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porate Rebranding Case Study 넥센타이어

10년 리브랜딩, 넥센의 고속성장 낳다

63호 (2010년 8월 Issue 2)

 

Rebranding
브랜드를 혁신적으로 재창조하는 ‘리브랜딩(Rebranding)’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고객의 욕구가 급변함에 따라 기존 브랜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혁신 작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브랜딩은 단순히 CI(Corporate Identity) 교체처럼 외형적 요소만 바꾸는 작업이 아닙니다.
오래된 브랜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물론, 소비자에게 차별적 가치를 인식시키는 모든 활동을 포괄하는 전략입니다.
성공적인 리브랜딩을 위해선 최적의 타이밍이 언제인지 판단해야 하며 브랜드 자산에 대한 가치도 객관적으로 측정해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리브랜딩의 방향성과 강도를 결정한 후 고객들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해야 합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국내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성공적인 리브랜딩 솔루션과 다양한 사례를 전해드립니다.
 
 

국내 타이어 업계 3위 업체인 넥센타이어는 지난해 9662억 원의 매출액에 17%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미쉐린, 브릿지스톤 같은 글로벌 타이어 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이 3% 대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넥센타이어는 매우 좋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넥센타이어는 과거 뼈 아픈 시련을 겪었다. 우선, 1970년대 들어 원풍그룹(1973년), 국제상사그룹(1979년), 우성그룹(1986년) 등 6,7년에 한 번 꼴로 경영권이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이후로도 프랑스 미쉐린과의 합작, 우성산업 단독 경영 등 변화의 파고를 탔다. 1994년에 이르러서야 우성산업에서 분리, 우성타이어로 새출발했지만, 곧이어 모(母)그룹인 우성이 부도 처리(1996년)되면서 우성타이어 역시 법정관리(1997년 4월)에 들어갔다.
 
부실 기업에서 우량 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우성타이어의 반전 드라마는 1999년 3월 타이어 튜브 업체인 흥아타이어공업(현 넥센•넥센타이어의 모기업)에 인수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우선, 인수된 지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법정관리를 졸업(1999년 6월)했다. 이듬해 2월엔 부실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 넥센타이어로 사명을 바꿨다(Renewal). 겉 모양만 바꾸는 데 그치지 않았다. 비용 절감과 영업 정상화를 도모하며 기초 체력을 길렀고, 조직 개편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활용으로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Restructuring).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한 후에는 ‘고수익 사업구조 정착’이라는 명확한 전략 목표 아래 과감한 사업 구조 재편을 추진했다(Redesigning Portfolio). 이처럼 넥센타이어는 CI(Corporate Identity) 리뉴얼, 구조조정, 포트폴리오 재편 등 ‘3 Re-s’로 요약할 수 있는 전략을 체계적이고 시의 적절하게 추진, 성공적인 턴어라운드를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이 모든 활동을 진행하면서 내부 조직원들 간에 변화와 혁신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조직원들의 결속은 결국 지속적 변화를 향한 추진 동력으로 작용해 넥센타이어 리브랜딩의 성공을 가능케 했다. 넥센타이어의 리브랜딩 사례를 분석했다.
 
Internal Marketing: 혁신을 위한 조직 내 공감대 형성
1999년 3월 흥아타이어공업이 법정관리 중인 우성타이어를 인수했을 당시 직원들은 패배 의식에 젖어있었다. “입사하고 나서 단 하루도 회사가 잘되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김수철 넥센타이어 경영관리팀장)”이다. 김 팀장은 “그 동안 하도 많이 경영권이 바뀌어서 흥아에 인수된다고 했을 때에도 ‘또 다시 주인이 바뀌는구나’ 라는 생각만 했을 뿐 정상화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우성타이어의 새 법정관리인으로 부임한 이규상 사장(흥아타이어공업 사장 역임)은 의식 전환이 우성타이어가 극복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고 진단했다. 동시에 이 사장은 모든 부서와 조직원들을 한꺼번에 변화의 대열에 동참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조직 전체의 변화를 꾀하는 대신 ‘킹핀(kingpin)’을 공략하기로 했다. 볼링에서 한 방에 스트라이크를 하려면 킹핀(5번 핀)을 쓰러뜨려야 하듯, 조직에서도 다른 부서로의 파급력이 큰 킹핀 부서를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이 사장은 영업부로 눈길을 돌렸다. 영업부는 직접적으로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최일선 부서인 만큼, 이들의 변화는 조직 전체에 의미있는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우성타이어에서 영업부서는 직원들이 좌천됐을 때 배치되는 곳으로 여겨졌다. 당연히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고 패배의식도 팽배했다. 효과적인 보상 체계도 설계돼있지 않았고 동기부여 수준도 최악이었다.
 
