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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6.서진우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인재육성위원장 인터뷰

“리더가 판 깔아주니 혁신 아이디어 솔솔
‘넥스트 커리어’ 등 파격 프로그램 탄생”

김윤진 | 273호 (2019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SK그룹은 2010년부터 사내 게시판인 ‘톡톡(toktok)’을 열고 구성원들이 실명 및 익명으로 회사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을 내도록 독려하고 있다. 블라인드 등 외부 플랫폼이 기업의 피드백을 전제로 하지 않아 자칫 감정 배설의 장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는 데 반해 경영진까지 참여하는 내부 플랫폼을 잘 운영하면 건설적 토론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SK브로드밴드 인터넷TV ‘Btv’의 유료 고객에게 노출하던 사전 광고를 없앤 것도 톡톡에서 나온 한 직원의 아이디어였다. 경영진 역시 수시로 댓글을 달거나 글을 올리면서 기업의 전략적 방향에 대한 질문, 총수나 대표이사의 거취 등 각종 루머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약 4∼5년 전부터는 사내에 TED 강연식 온·오프라인 동시 소통이 활성화하면서 경영진이 다수의 구성원이 궁금해 하는 사안에 대한 답변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또 SK이노베이션이 경영진과 임직원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270여 명의 오피니언 리더, 아이콘(iCON) 조직을 운영하는 등 계열사별로 쌍방향 소통을 위한 다각도의 실험을 진행 중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양성식(경희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최근 SK텔레콤이 명예퇴직제도를 전면 중단하고 직원들에게 창업을 시도할 수 있는 최장 2년의 휴직 기간을 보장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만 50세 이상이거나 근속 기간이 25년 넘는 직원이라면 누구든지 이 ‘넥스트 커리어’ 프로그램을 통해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휴직 기간에 기본급 100%와 현직 수준의 복리후생을 보장해주고 복직의 길까지 열어두는 이 파격적인 실험은 시작과 동시에 세간에 알려져 많은 직장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계열사인 SK하이닉스가 올해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무(無)정년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한 데 이어 그룹 차원에서 ‘평생 고용’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대기업 집단의 조직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SK그룹의 이 같은 실험적 발상은 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오는 걸까. 과감한 행보인 만큼 전적으로 총수나 경영진의 의지에 따른 결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이 프로그램은 연초부터 최태원 회장이 30차례 넘게 열고 있는 임직원과의 대화 ‘행복토크’ 시간에 나온 의견에서 착안한 것이다. 리더가 판을 깔아줬을 뿐 아이디어의 출처는 임직원들이었다는 얘기다.

DBR은 지난달 16일 SK그룹에서 ‘사람’을 키우는 일을 총괄하는 서진우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인재육성위원장을 만나 임직원발 혁신 방법론을 들어봤다. 그는 “임직원들이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았던 게 바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며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장기적인 고용 안정성은 떨어진다는 구성원의 공통된 불안을 포착하고, 이를 해소해주자는 데서 출발한 게 바로 명예퇴직 폐지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과거에는 임직원들끼리 사석에서 푸념하거나 수군대고 말았을 법한 속마음, 공론화되지 못하고 물밑에서 오가다 그쳤을 대화가 최근에는 그룹 차원의 중대한 의사결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직원들이 내뱉은 ‘날것 그대로의’ 정보에 리더들이 더욱 민감해진 것이다. 정제되지 않고, 형식과 절차를 파괴한 ‘언더그라운드 정보’가 회사 경계를 넘어 공유되고 증폭되면서 기업 평판을 결정하고, 나아가 인재 유치와 육성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공감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SK그룹 대표이사 사장 경력만 10년이 넘는 서 위원장으로부터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오가는 임직원들의 비공식 커뮤니케이션을 대하는 회사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이런 정보에 기민하게 반응하기 위해 경영진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물었다.



