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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플래닝 사례

미래가 헷갈린다고? 정보를 모아라, 길이 보이리라

곽동원 | 5호 (2008년 3월 Issue 2)
1943년 토머스 왓슨 IBM 회장은 미래에 전 세계 컴퓨터 수요가 대여섯 대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1899년 미국 특허청장이던 찰스 두얼은 “인간이 발명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명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전망과 달리 오늘날 전 세계에는 약 4억대의 컴퓨터가 보급됐고 단일 기업인 GE가 20세기 들어 출원한 특허만 5만 건이 넘는다. 너무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그 이후에도 엉뚱한 전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CASE 01
1980년대 냉전 시기, 많은 전문가들은 옛 소련의 GNP가 미국의 60%에 달했으며 매우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옛 소련 GNP의 6∼15%를 차지했던 국방관련 예산도 경제 성장에 따라 규모가 커져 결국 소련이 군사적으로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관측했다. 물론 공산권 내에서 저항운동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옛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체제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로부터 불과 수년 후 고르바초프가 등장하면서 옛 소련이 해체됐으며 위성국들은 독립했고 냉전 시대가 끝났다.
 
CASE 02
1990년대 초까지 세계은행을 비롯한 세계 유수 기관의 전문가들은 연평균 9%에 달하는 동 아시아 경제의 고속성장이 21세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앞다퉈 내놓고 있었다. 그 후 불과 3∼4년 만에 동아시아는 유례없는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CASE 03
2000년 3월 10일 나스닥(NASDAQ) 상장기업의 시가 총액은 전년대비 2배의 규모로 커졌다. 많은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이는 정보혁명의 결과이며 시장의 합리적인 기대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전적으로’ 적정한 가치라고 평가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기업 가치를 기정사실로 보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평가 모델을 개발하느라 고심했다. 그로부터 불과 2주 만에 투자자들은 기술주를 투매하기 시작했고, 그 후 약 2년간 전 세계는 실리콘밸리발(發) 경기 침체를 경험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미래 예측이 전문가들조차 하기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국가와 기업들은 일반인의 예상과 다른 쪽으로 역사가 흘러갈 것이란 정보를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1976년 프랑스의 엠마누엘 토드는 영아 사망률 등의 통계 자료를 근거로 옛 소련 붕괴를 예견했다. 카터 행정부의 고문이었던 브레진스키 역시 ‘The Birth and Decay of Communism in the Twentieth Century (1989)’, ‘Between Two Ages: America’s Role in the Technetronic Era (1970)’, ‘Dilemmas of Change in Soviet Politics (1969)’ 등을 통해 공산주의의 붕괴를 예견했다.
 
실제로 로열 더치 셸(Royal Dutch Shell)의 경우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옛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고 이 지역의 막대한 원유 공략 전략을 수립했다. 이후 셸은 ‘사할린 프로젝트’ 등을 통해 러시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한 미래 경영환경 예측을 핵심 경영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이 회사는 1970년대에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설립을 예측하고 대응책을 미리 수립, 다른 석유 메이저들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유연하고 신속한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특히 셸은 △미국 석유 재고량의 급감 △서방 국가들의 석유 수요 증가 △6일 전쟁 후 아랍 국가들의 반미 감정 고조 등을 유가 파동의 징후로 해석하고 이로 인해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 및 대처 방안을 개발했다. 이런 미래 경영환경 예측으로 73년 석유파동 이전 7대 메이저 중 수익률 및 규모 면에서 최하위였던 이 회사는 이후 수익률 1위, 규모 2위의 거대 기업으로 부상했다.
 
