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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해악과 미덕

DBR | 49호 (2010년 1월 Issue 2)
당신은 현재 식당에서 두 가지 음식 중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고 있다. 첫 번째 음식은 맛이 별로 없지만 몸에 좋은 샐러드다. 두 번째 음식은 온갖 토핑이 듬뿍 들어가 매우 맛있지만 혈관 질환을 야기할 수 있는 햄버거다. 이때 당신이 샐러드를 고르도록 만드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와튼 교수진의 연구에 따르면 놀랍게도 주치의나 배우자의 잔소리,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건강에 관한 상식들은 당신의 음식 선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당신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메뉴판의 길이였다.
 
 

 
와튼 스쿨의 마케팅 교수인 요나 버거, UCLA의 마케팅 교수 웬디 리우,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아네르 셀라는 자신들의 논문 <다양성의 해악과 미덕 : 선택의 폭이 선택에 미치는 영향>에서 아이스크림, 과일, 전자제품을 이용한 5가지 실험을 통해 선택의 행동 양식을 묘사했다. 연구 결과,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의 수가 늘어날수록 소비자는 오락성 위주나 당장의 만족이 아닌, 현명하고 실용적을 선택을 했다.
 
선택에 관한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은 ‘선택할 수 있는 재화의 종류가 다양해질수록 소비자는 더욱 쉽게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구매율도 올라간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선택의 폭이 커질수록 소비자는 오히려 더 큰 부담을 느끼고, 구매를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거나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쉬운 쪽을 택한다. 버거 교수는 이 현상을 ‘선택의 패러독스’라고 칭했다.
 
버거 교수는 “오늘날 소비자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엄청나게 늘어난 선택의 폭을 감당해야만 한다. 예전에는 한 상점에 서너 개의 케첩이 있었지만 현재는 어떤 상점을 가도 10가지가 넘는 케첩이 있다. 잡지의 종류도 100여 가지가 훌쩍 넘는다. 소비자가 구매 선택을 하는 과정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으며, 더 많은 요소들이 연관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버거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은 소비자의 선택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 참가자들에게 쿠폰과 상품권 등을 제공하고, 재화의 수나 다양성이 구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들은 연구 결과를 2009년 4월 호에 기고했다.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를 수 있는 재화가 다양하고 많을 때 소비자는 자신이 무엇을 구입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을 힘들어한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최대한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선택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느냐, 필요한 물건을 사느냐’는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버거 교수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초콜릿 케이크를 사는 일보다 건강한 과일을 섭취하는 일이, MP3 플레이어보다는 업무에 도움을 주는 프린터기를 사는 일이 훨씬 정당화하기 쉬운 선택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상품보다 실용적인 상품을 살 가능성이 높다. 실용적인 상품을 사는 일이 구매 행위를 쉽게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 실험의 목표는 제품 구색의 다양성이 소비자들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연구진들은 우선 실험 참가자들에게 아이스크림 사진들을 보여주고 먹고 싶은 맛을 선택하도록 했다. 실험군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일반 아이스크림과 저지방 아이스크림 두 가지 중 하나의 아이스크림만 택하라고 했다. 대조군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저지방 아이스크림 5개가 포함된 총 아이스크림 10개 사진을 보여줬다. 그 결과, 첫 번째 집단에 속한 사람 중에서는 불과 20%만이 저지방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반면, 다양한 아이스크림 중에서 고른 참가자들은 37%가 저지방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두 번째 실험은 한 빌딩의 입구 두 곳에서 이뤄졌다. 첫 번째 입구에는 각각 2가지 과일과 2가지 쿠키가 담긴 쟁반을 놓고 그 앞에 “둘 중 원하는 한 가지를 드세요”라는 표시를 해뒀다. 두 번째 입구에는 6가지 종류의 과일(바나나, 빨간 사과, 녹색 사과, 배, 귤, 복숭아)과 6가지 다과류(각종 쿠키, 크루아상, 바나나 아몬드 머핀)를 비치해뒀다. 첫 번째 입구에서는 55%가 과일을 선택했고, 선택의 폭이 넓었던 두 번째 입구에서는 76%가 과일을 선택했다.
 