문서 보고 등 공식적인 체계만으로는 구성원들의 솔직한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의견을 듣기 위해 주로 어떤 소통 채널을 활용하는가.
SK그룹 차원의 가장 대표적인 소통 채널로는 2010년 문을 연 SK의 인트라넷 ‘톡톡(Toktok)’이 있다. 이 공간은 실명과 익명 대화가 모두 가능해 여과되지 않은 이야기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전체적인 회사의 기업문화나 경영 철학 등 큰 줄기에 대해 의견을 내는 ‘그룹톡’, 새로운 상품이나 사업 제안을 하는 ‘비즈톡’, 기타 일상생활과 관련된 신변잡기 이야기를 나누는 ‘공감톡’이 있다. 물론 계열사별로도 게시판이 있지만 한 회사의 힘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 그룹 차원에서 다 같이 논의해볼 만한 공통의 사안들은 주로 톡톡에 올라온다. 회사의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기 때문에 직원들이 일반 소비자나 고객 관점에서 다른 회사의 문화나 상품, 서비스 등을 평가하고 토론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사내 게시판의 좋은 점은 누군가 중간에서 정보를 취합해서 뿌려주지 않아도 어떤 사업 제안이나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해당 업무의 담당자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지난해에는 SK브로드밴드의 인터넷TV 상품인 Btv와 관련해 자녀용 유료 콘텐츠를 구매했는데도 사전 광고 영상을 다 봐야만 해 불편하다는 의견이 톡톡에 올라왔고, 이 의견을 해당 업무 담당자가 발견했다. 이 담당자는 곧바로 유료 콘텐츠를 시청할 때 광고를 노출하지 않도록 조치했고, 빠른 피드백이 이뤄졌다. SK플래닛 재직 시절에도 마찬가지다. 다른 계열사 직원들이 게시판을 통해 11번가나 T맵 등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불편 사항을 지적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담당 부서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반영하곤 했다. T맵 택시를 두고도 ‘콜택시 권역 택시 기능을 추가하면 어떻냐’ ‘자동차 공유 서비스 사업을 하는 것은 어떻냐’ 등의 사업 제안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단, 톡톡에서 나온 이런 다양한 아이디어를 회사가 중간에서 모니터링하고 ‘반영해라, 마라’ ‘좋다, 나쁘다’ 개입하지는 않는다. 해당 부서의 자율에 맡겨야지 여기에 관여하는 순간 자유롭고 격의 없던 소통이 ‘관리의 프레임’ 안에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또 그룹 게시판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위에서 검토하라고 하면 자칫 직원들끼리 서로의 관할과 경계를 침범하는 등 거버넌스(governance) 이슈가 생길 수도 있다. SK그룹 경영 철학인 SKMS(SK Management System)의 핵심 키워드도 자발성이다. 그래야 의욕도 생긴다.


사내 게시판의 경우 블라인드 등 외부에 서버를 둔 SNS와 달리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자체 수위 조절이 이뤄질 것 같다.
물론 그런 걱정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톡톡이 생긴 지 10년이 다 되도록 익명 게시판에 게시된 글을 누가 썼는지를 두고 작성자를 색출한다든지, 작성자에게 불이익을 준 전례는 없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익명성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일부 계열사에서는 사내 익명 게시판이 너무 활성화돼 적나라한 의견이 오가고 서로를 비방할 때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렇게 갈등이 표출되는 경우에도 구성원들의 자정 작용에 맡길 뿐 게시판을 닫거나 중간에 개입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과연 블라인드 같은 외부 SNS가 더 믿을 만한지도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외부 플랫폼이 내부 플랫폼보다 폐쇄적이고 소통이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기 힘든 구조라는 얘기다. 사내 정규 채널에서는 직원들이 주로 경영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나. 듣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말한다. 리더들이 이런 채널에 열심히 참여할 경우 직원들도 자신의 문제 제기에 의사결정자들이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고, 피드백을 받다 보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낼 유인이 생긴다. 리더도 취할 내용은 취하면서 어떨 땐 공감해주고, 어떨 땐 반박하다 보면 발전적 토론이 가능해진다. 반면, 외부 SNS에는 이런 피드백이 없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도 누군가 듣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의견을 던지고 만다. 반응이 없으니 건설적인 토의를 하기보다는 불평, 불만 등의 감정만 배설하고 끝나는 것이다. 리더들의 참여가 전제될 때는 사내 게시판이 이런 SNS보다 오히려 활용될 여지가 더 많아 보인다.