이 사장은 1999년 4월 부임하자마자 전국 7개 영업지점을 모두 돌아보며 영업사원을 격려했다. 지점장과 함께 지역 거래처를 방문했을 뿐 아니라 말단 영업사원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현장의 고충에 귀를 기울였다. 본사와 각 지점 영업사원 모두를 데리고 강릉, 속초, 지리산 등을 돌아다니며 워크숍도 수 차례 열었다. 김수철 팀장은 “우성타이어 창사 이래 사장이 영업지점을 방문한 것도, 사장이 영업 부서 말단 직원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도, 워크숍을 휴양지에서 연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워크숍을 열어 단순히 영업사원들의 의견만 청취한 게 아니다. 현장에서 나온 의견을 직접 실행에 옮겼다. 실제 이 사장은 영업직원 대상 워크숍에 생산, 경영지원, 연구소 등 다른 부서의 간부들을 참여시켰다. 영업 사원들의 건의를 즉각 실무에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영업 직원 1인당 영업활동비 지원, 무(無)연고 영업지점 발령 시 전세 대여금 지원 등 파격적 경비 지원이 당시 워크숍을 통해 즉석에서 결정된 사항들이다.
 
영업사원들의 목소리가 즉각 기업의 정책 변화로 연결되는 것을 목격한 직원들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대리점주가 먼저 요구하지 않으면 물건을 가져다 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책상만 지켰던 영업 직원들이 스스로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가 고객들을 만났다. 기피 부서로만 여기던 영업부서가 어느덧 제 1순위 선호부서로 바뀌어갔다.
 
흥아타이어에 인수된 지 3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영업부서에서 가시적인 매출 성과가 속속 나타나자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우성타이어가 사명을 바꾸기로 결정한 건 바로 조직원들 사이에 이처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변화 의지가 형성되고 난 후였다.
 
Renewal: 사명 변경과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법정관리 졸업으로 한 숨을 돌린 우성타이어 경영진은 기업 회생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재도약의 발판이 될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 기업이었던 우성그룹의 부실 이미지를 없애버리는 게 급선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위해선 사명(社名)을 변경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사명 교체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새 출발을 위해선 이름을 바꾸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21세기 문턱에 들어서는 시기로 많은 회사들이 보다 진취적인 이름으로 사명을 바꿔가는 추세이기도 했다. 법정관리 조기 졸업, 현장 밀착 경영 등의 공로로 우성타이어 내부 조직원들 사이에 변화와 혁신 의지가 충분히 확산된 만큼, 경영진들은 더 이상 사명 변경을 미룰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1999년 9월, 우성타이어 기획팀은 CI 변경 작업에 착수한다. 우선 경쟁 입찰을 통해 종합 광고대행사를 선정, 새로운 CI 개발 작업을 맡겼다. 이와 동시에 전 직원 대상으로 사명 변경 공고도 냈다. ‘새천년을 준비하는 기업’ ’작지만 강한 기업’의 비전을 담은 우성타이어의 새 이름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명 변경을 전문가들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사내 공모를 병행한 이유는 “회사의 새로운 비전을 조직원들이 공유하고 내재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김철준 넥센타이어 전략기획팀장)에서였다.
약 한 달의 기간 동안 300여 건의 사내 공모 아이디어가 나왔다. 기획팀은 이 가운데 ①상표 등록 적합성 ②개념 적합성(회사 비전 반영 정도) ③발음 용이성 ④음절 수 적합성(3음절 이내) ⑤글로벌 확장 가능성(외국에서 부정적 이미지 연상 여부 등) 등 다섯 가지 내부 평가 지침에 따라 점수를 매겨 상위 10개를 선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경영관리담당 소속 팀장들이 세 개를 다시 추려 임원 회의에 상정했다. 사장 이하 임원진들간 토의 끝에 최종 낙점된 게 바로 ‘다음(Next)’과 ‘세기(Century)’의 합성어인 현재의 사명 ‘넥센(Nexen)’이다.
 
