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REPACIFIC WAY의 시사점

기업의 神話가 늘 숨쉬도록 하라

12호 (2008년 7월 Issue 1)

변화에 저항한 프랑스 산림청
프랑스 전역의 숲을 관리하고 목재를 개간하는 국영기업 ‘ONF(Office national des forets, 프랑스 산림청)는 1990년대 큰 도전에 직면했다. 우선 유럽 통합으로 무역 장벽이 사라져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경영 효율화가 필요했다. 또 웰빙 트렌드 확산으로 생태 관광이 확산됐다. 목재 공급자 이외에 레저 사업자로서의 역할에 큰 비중이 실리게 된 것이다.
 
경영진은 ‘현대화 작업’이란 이름으로 무려 10년 이상 경영 혁신을 추진했다. 직원들은 컨설팅사와 함께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한 대안은 서랍 속에 차곡차곡 쌓여갔을 뿐 이미 관료화된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다. 첨단 경영혁신 기법을 도입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ONF는 결국 변화를 가로막는 것이 ‘기업 문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여기서 ONF는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시했다. 바로 인류학자를 투입한 것.
 
에덴동산을 지키는 ‘숲의 천사단’ ONF의 神話
이들은 임직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집단 안에 내재된 ‘의식 구조’, 즉 숨겨진 ‘신화(myth)’를 찾았다. ONF는 1966년에 설립됐지만 조직 구성원들에게 내재된 신화는 몇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3세기 프랑스 절대왕정의 기초를 세운 필리프 4세는 신권(神權)의 존엄을 보여주려 했다. 그는 숲을 주목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숲은 신의 영역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숲을 ‘지상의 신이 거주하는 에덴동산’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숲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숲의 천사단’을 조직했다.”
 
ONF 직원들의 무의식 속에는 ‘숲의 천사단’이란 소명(召命)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신의 영역인 숲을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해 ‘보호’, ‘독점’, ‘보전’이라는 특정 가치 체계가 자리 잡았고 이로 인해 폐쇄적 문화가 형성됐다. 실제 ‘관광객=숲의 파괴자’로 인식하는 직원이 많았다. 문제의 원인은 밝혀졌다. 이제 어떤 해결책을 찾아야 할까.
 
‘기업의 무의식’을 치료하라
필자는 기업 문화를 ‘기업의 무의식’이라고 정의한다. 우리가 무의식에 특별한 관심을 보일 때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뚜렷한 병증이 나타날 때와 자아실현을 위해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할 때일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경영상 모든 활동은 무의식적인 기업 문화의 지배를 받지만 경영상 문제가 생겼거나 비전 실현을 위해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할 때 기업문화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기업문화의 변화 작업은 ‘기업의 정신분석학적인 치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경영상 문제가 생겼을 경우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대에 이미 기업의 정신분석을 수행한 경험이 있다. 1980년대의 무리한 다각화로 몸집이 비대해진 태평양 그룹은 1990년대 초에 뚜렷한 ‘문화적 병증’을 보였다. 화장품 회사가 보험사, 증권사, 패션회사, 야구단 등으로 다각화를 추진하면서 이전의 공동체적 조직문화에 균열이 생겼다. 조직이 커지면서 원래 핵심가치는 사라지거나 변질됐다. 또 인맥·파벌 중심 문화가 생겨나고, 갈등도 깊어졌다. 결국 파업이라는 전무후무한 최악의 상태로 치닫게 됐다.
 