이런 사내 익명 소통이 발전적 결과나 토론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나.
SK그룹 차원에서 2000년대 중반 패밀리카드라는 복리후생 카드를 도입한 적이 있다. 당초 취지는 복지를 확대해 구성원들의 소속감과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것이었으나 운영 과정에서 서비스 불편이나 킬러 콘텐츠 부족 등에 대한 예기치 못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사실 처음에는 백화점식 서비스에 가까워 구성원들의 다양한 요구나 라이프 스타일을 맞춤형으로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모두에게 획일적인 복지후생 선택지를 제공했던 게 패착이었다. 가령,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마일리지 서비스가 더 가치 있을 수 있고,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주유 서비스가 더 가치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기호를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때 톡톡 게시판이 엄청나게 활성화됐다. 임직원 간 토론에 불이 붙었고 의견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인기 서비스를 늘려 달라’ ‘특정 혜택을 신설해달라’는 등의 요구사항이 빗발쳤을 뿐 아니라 어떤 복지가 더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두고 구성원들끼리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목소리가 여과 없이 제기된 덕분에 회사는 미사용 서비스는 과감히 폐지하고,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복지카드 유형을 구성원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생활밀착형, 여행형 등으로 차별화하는 전면 리뉴얼을 감행했다. 결과적으로 임직원 만족도도 높아졌다.




외부망에서 회사와 관련해 근거 없는 비방이나 부정확한 정보가 유통될 때는 어떻게 대응하나.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블라인드 등 외부망에 올라오는 루머에 대해 회사가 조직적으로 대처하거나 관리한 일은 없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게 우리의 기본 신조다. 악의적이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흘리는 그 누군가도 회사의 구성원이다. 그러다 보니 통제하려 하는 순간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알게 된다. 인위적으로 막으려 했을 때 그에 따른 부정적 여파가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이 각자 저마다의 관점을 가진 ‘유니크 뷰어(unique viewer)’고, 누군가 떠드는 이야기가 공감과 신뢰를 얻으면 힘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 이런 익명 콘텐츠를 보고 소비하는 사람은 많아도 직접 만드는 사람은 소수이지 않나. 회사가 내부에서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소통하는지에 따라 충분히 구성원끼리의 자정 작용을 통해 정보들이 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기 해프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SK그룹의 경우 이런 외부 망에서 시작된 루머가 심각한 기업 리스크를 초래한 적은 없었다. 블라인드에 현직뿐 아니라 전직 직원들도 참여할 수 있다 보니 간혹 기밀 유출과 같은 불상사가 발생하긴 하는데 이건 그 자체로 심각한 범법과 일탈에 해당하기 때문에 법으로 해결할 문제지 사전 관리나 대응이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이렇게 기밀을 외부에 알렸을 때 어떤 책임을 져야 하고, 어떤 제재를 받을 수 있는지만 명확히 교육할 뿐이다.

물론 임직원 비위에 대한 내부 제보의 경우 기업 평판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무엇보다 퍼지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대한 빨리 대처하는 편이다. 그룹 공통 온라인 창구를 두고 컴플라이언스 파트에서 관리한다. 계열사마다 창구를 두면 회사 사람을 고발하기가 찜찜하거나 불안할 수 있고 결재 라인에 있는 사람 중 누군가가 가해자나 이해당사자일 수도 있지 않나. 이에 따라 그룹 차원에서 대응한다.