물론 광고대행사에서도 사명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넥센’과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던 ‘로디안(Roadian)’이 바로 그것. 길(road)과 사람(-ian)을 뜻하는 접미사를 합친 단어로, 경영진은 마지막까지 이 둘을 놓고 고심했다.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최종 승자는 ‘넥센’으로 결정됐다. 타이어 제품과의 연상도 측면에선 로디안이 낫지만, 밀레니엄을 준비하는 기업의 도전정신을 표방하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쪽으로 최종 결론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조직원들의 소속감과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왕이면 사내 공모 아이디어를 채택하자는 의견도 한 몫 했다. 결국 넥센은 사명으로, 로디안은 캐릭터 이름과 제품명으로 사용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새 이름 넥센을 조직원들에게 공표한 후에도 우성타이어는 이를 당장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대신 ‘밀리언 무브먼트 캠페인(Million Movement Campaign • 이른바 ‘타이어 100만 개 더 팔기 운동’)’을 전개했다. 외부에 우성타이어의 새 이름을 알리기 전에 내부 조직원들의 쇄신 의지를 더욱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경영진의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캠페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1999년 10월부터 그 해 말까지 미국,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싱가포르 등 해외 7개국에 타이어 105만 개를 수출했다.
 
2000년 2월, 우성타이어는 외부에 새 이름 넥센타이어를 공표했다. 주목할 점은 넥센타이어의 대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변경된 사명을 알리기 위해 ‘21세기 타이어, 넥스트 센추리(Next Century) 타이어, 넥센’이라는 슬로건으로 TV 광고를 제작해 내보내긴 했지만, 커뮤니케이션은 매스미디어를 통한 광고보다는 보도자료 배포 등 언론 홍보에 무게중심을 둔다는 원칙을 세웠다. 부실한 이미지의 기업이었지만, 실제 넥센타이어는 건실한 재무구조의 회사로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략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를 위해 이 회사는 매달 언론에 보도자료를 내고 월별 경영 실적을 공개했다. 넥센타이어는 이미 이규상 사장 부임 직후 매달 전 직원 대상 경영설명회를 통해 기업 자료 공개를 해 오고 있었다. 기업 투명성 제고를 목적으로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해 오던 경영실적 발표회를 그 대상을 넓혀 대중에게 공개키로 한 셈이다. ‘스팸성 보도자료’나 다름없는 넥센타이어의 투명 커뮤니케이션은 큰 빛을 발했다. 2001년 상장사 중 24대 투명경영 우수기업(증권거래소)으로 뽑혔고, 2002년엔 한국회계학회 선정 투명회계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부실 기업이라는 오명을 벗고 유리알처럼 투명한 기업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Restructuring: 구조조정 통해 기초체력 증강
구조조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비용절감이다. 넥센타이어 역시 전사적인 원가 절감 운동(5개 부문에서 비용(cost)을 절감(down)시키자는 ‘CD-5’ 캠페인)을 벌이며 3개월간 54억 원의 원재료 비용을 줄여나가는 등 단기간 강도 높은 구조조정 활동을 펼쳤다.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조직도 뜯어고쳤다. 물류 분야 조직 개편이 대표적이다. 우성타이어 시절, 물류 업무는 관리와 생산 부문으로 쪼개져 있었다. 즉, 판매(Out-bound)물류 중 내륙 운송 업무는 관리 부문에서 담당했지만, 수출물류 업무는 생산 부문에서 처리했다. 물류 업무가 분리돼 있다 보니 컨테이너 업체나 선박업체와의 계약 과정에서 교섭력이 분산돼 물류비 시너지를 내기 힘든 구조였다. 조달(In-bound)물류 문제는 더 심각했다. 원자재 구매를 담당하는 전담 조직이 없어, 총무팀 산하의 일개 과(업무과)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실정이었다. 타이어는 산업 특성상 원가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비용 관리를 위해선 글로벌 소싱 역량을 키우는 게 매우 중요한데도 이렇다 할 조직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 사장은 이런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물류 조직 개편을 단행, 조직 구조상 조달 • 판매 물류 일원화를 통한 시너지가 생길 수 있도록 했다. 우선, 관리 부문 아래 구매팀을 신설, 조달(In-bound)물류를 전담토록 했다. 구매팀 신설과 함께, 판매(Out-bound)물류를 담당할 물류팀도 함께 만들어 내륙운송물류(제품관리과)와 수출물류(물류과)를 통합, 관리토록 했다. 과거 생산 부문에서 관리하던 수출물류 업무를 관리 부문 내 물류팀 소속 업무로 편재시킴으로써 시너지가 발생토록 한 것이다. 이 같은 물류 조직 개편으로 넥센타이어의 구매 효율성은 물론 물류 업체와의 교섭력 향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어려움에 처한 회사들은 대개 복리후생, 사무실 유지 경비, 홍보 및 교육비 등의 예산부터 축소한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지출은 규모가 크지 않고, 직원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쳐 자칫 중장기적으로 실적 악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넥센타이어는 단기적인 비용절감에 집중하기보다는 보다 구조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조직을 점검하고 대안을 마련함으로써 기초 체력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Redesigning Portfolio: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넥센타이어는 영업력 정비, 조직 개편, 낭비 요인 제거와 효율성 강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2000년 이후로는 3년 연속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등 우수한 실적을 해마다 경신해 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업계 3위였다. 그것도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등 경쟁사 대비 약 20% 규모(매출액 기준)에 불과한 ‘만년 3등’이었다.
 
