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안데르센 동화가 하나 있다. 옛날 어느 나라에 옷을 좋아하는 왕이 살았는데, 한 재봉사가 찾아와 신기한 옷감으로 옷을 만들겠다며 감언이설로 왕을 속이고 만드는 척만 했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 옷이 왕이나 신하에게 보일 리 없었다. 하지만 어리석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아무 말도 못했다. 왕은 거리를 행진하다 한 아이의 진실한 외침에 재봉사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최근 타임지(誌) 온라인 판에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한때 왕이었던 콘텐츠, 지금은 거지가 되다(Content, Once King, Becomes A Pauper).’ 이 기사는 마치 벌거벗은 왕에게 소리치는 아이의 외침과도 같았다. 오랜 기간 동안 미디어 산업에서 당연시됐던 ‘콘텐츠는 왕이다(Content is King)’라는 금언을 비꼰 이 표현은 영화, TV쇼, 잡지, 라디오 또는 인터넷 콘텐츠의 가치가 급속히 하락하고 있음을 명쾌하게 지적했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콘텐츠를 쉽게 찾거나 접할 수 있게 됐지만, 콘텐츠 개발자 혹은 소유자는 수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콘텐츠의 본원적 가치(instinct value)가 추락한 것일까? 사실, 콘텐츠는 문화적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계량적 방법으로 그 가치를 간단히 계산할 수는 없다. 만약 현존하는 뉴스를 비롯한 콘텐츠들이 일순간 사라진다면 단순한 시장 붕괴 이상의 파문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현재의 민주주의 양상이나 사회 구조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즉 콘텐츠 하나하나의 영향력은 단순한 ‘읽을거리’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대신증권의 2007년 하반기 산업 전망 보고서는 국내 미디어 산업의 중심축이 단말기에서 콘텐츠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경쟁력 높은 콘텐츠와 광고가 핵심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2008 월드 모바일 콩그레스(World Mobile Congress)의 핵심 화두도 콘텐츠 서비스의 본격적인 등장이었다. 모바일 산업은 과거 하드웨어 업그레이드와 외형 디자인 중심의 차별화에서 단말기에서의 콘텐츠 서비스 최적화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측됐다. 이렇게 중요하다는 콘텐츠가 왜 거지가 되었다는 것일까?
‘콘텐츠=공짜’라는 환상
퓨 리서치센터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신문 잡지의 온라인 구독 비율이 직접 사서 보는 사람보다 많아지면서 종이 신문 잡지의 몰락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30센트는 아깝지 않아도, 뉴스를 보기 위한 10센트는 아까워한다. 즉 콘텐츠는 당연히 무료라고 인식하는 세대가 돼버렸다. 콘텐츠의 디지털화는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었지만, 수익성을 악화시켜 콘텐츠 생산자를 먹여 살릴 수 없게 됐다.
어찌 보면 콘텐츠라는 ‘왕’은 공짜경제(freeconomics)의 환상에 빠져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자족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 비즈니스 생태계 안에 있는 타 사업자들이 콘텐츠를 왕이라 칭하며 이를 앞세워 사용자들에게 공짜로 주는 대신 ▷인터넷 사용료를 받고(ISP업체) ▷광고에서 수익을 얻으며(포털업체) ▷콘텐츠를 구동할 기기를 팔고(제조업체) ▷사용자 간 공유 인프라 사용료를 받는(웹하드업체) 동안, 콘텐츠업체들은 재주만 부리다 빈털터리가 된 꼴이다. 오프라인 사업에서 출발한 콘텐츠업체들은 온라인에서 콘텐츠 노출이 많아지면서 오프라인 사업의 매출이 늘어났던 초기의 모습에 안주해, 그런 생태계 구조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방치했다. 결국 온라인 매출이 오프라인 매출을 초과하고, 사용자 이용 행태가 굳어지면서 형성된 ‘콘텐츠=공짜’라는 인식을 더 이상 바꿀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