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자동차 업계의 최대 화제는 기아자동차의 K7이 ‘준대형 세단의 절대강자’ 그랜저를 꺾은 사건이다. 2010년 5월까지 기아차는 총 1만 9200여 대의 K7을 팔았다. 그랜저보다 2000 대나 더 많이 팔린 수치다.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리어 램프로 이어지는 K7만의 고유한 디자인이 소비자들을 사로잡기도 했지만, K7과 K5 등 기아자동차가 붙인 이름이 수입차가 주로 사용하는 이름처럼 세련되고 고급스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주효했다는 평가가 많다.
사실 K7의 성공은 이미 출시 전부터 상당 부분 예견됐다. K7이라는 이름에 대한 잠재적 소비자들의 뇌 반응이 무척 뜨거웠기 때문이다. 이를 자세히 알아보자. 기아자동차는 몇 년 전부터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한 이른바 알파뉴메릭(alphanumeric) 방식의 차 이름을 고려해왔다. 기아자동차는 다양한 차종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프라이드나 로체 등 주력 차종의 이름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 상표등록이 돼 있어 다른 이름을 써야만 했다. 당연히 해당 차종의 수출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프라이드나 로체 등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려면 새로운 이름을 지어야만 하니 추가 비용도 발생하고 브랜드 이미지 구축도 힘들었다.
기아자동차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한 끝에 알파뉴메릭 방식으로 브랜드를 통일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기아자동차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하면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알파뉴메릭 브랜드를 찾기 위해 뉴로마케팅 전략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기아자동차는 필자의 연구실(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Brain Dynamics Laboratory)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피험자를 모집했다. 소비자로부터 가장 긍정적인 뇌 반응을 유도하는 알파뉴메릭 이름을 찾는 프로젝트를 3개월에 걸쳐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기아자동차의 스타일, 브랜드 지향점, 콘셉트 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알파벳과 숫자 조합을 찾는 게 핵심 과제였다.
우리는 한국인 100명과 한국 거주 3년 이상의 자가 운전자 외국인 100명을 합쳐 모두 2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 도구는 설문 조사였다. 다양한 브랜드 후보군(차 이름)을 봤을 때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한 ‘형용사’를 고르라는 내용이었다. 이 설문 조사에는 한 가지 기술이 숨어 있었다. 바로 아이 트랙킹(eyetracking) 장치다. 0.1초 간격으로, 1밀리미터 해상도로 시선을 추적하는 이 장치는 피실험자들이 응답하기 위해 설문지를 보는 동안, 그들이 어떤 형용사들에 주목하는지 시선을 추적한다.
대부분의 피험자들은 설령 ‘우스꽝스러운(ridiculous)’이나 ‘적절하지 않은(unsuitable)’ 같은 형용사가 적절하다고 생각해도, 답안을 선택할 때는 ‘재미있는(fun)’이나 ‘스타일이 있는(stylish)’ 식으로 멋진 느낌을 주는 단어를 골랐다. 사실 기아자동차는 피험자에게 실험 참가비를 지급했다. 돈을 받고 실험실에 온 사람들이 어찌 해당 회사에게 안 좋은 답변만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이 가장 많이 본 단어, 그들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문 단어를 추적하면 여지없이 ‘우스꽝스러운(ridiculous)’이나 ‘적절하지 않은(unsuitable)’ 같은 형용사가 나왔다. 이런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진짜 속 마음이 어떤지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설문 조사와 시각 추적 결과를 종합해 최종 브랜드 후보군을 가려냈다. 그 다음, 소비자들의 선호를 측정하기 위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활용해 브랜드 이름에 대한 피실험자들의 뇌 반응도 측정했다. fMRI를 통해 브랜드 이름을 볼 때 뇌의 선호 영역(nucleus accumbens)과 혐오 영역(insular) 중 어느 영역이 더 크게 반응하는지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피실험자들이 가장 선호한 알파벳 후보는 K, T, N, Y, Z 등 5가지였다. 특히 K에 7을 더한 K7의 반응은 압도적이었다. 전 세대에서 골고루, 내외국인 모두 K7에 대해 강한 선호 반응을 보였다. 피실험자들은 K7이라는 이름에서 세련되고 혁신적이며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국인들의 선호도가 더 높았다. T는 K와 대등한 경합을 벌이거나 일부 소비자에게는 K를 능가하기도 했다. 다만 다른 외국 업체가 이미 상표등록을 한 걸로 밝혀져 막판에 탈락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최종 낙점된 이름이 바로 K7이다.
K7은 브랜드 네이밍(naming)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BMW, 아우디 등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명차 브랜드 다수가 알파뉴메릭 방식의 작명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K는 어감이 강하고 이성적이며 차가운 느낌을 주는 알파벳이다. 때문에 기아차의 영문명 KIA와 접목시키면 지나치게 강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일부 미국인들은 KIA라는 단어를 들으면 때로 ‘전사자(Killed in Action)’를 연상하기도 한다. 알파뉴메릭 이름을 사용하는 일은 KIA 라는 자동차 회사로 승부를 걸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직 해외 시장에서 지명도가 낮고 브랜드 이미지도 확고하지 않은 ‘기아(KIA)’ 브랜드로 과연 정면승부 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감성 마케팅의 시대에 정서적 만족감을 채워주지 못하는 브랜드는 소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댄 에어리얼리와 에모리대 정신과의 그레고리 번스 박사는 최근 <Nature Reviews Neurosience>에 실은 뉴러마케팅 리뷰 논문에서 뉴로마케팅의 성과와 한계를 정리하면서, 앞으로 설문조사나 포커스 그룹 인터뷰의 좋은 보안제가 될 기술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제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 행동과 대화를 넘어 뇌 안으로 들어오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편집자주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 구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재승 교수가 인간의 뇌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 및 경제적 의미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