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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 ‘트래쉬버스터즈’ 사례

“1회용품 사용 죄책감 덜고 싶다”
MZ세대와 ‘필(必)환경’이 시장을 바꾸다

신진영 | 330호 (2021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다회용기의 대여는 일상에서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쓰고 버릴 때 소비자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환경에 대한 부채감을 해소해주기 위해 등장한 서비스다. 다회용기의 사용은 눈에 보이는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소각, 매립에 따른 비용을 낮춘다. 이에 해외에서는 독일, 영국 등을 중심으로 다회용 컵을 대여했다가 반환하면 현금을 돌려주는 식의 보증금 제도와 관련 서비스가 지역 카페 등에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트래쉬버스터즈가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도입하며 ESG 경영을 고민하는 기업 및 지자체, ‘필환경-위생-편리성’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에게 일회용기 사용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직장인 A 씨의 하루는 커피와 함께 시작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하자마자 탕비실에 설치된 커피머신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린다. 매일 마시는 커피지만 얼마 전부터 한 가지가 달라졌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사라진 것이다. 회사 차원에서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일회용 컵이 놓여 있던 자리를 다회용 컵이 차지하게 됐다. 예전에는 다 쓴 컵을 씻기 귀찮아서 개인 컵 대신 회사에 비치돼 있던 일회용 컵을 썼지만 이제는 대여 업체에서 대신 세척까지 해준다니 다회용 컵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의 등장: 배경과 사례

일회용 컵을 쓰는 데 따른 소비자들의 죄책감과 환경에 대한 부채감을 해소해주기 위해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다.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다회용 컵은 일회용 컵이 만연해지는 현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현했다. 일회용 컵이 현대사회에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편리성’에 있다. 편리성은 유지하면서 플라스틱 배출량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다회용 컵이다. 소비자는 주문한 음료를 다회용 용기에 받은 뒤 빈 컵을 반납함에 넣기만 하면 된다. 다회용기 회사는 이를 수거한 뒤 깨끗하게 세척해 카페에 다시 배송해준다.

이런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의 사회적 가치는 분명하다. 먼저, 눈에 보이는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을 현격히 줄일 수 있다. 식음료가 묻어 있는 컵은 대개 재활용 업체의 선별 과정에서 재활용 불가능한 일반 쓰레기로 분류된다. 이렇게 쓰레기로 소각, 매립되기 전 일회용 컵을 세척해 하루 500잔 정도만 다회용 컵으로 대체하더라도 연간 100리터 쓰레기봉투 930여 개 분량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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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온실가스 저감 효과도 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에 따르면 보통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하나를 제조한 뒤 폐기하는 데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52g가량이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하루 500잔의 일회용 컵을 다회용 컵으로 대체했을 때 한 달에 0.52t(52g 곱하기 1만 잔), 즉 일 년에 6.2t의 온실가스 감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는 1000그루의 소나무가 1년간 흡수하는 온실가스양과 맞먹는다.

마지막으로, 막대하게 쏟아지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 쓰레기를 줄이면 매립이나 소각으로 인한 환경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추가 매립지를 조성하더라도 플라스틱 컵은 썩는 데만 약 500년이 걸리고, 소각하면 다이옥신과 같은 각종 유해 환경호르몬이 발생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회용품 플라스틱 쓰레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스타트업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 독일에서는 ‘프라이부르크컵’이나 ‘리컵’, 영국에서는 ‘클럽제로’ 등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회사가 등장했다.

독일의 경우 친환경 도시인 프라이부르크에서는 전체 카페의 70%에 달하는 약 100개의 카페가 일회용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커피 컵을 1유로에 대여하고 반환 시 다시 돌려주는 ‘프라이부르크컵’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 컵은 최대 400번까지 재사용할 수 있고 반환된 후 재사용되는 비중도 약 85%로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해 독일 뮌헨에서는 음료 테이크아웃 머그를 재사용하는 ‘리컵’ 서비스가 출시됐다. 리컵 역시 이미 자국 내 40개 이상의 도시에 서비스를 안착시키는 데 성공한 상태다. 현재 7500개 음료 판매 매장이 파트너사로 가입돼 있으며 소비자는 리컵 가입 매장 어디에서든 보증금을 내고 다회용 컵을 사용하거나 반납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즉, 소비자가 직접 음료를 구매하지 않은 카페일지라도 컵을 반납한 뒤 현금으로 환불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재활용 문화의 빠른 확산은 독일 지역사회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일회용 플라스틱 회수 및 보증금 제도의 힘이기도 하다. 여전히 현금 결제가 익숙한 독일 사회에 맞춰 구축된 시스템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들과 비슷한 영국의 ‘클럽제로(구 컵 클럽)’는 런던에서 시작된 회사로 컵 대여, 수거, 세척까지 대행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런던시 곳곳에 반납함을 설치해 사용한 다회용 컵을 수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현재 카페 이외에도 회사나 식당 등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다회용 컵을 넘어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로까지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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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 만들기:
트래쉬버스터즈의 설립과 피벗

