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쥐 ‘불스’는 서식지에 따라 애정 생활이 전혀 다르다. 북아메리카 중서부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들쥐 불스는 냄새를 통해 적합한 파트너를 찾아 끔찍이 서로를 아끼는 낭만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평생 한 파트너하고만 짝짓기를 하며, 나중에 직접 만든 둥지에서 새끼를 함께 돌본다.
반면 산에서 서식하는 불스는 대초원 불스와 생김새는 거의 비슷하지만, 애정 생활은 정반대다. 수컷은 새끼를 낳아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며, 곧장 다른 암컷의 치마 속을 호시탐탐 노린다. 한마디로 말해 ‘바람둥이 쥐들’이다.
유전자 측면에서만 보면, 두 들쥐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니 산에서 서식하는 들쥐를 그토록 불성실한 수컷으로 만드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15년간 들쥐들을 연구해온 미국 에모리대 래리 영 박사 팀은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성실한 수컷 들쥐에게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고, 암컷에게는 ‘옥시토신’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다.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은 자식과 배우자에 대한 ‘애착을 유발하는 호르몬’인데, 이들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자, 순식간에 그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평소에 그렇게 자상하던 수컷이 교미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췄고, 암컷 또한 파트너에 대한 흥미를 곧바로 잃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 연구 결과였다. 이번에는 산에 서식하는 들쥐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바소프레신 수용체와 옥시토신 수용체의 양을 늘렸더니, 바람둥이 수컷 들쥐들이 갑자기 ‘자상한 아버지’로 돌변했다. 예전의 불성실함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대초원에 서식하는 들쥐처럼 그들도 이제 한 파트너에게 전념하고 새끼를 키우는 데 전념하더라는 것이다.
사랑 안에 숨어 있는 생물학적 요소
비록 들쥐를 통한 연구 결과이긴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왜 사람들이 결혼 생활이 깨질 수 있음에도 혼외정사를 꿈꾸는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애보적인 사랑’이나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불륜적인 사랑’ 안에는 생물학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포함돼 있음을 시사한다.
뇌 속에 어떤 호르몬이 좀 더 지배적인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랑관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연구 결과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엄청난 지탄을 받았다. 남자들의 바람기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연구 결과는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적인 행동을 관장하는 ‘옥시토신’이 최근 뉴로마케팅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옥시토신은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기능뿐 아니라(연애 3년 후에 안정적인 상태로 연인 관계가 바뀌는 이유도 바로 옥시토신 때문이다), 출산한 여성의 몸에서 분비되어 자궁을 수축하는 역할도 한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폴 착과 그의 동료들은 2007년 <네이처>에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을 발표한다. 피험자들에게 옥시토신을 주사로 주입했더니, 피험자들이 상대방의 말을 잘 믿고, 쉽게 설득되며, 투자게임(Investment game)에서는 상대방에게 대조군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옥시토신이 많은 사람을 쉽게 설득할 수 있다.
옥시토신을 주입받지 않은 피험자들은 상대방의 행동을 믿지 않고 투자를 하는 데 조심스러웠으나, 옥시토신을 주입받은 피험자들은 상대방을 너무 쉽게 믿었다. 옥시토신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인위적으로 ‘친밀하고 신뢰 있는 관계’로 바꾸어놓은 셈이다.
이 연구 결과는 뉴로마케팅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논문의 행간을 읽어보면, ‘무시무시한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만약 화장품을 판매하는 방문 판매 업자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아파트 단지에 가서 무작위로 방문해 화장품을 팔지 않고, ‘출산한 지 3년 이내의 여성’이 전업주부로 있는 집을 방문해 화장품을 팔면 판매 성공 확률이 5배 이상 높게 된다. 이제 방문 판매나 영업을 할 때도 ‘뇌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남들보다 더 영업을 잘할 수 있는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
쑥쓰러움 방지제도 시판 중
‘출산한 지 3년 이내의 여성’이 전업주부로 있는 집을 찾는 것도 귀찮고 힘들다고? 그럼 액체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초인종을 누르면서 뿌리면 어떨까? 자연발생적인 옥시토신이 아니라, 평소 옥시토신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컨트롤하면 어떨까?
실제로 이런 무시무시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다. 액체 옥시토신을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액체 옥시토신이 인터넷에서 널리 판매되고 있는 데에는 미국의 결혼 중매 회사(match-making companies)들의 역할이 컸다.
미국에도 최근 결혼 배우자를 찾아주고 맞선을 주선하는 회사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찾는 남녀 싱글들은 근사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5살이 되도록 여성과 한 번도 키스를 안 해봤다거나, 35살이 되도록 남자 손을 한 번도 잡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 보니 좋은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해주어도 맞선 자리는 어색하고 불편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결혼 중매 회사가 마련한 궁여지책이 바로 ‘옥시토신 스프레이’다. ‘쑥스러움 방지제(anti-shyness spray)’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이 제품을 맞선 전에 미리 두 싱글들에게 뿌려주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매우 유효했다. 평소 같았으면 제대로 말도 못 했던 노총각, 노처녀 쑥맥들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 35년을 기다려왔어요” 같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를 서슴없이 했다.
지금까지 뉴로마케팅은 소비자들의 뇌를 측정해 그들의 마음을 읽으려 하는 ‘마음읽기 기술(mind-reading technology)’이 주된 기술이었다면, 앞으로는 소비자들의 뇌를 조절해 마음을 움직이려는 ‘마음조절 기술(mind-modulation technology)’이 등장할 것이란 얘기다. 물론 법과 상식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만약 백화점 매장에서 옥시토신이 섞인 향수가 조금씩 뿌려져 나온다면, 매장을 찾은 고객은 과연 점원의 제품 소개에 훨씬 쉽게 현혹당해 구매 의사가 증가할까? 또는 페로몬이 묻어 있는 제품이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더 강하게 자극할까? 앞으로는 영업 사원들도 신경과학을 알아야 하는 시대가 오게 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