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묻고 신하가 답하다: 세종과 신숙주

“좋은 제도도 인재가 없으면 쓸모없어”

276호 (2019년 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세종은 책문을 통해 기존 제도의 폐단, 특히 지나친 권력 투쟁을 막기 위해 왕권을 강화한 것이 오히려 왕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을 비대해지게 만들었다며, 이러한 부작용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물었다. 이에 대한 신숙주가 내놓은 대답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법에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시대의 변화에 맞게 끊임없이 개정해 나가야 한다.
2. 특정 조직에 과도한 권력이 몰리는 것을 막으려면 의도적으로 권한을 여러 조직에 배분해야 한다.
3.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올바르게 운영하는 훌륭한 인재를 발탁하는 것이다.


편집자주
김준태 교수가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조선시대 인재선발제도인 과거(科擧)의 최종 단계, ‘전시(殿試)’는 보통 임금이 출제한 문제로 치릅니다. 이때의 시험 문제를 ‘책문(策問)’, 답안을 ‘대책(對策)’이라고 부르는데 유교 경전에 대한 소양을 중점적으로 평가했던 이전 단계와는 다르게 나라의 당면 과제, 즉 ‘시무책(時務策)’을 다루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책문’과 ‘대책’에는 각각의 시대가 무엇을 현안으로 생각했는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봤는지가 충실하게 담겨 있습니다. 조선시대 국가 경영을 담당했던 관리들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으로부터 오늘날에도 유효한 교훈을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법이 만들어지면 폐단이 생겨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근심거리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1447년(세종 29년) 8월18일 중시(重試)가 거행됐다. ‘중시’란 현직 하급관리들이 치르는 과거(科擧) 시험으로 성적 우수자에게는 특별 승진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품계가 낮은 신하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고 꾸준히 실력을 연마하도록 권장하기 위한 행사다.

이 시험에서 세종은 ‘법의 폐단’에 관해 질문했다. 아무리 좋은 법도 단점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책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예전에는 없었던 문제점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겠냐는 것이 질문이다.

세종이 이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은 당시 상황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1447년은 세종의 재위(1418∼1450년) 후반기다. 그때까지 세종은 북방의 여진족을 정벌해 6진4군을 개척하고,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농사직설(農事直說)』 등을 편찬해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우리만의 역법(曆法)을 확립하기 위해 『칠정산(七政算)』을 지었고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 물시계 자격루(自擊漏), 신무기 신기전(神機箭)을 개발하는 등 과학기술을 진흥시켰다. 다양한 서적을 간행하고 음악을 정비해 문화의 중흥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백성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켰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했으며, 공법(貢法)의 개혁을 통해 조세제도를 정비했다. 인사, 법, 행정, 예제(禮制) 등 통치 체제를 정비했을 뿐 아니라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업적이라 불리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해 반포하기도 했다.



이처럼 쉴 새 없이 달려오기를 언 29년, 세종은 갈수록 건강이 악화하고 정신적으로도 큰 아픔을 겪으면서 1 본인의 지난 여정을 되돌아봤을 것이다. 특히 그는 수많은 제도를 개혁하고 새로운 법을 만들었으며 관행과 구습에서 탈피하는 혁신적인 시도를 펼쳤다. 따라서 걱정도 생겼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단점이 있지 않을까? 지금 꼭 필요하다 싶어서 단행한 개혁이지만 훗날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래서 레드팀(Red Team) 역할을 해준 황희, 허조, 맹사성의 반대 의견에 귀 기울이며 보완하고 또 보완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행 단계에서, 그리고 단기적으로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대응이었을 뿐이다. 상황이 달라지면 또 어떤 부작용이 생겨날지 모를 일이다. 세종의 책문은 바로 그와 같은 우려를 담고 있다.

