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상 KT 미래사회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세상에는 수많은 색(色)이 존재한다.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 컬러다. 그런데 난데없이 ‘당신의 색은 얼마입니까?(How much is your color?)’라고 도발적으로 묻는 카드 회사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알록달록 몽환적인 색으로 채워진 그 프로모션 전시의 아트 디렉터가 바로 디자이너 박진우다.
박진우는 서울대 공예과를 졸업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삼성전자에서 가전제품 및 선행(先行) 콘셉트 디자인 작업을 했다. 현재는 ‘ZNP Creative’라는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로 있다. 그동안 워커힐호텔 아이스링크와 수영장, SK네트웍스 여성복 브랜드인 ‘하니와이(Hanii Y)’ 패션쇼 등의 아트 디렉터로 일했으며 현재 갤러리아 백화점의 아트 디렉팅을 맡고 있다.
그는 누구라도 그의 ‘예술적 발칙함’에 자신 있게 동의하고 나서도 될 듯한 느낌을 던져주는 몇 안 되는 디자이너 중 하나이며,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뛰어 다니는 도발적인 아트 디렉터다. 이런 그가 바로 문화예술 분야 트렌드 리더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영감을 얻고자 마련한 동아비즈니스리뷰(DBR) ‘New Wave Spotter’의 두 번째 인터뷰 대상자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팝아트’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났다. 아무나 쓸 수 없을 것 같은 튀는 색상,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짜(fake)’라고 써 넣은 쇼핑백, 나무 모양으로 주렁주렁 매달린 전구, 피가 묻은 듯 약간은 그로테스크한 동물 모형, 거기다 마징가제트와 울트라맨까지. 외부 미팅 때문에 늦는다는 그를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예술가적 까칠함’을 기대하게 됐다. 그러나 “늦어서 미안하다”며 나타난 박진우는 빨간 바지와 그만큼 튀는 파란 운동화만 빼고는 의외로 둥글둥글하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인상의 사람이었다.
빨간 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 디자이너 박진우는 인터뷰 자리에 앉자마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서울 디자인 올림픽’ 이야기부터 꺼내 들었다.
“서울시 디자인 행사의 주연 여배우 격인 자하 하디드가 서울 방문을 취소했습니다. 또 마크 제이콥스 같은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의 방문 취소가 잇따르는 등 행사 운영의 미숙함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울시가 공문 몇 장과 돈만으로 데려올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 아닙니다. 꼭 필요했다면 서울시는 그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는 사람들을 잘 활용하고, 그들이 서울에 올 만한 당위성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꺼번에 온다 한들 또 뭘 할 수 있을까요? 그냥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연관성이 없는 디자이너들을 한자리에 모아 행사를 홍보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라고 봅니다.”
이번 디자인 올림픽,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서울은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준비 기간을 더 가져야 해요. 그런데 서울시는 너무 밀어붙였어요. 서울이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됐다는 것만으로 마치 대단한 일인 양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그 디자인 수도라는 것이 사실 아직까지 디자인계에서 별로 주목 받지도 못하는 영향력 없는 행사입니다. 이탈리아 토리노가 첫 번째 선정지였고, 서울이 두 번째입니다. 물론 서울이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되었다는 것 자체는 축하해 줄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서울시가 이번 행사를 준비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모습이 대한민국 서울의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서울시의 성과 지상주의와 전시행정을 위한 무모한 잔치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또 서울시는 디자인계의 원로 몇 분을 방패삼아 너무 급하게 달리고 있습니다. 실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실무자들은 우리 현실에 맞는 효과적인 디자인 투자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시장의 눈치를 살피며 정신없이 뛰고 있습니다. 그 분들도 아마 괴로우실 거예요. 사실 그동안 이번 행사와 관련해 디자인 관련자들이 행사명과 장소에 대한 문제점을 여러 번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무조건 밀고 나갔습니다. 생뚱맞은 ‘디자인 올림픽’이라는 행사명과 잠실 주경기장이 그 무대가 되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나 단순합니다.
이런 모든 무리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제대로 된 디자인 행사를 진행하려고 했다면, 전시행정보다 서울의 디자인 환경과 인프라 업그레이드에 신경을 더 썼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해외 디자인과 유명 도시에 대한 환상만을 좇다 보면 디자인이 오히려 한 도시를 망치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