아시아 경제위기도 마찬가지다. 1994년 폴 크루그먼 교수는 ‘Foreign Affairs’에 실은 기고문을 통해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단순히 자본과 노동의 집중 투자에 의한 것이며 생산성 향상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고 지적하며 필연적인 경기 침체를 예견했다. 또 1996년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은 주식시장 과열을 경고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버블 붕괴를 예측한 전문가도 있었다. 1999년 로버트 실러 교수는 “주식시장에 터무니없는 기대가 난무하고 있다”며 고평가된 기업가치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물론 이런 주장들은 당시 시장을 풍미하던 대세론에 밀려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런 사례의 시사점은 한 마디로 ‘일반적인 믿음 또는 단선적인 대세론’에 기업의 미래를 맡길 경우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통념’에 반(反)하더라도 발생 가능한 미래 상황에 대해 고찰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은 운명의 갈림길에서 정반대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렇다면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먼저 ‘미래 경영환경 예측에 필요한 정보가 충분한가?’ 라는 측면을 생각해 봐야 한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한 정보의 획득은 가능하다. 앞서 사례들이 그를 뒷받침한다. 또 정보기술의 발달로 현재 우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장서를 보유한 미국 의회 도서관이 200년 동안 수집한 자료보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15분 내에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다. 따라서 정보의 양은 더 이상 문제가 안 된다. AT커니가 S&P 500대 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기 회사의 이사회가 ‘미래 전략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리스크를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대답한 최고 경영진은 5명 중 1명에 불과했다. 그 이유로는 ‘정보의 부족’ 보다는 ‘필요한 정보를 수집·가공해서 조기경보를 해줄 수 있는 경영 도구의 부재’를 원인으로 답한 응답자가 훨씬 많았다. 정보 자체보다는 이를 선별해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의 부족이 더 큰 문제였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이런 기업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이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각 기업들에게 미래를 보는 체계화된 틀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각 기업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경영환경 예측에 필요한 정보를 잘 선별해 적절한 대응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런 시나리오 플래닝을 천편일률적인 틀에 맞춰 적용해서는 안 되며 각 기업의 특성과 필요에 근거해서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유럽에 본부를 둔 세계 유수의 한 화학 기업은 매년 작성하는 시나리오 플래닝을 미래 전략 수립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특히 이 회사는 수년 전 화학 산업 뿐 아니라 수십 개 수요 산업(고객 산업)의 미래 시나리오를 작성, 향후 수요 산업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이에 따라 연구개발(R&D)을 포함한 전반적인 경영 전략을 수립했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 유수 기업으로 인정받던 한 화학회사는 자기 회사의 고객 산업별 매출액 비중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회사로서 고객의 수요와 관련한 사항은 전적으로 그룹 계열 상사에 의존해 온 수십 년간의 관행 때문이었다. 미래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했던 기업은 경영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미래를 잘 준비한 기업에 비해 성장률이 낮았다.
 
몇 년 전 휴대전화 단말기 업체인 에릭슨은 미래에 대한 준비가 돼있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몸소 체험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에릭슨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핵심 부품을 생산하던 미국 뉴멕시코 소재 협력업체의 공장에 벼락이 떨어져 소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에릭슨은 몇 주가 지나도록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한 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같은 협력업체로부터 납품을 받고 있던 경쟁사 노키아는 며칠 안에 비상대책을 수립했다. 그 해 말이 되자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늘었지만 에릭슨은 17억 달러의 손해를 봤고 결국 단말기 생산을 다른 회사에 아웃소싱하고 말았다. 노키아의 신속한 대응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미래 시나리오 기반의 경영전략을 지속적으로 수립·실행해 온 이 회사는 2002년 ‘Wi-Fi Phone(무선인터넷폰)’의 등장을 예측했고, 2004년 ‘Pod-Casting(아이팟을 활용한 방송)’의 대두를 전망하는 등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게임의 룰 자체를 변화시키며 혁신을 선도해왔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점을 치듯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시나리오 플래닝을 잘 활용하는 기업들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1995년 로열 더치 셸이 1만4500톤에 달하는 석유 저장 시설을 북해에 폐기하려 하자 그린피스 행동대원들이 이 시설을 점령했고 회사 측과 밀고 밀리는 공방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환경 운동가들의 모습이 TV를 통해 전 세계로 방영되면서 소비자들은 셸 제품에 대한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셸 오스트레일리아의 전 회장인 피터 던컨은 당시를 회고하며 “그린피스가 북해 지역을 점령했을 때 이들을 몰아낼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인정하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회사에 더 유리한 결과가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시나리오 플래닝을 활용하는 많은 기업들이 경영환경 변화의 주요 동인으로 NGO 활동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셸의 당시 대응은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시나리오 플래닝에 강점을 갖고 있는 기업도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하기도 한다.
 
기업들은 스스로의 운명에 책임을 지는 ‘운명의 지배자들’이다. AT커니 분석 결과 ‘가치 창출 기업’으로 분류된 기업들은 통제가 불가능한 외부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부분이 전체 실적의 13% 수준(평균치)이라고 답변했다. 반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실적의 44%가 외부 요인에 좌우된다고 믿고 있었다. 즉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통제 불가능한 요인에 의해 경영성과가 악영향을 받았다’라고 투덜대는 동안 가치 창출 기업들은 ‘우리가 시장을 바꾸고 있다’고 선언하면서 적극적으로 미래를 만들고 대응해 나갔다는 것이다.
 