세종은 구체적인 사례(史例)를 거론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우선 송나라 태조가 당나라 말기 혼란이 지방 군벌의 군사력이 강하기 때문이었다고 판단하고 그 힘을 모두 거둬들인 것을 예로 들었다. 2 중앙에서 병력을 직접 관리함으로써 나라의 안정을 유지하겠다는 조치였지만 군사력 증강을 부정적으로 보고 국경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 금나라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결과를 낳았다. 후한(後漢)의 광무제가 전한(前漢) 시절 황제들이 재상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심지어 권력을 찬탈당한 것을 3 거울로 삼아 삼공(三公) 4 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일도 예로 들었다. 삼공의 힘을 약화시켰더니 대신 황제의 비서실 역할을 했던 상서성(尙書省)의 권력이 막강해져 또 다른 폐단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비단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종은 “우리 왕조가 고려에서 대신이 권력을 전횡했던 일을 경계해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임금이 결정하고 의정부에서 마음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대신이 말하기를 승정원(承政院)이 가진 권한이 너무 크다고 한다”라고 말한다. 광무제 때의 일과 비슷한 맥락인데 권세가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왕권을 강화해놓고 보니 그에 따른 새로운 문제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세종은 조선의 인사 제도도 예로 들었다. 고려 말기 특정 기관이 인사권을 독점한 데 따른 불공정함을 해소하기 위해 인사권을 나눠 배속했지만 분산된 기관에 다시 지나치게 힘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안의 주제는 다르지만 결국 지금 꼭 필요하다고 판단해 도입한 정책이 어떻게 하면 부작용 없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와 같은 세종의 ‘책문’에 대해 현재 네 사람의 ‘대책’, 즉 답안지가 전해지고 있다. 성삼문(成三問)의 『성근보집(成謹甫集)』, 이석형(李石亨)의 『저헌집(樗軒集)』, 김담(金淡)의 『무송헌집(撫松軒集)』, 신숙주(申叔舟)의 『보한재집(保閑齋集)』에 각각 본인들이 쓴 글이 실려 있다. 이 중 성삼문 5 과 신숙주의 대책이 수준이 높다고 평가되는데 여기서는 신숙주의 답안을 살펴보기로 한다. 6 우선 신숙주는 “법에는 폐단이 없을 수 없으니 마치 오성육률(五聲六律) 7 에 어지러운 음악이 들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법에 부작용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법은 애당초 모든 경우의 수를 포괄하지 못한다. 하물며 법은 규칙으로 고정되는 것이므로 시대의 변화에 맞게 끊임없이 개정하지 않는 한 당연히 문제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고치기만 하는 것이 능사일까? 다시 세종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고려 말기 왕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지고 권세가들이 권력 투쟁에 혈안이 되면서 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조선은 왕의 재결권을 강화한다. 심지어 태종 같은 경우는 ‘육조직계제(六曹直啟制)’ 8 를 도입해 임금이 국정의 전면에 나서고자 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왕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이 비대해졌다는 것이다. 지금도 리더 중심의 1인 지배 체제가 강화될 경우 리더의 비서조직이 커진다. 역대 정권의 청와대나 재벌그룹의 비서실을 떠올리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양상은 공적인 지휘 체계를 무너뜨리고 업무 투명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기 쉽다. 리더 한 사람에게 모든 힘이 몰려 있기 때문에 문고리 권력의 전횡도 나타난다. 신숙주가 “정사를 제멋대로 결정하는 폐단을 막으려면 크고 작은 일을 반드시 의정부를 거치게 하고 승정원은 삼가고 경계토록 하십시오”라고 말한 것은 그래서다.

인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신숙주에 따르면 조선에서 인사권을 이조와 병조로 분산시킨 이유는 특정인이 함부로 인사를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문관의 인사는 이조가, 무관의 인사는 병조가 전담하게 되면서 이들 부처 역시 지나치게 힘이 세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자칫 고려 말의 상황이 반복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신숙주는 “이조와 병조가 인사고과를 매기되 의정부에 관리를 내치고 등용하는 권한을 주자”고 건의한다. 평가와 임용을 분리함으로써 상호 견제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법을 만들고 폐단이 생겨나지 않도록 그 법을 올바르게 운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제대로 가꾸어갈 사람이다. 신숙주는 송나라 태조가 군벌들의 무력을 거둬들였기 때문에 국경 방어 능력이 약화된 면이 없진 않지만 그 때문에 송나라가 몰락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휘종과 흠종 때 채경 9 이 재상이 돼 새파란 애송이를 줄줄이 세워 장수로 삼고, 스스로 돌아볼 줄은 모른 채 방자하게도 강한 적을 함부로 건드렸으니 설령 외방의 병력이 약하지 않았더라도 어찌 쇠락하지 않았겠습니까?” 간신이 국정을 전횡하고 능력이 없는 인물을 지휘관으로 임명한 것이 망국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광무제가 삼공에게 실권을 주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광무제가 삼공을 유명무실한 자리로 만든 것은 물론 실책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자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훗날 후한이 혼란에 빠졌던 이유는 삼공이 명예직이어서가 아니라 무능한 인물을 삼공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즉 법의 폐단을 예방하고 다스리기 위한 “근본은 반드시 인재를 얻어서 일을 맡기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니 “적합한 인재가 있는데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그 말을 따르지 않거나, 그 말을 따르더라도 그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비록 법을 하루에 백 번 바꾼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라는 신숙주의 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법과 제도, 시스템이 폐단을 낳는 것은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올바르게 작동될 수 있도록 리드하는 인재가 없어서일 때도 많다. 신숙주의 대책은 이 점을 환기하는 것으로 폐단을 우려하기에 앞서 적임자를 찾아 배치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좋은 제도를 만들고 그 분야 최고의 인재를 찾을 수 있다면 앞으로 있을지 모를 폐단도 그 인재가 사전에 예방할 것이다.


필자소개 김준태 성균관대 유학대학 연구교수 akademie@skku.edu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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