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강상무를 구하라
현재 시각 오후 3시10분.
지금 나는 회사 인근 카페에 홀로 앉아 있다.
10분 전. 외주 업체와 시제품 제작을 위한 미팅이 예정돼 있었는데 약속 시간인 3시가 되도록 담당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 과장은 “차가 너무 막힌답니다, 죄송하지만 10분 안에 도착한다고 하네요”라고 전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흠….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도착하면 연락 줘요.”
그렇게 사무실을 나와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나 혼자만’의 기 싸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입사 시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신제품 개발에 매달려 왔고, 수많은 시도와 포기, 연구와 실험을 반복하던 끝에 드디어 모바일 원격 진료 시스템이 장착된 스마트 보디키트 개발에 성공했다. 그리고 시제품 제작을 앞둔 시기였다.
어찌 보면 나의 첫 작품이지만 성공 여부는 확신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제품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나보다.
계획된 예산은 개발 과정에서 이미 초과된 상황. 시제품 제작에서라도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부담이 조금은 감소할 것 같았다. 소형 바이오 분야 전문 제작 업체라는 유 과장의 추천에 일단 한번 만나보고 최종 결정을 내릴 계획이었다.
그런 첫 만남 자리에, 하청을 받을 ‘을(乙)’의 입장인 외주 업체가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조금 더 늦을 거라는 전달에 순간적으로 나도 차라리 늦게 나타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그랬을까? 아마도 ‘기다리면 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기다려주고 미안한 마음을 갖게 했으면 주도권을 쥘 수 있었을 텐데….’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중에 되돌려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을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담당자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사무실로 되돌아갔다.
“본부장님,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차 막힐 걸 예상하고 일찍 나왔어야 되는데 그만…. 정말 죄송합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는 담당자 얼굴에는 아직도 땀이 고여 있고,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뜨끔해 진다.
“아닙니다. 요즘 교통 상황이 워낙 예측불가니까요. 앉으세요.”
기획팀의 전 과장과 디자인팀의 유 과장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진 회의에서 외주업체 담당자는 충실하게 준비한 자료를 제시했고, 우리 제품에 대한 이해도도 제법 높았다. 여기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추가 제작이라는, 꽤 흡족한 제안도 해주었다.
제안 내용도 마음에 들고, 이제 제일 중요한 가격 협상만 남았는데…. 업체 측에 미리 전달한 예상 견적이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낮은 가격을 새로 제시할 계획이었다.
“좋군요. 그럼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시제품 제작 단가 말인데요.”
“네, 본부장님. 저희가 고민을 해봤는데요. 디바이스에 애플리케이션 제작까지 하려면 저희에게 말씀해 주신 단가에는 맞추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혹시, 예산을 조금 더 책정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 나는 더 적은 금액을 제시할 생각이었는데(!!)
“아, 아니… 그건 좀… 우리가 생각했던 금액이 따로 있어서요.”
“예, 압니다. 그런데 그 가격으로는 수량과 일정을 다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요. 애플리케이션 제작을 다른 업체에 맡기셔도 이만한 액수는 나올 겁니다. 어쩌면 더 많은 비용이 들 수도 있죠. 그럴 바에야 저희와 함께하시는 게 낫지 않으시겠습니까?”
‘딩동∼’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본부장님,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수락하시죠?’
사실 전 과장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까지도 내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예산을 깎을 수 있을까? 너희 말고도 할 업체는 많다고 할까?’
“흠…. 그러면 우리가 제시한 가격에 애플리케이션까지 맡아 주시죠. 물론, 다른 업체들에도 견적을 의뢰했기 때문에 아직 최종 결정은 아니지만요. 이번만 ‘OK’ 하고 다음에 더 좋은 조건으로 잘해봅시다. 우리가 이것만 하고 끝낼 것도 아니잖아요?”
“잘해주신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부장님. 그런데 다음에 잘해주실 거, 이번에 잘해주시죠. 책임지고 잘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 정도 실력 가진 회사 찾기 힘들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저희는 이번에도 잘하고, 다음에는 더 잘해드릴게요.”
어라!?!? 이게 아닌데…. 왜 자꾸 저 말이 맞는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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