가치를 창출하는데 실패한 기업들이 갑작스러운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광범위한 비용 절감과 반복적인 구조조정)에 안주하고 있는 동안, 가치 창출자들은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미래 경영환경 예측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사업 기회들을 포착하고 어려운 시기에도 R&D 투자를 축소하지 않았다. 물론 경영상의 리스크를 파악하고 관리하는데도 노력을 기울였음은 물론이다. 한 대형 항공기 제조업체는 옛 소련 붕괴 이후 테러리즘의 증가 및 이에 따른 여행 규제의 강화, 그리고 보호주의 경제정책의 강화에 따른 민간 항공기 시장 정체라는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작성해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 회사는 군용 항공 사업의 비중을 높이는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실제 9·11 테러 및 국가간 갈등 고조로 인해 각국 국방 예산 지출이 늘어나 국방 관련 사업은 큰 성과를 거두게 됐다. 결국 경쟁자들이 경영환경 변화를 탓하면서 구조조정탓에 날씬해지다 못해 거식증에 걸려 성장 능력을 상실해 가는 동안 이 회사는 경쟁자들의 4배에 이르는 수출 성장률을 이뤄 낼 수 있었다.
 
[DBR TIP] 5년후 한국, 시나리오로 보면… ‘1.5류 기술류’ 되거나 ‘잿빛 한반도’ 되거나
 
5년 후 한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CEO포럼과 컨설팅사 AT커니는 지난해 10월 말 ‘CEO 포럼 코리아 2007’행사에서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5년 후 한국 경제의 모습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놓고 즉석 투표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그렸다.
 
이 행사에서는 △글로벌화(globalization) △지정학(geopolitics) △기술력(technology) △인구구조와 소비자(demographics & consumer) △천연자원과 환경(natural resources & environment) 등 5가지 경영환경 변화의 핵심 동인에 대한 낙관적, 비관적, 중립적 시나리오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했다.
 
글로벌화 - M&A 및 해외시장 개척
행사에 참가한 경영자들은 향후 5년간 우리 경제의 글로벌화가 현재와 유사하거나 조금 개선되는 수준이 될 것(71.6%)으로 전망했다.한국이 동북아시아의 리더로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론(19.6%)이 변방경제로 밀려날 것이라는 비관론(9.5%)보다는 높았다.
 
또 참석자의 90%가 중국의 기술 추격을 따돌리는 방법으로 인수합병(M&A)을 꼽았다. 이와 함께 2013년까지 한국 산업계의 중국 시장점유율이 5%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응답이 절반(48%)에 가까웠다. 현재 한국 산업의 평균 중국 점유율인 4%에서 크게 상승하기 힘들다는 비관론이 더 우세했던 것이다. 5년 후 해외 법인에서 현지인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응답은 10명 중 6명꼴(58%)로 나왔다. 이는 글로벌화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향후 전체 매출에서 해외 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4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기업은 17%였다.
 
지정학 - 긴장관계 지속
앞으로 5년 후 한국의 지정학적 긴장도는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예상(48.2%)됐다. 또 중국의 동북3성을 중심으로 남북한, 러시아, 일본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하는 ‘북방 경제권’이 동북아 경제의 주요 축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42.5%로 가장 높았다. 포럼에 참가한 최고경영진의 50%는 2013년까지 통일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이명박 정부 임기 5년 동안 남북 관계가 크게 악화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90%)이었지만 북한이나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에 대한 투자 비중을 10%이하로 가져가겠다고 응답한 경영진이 67%에 달했다.
 
인구구조와 소비자 - 인력확보 위협
많은 기업들이 인구 구조의 변화로 인해 여성과 고령 인력 및 해외 취업자에 대한 채용을 늘려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인력의 고용 비중을 2∼3%정도만 늘리겠다는 응답이 대부분(90%)을 차지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력 부족 현상은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아직 많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는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INSEAD 경영대학원 최고 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시나리오 플래닝에 기반한 기업 발전 전략 수립 및 정부·공공 부문 정책 개발 분야에서 컨설팅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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