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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버스(Foodiverse)

‘한식 1인분 환대’는 불가능할까

강보라 | 377호 (2023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혼자 여행하는 ‘혼행족’이 늘고 있으나 수도권 밖 여행지에선 2인분 이상의 주문을 요구하는 백반 형식의 식당이 일반적이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은 지역의 맛과 향취를 느끼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가짓수의 요리를 한번에 내어주는 것은 식당 입장에서 품도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지만 그 안에는 환대의 뜻이 숨어 있다. 그러나 환대의 방식 또한 고객의 변화에 맞춰 조금씩 개선될 필요가 있다. 스페인의 타파스바와 일본의 타치노미 등 혼자서도 여러 종류의 음식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힌트가 될 것이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나물이나 김칫거리를 다듬고 있는 모습은 소도시 버스터미널 근방의 백반집 앞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 중 하나다. 만들어진 반찬을 쉽게, 또 비싸지 않은 가격에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시대인 데도 여전히 손으로 일일이 다듬는 과정을 보며 여러 생각에 잠긴다. 투입되는 인력 대비 생산성이나 이익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도록 손에 베인 습관 때문일까? 아니면 무엇이든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고집 때문일까? 혹은 으레 사장님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력비를 따지지 않으면 직접 하는 편이 더 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기본 주문이 2인분이라 포기하고 나왔어요.” “일부러 점심시간을 피해 갔는데도 혼자라고 하니까 눈치를 엄청 주더라고요.” 한편 지도 앱 리뷰나 여행 후기를 담은 블로그 포스팅에서 이와 같은 반응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반적이었던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혼자 하는 식사가 비교적 자유로웠으나 체감상 다시 어려워진 듯하다. 특히 지역에 따라 편차가 발견된다. 젊은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대학가 인근에서는 ‘2인분 이상’이라는 전제가 달린 메뉴보다 1인분을 파는 식당이 많고 좌석 또한 그에 맞게 구성돼 있지만 수도권을 벗어나면 상황은 꽤 달라진다.

위의 두 장면은 언뜻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품이 많이 드는 밥상과 혼밥 경향은 각기 다른 선상의 이야기인 듯하나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접점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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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밥상, 백반

국내 여행을 하는 이들에게 음식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어느 지역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은 그 지역의 잠재적인 여행 수요를 끌어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지자체마다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음식을 선정해 주요한 관광 요소로 삼기도 한다. 지역에서 맛봐야 할 대표 음식의 수를 꼽아 ‘○미(味)’로 홍보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맛집의 밀키트를 주문하거나 유명 음식점의 분점을 찾을 수도 있지만 현지에 직접 가서 먹는 경험이 주는 고유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여행자가 지역에서 맛보고 싶어 하는 음식이 한 그릇에 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신 2인분 이상의 메인 요리와 반찬이 차려지거나 최소 2인분의 양을 상정한 상차림이 나온다. 한식이 밥과 국을 중심으로 여러 반찬을 함께 먹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 만큼 하나의 음식만 조리하면 되는 한 그릇 음식과 달리 더 큰 노동력이 투입돼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백반이라 일컫는 바로 그러한 유형인데 그것 자체로 하나의 메뉴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든 한식의 기본 형태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그 자체로 완벽한 한 그릇 음식이 될 수 있는 비빔밥을 주문하더라도 곁들이는 국과 반찬이 나오는 걸 떠올려볼 때 백반이 하나의 메뉴명을 넘어 한식의 틀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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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백반 형태의 상차림이 간소해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진 전국 어디서나 백반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지난 4년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전국의 백반집은 800여 곳을 훌쩍 넘는다. 서울 및 경기 지역이 전체의 35%를 차지하고 나머지 65%는 지역에 고루 분포해 있다. 방송 내용의 면면을 보면 조림, 찌개, 구이 등 백반집마다 주력하고 있는 메뉴가 다르더라도 매일 또는 주 단위로 바뀌는 반찬 수가 상당하다. 많은 가짓수의 반찬을 집에서 직접 해먹기에는 어려움이 많기에 여행을 떠난 김에 접하게 되는 백반 상차림에 만족감이 한층 고조되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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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다리 무너져야 하는 K-환대