연구진은 두 실험에서 도출한 결과가 생활용품이나 오락 제품의 선택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또 다른 실험을 실시했다. 그들은 이번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프린터와 MP3의 샘플을 보여줬다. 사람들이 MP3보다 프린터를 구입하는 일을 더욱 바람직한 구매로 인식한다는 사실은 이미 이전 실험에서 밝혀졌다.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사람들에게 각각 2가지 프린터와 MP3 샘플을 보여줬을 때는 참가자의 11%가 프린터를 선택했다. 반면 각각 6가지 프린터와 MP3샘플을 보여줬을 때는 참가자의 무려 50%가 프린터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선택할 수 있는 물품 종류가 늘어날수록 정당화가 쉬운 제품을 고른다’는 사실은 동일 실험에서 프린터는 그대로 두고 MP3 종류만 더 늘렸을 때의 결과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프린터 종류는 그대로 두고, MP3 종류만 더 늘리면 MP3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MP3 종류를 늘리자 프린터와 MP3 종류를 똑같이 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프린터를 선택했다.
정당화의 원리를 찾아서
제품의 다양함과 선택 사이의 상관관계를 정립한 연구진은 이 행동 양식을 결정짓는 내재적 요인을 조사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우선 참가자들에게 여러 종류의 MP3와 프린터 중 하나를 고르게 한 후, 결정을 내릴 때 느끼는 어려움의 정도를 적으라고 시켰다. 결과는 이전의 실험 결과와 대동소이했다. 제품의 가짓수가 적었을 때는 참가자의 34%가 프린터를 선택했다. 반면 제품의 구색을 다양하게 갖췄을 때는 참가자의 51%가 프린터를 선택했다. 선택의 어려움이 사람들로 하여금 정당화하기 쉬운 제품을 선택하게 만든다는 점이 분명해진 셈이다. 이 상황에서 정당화하기 쉬운 선택은 누가 뭐래도 프린터였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주는 구매 선택을 했을 때와 소위 바람직한 구매 선택을 했을 때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만족스러웠는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덜 바람직한 선택을 한 사람들은 나중에 자신이 한 선택을 후회하는 소위 ‘죄의식 요소’를 다른 사람들보다 강하게 느꼈다.
 
이들은 또 소비자들이 덜 바람직한 선택을 하는 일에 관한 거리낌이나 죄의식을 줄여주는 요인에 관해서도 분석했다. 그 결과, 방금 자선 활동을 마친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재미를 주는 제품을 선택하는 일에 훨씬 편안한 태도를 보였다. 버거 교수는 “방금 막 헬스장에서 땀을 빼고 나온 사람은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을 고르면서도 큰 불편함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운동을 했다는 사실이 그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케팅 담당자들이 ‘어떤 제품이 소비자들의 정당화를 도와주는지, 어떤 제품이 소비자의 거리낌을 줄여주는지’에 관한 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다.
 
버거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에는 한계도 있다. 이번 실험 결과의 실효성은 선택의 폭이 다양해지면 실질적으로 소비자들이 선택의 어려움을 더 많이 느낀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특정 물품이 다른 물품보다 엄청나게 우수하거나, 소비자가 매우 뚜렷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 상품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소비자에게 큰 어려움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다양해졌을 때 어려움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를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의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그는 겉으로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정보, 예를 들어 방금 왔다간 고객이 어떤 특정 제품을 구입했느냐는 점도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고 덧붙였다.
 
소비자 복지
버거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가 마케팅과 영업 분야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진단했다. 건강한 스낵을 만드는 기업들은 다양한 브랜드의 스낵이 많은 상점에서 자사 제품을 판매하면 더 많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이때 경쟁하는 다양한 브랜드의 스낵이 고열량 고칼로리 제품이라면 건강한 스낵이라는 자사 제품의 차별적 특징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성이 뛰어나고, 영화제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영화는 예술 영화 전문관보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상영해야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가능성이 있다. 자동차 대여점에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가 있다면 손님들이 화려한 스포츠카보다 소박한 세단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구진은 수많은 원서들을 검토해야 하는 신입 사원 모집 담당자에게도 이번 결과가 유용하다고 평가했다. 신입사원 모집 담당자가 수집된 원서 개수, 개별 원서의 양, 원서 제출자의 인적 사항 등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원서 개수가 많고, 개별 원서의 길이가 길어 모집 담당자가 선택의 어려움에 직면한다면, 정당화가 쉬운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결국, 이때 이 담당자는 특정 인종, 성별, 배경에 근거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버거 교수는 선택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사회적으로도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베스트셀러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을 언급했다. 2008년 출간된 이 책의 공동 저자는 행동경제학자인 리차드 H 탈러와 시카고대의 법학 교수인 카스 R 선스타인이다. 심리학과 행동 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책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는 개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과거 공공 정책 수립, 정부가 국민 스스로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결정을 하도록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와 깊은 관련을 지녔다.
 
반면 이 책에서는 기업들이 어떻게 환경 요인을 조정해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소비자들이 몸에 좋은 건강식을 택하는 비율을 높이려면 식당의 메뉴판에 더 많은 종류의 음식을 적어놓고, 메뉴판 길이도 더 길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건강식을 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연구진은 선택의 폭이 가져다주는 혜택들이 소비자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혀주는 일은 그들로 하여금 선택의 정당성에 더 많이 의지하도록 만든다. 문제는 정당화로 인한 소비자의 선택이 실제로 소비자의 혜택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번역 |이남영 queenkaka2@nate.com
 
편집자주 이 글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MBA 스쿨의 온라인 매거진 에 실린 ‘Too Much of a Good Thing? How Assortment Size Influences Healthy Consumer Choice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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