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강상무를 구하라

[좌충우돌 강상무를 구하라] 회의 위한 회의 없애자고 했는데… “어차피 필요한데 정기회의 부활하죠”

222호 (2017년 4월 Issue 1)


148


“저기, 근데요. 본부장님. 매주 화요일 회의는 없애기로 한 것 아니었나요? 그 말씀 하신 게 바로
2주 전인데 지난주에도 불쑥 회의를 잡으시더니 이번 주도…. 에이, 저희 그냥 정기회의 살리는 건 어떨까요? 어차피 계속할 거면….”

능글맞게 웃으면서 정곡을 찌르는 이 대리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으니, 정기 회의를 없앤 것도, 그러면서 은근슬쩍 회의를 계속했던 것도 바로 나였다.



오늘은 화요일. 매주 있던 팀 정기 회의를 없앤 뒤에 맞이하는 두 번째 화요일이다.

이 회사로 옮겨오면서, 미래생명사업본부의 본부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결심한 것은 회의 문화를 바꾸는 것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쓸모없고 불필요한 것이 회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라는 조직 속에서 개인이 회사의 전체적인 전망과 목표 아래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그 수단으로서의 회의가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게다가 회의를 준비하는 데 반나절, 회의가 끝나면 그것을 정리하는 데 또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었다. 뭔가 뾰족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닌 회의를 오래 하는 것이야말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나는 이직 초기에는 회의 자체를 아예 없애버렸다. 필요한 내용은 팀 게시판을 이용해 공유를 하고 의견을 달게 했으며 토론이 필요한 내용은 점심식사 후에 티타임을 이용해 잠깐 대화하는 것으로 바꿨다.

어찌 보면 나름 파격적이었던 회의 문화에 대해 박 수석이나 최 책임은 난색을 표하기도 했지만 다른 직원들로부터는 젊은 리더라는 말까지 들으니 은근히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 허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식 회의라고 이름 붙이지 않은 티타임 회의는 업무 이야기와 사적인 이야기가 뒤섞여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벼운 회의는 그 내용이나 결정의 권위마저도 가볍게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연구팀, 기획팀, 디자인팀으로 구성된 미래생명사업본부의 본부장인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회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다시 시작된 정기회의.

그래도 원칙은 있었다. 한 주간의 업무를 시작하면서 신경 쓸 일이 많은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간결하게, 집중력 있게, 필요한 말만 하기 위해서 회의는 최대 한 시간을 넘지 말 것. 그러기 위해서 매주 화요일 오후 다섯 시, 퇴근을 앞두고 회의를 진행해왔다.

상명하달이 아닌 아래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구성원 모두가 함께 소통하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장소를 바꿔가며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었는데 이 또한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안건 정리와 자료 숙지 등 짧은 회의를 위한 사전 준비는 월요일 야근과 화요일 업무 시간 할애라는 당연한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말하는 사람만 말하다가 퇴근 시간과 함께 막을 내리는 뻔한 결말만 가져왔을 뿐이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의무적인 정기 회의를 없애고 필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무제한 브레인스토밍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 바로 2주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갑작스럽게 중동 수출과 관련한 디자인, 기능 변경 회의를 진행한 데 이어 이번 주에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야 할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생각났던 것이다.

‘하∼ 정말 중요한 내용이라 회의를 안 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자꾸만 회의를 없앴다가 또 하자고 하면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처럼 보이려나?’ 고민 끝에 어제 출근하자마자 회의를 공지했는데 이 대리의 저런 반응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어제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자료 조사를 좀 해봤는데요. VR을 이용한 휴대용 헬스케어 기기를 개발하자고 하셨잖아요?”

“주말에 가족들이랑 VR 체험관에 갔는데 너무 재밌더라고. 그래서 VR을 접목시키면 이용자층을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니까.”

그런데 다른 팀원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그런데 저희 주력 제품은 진단, 측정 분야인데 활용 범위가 좀 애매할 것 같아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손 사원이 이야기를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는 구성원들.

“의료 분야에서 VR을 활용하는 것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데요. 주로 정신과나 심리치료에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VR은 헤드셋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휴대가 번거롭고요.”

“본부장님, VR 체험하실 때 어지럽지 않으셨어요? 어휴∼ 저는 오래 못하겠던데요?”

“새롭기는 하지만 지금 개발을 시작하는 건 이미 늦은 것 아닐까요?”