이처럼 독일과 영국뿐 아니라 미국, 에스토니아, 대만 등 전 세계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솔루션들이 나오고 있고 2020년을 전후로 이 흐름은 가속화되는 추세다. 특히 다회용 컵 사용 시스템의 경우 각 지역과 나라의 사회문화나 인프라에 맞게 자생적으로 구축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 설립

한국의 트래쉬버스터즈도 비슷한 시기에 한국의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고민하며 자생한 스타트업이다. 트래쉬버스터즈의 경우 처음부터 회사 카페 등을 대상으로 한 플라스틱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창업의 직접적인 계기는 축제장에서 마주한 폐기물 문제였다. 창업자인 곽재원 대표는 축제 감독으로 일하면서 매년 100여 건의 축제의 첫 기획부터 마지막 마무리까지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고, 축제가 끝난 뒤 남는 엄청난 양의 일회용품 플라스틱 처리 문제로 늘 골머리를 앓아 왔다. 음식물이 묻어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분리 배출되지 못하고 전부 쓰레기가 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이에 그는 비슷한 고민을 하던 사람들을 모아 2019년 8월10일 플라스틱 다회용기를 현장에서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일회용품 없는 축제’를 기획해보기로 했다. 성과는 놀라웠다. 매년 3000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하던 뮤직 페스티벌에서 발생하던 약 30여 t, 100리터 쓰레기봉투 300개 분량이 5개 분량으로 줄었다. 전년 대비 플라스틱 쓰레기가 98% 정도 줄었고 나머지 2%마저 푸드트럭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처럼 폐기물 없는 축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관객들이 더 놀라워했고 이날 베타 서비스의 성과는 9월, 창업으로 바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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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 사업 성공에 힘입어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한 가지 고민은 ‘어떤 소재의 다회용기를 제작할 것인가’였다. 플라스틱만 해도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트래쉬버스터즈는 많은 사람이 편하게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내구성이 있으면서도 수명을 다했을 때 폐기되지 않고 순환되기 쉬워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플라스틱이 아닌 대체 소재도 찾아봤지만 스테인리스 같은 소재의 경우, 새 용기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용광로를 가동해야 하고, 이 경우 탄소배출량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도 고려했다.

이렇게 찾은 소재가 PP(폴리프로필렌)다. PP는 낡은 용기를 분쇄해 플라스틱 조각인 플레이크로 만든 뒤 비교적 쉽게 새로운 용기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처음 설정한 기준에 잘 부합하는 소재였다. 아울러 아기 젖병에도 쓰일 만큼 환경호르몬 걱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안전한 소재라는 장점도 있었다. 이 소재를 발견함으로써 단순히 일회용 쓰레기를 유발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사용 연한이 다된 다회용기도 재가공해 다시 쓰자는 회사의 지향점을 명료히 할 수 있었다.

2. 피벗

하지만 큰 호응에 힘입어 시작한 축제•행사용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는 코로나19 사태라는 예기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다. 서비스 론칭과 동시에 전국에 있는 300개 이상 축제 기획처로부터 예약 문의가 쏟아졌지만 감염병 사태 발생 이후 축제들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후 3개월간은 대여가 아닌 취소 문의만 받았을 정도다.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서 사업의 첫 출발점이었던 축제, 행사라는 기본 틀을 해체하고 사업 전환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벤트 시장을 타깃으로 삼던 비즈니스 모델을 일상생활과 관련이 깊은 데일리 시장 타깃으로 변경하기로 하고 전혀 다른 성격의 시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일단 소비자가 있는 곳으로 옮겨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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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넓히고 보니 플라스틱 일회용기의 문제가 카페, 영화관, 야구장, 장례식장, 배달음식 등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일을 당장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하나씩 시도해가며 시장 상황을 익히고 사업 가능성을 타진해 나가보기로 했다.