앞서 리더의 참여가 전제돼야 이런 창구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했는데 경영진도 사내 및 사외 게시판을 자주 활용하는 편인가.
그렇다. 사내 게시판에서 구성원이 잘못된 정보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거나 헷갈려 하는 부분이 있으면 경영진이 수시로 반응한다. 내가 SK플래닛 CEO일 때도 그랬고, 다른 CEO들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전략적 방향에 대해 직원들이 궁금해 하거나 근거 없는 인수합병(M&A)이나 구조조정 소문이 돌 때는 빨리 글을 올려 해명하는 편이다. 직접 댓글을 달기도 한다. 과거에 ‘사장님이 다른 회사로 옮긴다’는 식의 뜬소문이 올라온 적도 있었는데 내 거취와 관련된 문제는 나만 답변을 해줄 수 있으니 바로 게시판을 통해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고 불안을 진정시켰다. 또 조직이 어떤 큰 제도적 변화를 도입할 때도 취지를 적시에 알리는 게 중요하니까 월 단위의 타운홀 미팅이나 경영 브리핑 등을 기다리지 않고 이슈가 있으면 사내 게시판을 활용한다.

물론 가끔 경영진이 임직원과 소통하고 루머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틀린 정보를 말하기도 하고, 가만히 있느니만 못한 역효과가 날 때도 있다. 사실 CEO라고 회사의 모든 디테일을 속속들이 아는 건 아니지 않나. 괜히 대화한답시고 나섰다가 팩트가 아니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면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위험도 있고, 직원들의 불안감을 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 판단하거나 착각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빨리 사과하고 정정하면 된다. 그때그때 능숙하지 않고 실수가 나오더라도 진정성과 지속성을 가지고 임하는 게 중요하다.


최태원 회장의 ‘행복토크’뿐 아니라 CEO들의 타운홀 미팅, 사내 포럼이나 페스티벌 등이 연일 이어지는 것을 보면 회사가 구성원과의 쌍방향 소통을 상당히 강조하는 것 같다.
변화의 시점을 정확히 짚기는 어렵지만 최근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은 맞다. 4∼5년 전부터 경영진이 TED 방식의 강연을 많이 활용하기 시작했고,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고 온라인을 동시에 겸하는 소통의 기회가 많아졌다. 회장님부터 시작해서 사장단, 임원들이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직접 직원들을 모아놓고 스피치를 하고, 오프라인은 물리적 제약이 있으니 자리에 없는 직원들을 위해 온라인으로도 생중계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예전에는 CEO가 임원들한테 직원들 아이디어를 취합하라고 지시하면 일일이 문서로 보고하는 몇 단계를 거쳐야 했다면 이제는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는다.

또 과거에는 똑같이 CEO 간담회를 열어도 미리 질문이 뭔지 적어내고 사전 각본에서 벗어나면 큰일 났는데 요새는 실시간 질의응답 서비스 ‘심플로우(symflow)’ 등을 통해 프레젠테이션 도중에도 직원들이 문자 댓글을 달면서 질문한다. 각본이 없다. 모든 대화가 즉흥적으로 이뤄지며 여러 명이 공감하는 질문이나 의견은 추천 수가 순식간에 급등하는 게 눈에 보인다. 그러다 보니 순도 높은 추천이 붙은 질문을 임의로 건너뛴다든지, 답하기 편한 질문만 고르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M&A 인수가를 얼마 써낼 거냐’는 식으로 회사 기밀이나 보안 사안을 묻는 게 아닌 한 다수의 직원이 궁금해 하면 곤란한 질문도 피해가기 어렵다. 애당초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될 수가 없다. 행복토크는 직원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고위 임원이나 CEO는 참석조차 못 하게 한다.

이런 변화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맞물려 있는 것 같다.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흐르다 보니 즉각적인 정보 공유의 중요성, 구성원이 고민하고 아파하는 부분을 최대한 빨리 포착하자는 취지에 사장단이 대체로 공감했다. 모든 사람이 서로 연결돼 있고 말이 빨리 퍼지는 ‘초연결’ 사회인 만큼 모든 경영자에게 임직원과의 실시간 소통은 중요한 이슈일 수밖에 없다. 한 번 하고 마는 일회성 쇼는 의미가 없고, 구성원들의 말을 듣는 척만 하거나 내부 평판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도 없다.