야심 차게 내 놓은 안건에 대해서 구성원 모두가 부정적인 의견만을 쏟아내자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발끈) 아니, 무조건 안 된다, 어렵다, 늦었다, 이런 이야기만 하면 어떡하나? 발전적인 이야기들을 좀 하라고! 엉? 되는 이야기를 하라고! 어디, 다른 의견 없나?”

그러자 전 과장이 슬그머니 말을 꺼낸다.

“저기, 본부장님. 그럼 그냥 지시를 내리시죠.

의견을 수렴하는 게 아니라 본부장님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 것 같은데…”





전문가 인터뷰: 김종남 메타컨설팅 대표

리더가 앞장서서 수평적 회의문화를




많은 조직들이 회의에 치여 신음한다. 하루 종일 회의는 열심히 했는데 뾰족한 결과물은 거두지 못하는 등 ‘회의를 위한 회의’가 빈번하다. 원인은 무엇인가.

회의를 형식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 정도로 생각하고 일상적으로 답습하기 때문에 회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더와 조직원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회의야말로 소통하는 방식, 일하는 스타일, 더 나아가 ‘조직문화’가 결정되는 공간이다. 단순히 회의에서 결과물이 있고 없고를 떠나 우리 회사에서 회의가 어떤 의미인지, 회의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회의를 통해 지향해야 할 조직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큰 그림(Big picture)’을 먼저 그려봐야 한다. 회의의 방향과 의미가 먼저 설정돼야 회의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원하는 조직문화에 다가설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 조직의 철학과 회의문화가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마크 파커 CEO가 이끌고 있는 나이키 회의의 경우, 3가지 특징이 있다. 외부에 나가서 달리면서 회의를 하는가 하면, 회의 시 스케치북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며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무엇보다 회의에서는 핵심만을 다룬다. 2013년 나이키의 연차 총회는 불과 37분 만에 끝난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키의 회의문화에는 ‘회의는 간결해야 한다’는 조직의 철학과 문화가 반영돼 있다.



한국의 수직적인 기업문화가 회의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수평적 호칭을 사용하는 등 많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이뤄지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톱 리더들의 책임이 굉장히 크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자주 교육을 진행하곤 하는데 밑에 있는 직원들은 항상 자신들의 조직에 대해 자조적으로 “아마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바꿀 수 없을 것이다”고 말한다. 그들이 그렇게 회의론에 빠져 있는 것은 톱 리더가 전혀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석학인 에드가 샤인 MIT 교수도 강조했지만 조직에서는 결국 리더가 어떤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CEO가 “자, 오늘자로 모든 회의에서는 계급장을 떼고 자유롭게 의사소통 하라”고 선언한다고 생각해보자. 쉬운 이야기도 아니고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리더들이 더 진지한 고민에 나서야 한다.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하려고 해도 ‘스킬’이 부족해서 효율적인 회의진행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열린 회의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솔루션이 필요할까.

조직의 회의문화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렸고 리더도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면 효율적인 회의운영을 위한 키(Key)는 이제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회의 진행자)가 쥐고 있다고 본다. 객관성과 중립성을 지닌 퍼실리테이터가 룰을 가지고 회의를 진행해 나가야 한다. 회의 분위기나 환경,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것도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다. 과거 한 기업에 갔더니 CEO가 임원 20명을 앉혀놓고 두 시간 동안 줄곧 떠들고 나서는 말미에 “왜들 의견이 없느냐?”고 하더라. 이렇게 해서는 회의문화, 더 나아가 조직문화가 절대 바뀔 수 없다. 퍼실리테이터를 미리 정해 한 사람당 발언시간, 제시할 수 있는 PPT 수, 여러 가지 룰을 만들고 집단지성을 최대한 끌어낼 필요가 있다.



퍼실리테이터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할까. 조직구성원들 개개인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할 것이고, 아이스 브레이킹 능력도 필요할 것 같은데.

그렇다. 일단 조직의 이슈와 조직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에 더해 여러 가지 소프트한 스킬들이 필요하다. 어떤 질문들을 던져 브레인스토밍을 유도할 것이냐, 어떻게 몇몇의 구성원에게 발언권이 집중되는 것을 막을 것이냐 등등 말이다. ‘브레인스토밍’이 사실 굉장히 중요한데 퍼실리테이터는 아이디어의 질보다 양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언뜻 들었을 때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들로부터 최대치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끌어내야 한다. 한 명 한 명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룹을 쪼개주는 것(Break-out Groups)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답이 안 나오면 바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주거나 3∼4명씩 쪼개서 얘기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이런 시간은 절대 낭비가 아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지나친 개입이다. 퍼실리테이터도 사람이고 자기 의견이 있다 보니 내용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예능프로그램의 MC처럼 퍼실리테이터는 내용이 아니라 ‘진행’에 집중해야 한다.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의 회의 사례들을 연구해왔는데 가장 인상적인 회의문화를 가진 곳은 어디였는가.