우선, 시장 조사를 위해 2020년 9월부터 약 4개월간 환경재단과 함께 이화여대 및 국민대 안에 있는 카페를 거점으로 다회용 컵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고 다회용 컵의 사용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평상시 개인 텀블러 사용 현황이나 카페 음료 포장 구매 방식을 먼저 파악한 뒤, 다회용 컵을 대여하는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운영해 봤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인식과 구매 방식 변화를 추적하는 등 실질적인 다회용 컵 성공 가능성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소비자들이 다회용 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인식할지, 어떤 점에 불편함이나 거부감을 느끼는지를 엿볼 수 있던 기회였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탐색하는 과정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먼저, 국내 주요 배달 플랫폼의 배달 음식에 다회용기를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한국의 플라스틱 일회용기 시장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배달 음식 용기라는 데서 착안한 접근이었다. 더욱이 축제장, 영화관, 야구장 등 각종 행사장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운영 자체가 대폭 축소돼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이 현격히 줄어든 것과 달리 배달 음식에 사용되는 일회용기는 오히려 급증하는 추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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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트래쉬버스터즈는 배달 플랫폼 회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수거 단계에서 현실적 장벽에 가로막혔다. 배달된 다회용기를 회수하는 데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배달에 쓰이는 용기의 종류도 제각각이라 표준화가 어려웠다. 결국, 사업을 본격화하려는 구상은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성과를 얻었다.

첫째는 단체 도시락에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를 접목한 것이다. 개별적으로 배달 나간 다회용기를 모두 수거하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지만 주기적으로 한 곳에 단체 도시락을 배달하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배달 수거 동선이 안정적이고 한 번에 여러 개의 다회용기를 수거해올 수 있기에 사업 가능성이 확보된다. 이런 기회를 포착한 회사는 단체 도시락 업체들과 손잡고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를 통해 올해 3월부터 현재까지 5만여 개 이상의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버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더 큰 성과는 두 번째, 회사 대상의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 시장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후 배달 플랫폼 회사 내에서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를 시도해보게 됐다. 사실 다회용 용기든, 컵이든 다 쓴 용기를 수거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번거롭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한 뒤 버리는 ‘직선형 소비 구조’가 이미 일상에 뿌리 깊게 침투해 있는 사회에서 수거, 세척 후 재유통이라는 ‘순환형 구조’를 덧입히는 것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페 음료의 경우 포장(테이크아웃)한 뒤 소비자들이 각자 어디로 흩어지는지 알기 어려운 사용된 컵을 수거한다는 것은 배달 음식에 나간 다회용기를 수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배달 플랫폼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회사마다 사내 카페라는 새로운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닫힌 공간’을 활용하면 일반 카페보다 수거가 쉬울 수 있었다.

보통 사무실이 밀집된 지역에는 건물 안에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카페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카페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음료를 포장해 나가는 경우 대부분 각자 사무실로 돌아가서 쓰레기를 버린다. 특히 특정 회사 공간 내부에 자사 직원을 위해 만들어진 사내 카페나 탕비실의 경우 이 흐름이 더욱 명확하다. 이런 공간의 특징을 살려 시작하게 된 것이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다. 깨끗하게 세척된 다회용 컵을 사내 카페에 배송하면 카페에서는 컵에 음료를 담아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소비자는 음료를 다 마신 뒤 회사 곳곳에 설치된 반납함에 빈 컵을 넣으면 되고, 트래쉬버스터즈는 반납된 컵을 수거 및 세척해 다시 카페에 제공한다. 소비자들은 기존에 일회용 컵을 쓰듯이 편리하게 다회용 컵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비즈니스 모델이 갖춰지자 국내에 사내 카페를 보유한 재계 10위 내 대기업들은 모두 연락할 정도로 문의가 빗발쳤다. 환경오염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금, 손쉽게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절감과 재활용에 동참할 방법으로 주목을 끈 것이다. 이 아이디어의 단서를 제공한 배달 플랫폼 회사 역시 사내 카페에 서비스를 개시하며 일회용기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분담하기로 결정했다. 이 회사 안에 있는 사내 카페의 경우 서비스를 시작한 올해 6월 한 달간 9000개의 플라스틱 일회용 컵 발생을 막았고 같은 기간 100리터 쓰레기봉투 기준 70개 분량의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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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을 고민하는 기업 및 지자체와의 협업