후발 주자가 선발 업체를 따라잡으려면 빠르고 혁신적이어야 한다. 선발 업체는 이미 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다 승리를 가져다 준 기존 성공 공식을 스스로 바꿔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후발주자는 이 틈을 노리고 보다 ‘혁신적’인 전략을 ‘발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 넥센타이어는 새로운 전략을 위해 내•외부 환경부터 분석했다.
 
내부에선 바이어스(Bias • 타이어 코드지가 주행방향과 사선으로 배치되는 타이어) 사업 부문이 문제였다. 넥센타이어 전체 매출액 중 20% 정도를 차지했지만, 영업이익률은 10%를 훨씬 웃도는 래디알(Radial • 타이어 코드지가 주행방향과 직각으로 배치되는 타이어. 고속 주행시 안정성 측면에서 바이어스보다 우수함) 사업부문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급기야 2002년엔 바이어스 영업이익률이 0.4%까지 추락했다. 수익성이 낮았지만 바이어스 사업을 계속했던 이유는 영업사원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쉬운 영업’이 가능해서였다. 바이어스 타이어는 버스, 트럭 등에 장착되는 튜브 타이어로, 수익성은 낮지만 부피가 크고 원재료 투입이 많아 대개 일반 승용차에 장착되는 래디알 타이어에 비해 평균 판매 단가가 높았다. 당시 바이어스 타이어 한 개 가격이 래디알 타이어 5개와 맞먹었을 정도다. 수익성은 낮아도 매출 실적을 올리기 편하다 보니 판매가 계속 이뤄졌다.
 
