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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이유

정재승 | 29호 (2009년 3월 Issue 2)
타미힐피거에서 나온 남성용 로션 어디 있어요?” “샤넬에서 나온 에프터셰이브 로션은 어디 있어요?” “체크무늬 머니 클립은 어디 있나요?”
 
독일의 한 마케팅 회사가 백화점에서 일하는 점원들을 인터뷰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남자 손님과 여자 손님이 점원에게 물어보는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여자 손님들은 대개 제품의 특징이나 구매 후 관리, 색상과 디자인, 가격과 세일 기간 등 제품에 대한 상세 정보를 꼼꼼히 질문했다. 반면 남자 손님들은 자신이 찾는 제품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를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남성들이 위치를 물어보는 제품들은 대부분 비교적 작은 물건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치를 못 찾을 만큼 작은 것은 아니다. 남성들은 구매 후 관리나 디자인 등 제품의 특징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게 점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여성들은 물건을 판매하는 점원을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전문가’로 생각한 반면, 남성들은 ‘자신의 구매 행위를 도와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독일의 님펜부르크대 연구팀은 일명 아이트래킹(eyetracking) 장치를 이용해 쇼핑을 할 때 남성들과 여성들이 둘러보는 방식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아이트래킹은 고객의 눈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특정 지점에 머무는지를 1mm 간격, 10분의 1초 단위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장치다. 고글처럼 생긴 이 장치를 남녀에게 씌운 뒤 그들이 백화점 상품들을 둘러보는 과정을 추적 조사해보니, 흥미롭게도 남녀가 제품을 둘러보는 방식은 매우 다르게 나타났다.
 
물건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남성의 눈은 세부적인 것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상품의 진열대를 대충 쓱 훑어보는 정도에 그치고, 그 결과 꼼꼼하게 상품 진열대를 살펴보아야만 찾을 수 있는 작은 물건을 쉽게 놓쳐버렸다. 자신이 사고자 하는 제품이나 관심 있는 아이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연구팀은 남성들을 ‘거시적인 네비게이터(large scale navigator)’라고 지칭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진열대를 보는 사람들’이란 얘기다.
 
반면 여성들의 눈은 남성들보다 훨씬 예리했다. 훨씬 꼼꼼히 관찰하고, 자주 눈길을 멈췄으며, 세부적인 것들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여성들은 ‘미시적인 네비게이터(small scale navigator)’라고 불릴 만하다. 숲이 아니라 나무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이는 타입이란 의미다. ‘Brain View: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의 저자 한스 게오르크 호이젤에 따르면, 성전환 수술을 받아 남성이 된 여성들은 “예전 여성이었을 때와 비교해 요즘은 거리를 걸을 때 많은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버린다”는 불만을 자주 나타낸다고 한다.
 
이 사례는 남자와 여자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례에 불과하다. 포르셰 구매자의 90%는 남성이고, 오디오와 카메라 매장을 열심히 둘러보는 고객들도 대부분 남성이다. 와인과 위스키 구매자는 대부분 남성이며, 스포츠 용품의 주 구매자도 남성이다. 반면 장식품이나 커튼, 침대와 이불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며, 유행을 타는 구두와 가방, 옷 등은 여성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뚜렷하게 성 구분이 없는 아이템들에 대해서도 왜 남성과 여성은 관심을 보이는 제품군이 서로 다른 걸까?
 
이 문제에 대해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그들의 뇌가 다르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남성의 키와 발이 더 크고 여성의 허리가 더 잘록한 것처럼, 뇌의 구조와 기능에도 남녀 차이가 있다. 구매 욕구를 느끼고,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고, 다른 제품과 비교하고, 현재 경제 사정을 고려하고, 최종적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곳. 그곳이 바로 뇌이기에, 남녀의 뇌 구조와 기능의 차이는 그들의 구매 행동에도 대단히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누가 더 현명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쉽게 말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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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승

    정재승jsjeong@kaist.ac.kr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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