당시 서경배 기획조정실 사장(현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 사장)은 ‘병증’의 근본 원인을 기업 문화에서 찾았다. 그는 ‘아름다움과 건강을 통한 인류의 행복 실현’이란 원래의 소명에 충실하자며 이와 어울리지 않는 사업을 정리했다. 또 경영이념을 정립하고 50년 사사 편찬작업을 진행하면서 내부 단결을 도모하는 한편 대내적으로 ‘한물결 운동’이란 조직문화 변화 작업, 대외적으로 ‘무한책임주의’를 선언하고 고객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실제 무한책임주의 선언 후 쓰던 화장품까지도 보상해 주는 등 품질 및 서비스와 관련해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모레퍼시픽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으며, 변화와 혁신이 기업문화의 중요한 일부분이 됐다.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할 때 2005년 창립 60주년을 맞은 아모레퍼시픽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이미 2004년에 ‘2015 global top 10’이라는 도전적 비전을 선포한 아모레퍼시픽은 글로벌 뷰티헬스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 비전의 실현을 위해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할 때가 됐다고 판단하고 기업문화 변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이번에는 기업을 하나의 부족 사회로 보고 인류학적 방법론을 도입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숨어있는 神話는?
우선 기업문화부터 분석했다. 보이지 않는 문화적 코드를 찾기 위해 문헌분석, 공간분석 등을 실시한 뒤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총 110여 명의 구성원 및 외부 관계자와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1차적으로는 언어구조를 분석해 그 안에 내재된 집단적 의식구조를 밝히기 위해서다. 그 일환으로 조직 구성원들에게 내재된 ‘신화’의 채집이 이뤄졌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가업을 이어받아 1945년 서성환 회장이 창업한 태평양(아모레퍼시픽의 옛 이름)은 한국 1위의 화장품 회사로 성장한다. 한국전쟁, 오일쇼크 등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오면서 최초와 최고의 역사를 써 왔다. 신용, 품질제일주의, 방문판매가 원동력이 됐다. 1990년대의 성공적인 혁신으로 미와 건강에 집중해 외환위기 때에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이 신화는 아모레퍼시픽의 성장과 혁신의 역사를 잘 나타내고 있지만, 국내시장 중심적 사고에 머물러 있어 글로벌화란 관점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관점의 전환이 필요했다.
 
- 한국 1위란 자만심 제거. 창업부터 글로벌화 지향한 기업이라는 점 강조.
- 화장품이란 사업 중심이 아닌 ‘Asian Beauty 창조’라는 미션 중심으로 전환 필요.
- 방문판매 영업방식이 아닌 고객과 가까운 자리에 있으려는 다양한 시도 요구.
- 품질 제일주의에만 머물지 말고 마케팅, 디자인, 브랜드가 포함된 ‘명품주의’ 추구.
 
이런 문제의식 아래 아모레퍼시픽의 그동안 숨겨져 있던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동백기름으로 시작된 가업을 모친으로부터 이어받은 창업자는 회사를 키워오다 징용으로 만주 원정길에 오른다. 광복이 됐지만 그는 바로 귀국하지 않고 중국을 돌아다니며 더 큰 세계에 눈을 떴다. 좀 더 큰 세상에서 꿈을 펼쳐야겠다는 소명을 깨달은 그는 귀국 후 세계를 지향하는 ‘태평양’이라는 도전적 이름의 회사를 만든다. 한국전쟁 후에는 화장품의 본고장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으로 순례를 떠나 선진 시장을 둘러봤다. 그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세계인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우리만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기술개발과 혁신을 독려했다. 이 모두는 항상 고객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이루어졌고, 이는 방문판매로 구현됐다….”
 
우리만의 아름다움, 즉 ‘Asian Beauty’로 세계와 소통하겠다는 창업자의 꿈이 담긴 이 신화는 ‘The Story of Asian Beauty Creator’로 명명됐다. 또 내재가치(fundamental values), 응집력(cohesion), 교류(exchange)의 정도, 문화적 기능조직(functional clan)의 역학 관계를 분석했다. 이 작업은 광범위한 설문조사로 뒷받침되었다.
 
경영진은 이를 토대로 조직 문화 변화를 위한 공동 작업에 착수했다. 드디어 6개월 후 노력의 결과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아모레퍼시픽웨이(AMOREPACIFIC WAY)’다. 아모레퍼시픽의 존재 이유를 ‘우리의 소명’이라는 이름으로 선언했다. 또 새로운 내재가치를 정립하기 위해 기존의 문화적 자산으로부터 핵심 가치를 새롭게 발굴해 ‘우리의 가치’라는 이름으로 공표했다. 개방(Openness), 혁신(Innovation), 친밀(Proximity), 정직(Sincerity), 도전(Challenge)의 5개 가치와 이에 해당하는 행동 원칙들은 아모레퍼시픽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유전자가 됐다.  