일각에서는 백반식의 상차림이 다소 과한 측면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일일이 반찬을 만들기 위해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사실인 데다 잔반 처리 등 낭비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습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반찬 수가 손님을 대하는 접객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차린 게 없다’는 겸양의 표현이나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감탄을 보더라도 그렇다. 각각의 문화권에 음식을 통한 환대의 방식이 있다고 한다면 전통 한식의 경우 풍성한 상차림이 환대를 담은 대표적인 모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접객 또는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로도 이야기되는 환대를 바라보는 서양과 동양의 시각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그리스어 ‘hospitalis’에 기원을 두고 있는 호스피탈리티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방인에 대한 대접을 행한다’는 의미로 중세 유럽 십자군 원정 때 쓰이기 시작했다.1 말하자면 상대의 진위를 알기 전까지는 ‘손님’이면서도 ‘적’으로 대하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셈이다. 이와 달리 일본에서 환대를 지시하는 대표적인 표현인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의 경우 ‘대접하다’는 뜻의 ‘모테나스(もてなす)’가 명사화된 것으로 ‘순례자를 접대함으로써 공덕을 쌓는다’는 의미가 내재돼 있다. 오모테나시에서도 낯선 이와의 거리가 있지만 환대라는 선한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덕을 성취하는 목적의식에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현대로 넘어오면 동서양의 환대 개념이 오히려 공통분모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자본주의하에서 발전한 서비스(service)를 주고받을 때는 대가가 발생하지만 전통적 환대에서는 주객이 대등하고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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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에서 환대를 표현하는 독자적인 개념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식 상차림에서 보이는 환대의 형태와 같이 실천적인 선상에서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국 문화의 상차림에서 엿볼 수 있는 환대의 특징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줄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것을 내어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서 투여되는 노동력 혹은 수고로움은 크게 상관치 않는다’는 것이다. 글을 시작하며 던졌던 질문 또한 이 같은 환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느 정도 답변이 가능하다. 음식 만드는 이가 자신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 이에게 줄 수 있는 최대치를 내어준다고 한다면 말이다.

이와 같이 환대의 마음이 깃든 한식 상차림을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대접하는 이가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고 제공한다면 말이다. 문제는 환대의 상차림이 서비스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저부가가치의 성격을 띠게 된다는 점이다. ‘2인분 이상’이라는 마지노선 또한 투입에 비해 돌아오는 경제적 대가가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식당을 방문하는 손님이 환대받지 못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이 늘어나는 것과 함께 혼자 여행을 하는 ‘혼행족’이 늘어나는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관광공사가 발행한 2022년도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의 비중과 함께 관광 소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1인 세대의 소비 비중은 2020년 9.1%에서 2021년 14.58%로 약 5.5%p 증가했고, 이와 함께 혼자 여행을 가거나 혼자 밥을 먹는 1인 활동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세대의 경우 혼행 자체에 대한 로망이 있거나 동반자와의 스케줄 조정에 어려움을 느껴 주로 혼행을 떠난다고 밝혔는데 일정 조정과 편의시설 이용에서는 높은 만족도를 보인 반면 혼자 식사를 하는 상황에서 많은 불편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이 같은 불편을 줄이기 위해 몇몇 전통시장에서 선보인 샘플러 메뉴나 식당 간의 협의하에 콤보 메뉴를 늘릴 것을 제안하고 있다.2 이런 관점에서 일부 지자체에서 혼밥이 가능한 식당 목록을 정리해 공개한 사례는 고무적으로 평가된다. 민간 차원에서도 맛집 검색 서비스를 중심으로 ‘혼밥’ 검색 필터를 제공하는 중이다. 이처럼 제공자의 관점이 아닌 실수요자의 관점에서 필요한 정보를 발 빠르게 인지하고 제공하는 것에서부터 작은 혁신은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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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마음’ 유지하되 ‘방식’은 유연해야