외부 환경 분석 결과 눈에 띄는 변화는 초고성능타이어(UHPT • Ultra High Performance Tire) 시장의 성장과 이에 따른 경쟁사의 대응이었다. UHPT는 래디알 구조를 채용하되 타이어의 폭을 확대시켜 접지성을 강화함으로써 시속 300km 이상 고속 주행에서도 안정적 주행이 가능한 제품이다. 가격은 일반 래디알 타이어에 비해 30~40% 정도 비싸다. 과거에는 고성능 승용차에만 장착돼 왔는데 차량의 안정성과 성능, 스타일에 대한 소비자 욕구가 다양화되면서 서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반 승용차에서도 UHPT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였다. 급증하는 UHPT 수요에 맞춰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는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관련 제품을 생산해 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넥센타이어는 UHPT 생산 실적이 전무했다. 넥센타이어가 조기 정상화를 위해 재무 안정에 치중하는 동안 경쟁사들은 UHPT 성장 가능성을 보고 이미 한발 앞서 나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두 회사의 UHPT 생산 규모는 당시 연간 300만 개 안팎으로 전체 UHPT 시장의 성장 속도에 비춰볼 때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과감하게 설비 투자를 한다면 UHPT에서만큼은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이런 내•외부 환경 분석을 토대로 넥센타이어 경영진은 바이어스 사업 철수와 1000억 원이 넘는 UHPT 설비 투자라는 두 가지 결정을 동시에 단행했다. 상용차용 타이어 제품을 과감히 없애고 승용차 및 RV(Recreational Vehicle)/SUV(Sports Utility Vehicle)용 타이어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같은 결단은 당시로선 ‘모험’과 같았다. 바이어스 사업을 폐쇄하고 신규 설비투자를 단행하면 감가상각비 증가로 고정비 부담이 커질 게 불을 보듯 뻔했다. 법정관리를 졸업한 지 3년 밖에 안 됐는데, 자칫 경영 상태가 또다시 악화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장은 고수익 기조를 하루 빨리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단기 실적 악화를 감수하고서라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개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메가톤급 결정에 조직원들은 반발했다. 당장 바이어스 사업부 폐쇄로 직격탄을 맞을 생산부문 직원은 물론, 영업부서 직원들까지 우려를 표시했다. “멀쩡하게 잘 팔리고 있는 제품을 왜 안 팔려고 하느냐?”, “영업이익이 낮다 뿐이지 적자를 내는 것도 아닌데 왜 폐쇄하느냐?” 등 반대 의견이 거셌다. 구조조정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직원들에겐 만년 적자로 허덕였던 과거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경영진은 내부 반발에 정면 돌파를 결정했다. 직원들을 직접 만나 전략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며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매출 감소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설비 투자를 천천히 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경영진은 시장 트렌드와 경쟁 구도를 근거로 제시하며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점을 직원들에게 집중 강조했고 결국 직원들도 이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2003년 6월 30일을 끝으로, 넥센타이어 양산 2공장은 바이어스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바이어스 생산 라인 직원들은 전원 양산 1공장(래디알 생산 공장)에 각 공정별로 분산 배치돼 래디알 생산 공정을 처음부터 다시 익혔다. 이듬해 5월, UHPT 라인 설치가 완료된 후부터 기존 래디알 생산 직원과 바이어스 생산 직원들이 1대 1로 짝을 이뤄 약 5개월간 UHPT 공정을 새롭게 익히며 본격 생산 준비에 들어갔다.
 
후발주자의 과감한 ‘캐치업(catch-up)’ 전략은 성과로 연결됐다. 2009년 넥센타이어의 전체 매출액은 9662억 원. 2003년 매출액(2876억 원)보다 세 배 이상 커졌다. 성장의 1등 공신은 UHPT 사업부문이다. UHPT 매출액만 2844억 원(전체의 29%)으로 2003년 넥센타이어 전체 매출액과 견줄 만하다. 뿐만 아니다. 국내 1위 업체인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매출액 2조8119억 원 중 17%인 4670억 원을 UHPT 판매로 올렸다. 전체 매출 규모만 보면 넥센타이어보다 몸집이 세 배나 되는 한국타이어와 넥센타이어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힘들지만, UHPT만 놓고 본다면 어깨를 겨누고 경쟁할 만한 수준이다.
 