이렇게 기업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까닭은 정부가 ‘생활 폐기물 탈플라스틱 대책’을 발표하는 등 플라스틱 생산 및 소비를 원천적으로 줄이기 위한 의지를 다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묻는 사회적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일회용 플라스틱의 사용이 급증하면서 이런 폐기물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고조됐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자사 제품의 소재를 비롯한 포장 방식을 전폭적으로 바꾸는 등 기획부터 유통까지 사업 전반적인 영역에서 환경을 중요한 의사결정의 요소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탈플라스틱 문제 앞에서는 제품의 생산자인 기업, 제품을 구매해 사용하는 소비자, 전체적인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정부의 이해관계도 일치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트래쉬버스터즈의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기업이나 정부 기관에서 두루 확인된다. 사무실에서 쉽게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컵을 대체해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단기적으로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덜 배출하고, 쓰레기 처리 관련 부대 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일회용 컵 제조 및 폐기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까지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세계적인 ESG 경영의 흐름과도 맥을 같이한다.

실제로 KT는 지난 4월20일 지구의 날 ESG 경영 선포식을 열고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겠다고 밝히면서 광화문 지사에 트래쉬버스터즈의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한 ESG 보고서를 통해 여러 가지 구체적인 이행 전략 중 하나로 사내 친환경 캠페인을 언급하고 트래쉬버스터즈와 함께하는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를 소개했다. KT의 경우 4월부터 현재까지 약 4만5000개의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를 줄인 것으로 보고되는데 이는 약 35t의 쓰레기 배출 감소, 2.3t에 달하는 온실가스를 감축한 효과가 있다.

서울시 강북구청 역시 2019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청사 내부에 일회용 컵을 반입하지 못하도록 안내하고 직원들의 개인 컵 사용을 권장해 왔는데 최근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로 전환했다. 과거에도 구청이 직원들의 일회용 컵 반입을 막자 구청 인근 카페들이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 판매했다가 회수하는 등 크고 작은 변화는 있었다. 하지만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 판매하는 카페가 소수에 불과하기도 했고 직원들이 사다 사용한 텀블러를 일일이 반납하는 수고를 들여야 했기에 실제 일회용 컵으로 포장 판매되는 빈도와 비교하면 텀블러 이용률이 현격히 낮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강북구청은 트래쉬버스터즈와 협력해 구청 청사 내부에 반납함을 설치하고 인근 카페에 다회용컵 대여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 텀블러를 세척하고 회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개별 카페도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를 반겼다. 구청 직원들이 다회용 컵을 사용해 음료를 테이크아웃하는 비율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강북구청 차원에서도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는 취지에 훨씬 부합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공공 부문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실천 지침’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2021년 7월 국무총리 훈령으로 제정됐지만 실제 지켜지고 있는 공공 청사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런 강북구청의 사례는 지자체나 정부 기관이 나서서 민관이 협력하면 얼마든지 일회용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플라스틱 순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편리함을 잃지 않으면서 일회용 쓰레기 발생을 막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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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소비자들의 요구
‘필환경-위생-편리성’

트래쉬버스터즈는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환경보호라는 거대한 과제와 더불어 위생, 편리성, 감각적인 디자인 등 다양한 사회적인 요구를 마주했다. 어느 하나 가볍게 여길 수 없기에 각각의 요구를 수용하고 만족시키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와 소비자들의 변화는 이제 외면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1. MZ세대와 필환경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고, 플라스틱 포장 용기 사용량은 날로 증대돼 쓰레기 매립지의 수용력은 점차 한계에 도달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중국의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 금지로 국내의 수용 가능 수준을 넘어선 쓰레기 더미가 방치되는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는 단순히 ‘친(親)환경’을 넘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환경 문제의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필(必)환경’ 시대가 됐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도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방식으로 구매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과대 포장 상품을 피하는 것을 넘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아예 거부하는 소비자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특히 MZ세대의 소비 패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고, 이들은 SNS를 통해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하는 자기만의 방식과 노력을 공유•확산해 나가고 있다.