혹자는 혼자 여행을 떠났다면 숙소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김밥이나 샌드위치 등으로 가볍게 끼니를 때울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굳이 1인 방문을 반기지 않는 식당을 찾아갈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럿이 가든 혼자 가든 여행을 통한 지역성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현지 식당 방문을 포기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로 현지 식당의 음식을 숙소에 배달시켜 먹는 것과 식당의 특정한 장소성을 체감하며 음식을 먹는 것 간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여행지에서의 식당 방문은 비단 음식 그 자체를 즐기는 미각적 경험에 그치지 않는다. 식당 안의 고유한 정취와 다른 방문객들이 만들어내는 소리풍경(soundscape) 등 미각적 경험과 다른 감각적 요소가 맞물려 한층 복합적인 경험으로 거듭나게 된다. 혼자라고 ‘눈칫밥’만 먹지 않는다면 ‘고독한 미식가’로 오롯이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혼행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해서 채산성이 높지 않은 백반 형태의 한식 상차림이 단기간 안에 변화를 맞이하긴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가구 및 생활 형태가 변하는 가운데 음식을 통해 상대를 대하는 환대의 형식도 조금씩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껏 해왔던 방식대로, 몸에 익은 관습대로 대접하면 족하다는 인식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태에 유연하게 적응하기 어렵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상차림’만이 한식의 환대를 나타내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 수 있다. 상대가 어떤 환대를 받고자 하는지를 헤아리는 마음 또한 적극적으로 포용돼야 할 요소다.

혼행 인구의 관점에선 혼자 쓸 방을 예약하거나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기를 바랄 것이다. 2023년 한국 사회에서 1인 가구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듯 앞으로 우리 사회의 기본은 2인이나 4인이 아니라 혼자가 될 수도,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유연한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공급자 입장에선 이런 유연성이 달갑지 않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갈수록 공급자보다는 실수요자 입장에 따라 자유자재로 조립 가능한 모듈 형태를 고려해 봄 직하다. 1인을 기본 모듈로 상정하고 2인, 3인이 됨에 따라 동일한 모듈을 늘려나가거나 1인 모듈에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들을 놓고 2인 이상이 되면 기본 요소에 추가 요소를 덧붙여 나가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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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기본 구성이 다르긴 하지만 1인분 메뉴 안에 접객의 마음을 담는 외국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의 타파스 바(tapas bar)와 일본의 타치노미(立ち飲み) 문화에서는 식당에 방문하는 사람 수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메뉴를 제공한다. 우선 두 유형 모두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공간’이다. 기본적으로 서서 즐기는 바(bar) 형태를 갖추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특히 타파스 바의 경우 전채요리에 해당하는 타파스를 화려하게 진열해놓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 마음에 드는 작은 메뉴를 몇 개 골라 먹은 후 쉽게 자리를 뜰 수 있는 구조다 보니 손님 입장에선 혼자서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더라도 상대 눈치를 보지 않고 메뉴 선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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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입장에서의 장점도 있다. 회전률이 빨라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고객을 맞을 수 있고, 고객들이 선호하는 메뉴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쉽기에 재료를 준비하고 메뉴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에 따라 낭비하는 식재료도 줄일 수 있게 된다. 한식의 전형적인 한 상 차림으로 나가는 경우 고객의 선호를 사전에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과 차이를 보인다. 타바스바나 타치노미의 메뉴처럼 고객이 원하는 것만을 골라 주문하는 경우라면 음식이 버려질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또한 저렴한 가격에 적은 양의 음식을 제공하면 고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여러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관점에 따라선 한꺼번에 차려진 푸짐한 한 상보다 음식 진열대 앞에서 이것저것 골라 먹는 편이 더 흥미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다시 환대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서비스는 주종 관계에서 ‘이익’에 연관된 대응이고, 호스피탈리티는 자발적인 ‘마음’에 기초한 대응이다. 따라서 서비스를 받는 대상이 느낀 감정은 ‘감사와 만족’이고 호스피탈리티는 ‘행복감의 공유’라고 볼 수 있다. 서비스는 정해진 룰과 매뉴얼에 따라 훈련될 수 있지만 호스피탈리티는 그때그때 대상과의 정서적 공감을 통해 얻어지는 감정이므로 강제로 훈련될 수 없고, 사람의 인격이나 자질, 가치관에 의해 퀄러티가 달라질 수 있다.”3

결국 환대가 그저 친절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공감 능력을 발휘해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라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숫자 이상으로 읽어내야 한다. 숫자로 들어온 손님은 (판매 가격과 같은) 숫자로 나가지만 숫자 이상으로 받아들여진 손님은 (입소문이나 호평과 같은) 숫자 이상의 것을 남기고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한식의 환대가 1인분의 딜레마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 강보라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필자는 미디어문화연구자다. 맛있는 걸 먹기만 해서는 치솟는 엥겔지수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여겨 음식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디지털 미디어 소비와 젠더』 『AI와 더불어 살기』 등을 함께 썼고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간하는 『한류백서』에서 ‘음식한류’를 2019년부터 지금까지 담당하고 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병행 중이다.
    b-hind@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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