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남단에 하트 모양의 섬이 있다. ‘세상의 끝’인 남극 대륙을 볼 수 있는 ‘태즈메이니아(Tasmania)’다. 이곳은 호주에서 유일하게 섬으로만 이루어진 주(州)로 면적은 남한의 3분의 2나 된다. 하지만 인구는 50만 명이 채 안 된다. 호주 남동부 해안에서 240km 떨어진 고도(孤島)라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인구 밀도가 낮다. 대신 섬의 37%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청정 자연을 보존하고 있다. 이 섬을 가로지르는 편서풍이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공기를 몰고 온다”는 말까지 나온다. 태즈메이니아는 한때 외진 낙도였지만 요즘은 대접이 달라졌다. 원시의 자연을 활용해 세계인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으면서 버려진 낙도에서 보물섬으로 거듭나고 있다.
서구 문명의 침입과 잃어버린 세대
태즈메이니아라는 지명은 어디에서 왔을까? 1642년 이 섬을 처음 발견한 사람인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벨 태즈만(Abel Tasman)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서구인 최초로 뉴질랜드도 발견했다.
대륙을 건너온 서구인의 등장은 그 자체로 원시 자연과 원주민 문화를 유지해온 태즈메이니아 생태계에 위협이 됐다. 영국 식민지가 된 호주 대륙에는 1803∼1833년 30년간 이주민들이 몰려들었다. 태즈메이니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륙의 이주민들은 각종 질병을 퍼뜨렸고, 내성이 없던 원주민들은 병마에 시달렸다.
서구 문명은 오만했다. 변변한 옷도 갖추지 못하고, 문자도 없던 애버리진(aborigine), 즉 원주민들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 인종 탄압과 학살이 자행돼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인구가 5000명에서 300명으로 크게 줄기도 했다.
20세기 들어서는 문명을 가장한 새로운 야만의 시대가 시작됐다. 1900년부터 약 70년간 서구인의 시각에서 원주민 개화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호주 정부와 교회는 ‘개화’라는 미명 아래 원주민 아이들을 강제로 부모로부터 떼어냈다. 격리된 아이들은 백인 가정에 입양됐다. 강제로 격리됐던 당시 원주민들은 ‘도둑맞은 세대’로 불린다. 최소 10만 명 이상의 원주민이 강제 이별의 아픔을 경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같은 비경을 간직한 태즈메이니아의 평화로운 풍경 뒤에는 서구 문명에 의해 왜곡된 원주민의 슬픈 역사가 소리 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조건 없이 주는 태즈메이니아의 숲
자연은 조건 없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나눠 준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래서일까. 문명의 힘에 파괴될 뻔했던 태즈메이니아의 원시 자연과 원주민 문화가 이제 현대의 태즈메이니아를 먹여 살리는 중요한 자원이다. 태즈메이니아가 지켜낸 푸르른 계곡, 한적한 마을과 촌락, 아직 개발되지 않은 해안선이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원동력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자원은 ‘숲’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어울릴 것 같은 신비로운 풍광을 간직한 산에서 부시워킹(Bushwalking: 배낭을 메고 인적이 뜸한 산길이나 숲 속을 걸어 다니는 여행 형태)을 즐기거나 국립공원에서 캠핑을 할 수도 있다. ‘숲’은 태즈메이니아 관광청이 가장 아끼는 자원이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프랭클린 고든 와일드 리버 국립공원(Franklin Gordon Wild Rivers National Park)에서는 태즈메이니아에서 가장 높은 수직절벽과 일년 내내 눈으로 덮인 산 정상을 볼 수 있다. 호주 본토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호주 내륙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 동식물도 서식한다. 숲을 거닐다가 만나는 다양한 동식물은 태즈메이니아가 주는 또 다른 깜짝 선물이다. 특히, 태즈메이니아를 상징하는 대표적 동물이 ‘태즈메이니안 데블(Tasmanian Devil)’이다. 토끼만한 크기의 검은색 육식동물인 태즈메이니안 데블은 날카로운 이빨로 고기의 뼈까지 먹어치운다. 먹는 모습이 매우 게걸스럽고 울음소리가 괴기스러워 ‘데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태즈메이니아 섬에만 서식하는 이 동물은 섬을 상징하는 캐릭터 인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만화영화에서는 ‘태즈(Tazz)’라는 애칭으로 캐릭터화되기도 했다. 태즈메이니아는 산에 아름드리 사과나무가 많아 ‘애플스테이트(apple state)’로 불리기도 한다. 온대우림 지역인 태즈메이니아에서 서식하는 후온 파인(Huon Pine) 나무는 1년에 1cm 정도만 자라지만 수명이 1000년이 넘을 정도로 생명력이 길다.
자연과 개척의 역사가 어우러진 도시
태즈메이니아에는 주도(州都)인 호바트, 제2의 도시인 론서스톤과 버니, 데본포트 등의 도시가 있다. 특히 호바트는 호주에서도 두 번째로 오래된 도시다. 환경론자 데이비드 벨라미는 호바트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도”라고 극찬했다.
태즈메이니아 여행은 대부분 호바트에서 시작한다. 주도인 데다 호주 대륙과 항공편이 연결돼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번잡하고 시끄러운 대도시는 아니다. 시내 중심가에서는 높은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도심 한복판에서도 ‘신선한 공기’가 느껴질 정도로 쾌적하고 깨끗하다.
도시에서는 태즈메이니아 개척의 역사도 느껴볼 수 있다. 이주민들이 호바트에서 최초로 거주한 지역은 ‘배터리 포인트(Battery Point)’다. 원래는 어촌이었다. 영국군이 프랑스와 같은 열강의 공격에 대비해 포대를 설치하면서 배터리 포인트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는 빅토리아 양식과 조지아 양식으로 지어진 집이 90채가 남아 있는데, 거리 쪽의 집 외관은 주민 맘대로 바꿀 수 없다. 개척 당시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정부가 외관을 유지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 뒤편은 정원도 만들고, 현대적으로 개조할 수 있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
호바트는 한때 유명한 고래잡이의 거점 항구였다. 현재는 어업 거점이자 매년 요트 경기가 열리는 현대식 항구가 됐다. 19세기 고래잡이가 번성하던 시절에 고래 기름 창고로 쓰였던 ‘살라망카 플레이스(Salamanca Place)’도 호바트의 관광명소다. 현재는 개조돼 화랑,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가 들어선 관광지가 됐다. 매주 토요일에는 노천시장인 ‘살라망카 마켓(Salamanca Market)’이 열리는데, 각종 식료품부터 골동품에 이르는 다양한 물건이 거래된다. 장터에서 친절하고 쾌활한 호바트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태즈메이니아의 성공 비결
태즈메이니아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자연 환경을 활용해 관광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관광수익은 태즈메이니아주 총생산(GDP)의 7%를 기여한다. 이 수치는 호주의 다른 주보다 높다. 관광산업을 통해 2400개의 사업과 2만3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는 태즈메이니아 전체 고용시장의 약 9%를 차지한다.
태즈메이니아의 상징동물인 태즈메이니안 데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