3M과 혼다다. 일단 3M의 경우 ‘회의를 중요시하라(Making Meetings Matter)’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회의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온 조직이다. 회의 시간을 통해 서로 간의 신뢰, 팀워크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갖게 된 3M의 회의에서는 직원들이 모두 ‘가드 다운(guard down)’하고 직책을 뛰어넘어 편안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한다. 회의를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사람들과 대화하는’ 팀 빌딩을 위한 시간으로 규정해 온 결과, 이처럼 편안하게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회의 온도가 형성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혼다자동차다. 혼다는 ‘왁자지껄한’이라는 뜻을 가진 의성어인 ‘와이가야’라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 어젠다, 장소, 일정 없이,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누구나 회의를 소집하는 시스템인데 리콜 조치 한 번에 수십조 원이 왔다 갔다 하는 현장 중심의 자동차 산업에 적합한 회의방식이다. 현장의 문제를 바로바로 해결하기 위한 유연한 회의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회의문화에 ‘정답’이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조직 DNA에 가장 잘 맞는 회의문화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일부 기업은 빠르고 민첩한 회의를 위해 시계에 알람을 맞춰놓기도 하며 스탠딩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곳도 있다. 이렇게 형식을 바꾸는 것이 과연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까.

각각의 조직문화가 다르고 조직이 직면한 과제가 다른데 알람을 맞추는 등의 행위가 과연 모든 조직에 효과적일 것인가란 의문이 든다. 예컨대 아마존의 경우는 회의를 시작할 때 30분 동안 6장짜리 회의 안건을 한 번 읽고 나서 본격적으로 회의를 한다. 그렇다고 이 같은 회의 방식이 모든 조직에 적합할지는 미지수다. 야후 같은 조직은 시간과 비용 낭비를 위해 타이머를 맞춰놓고 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모두에게 다 통할 것인가. 자칫 ‘30분’ ‘50분’으로 시간을 한정지어버리면 효과가 아니라 효율성만 좇게 될 수도 있다.



회의 못지않게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을 잘 키워나가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사실 회의 때 열심히 아이디어들을 모아놓고 제대로 추적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디어를 잘 키워나가기 위한 팁을 준다면….

두 명의 세계적인 경영자에게서 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회의 때 나온 소중한 아이디어가 사라지곤 하는 원인은 책임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어떤 안건이 제시되면 이를 책임지고 추진할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를 두었다. 회의 중에 안건이 A, B, C가 나왔다고 하면 각각의 안건 옆에 DRI를 적어두고 회의를 끝냈다. 이렇게 확실한 책임자를 정해두게 되면 안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해나갈 수 있다. 아이디어를 허공에 날아가게 만드는 또 다른 원인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이디어 실행을 막는다는 판단에 따라 파급력 있는 거대 아이디어나 비전에 대해서는 설령 실패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원칙을 내걸었다. 머스크의 이런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스페이스X’ 같은 실험도 가능했던 것이다.


150


김종남 메타컨설팅 대표는 ING와 KB국민은행 등에서 약 15년간 기업 간 협상, 영업 관리, 노사 관계 등을 담당했으며 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조직개발을 전공했다. 조직개발 전문가로 다양한 기업에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회의 없는 조직>이 있다.





임원 미팅노트

152_note


美 기업, 회의로 40조 원 낭비…효율성을 높여라



직장인 10명 중 7명이 하루 평균 1회씩 꼭 하면서도 이를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근 국내의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10명 중 6명이 현재 직장 내 ‘회의 문화’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이유로는 ‘결론 없이 흐지부지 끝날 때가 많아서’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회의 진행과 구성이 비효율적이어서’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기업들은 대표이사가 바뀌거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 항상 회의체 운영 방안부터 바꾸곤 합니다. 기존의 회의를 이름부터 바꾸고, 시행 주기나 참여자까지 새롭게 구성합니다.

