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별 볼일 없는 개발도상국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변신했다. 이 변신이 채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기간에 이뤄졌다는 점이 놀랍다. 한때 세계 최고의 시장에서만 사용됐던 전략은 이제 중국 내에서도 표준이 됐다. 업계와 규모를 총망라한 수많은 기업들이 저렴한 생산비, 풍부한 노동력,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세제 혜택으로 무장한 중국에 제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자본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중국의 제조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중국의 생산비용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특히 제조시설이 밀집된 중국 해안 지역에서는 생산비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는 해안 도시의 경제 성장을 좀 더 넓은 지역으로 확대하고, 도농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해안 지역 제조업체들을 위한 세제 혜택을 전면 폐지하거나 과감하게 줄이고 있다.
이 변화가 해외 제조업체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이 변화에도 불구하고 해외 제조업체들은 계속해서 중국이 풍요로운 미래를 선사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중국으로 몰려들까?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비용이 낮은 제조국가라는 중국의 위치가 바뀔까? 혹은 지금껏 중국에서 활동해온 기존 업체들이 중국을 떠나고 새로운 분야의 제조업체들이 중국으로 들어올까?
일단 답부터 말하자. 앞으로 많은 기업들은 저렴한 노동력 때문에는 더 이상 중국을 찾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점차 증가하는 중국 국내 시장 및 인재에 매료되어 중국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저비용 생산에 적합한 생산 기반을 찾는 기업들은 점차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 혹은 중국 내륙 지방으로 발길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해외 제조업체의 미래를 이해하려면 기업들이 왜 해외에서 제조설비를 운영하는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제조시설 및 제조관련 운영기능을 해외로 옮겨가는 기업들은 다음 3부류 중 하나에 속한다.
비용 절감형 기업:비용 절감형 기업은 자원이 풍부하고, 생산단가가 저렴한 지역을 기반으로 삼아 생산비를 절감한다. 낮은 생산비에는 저렴한 인건비, 낮은 세율, 저렴한 공공요금, 저렴한 운송비, 혹은 정부의 강력한 혜택 등도 포함된다.
시장 구축형 기업:시장 구축형 기업은 시장 접근성, 물류, 고객 등을 중시한다. 새로운 고객층이나 규모가 점차 증가하는 고객층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지역을 생산기지로 삼고자 한다.
인재 탐색형 기업:인재 탐색형 기업은 지식이 뛰어나고, 창의적이며 우수한 기술 역량을 보유한 인재를 유치하고 유지하는 일을 목적으로 한다. 인재 탐색형 기업은 유명한 교육 기관, 자사와 비슷한 수준의 우수한 인재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 위치해 있으며 학력이 높고, 우수한 인재를 다른 지역에서 유치해올 수 있을 만큼 생활 환경이 쾌적한 지역을 선호한다.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진화와 정책 변화로 인해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위치가 달라지고 있다. 이 변화는 비용 절감형 기업, 시장 구축형 기업, 인재 탐색형 기업의 해외 설비 입지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용 절감형 기업 : 이동
중국이 세계적인 제조강국으로 떠오르는 데 가장 커다란 기여를 한 건 저렴한 생산비였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많은 외국 기업들을 매혹시켰던 비용 우위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특히 해안 지역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비용 우위가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임금 상승 때문이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동안 상하이의 평균 임금은 연평균 11.8%씩 증가했다. 양쯔강 삼각주 주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해외 제조업체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임금 수준이 연간 10% 이상 상승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산업용 토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부동산 가격도 비슷한 추세로 증가하여 해외투자 유치에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지역 곳곳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 현상이 나타났다. 중국 중앙정부는 2007년 10월 PRC 부동산법을 시행하여 땅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법에 따라 모든 산업용 토지는 공매에 붙여진다. 중국의 산업용 토지는 총 15개의 등급으로 나뉘며, 등급별로 최저 판매 가격이 정해진다. 그 결과는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양쯔강 삼각주 투자구역에 위치한 땅은 지난 2005년 1평방미터당 5달러에 거래됐다. 그러나 현재 이 가격은 무려 62달러로 치솟았다.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유가도 비용 절감형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2008년 세계 운송비는 급상승했다. 운송비를 고려하면, 북미나 유럽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제조업체들에게 중국은 이미 제조국가로서의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배럴당 유가가 20달러 수준이었던 2000년에는 상하이에서 미국 동부 해안까지 40피트 크기의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비용이 3000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8년 중반 이 운송비는 8000달러로 치솟았다. 일각에서는 배럴당 유가가 200달러에 육박하면 컨테이너 1대당 운송 비용이 1만5000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배럴당 유가가 50달러 이하로 내려가면서 운송비도 덩달아 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이 여전히 제조업체들을 괴롭히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해 멕시코를 택하거나 서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중유럽이나 동유럽을 택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중국 내 생산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특혜를 제공하여 외국 투자를 유인하던 중국 정부 정책에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2008년까지 중국 정부는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른 특혜를 제공했다. 중국 정부가 원하는 대상은 주로 중국을 수출 기반으로 여기는 비용 절감형 해외 기업들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최근 ‘상대가 누구인지’보다 ‘상대가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중국 정부는 특히 ‘상대가 어디에서 활동하는지’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GP TIP ‘제조업체를 위한 특혜의 변화’ 참조)는 비용 절감형 해외 제조업체 유치를 위한 중국의 입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와중에 베트남, 인도, 멕시코, 폴란드 등 저비용 제조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들과 중국과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아직은 그 어떤 국가도 중국의 풍부한 노동 인구에 필적할 수 없다. 또한 대부분의 국가가 아직 중국의 강력한 제조 인프라와 맞설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의 많은 경쟁국가들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매력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 해안 지역의 생산비용 증가로 이런 나라들이 중국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더 이상 비용 절감형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아닌 걸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비용 증가, 중앙 정부의 정책 변화, 치열한 경쟁 등으로 중국 해안 지역 중 상당수는 더 이상 가장 비용에 민감한 생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할 만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 내륙 지방의 생산비는 여전히 낮고, 정부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인프라도 개선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중국 내륙 지방 성장의 걸림돌이었던 물류 문제에 대한 우려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해안 지역에 주로 자리잡고 있던 비용 절감형 기업들이 이동하고 있다. 일부는 중국 내륙 지방으로 옮겨가고 있고, 일부는 다른 저비용 국가로 옮겨가고 있다. 한때 각광 받는 생산 기지였지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은 중국 해안 지역으로 진출하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