Sports Marketing: 브랜드 인지도 제고
넥센타이어는 기초 체력 증강과 전략 정비 및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성장 기반을 확고하게 다졌다. 2006년 2월엔 삼성자동차와 삼성코닝정밀유리 대표를 역임한 홍종만 씨를 부회장(현 넥센타이어 회장)으로 영입해 그 동안 미흡했던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했다. 해외 영업 거점 확대에도 매진하는 등 글로벌 경영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힘썼다. 이러한 노력 덕택으로 넥센타이어는 품질과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업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경쟁사 대비 브랜드 파워가 여전히 약하다는 점은 넥센타이어가 극복해야 할 핵심 과제다. 회사 업력은 오래됐지만 사명 변경으로 소비자들은 넥센타이어를 신생 브랜드로 여겼다. 브랜드 최초상기(Top of Mind) 측면에서 경쟁사와의 격차가 매우 컸고, 심지어 넥센타이어를 외국계 기업으로 알고 있는 소비자들도 상당수 됐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넥센타이어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스포츠 마케팅이다. 맨 처음 관심을 가진 분야는 모터 스포츠. 모터스포츠는 엄청난 속도로 서킷을 질주하는 자동차와 자동차 기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자리이지만, 타이어 제품의 경쟁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해 국내외 많은 타이어 업체들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다. 넥센타이어도 자사 UHPT 제품 홍보를 위해 모터스포츠 스폰서를 추진했다. 하지만 국내 경쟁사가 포뮬러3(F3) 등 세계적 레이싱 대회에 타이어를 공급하는 마당에 웬만한 레이싱카 대회 후원으로는 별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넥센타이어는 RV 및 SUV 차량 경주를 개최하고 국내 선수를 후원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하기로 했다. 현재 넥센타이어는 2006년부터 ‘넥센 RV 챔피언십’을 개최하며 해마다 타이틀 스폰서로 참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야구로 영역을 넓혔다. 지난 2월 프로야구단 ‘히어로즈’의 메인 스폰서로 전격 참가키로 한 것. 히어로즈 구단 운영금액의 상당 부분(연간 50억 원 안팎)을 제공하는 대신, 구단 명칭 사용권과 유니폼, 헬멧과 모자 등에 대한 광고권을 갖게 됐다. 구단 명칭을 ‘넥센 히어로즈’로 최종 확정한 넥센타이어는 앞으로 2년간 히어로즈 구단의 메인 스폰서 자격으로 활동하게 된다. 최경상 넥센타이어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 과장은 “히어로즈 스폰서 이후 실시한 소비자 조사 결과 넥센타이어 브랜드의 최초상기율이 이전보다 네 배 정도 늘었다”며 “연간 1500억 원 이상의 광고 • 홍보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브랜드 제고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바로 신차용 타이어(OE • Original Equipment) 납품 강화다. 홍종만 부회장 영입 전까지 넥센타이어는 교체형 타이어(RE • Replace Equipment) 시장에 집중해 왔었다. OE시장은 완성차 업체의 협상력이 크기 때문에 RE 대비 수익성이 낮고, 제품 수요도 경기 변동에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넥센타이어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안정적이고 이익 폭도 큰 RE시장을 공략해 왔다. 그러나 저마진에도 불구하고 타이어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OE에 납품하려 하는 이유는, 자동차 업체에서 타이어 업체에 매우 까다로운 품질 요건을 제시하기 때문에 OE에 납품하는 것만으로도 브랜드 인지도 제고 효과를 얻을 수 있어서다. 타이어 교체 시 원래 장착돼 있던 타이어 브랜드로 교체하는 비율도 높아 향후 RE 수요를 선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홍종만 부회장도 이 같은 점을 간파하고 OE사업 강화 명령을 내렸다. 특히 소형차종보다는 중대형 차종의 OE시장을 집중 공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에 힘입어 넥센타이어는 2007년 모하비 납품을 기점으로 현재 포르테, 쏘울, NF 쏘나타 트랜스폼, YF 쏘나타 등으로 거래선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홍 부회장 취임 당시 전체 매출액의 5%에 그쳤던 OE 매출액은 지난해 7%로 상승했다.
 
넥센타이어는 2000년부터 추진한 리브랜딩 작업으로 10년 만에 연 매출 1조 원대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최근 삼성전자 서남아 총괄 사장을 역임한 이현봉 씨를 부회장으로 영입하고 글로벌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경남 창녕에 2017년까지 총 1조 원을 투자해 제 2 생산 공장(약 18만 평 규모, 日産 6만 개)을 설립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제 2공장이 완성되면 경남 양산 본사와 중국공장을 합쳐 모두 6000만 개의 외형으로 세계 10위권의 타이어사로 등극할 수 있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넥센타이어는 이처럼 글로벌 규모의 생산량 증설, 지속적인 R&D 투자,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제품 개발,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 등을 통해 브랜드 파워를 지속적으로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넥센타이어의 리브랜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진경(26·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