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에인트호벤과 필립스, 명가의 인연

박용규 | 29호 (2009년 3월 Issue 2)
축구 명문가의 탄생은 필립스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해외 축구팀 중 네덜란드의 ‘PSV 에인트호벤’이란 팀이 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몸담았던 곳이자, 거스 히딩크 감독이 사령탑으로 있었던 바로 그 구단이다. 전통의 강호들이 즐비한 유럽 본토에서도 축구 명가로 유명한 PSV 에인트호벤. 이 명문 구단이 ‘필립스’라는 기업의 사내 축구 클럽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에인트호벤이라는 작은 도시에 둥지를 튼 필립스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작은 축구 클럽에 불과했던 PSV 에인트호벤 역시 세계적인 축구 명가로 성장한 것이다.
 
에인트호벤의 급속 성장
에인트호벤은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동남쪽으로 130km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인구도 고작 5000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1892년 ‘필립스 앤 컴퍼니’라는 조명회사가 들어서면서 마을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필립스가 광통신, 의료기기, 음향장비 분야의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에인트호벤 역시 네덜란드의 5대 산업도시로 탈바꿈했다.
 
현재 에인트호벤 지역의 인구는 73만 명에 달한다. 네덜란드 전체 인구의 4.5%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에인트호벤 지역의 총생산이 네덜란드 국가 총생산의 14.5%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에인트호벤은 투자의 중심지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연간 연구 개발(R&D) 투자 금액은 네덜란드 전체 R&D 투자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네덜란드 R&D의 본산인 셈이다. 

에인트호벤 성장의 비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에인트호벤에는 필립스와 그 자회사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IBM과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일본 NEC 등 세계 50개국의 75개 첨단기업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는 118년간 필립스와 공생해온 에인트호벤이 필립스만의 도시가 아니라 세계적인 지식 기반형 기업도시로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이 작은 도시가 지식 기반형 기업도시로 성장한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그 해답의 중심에는 ‘하이테크 캠퍼스(HTCE)’가 있다. 이는 기업 중심의 산학연 기술 집적 단지로서 기업과 기업, 연구원과 연구원 사이에 지적 교류와 지식의 융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장이다. 이른바 살아 있는 지식 생태계다.
 
하이테크 캠퍼스의 유래
HTCE의 건립은 4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 필립스는 자사 소유의 부지 103만㎡(약 31만 평)에 2개의 R&D센터를 세웠다. 이때만 해도 HTCE는 그저 필립스만의 R&D센터에 불과했다.
 
그 후 디지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필립스를 비롯한 선진 기업들은 지식 생태계의 중요성에 공감하기 시작했고, 2003년부터는 외부 기업과 연구소들도 적극 참여해 HTCE의 성장을 더욱 촉진했다. 여기에는 에인트호벤 시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몫했다. 에인트호벤 시가 HTCE 조성에 투자한 금액은 무려 3400억 원에 달한다. 물론 그 배후에는 ‘모든 정책 결정의 최우선에 필립스를 둔다’는 대원칙도 있었다.
 
에인트호벤과 필립스의 100년 동행
에인트호벤 시는 HTCE의 운영과 기업 유치 등의 행정 지원 업무는 지역개발공사가 담당하게 했다. 필립스는 기업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쯤 되면 에인트호벤 시가 필립스를 너무 편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하다. 하지만 에인트호벤 시와 필립스가 100년 동안 동고동락해왔다는 사실을 알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낙후된 에인트호벤에 회사를 세운 필립스는 지역 거주 근로자들을 위해 좋은 주택을 지었다. 더 좋은 문화, 교육, 의료시설을 제공하기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이는 결국 에인트호벤 지역의 자산으로 거듭났다.
 
지금도 필립스는 PSV 에인트호벤뿐 아니라 필립스 스타디움, 필립스 뮤지컬 공연장, 교향악단, 필립스 마라톤 등으로 에인트호벤 주민들을 위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HTCE 안에 있는 필립스 공연장, 스포츠 콤플렉스, 전시관 등은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지역 주민과 소통하기 위한 접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에인트호벤 시민을 필립스의 기업 시민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기업과 도시가 공생하는 비즈니스 생태계
최근 네덜란드 정부는 에인트호벤 지역을 ‘브레인 포트(brain port)’로 지정해 유럽 최대의 지식 및 기술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투자에 착수했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9년간 최소 3조 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지방 정부, 선도 기업인 필립스, 교육 기관인 에인트호벤 공대 간의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는 것이다. 즉 우수한 교육기관이 배출한 인적 자원이 첨단 산업으로 유입되고, 여기서 개발된 기술이 비즈니스로 이어져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에인트호벤의 사례에서 보듯 성공적인 기업 도시는 기업, 지방정부, 대학 등이 합심해야 탄생한다. 이들 모두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각각의 역량을 극대화해야 우수한 기업 도시 생태계가 등장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기업 도시가 곧 생겨나기를 기대해본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