이렇게 기업 내부 평판이나 구성원의 만족을 중시하는 경영이 좋은 인재를 모으고 육성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가.
SK그룹의 수평적인 문화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훌륭한 인재들을 채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2016년 잡플래닛이 전·현직 임직원이 직접 등록한 기업 리뷰 5200건을 바탕으로 ‘일하기 좋은 기업’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조사는 승진 기회 및 가능성, 복지 및 급여, 업무와 삶의 균형, 사내 문화, 경영진 등 구직에 영향을 미치는 5가지 항목에 걸쳐 진행됐는데 당시 SK가 사내 문화 항목에서 타사 대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런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쌓인 건 아니다. 취준생 정보 공유 사이트에 인사부서가 개입해서 좋은 의견 몇 개 올린다고 평판이 달라지는 게 아니지 않나. 전자상거래(e-commerce) 사이트에 긍정적인 상품 후기 3∼4개만 연달아 올라와도 ‘업체 알바 아니냐’고 의심하는 세상이다. 호평이 수백∼수천 개는 이어져야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리뷰라고 믿고 구매하지 않나. 임직원들의 기업 평가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조작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기 어렵다.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평가가 쌓여야 한다. 그래서 기업에 대한 평판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걸 볼 때면 우리가 소통을 위해 노력하거나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느낀다.

사실 지금 정도는 아니더라도 계급장 떼고 소통하려는 노력은 수십 년간 이어져 왔다. 캔미팅(Can Meeting)이라고 해서 부서장을 비롯해 부서원들끼리 사무실이 아닌 제3의 자유로운 공간에서 위계를 무시하고 난상토론을 벌이는 회의 문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룹 고유의 문화인데 일상을 떠나 업무 활동이 차단된 곳으로 떠나는 게 핵심이다. 마치 면책 특권처럼 이날 오간 이야기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꾸준히 팔로업하면서 발전시켰다.


임직원들의 생각을 파악하고 내부 평판을 관리하기 위해 조직원 가운데 ‘인플루언서’나 ‘오피니언 리더’ 그룹을 찾아 활용하기도 하나.
오로지 소통만을 목적으로 특정 그룹을 심어놓고 내부 여론을 감시한다든지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려 하면 동료들이 알아채게 돼 있다. 요즘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결과적으로는 ‘편집된’ 정보만 수집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꼭 구성원의 의견 수렴과 소통만이 목적은 아니더라도 주니어 중 상대적으로 역량이 뛰어나고 업무 성과가 좋은, 즉 동료집단(peer)에서 알게 모르게 리더 역할을 하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주니어 보드(junior board)’나 ‘티-이노베이터(T-Innovator)’를 선발하긴 한다. 이들이 회사의 주요 어젠다를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보 교류가 이뤄지거나 회사 정책이나 이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들이 퍼뜨리는 정보가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계열사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은 회사와 조직원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하는 아이콘(iCON)이라는 조직을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 약 270여 명의 아이콘이 팀원들을 대신해 회사에 바라거나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한다. 팀별로 선발된 이 중간 오피니언 리더들은 관리자급은 아니지만 경영진의 의사를 팀에 나르고, 사원들의 건의사항을 취합해 위로 올린다. 이들은 전사 차원의 일하는 문화 혁신을 이끌면서 육성형 평가제도 개선, 애자일(Agile)한 조직문화 구축 등의 영역에서 아이디어 제안과 실행을 주도하고 있다. 메신저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육성형 평가제도의 경우 임직원들을 점수 매기고 줄 세우던 기존 평가 방식과 달리 개인 한 명, 한 명의 강점과 역량과 자질에 집중하는 평가방식인 만큼 이런 중간자들의 세심한 관찰과 끊임없는 소통이 요구된다. 이 밖에도 최근 들어 그룹 차원에서 ‘인플루언서’의 발굴과 활용의 필요성을 점점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조직 내 비공식 소통이 원활히 잘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인플루언서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는 이유가 있나.
지금까지는 프런티어그룹, 오피니언리더그룹을 주로 역량과 성과를 기준으로 선발했을 뿐 해당 직원이 얼마나 주변의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누가 다른 구성원들과 많이 연결돼 있는지 등을 측정할 수 있는 툴이 있다면 조직 내 소통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 단순히 누가 정보를 많이 유통하는지 아는 것을 넘어 누가 ‘업무와 관련된’ 정보를 많이 퍼나르는지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느낀다. 가령, 회사에도 내부 승진이나 인사 같은 가십(gossip)을 잘 퍼뜨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업무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전파하는 데 탁월한 사람이 있지 않나. 사실 가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열심히 정보를 유포하고 떠들어 봤자 이런 사람이 다루는 이야기가 비즈니스와 직결되지 않는 한 큰 혁신이나 리스크로 이어지지 않고 내버려 둬도 괜찮다.

