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기업

187호 (2015년 10월 Issue 2)

 

 

한가위를 한 주 앞둔 지난 919, 서울광장에서 열린 슬프고도 매우 뜻 깊은 행사에 먼발치에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70년 만의 귀향이라는 타이틀의 이 행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불귀의 객이 된 수십만의 한국인 중 지금까지 홋카이도 지역에서 발굴된 115위의 유골을 고국으로 봉환하는 행사였다. 유골은 홋카이도에서 출발해 일본 열도를 횡단하고 시모노세키에서 선박으로 부산까지 이동, 다시 부산에서 서울까지 육로로 돌아오는 꼬박 열흘간의 여정을 거쳤다. 강제징용에 끌려간 그 루트를 그대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밟으며 영혼들을 위로하고자 한 것이다.

 

이 행사는 고인들의 죽음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 자국민을 지키지 못한 간접적 책임이 있는 한국 정부가 주도한 것이 물론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깨인 지식인, 종교인, 학생들로 구성된 순수 민간단체에 의해 발의되고 성사된 것이다. 마치 책임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역사를 모르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70년이나 지난 유골봉환에 뭐 그리 요란이냐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과 열정을 바쳐 행사를 주도하고 참가한 사람들, 그리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함께 숙연해 했다. 우리는 왜 고인들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고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옳은 일이라고, 수많은 양심들이 공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열흘간의 여정을 동행했다는 미국 일리노이대의 데이비드 플래스 명예교수는 장례식의 헌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인생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의 그 시간을 넘어섭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알고 기대하며 숨을 거둔 후에도 우리를 기억합니다. 진정으로 품위 있는 사회는 그 기대와 기억의 모든 시간에서 사람들을 대우하는 사회입니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에서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삶의 의미의 연장일 것이다. 모태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또는 수태의 순간보다도 이전에 이미 관계적 삶은 시작됐고, 육신의 생명활동이 멈춘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죽은 사람에게 가서 그를 죽었다고 하면 불인(不仁)한 짓이니 해서는 안 되며, 죽은 사람에게 가서 그를 살아 있다고 하면 무지한 짓이니 해서는 안 된다.” <예기(禮記단궁(檀弓)> 그러기에 아마도 인간은 오래전부터 죽은 자들을차마떠나보내지 못해 복잡한 의식을 치르러 왔을 것이다.

 

죽은 자들을 위해 각종 의례를 더하는 것은 결코 실용적이지 못한 허례허식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존엄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드러난 엄숙한 행위다. 죽음을 잊은 곳에서 삶의 소중함은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그러기에 죽음을 존엄스럽게 여기는 것은 곧 삶과 사람을 존중하는 일이고,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사회의 품위가 드러난다. 기억 속에만 있는 사람조차도 소중히 여기는데 살아서 존재하는 사람이랴! 이것이 바로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신종추원(愼終追遠 : 생의 마지막을 소중히 하고 오래도록 추모함)하면, 사람들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다.”(논어학이)라고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어느 곳도 죽음과 무관한 곳은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순직이든, 개인적 죽음이든 기업조직에 몸담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분명히 생겨나기 마련이다. 구성원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구성원에 대한 그 기업의 진심이 담겨 있다. 구성원의 죽음을 경시하는 기업은 천박한 장사치 집단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구성원의 죽음에 소중하고 존엄하게 대처하는 기업이라야품위 있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업은 사람을 조직의 부품으로서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의 가치를 존중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품위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고품위 있는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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