트래쉬버스터즈가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MZ세대와의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사업의 출발은 한 개인이 느낀 답답함에서 시작됐지만 사업체가 구성되고 서비스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회용기 대여 테스트의 성과가 증명될 수 있도록 거리낌 없이 다회용기 사용에 동참하고 열렬히 호응하며 SNS에 퍼뜨려준 MZ세대에게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위생

다만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개선을 기대하는 것과 별개로 다회용기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위생 기준은 엄격하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개인위생과 방역에 대한 기준이 높아진 만큼 소비자들은 다회용 컵이 믿고 사용할 만한지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요구한다.

트래쉬버스터즈 또한 다회용 컵과 다회용기를 많은 사람이 거리낌 없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본 전제 조건으로 ‘위생’을 서비스 수행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초음파 세척-애벌 세척-고압 세척-열풍 소독-UV 살균 건조-진공 포장’의 6단계 세척•살균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식기에 미생물 검출량이 현격히 줄어든다. 실제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일회용 접시와 세척•살균된 다회용기 미생물 검출량을 비교해봤을 때, 일회용 접시에서는 미생물 검출량이 350RLU에 달했던 반면(식품용기 안전기준 200RLU 이하) 세척•살균된 다회용기는 19RLU이라는 자체 분석 결과도 있다. 이 결과에 따르면 다회용기의 위생 상태가 일회용기보다 약 20배 우수하다.

물론 위생에 대한 걱정을 차치하더라도 다회용기의 개념을 여전히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아직은 장애물 달리기하듯 많은 거부감을 극복하며 부단히 맞서고 넘어서야 하는 단계다. 새로운 개념에 사회가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일반 음식점에서 공용 숟가락, 젓가락을 이용해 식사하는 것도, 카페에서 머그잔이나 유리잔에 담긴 음료를 마시는 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일상이듯이 소통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다회용 컵에 음료를 받는 모습도 머지않은 시일 내 얼마든지 일상이 될 수 있다.

3. 편리성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사용에 길든 사람들에게 다회용 컵 사용 문화를 학습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일회용 컵의 편리성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줄이고 위생 우려까지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 개인 텀블러를 휴대하는 방법이지만 이 방법이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도 개인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이 상황에서 환경 문제를 잡으면서도 편리성을 희생하지 않으려면 기존 사고의 틀을 깨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컵이 필요한 순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이후의 단계를 최대한 단순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 된다. 컵과 사용자의 관계 설정 방식을 ‘소유권을 이동하는 방식’에서 ‘빌려 쓰는 방식’으로 바꿈으로써 개인이 아닌 컵 관리 주체가 컵의 수거, 세척, 배송을 모두 책임지도록 하면 된다는 얘기다. 컵이 필요한 사람은 그 순간에 빌려 쓴 뒤 반납만 잘해주면 된다.

이에 트래쉬버스터즈가 가장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고민하는 부분도 이 반납의 과정을 최대한 쉽고 간편하게 해주는 방법을 찾는 데 있다. 사람들이 이동하는 동선을 고려하고, 다회용 컵 반납함이 한눈에 띌 수 있게 배치하는 동시에 쓰레기통이나 다른 용도의 함과 혼동하지 않도록 디자인에도 신경 쓴다. 이렇게 컵을 사용하고 반납하는 구조가 갖춰지게 되면 컵 사용자들도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과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의 차이를 크게 못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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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과제

기존에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해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어 왔지만 일회용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앞으로 세워나가야 할 일들이 훨씬 많다.

물론 이미 사내 카페를 중심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안착하고 있긴 하지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다회용 컵의 반납률을 높이고 사내 카페를 넘어 열린 공간인 일반 카페에서도 손쉽게 다회용 컵을 사용하고 반납하도록 유도하려면 보다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여전히 사용 후 버려지는 일회용 컵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일회용품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높고 가야 할 길도 멀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환경문제를 자기 문제로 여기는 새로운 세대의 염원이 시대정신이 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신진영 트래쉬버스터즈 PD jyshin@trashbusters.kr
신진영 PD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다가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급격히 늘어난 쓰레기양에 경각심을 가지고 트래쉬버스터즈에 합류했다. 현재 트래쉬버스터즈 다회용 컵 물류 파트에서 CS(Consumer Satisfaction) 업무를 담당하며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고객들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듣고 대응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가 구현될 때 고객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확인하며 효율적이고 편리한 서비스를 뒷받침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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