바브웨다.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개혁과 민간 투자 활성화를 이루지 못해 이머징 마켓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앙투안 반 아그마엘이 이머징 마켓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지도 이제 25년이 넘었다. 버지니아 주 알링턴에 위치한 그의 회사 이머징 마켓 매니지먼트는 현재 200억 달러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아그마엘은 그간 실로 엄청난 변화를 목격해왔다고 말한다.
바야흐로 우리는 세계 경제가 이머징 마켓으로 이동하는 큰 흐름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머징 마켓 소비자들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고, 이머징 국가의 기반시설 투자액도 이미 미국이나 유럽을 넘어섰습니다. 이머징 국가의 우량 기업들도 글로벌 선진 기업 수준에 근접했습니다.”
 
아그마엘은 10년 후에는 이머징 마켓 내에서만 10억 명의 새로운 소비자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25년 후에는 이머징 국가들의 경제 규모가 전 세계 선진국을 모두 합한 것보다 클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골드만삭스 역시 이머징 국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2001년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합한 브릭스(BRIC)라는 신조어를 창조했다. 골드만삭스는 2010년 브릭스 국가의 GDP가 전 세계 GDP의 10% 이상을 담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2007년 이미 브릭스 국가의 GDP는 세계 전체의 15%를 차지했다.
 
골드만삭스는 2005년 ‘넥스트 일레븐(N-11)’이란 또다른 용어도 만들어냈다. 넥스트 일레븐은 브릭스와 유사한 개념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할만한 잠재력과 많은 인구를 동시에 지닌 나라들을 일컫는다. 넥스트 일레븐에 속하는 나라는 방글라데시, 이집트, 인도네시아, 이란, 한국, 멕시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필리핀, 터키, 베트남이다.
 
아그마엘은 ‘중등소득 이머징 마켓(middle-income emerging market)’ 이나 ‘졸업하는 이머징 마켓(graduating emerging market) 등의 새로운 용어로 일부 이머징 국가를 지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제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머징 마켓의 투자 가치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포트폴리오 투자자뿐 아니라 대형 선진 기업들도 말입니다. 이제 이머징 마켓이란 명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머징 마켓이 낙후된 경제의 산물이거나 세계 경제의 부수적 부분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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