사실 작은 조직들을 보면 다른 그룹과 비교해 SK가 비교적 소통을 잘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본다. 가령, 사람이 적은 SK 지주사 같은 경우 직원이 200명이 안 되니까 CEO가 타운홀 미팅만 열어도 한 공간에 착석할 수 있고, 정보 전달 과정에서 크게 왜곡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SK하이닉스처럼 연구원들만 수만 명 있는 대규모 집단에서는 CEO의 생각이 구성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의사소통에 병목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규모가 커지더라도 정보의 잘못된 유통이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정보 흐름의 경로(route)를 잘 설계하고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큰 조직에서는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인플루언서를 연결고리로 잘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SK 서린빌딩도 공사 중이고 그룹 전체적으로 개인 지정 좌석을 없애는 ‘공유 오피스’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것도 임직원들의 아이디어였나.
SK그룹 건물을 ‘위워크(WeWork)’처럼 공유 오피스로 바꿔 소통과 협업을 늘리자는 발상 자체는 톱다운(top-down)으로 시작됐다. 다만 이걸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은 보텀업(bottom-up)으로 직원들의 이야기를 반영해서 진행하고 있다. 이전에도 계열사별로 사장실을 없앤다든지 하는 시도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전체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팀이나 실, 부문 간 칸막이를 없애고 공유 좌석을 도입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다른 팀의 영역이라고 입을 다물거나 하지 않고 장벽을 넘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나누자는 취지다. 모든 구성원의 일하는 공간이 달라지는 만큼 어떻게 꾸미는 게 좋을지, 사물함은 어떻게 운영할지, 같은 자리를 한 사람이 독차지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지 등 세부 룰을 두고 실제 생활할 당사자들의 의견도 많이 들었다.


SK의 조직문화를 두고 직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니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다’는 식의 부정적 시각도 있다.
외부에서 그런 평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내부에서조차도 일이 빠르게 추진되지 않을 때마다 답답함을 호소하거나 이런 난상토론 문화를 약점으로 지적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사공이 많다는 지적은 기본적으로 소통이 활발하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점점 다양성과 창의성이 중요해지는 시대로 갈수록 이게 기업의 효과성, 장기적인 업무 성과로도 연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SK에서는 경영진, 임원, 직원을 각각 구분하지 않고 회장부터 말단 신입사원까지 모두 ‘구성원’으로 통칭하며 회사와 구성원도 구분하지 않고 ‘우리’로 묶었다. 회사와 구성원은 남편과 아내, 배우자와 같다. 어차피 부부 관계는 한쪽이 없으면 성립이 불가능하다. 구성원도 ‘회사는 어떻게 대처하실 겁니까’라고 묻지 말고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구성원의 고민’이 곧 ‘우리의 고민’이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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