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끊임없이 혁신 과제를 검토하고 개발하지 않는다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시장 점유율 하락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이 과제는 수십, 아니 수백 개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많은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려면 업무 중복을 최소화하고, 자원 할당을 통제해야 한다. 위험이 낮으면서 점진적인 아이디어와 위험은 높지만 성장 잠재력이 크며 비약적 발전이 가능한 아이디어에 대한 자금 지원 비율도 적정선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유니레버는 이노플랜(Inoplan)에서 이 해답을 찾았다. 이 회사는 자체 개발한 정보 시스템을 활용해 프로젝트별 데이터를 한데 모아 요약한다. 이는 고위 경영진에 고도의 감독 · 검사권을 부여하는 셈이다. P&G는 이노센티브(InnoCentive)라 불리는 웹 기반 서비스를 활용해 175개국 이상에 흩어져 있는 약 12만 명의 전문 기술자들을 서로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유니레버와 P&G의 사례가 드물지는 않다. 하지만 기대만큼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모습도 아니다. 과학자, 디자이너, 엔지니어나 다른 혁신 관계자들 모두 데이터를 분석하고 디자인을 시각화하는 데 컴퓨터를 활용한다. 그런데도 “정보기술(IT) 부서인데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라고 연락하면 “그럴 필요 없으니 그냥 내버려 두세요”라는 차가운 답변이 돌아온다. 이처럼 IT 부서는 흔히 혁신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방해만 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문제는 정보 시스템이 전통적으로 프로세스를 구조화하고, 사전에 정의된 목표를 달성하고, 성과 향상의 평가 기준을 만들어내고, 관계자 간 협업에 대한 필요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디자인된 반면, 혁신 활동은 매우 비체계적이고 예측불허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혁신을 위해서는 애매모호함뿐 아니라 실패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기회나 장애물을 발견할 때마다 목표를 재정의할 수 있는 유연성도 허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혁신 담당자들은 정보 시스템이 작업에 방해를 주며, 창의력과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장애물이라고 믿을 법도 하다. IT 부서 관리자로서는 이보다 더 맥 빠지는 일도 없다. 듀폰의 한 고위 간부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에게 가장 중대한 사안은 “IT가 (혁신 활동) 반열에 올라서느냐, 단순 유틸리티 프로그램으로 남느냐”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시스템은 혁신 프로세스에 굉장한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냥 손을 놓아버릴 수도 없다. 예를 들어, 시각화 도구는 혁신 담당자가 데이터를 이해하고 그 안에 숨겨진 관계를 발견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포트폴리오 관리 도구는 혁신 파이프라인을 총 가동하게 만들고, 기업 차원의 익스포저(exposure·투자, 대출 등으로 인한 위험 노출액: 역주)를 제한하거나 유망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IT 기반의 협업 시스템을 활용하면 각각 다른 기술을 가진 혁신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여러 전문분야 지식이 필요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혁신 담당자는 IT 기반의 지식 관리 시스템을 이용하면 조직의 방대한 지식 창고에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혁신가들이 혁신 작업을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정보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들이 어떻게 IT를 더 똑똑하게 활용하고 IT 부서와 효과적인 파트너십을 이뤄 혁신 프로세스를 향상시킬 수 있었는지, R&D를 어떻게 비즈니스 성장으로 전환시키고 혁신 포트폴리오의 수익을 확대할 수 있었는지가 연구 대상이었다. (“이번 연구에 대해서” 참조)
다음의 리서치 결과는 깨어 있는 혁신 관리자라면 한번쯤 검토해볼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IT가 어떻게 당신의 노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나”를 따져보는 체크 리스트의 성격을 띠고 있다.
혁신의 성공을 결정짓는 요소들
연구 결과 기업이 IT를 활용해 혁신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뒷받침돼야 한다. 첫째, IT자산(예를 들어 데이터, 기반구조, 전문성 등)과 비(非)IT 자산(예를 들어 혁신 담당자의 창의성, 최고 경영진의 기술적 세련도, 실험 설비 등)을 결합해 프로세스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것들을 개발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구체적인 IT기반의 조직 역량이 필요하다.1)둘째, 혁신에 필요한 핵심 활동을 효과적으로 유지시키면서 과학자, 엔지니어,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제품, 프로세스, 혹은 서비스로 변환하는 데 필요한 분석 작업을 지원해 줄 강력한 IT 기반의 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셋째, 혁신 관계자들이 IT 자원에 효과적으로 접근해 활용하게 해주는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역량, 툴, 통제력을 세발 의자에 비유할 수 있다. 발이 아무리 완벽해도 두 개만 있으면 쓰러진다. 세 번째 다리가 없다면, 혁신에서 탁월함을 얻기 힘들다.
1.역량 우리는 혁신 성과 향상을 위해 정보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6가지 조직 역량을 찾아냈다. 이는 (1)포트폴리오 및 프로젝트 관리 (2)협업 (3)지식 및 정보 관리 (4)비즈니스-IT 간 연결 (5)양손잡이 능력 (6)경쟁정보(Competitive Intelligence)다.
①포트폴리오 및 프로젝트 관리 기업이 혁신 활동 포트폴리오를 조직하고 운영하기 위해 요구되는 역량을 말한다. 이 역량이 결여되면, 말썽이 생긴 프로젝트를 언제 종료해야 할지 몰라 미궁에 빠질 수 있다. 한계점(threshold)을 넘기기 위한 필요 자원을 충분히 대주지 않아 프로젝트가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포트폴리오의 규모 최적화 또한 불가능할 것이다. 한편으론, 너무 적은 수의 혁신 과제를 운영하다 성장에 윤활유를 공급하고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품/서비스 향상조차 이뤄내지 못할 위험도 있다. 다른 한편에선, 너무 많은 수의 혁신 과제를 지원하다 자원이 분산돼 혁신을 온전히, 그리고 시의적절하게 개발하지 못할 위험도 있다.
따라서 이 역량은 포트폴리오 관리 툴을 활용해 관리자들이 다양한 단계, 다양한 예산의 혁신 프로젝트 파이프라인을 성공적으로 가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셈이 된다.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프로젝트 내에서 자원을 배분하고, 데드라인을 설정하고, 진행 상황을 모니터하는 기능도 있다.
우리가 설문 조사를 진행하거나 연구한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가 독자적인 포트폴리오/프로젝트 관리 시스템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었다. 생명공학 제품 업계 리더인 다우애그로사이언스는 ‘제품 성공 창조하기(Create Product Success)’라 불리는 프로세스를 통해 이 역량을 분명히 명시하고, 1998년 이래로 계속해서 유지해 왔다. 이 회사는 이를 통해 혁신 프로세스가 다섯 가지 핵심 보고 과정, 즉 비즈니스 케이스, 기술적·상업적 가설, 마케팅 기획안, 이정표 작성, 경쟁 제품 대비 고객 요구에 대한 벤치마킹의 다섯 단계를 거치도록 했다. 정보 시스템이 이 프로세스를 지원한다. 분산된 데이터를 의사결정에 적합한 수준으로 정리 및 입력하고, 정보를 통합해 요약하는 역할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