2008년 2월 1일 아모레퍼시픽은 ‘AMO REPACIFIC WAY-The spirit of Asi -an Beauty Creator 선포식’을 가졌다. 이는 일종의 상징적 행사로 창업자의 소명을 이어 받은 대표이사가 ‘우리의 소명’, 5가지 핵심기능을 대변하는 5인의 부사장이 5가치를 각각 상징했다. 개방과 혁신 등의 가치가 의례 자체에서 상징적으로 구현되도록 토크쇼와 좌담회 형식을 취했다. 경영진은 ‘AMOREPACIFIC WAY’가 무엇인지, 왜 새로운 기업 문화가 필요한지 역설했으며, 자유로운 질의와 토론도 진행됐다.
 
Way는 그냥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WAY’ 하나만으로 길(way)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든 ONF 사례처럼 폐쇄적인 조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중요한 것은 WAY 자체가 아니라 WAY를 만드는 과정에 있다. 따라서 정기적 인터뷰를 통해 변화의 당사자들이 어떤 심리 상태인지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변화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변화에는 항상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정기적 인터뷰를 통해 저항에 대한 관리도 이뤄져야 한다.
 
구성원들의 저항 양상은 상징적 실재적 상상적의 세 가지 차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상징적 저항은, 팀장들에게 과거 독방을 줬는데 이제 칸막이까지 없앴을 경우 그들의 상징적 권위가 사라졌다며 반발하는 경우다. 실재적 저항은 성과급으로 인한 연봉 감소 등 실질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상상적 저항은 ‘나를 몰아내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식의 가공의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믿는 경우다. 문화의 변화를 위해서는 변화 주체가 될 리더들의 저항 유형을 이처럼 분석하고,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를 극복하도록 지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기업문화의 변화는 언제나 ‘위로부터의 변화’이고, ‘통째로 한꺼번에 이뤄지는 변화’라는 것이다. ‘위는 안 변하면서 우리만 변하래’라는 말은 변화에서 가장 강력한 저항의 소지가 된다. 실제 변화를 추진하려면 ‘경영진 전체와 공동 작업→관리자 계층과의 공동 작업→사원 단위로 확산’과 같이 수평적인 한 계층 전체를 순차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아래로 내려오면서 전략은 점점 구체화되고, 실행력은 높아진다.
 
변화는 물리적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아모레퍼시픽은 2005년부터 기업문화 변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2009년 말을 1차 목표 시점으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토론 활성화, 현장으로의 권한 위임, 부서 간 협업 활성화 등 여러 긍정적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2015년 글로벌 비전이 달성될 때까지 변화는 계속돼야 한다.
 
신화를 재해석한 ONF
앞에서 살펴본 ONF에는 어떤 일이 생겼을까.
 
ONF는 신화를 없애지 않았다. 대신 재해석해 직원들과 공유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아담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얻었다. 스스로 번식할 권리, 스스로 풍요로워질 권리를 얻은 것이다. 이제 아담이 사는 숲은 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영역이 됐다. ‘숲의 천사단’은 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숲의 천연자원(나무뿐 아니라 물과 공기까지)을 관리하는 소명’을 부여 받은 것이다.”
 
이 결과 보호, 독점, 보전 같은 기존 핵심가치는 개방(openness), 적응(adap -tability), 반응(reactivity),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으로 바뀌게 된다. 이후 ONF의 기업문화가 변했고, 성과는 향상됐으며, 프랑스의 생태관광도 발전을 거듭했다.
 
필자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의 기업문화 변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2007년 프랑스 현지 연수를 떠나 VNF, Haras Nationaux, BUTAGAZ, SAFRAN, Banque Popular de Nord 등의 조직 변화 사례를 연구했다.
 
편집자주 이번 호부터 독자 여러분께서 기업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만나보실 수 있도록 <Voice From The Field> 코너를 신설했습니다. 현장 비즈니스 리더들의 살아있는 고민과 생생한 지혜를 접해 보시기 바랍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