이런 회의문화 개선을 위한 갖가지 시도들은 성공적으로 끝났을까요? 그렇지 못했다면 과연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일까요? 이번 호에서 김종남 메타컨설팅 대표는 회의를 단순히 회의로 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회의는 리더십이 발휘되는 장소이어야 하고,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는 곳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의와 리더십은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요? 예컨대 임원이 주재하는 회의라면 리더십을 발휘해 어느 수준의 의사결정까지는 반드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제 주변의 L 차장은 “다들 ‘이번 회의에서는 뭔가 결정되겠지’ 하는 기대에서 들어오기 마련인데, 막상 끝나고 나면 다음 회의를 기약할 수밖에 없을 때 가장 허무하다"고 귀띔해 줍니다. 물론 의사결정이 필요 없는 정보 공유를 위한 자리나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들을 도출해야 하는 브레인스토밍 회의도 있겠지만 소위 ‘필드’에서의 회의 시에는 다들 회의 좌장인 임원들의 입을 주목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리더 혼자서 정말로 카리스마 있게 본인만의 독특한 기준과 독단적인 사고로 의사결정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김종남 대표가 회의를 기획하고 이끌어가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리더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혼다(Honda) 기업의 ‘와이가야(Waigaya)’ 회의문화에서 보듯 리더는 부서 간의 장벽이 없고(Wall less), 상사인가를 따지지 않고 발언할 수 있으며(Boss less), 서열에 연연하지 않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Rank less) 회의를 부드럽고 유연하게 진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의 말미에는 본인에게 부여된 수준까지 최소한의 의사결정과 담당자 지정을 잊지 않고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10여 년간 큰 성장을 이룬 우리 회사에도 이와 유사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최고경영진이 주도하는 ‘끝장토론’이라는 회의문화인데 중요한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면 오너는 물론이고 임원진, 팀장들이 모두 호텔의 한 방에 들어가 반바지로 갈아입고 계급장 떼고 결론이 날 때까지 치열하게 회의하는 것이지요. 필자 또한 몇 번을 경험했습니다.

김 대표가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GM 노드(GM Nod)’와 ‘GM 살루트(GM Salute)’도 회의문화 개선을 위해 주목할 만한 사례입니다. 전자는 리더가 무슨 얘기를 하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거려주던 문화, 후자는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있으면 옆으로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던 행태를 꼬집는 단어였습니다. 사실 저부터 뜨끔했습니다. 회의 진행 발언을 했다가 그것이 결국 자신의 일로 되돌아올까봐, 굳이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발언을 아끼는 국내 회의 문화와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병폐들도 모두 회의 좌장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요?

스티브 잡스가 고집한 애플의 업무진행 방식인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에 대한 소개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회의 결과로 나온 업무 리스트 옆에 담당자를 적어놓는 일은 어쩌면 아주 단순해 보이는 작업일지 모르지만 모두가 일의 책임자를 알 수 있게 해주고 그 담당자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게 해줍니다. 국내 기업에도 적용할 만한 좋은 팁이지요. 그러고 보니 올해 우리 회사에 새로 부임하신 대표님께서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오성의 대사인 “나는 한 놈만 팬다”를 인용하시면서 이와 유사한 제도 도입을 이끌고 계셨네요.

평소 회의문화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온 필자에게는 두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적어도 ‘극장식’ 회의문화(한 사람은 미리 준비된 자료를 읽고 나머지는 인쇄물을 보는 둥 마는 둥 시간을 소비하는 방식)는 지양돼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회의의 마지막 발언은 “수고하셨습니다”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회의의 결론은 이것이고, 따라서 이것을 누가 언제까지 어떻게 진행한다”는 회의 후 요약(Post-meeting Summary)이 반드시 뒤따라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내 기업들은 회의로 일 년에 40조 원을 낭비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회의 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에 미국 인텔(Intel)사에서는 회의 장소에 회의 가격표를 만들어서 붙여 놓을 정도로 회의의 효율을 따진다고 합니다.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는 회의의 가격을 산정하는 계산기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https://hbr.org/2016/01/estimate-the-cost-of-a-meeting-with-this-calculator 참고.) 이번 기회에 비효율적인 미팅으로 얼마나 많은 비용이 낭비되고 있는지 오늘 한번 점검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스토리=김연희 작가 samesamesame@empal.com 인터뷰 정리=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미팅노트=강효석 상무 truefan@naver.com


153


강효석 상무는 서울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SKK GSB에서 MBA를 취득했다. 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본사 경영관리담당 차장으로 근무하다 골프존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골프존에서 해외사업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직장인의 성공에너지 배움> <직장인 서바이벌 업무력> 등을 공저했다. 네이버 블로그 ‘MBA에서 못 다한 배움 이야기’도 운영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8호 Future Mobility 2020년 6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