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모델 설계
‘역량(competency)’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업무성과가 평균적인 직원보다는 탁월한 성과를 내는 직원들에게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에 주목한다. 특정 업무, 역할과 관련해서 성과를 낸 사람들은 역량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역량은 채용과 급여, 승진, 능력개발 등 인사관리의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직원의 역량 개발에 인사관리의 초점을 맞추고 있기도 하다. 역량의 개념에 기반해서 인사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을 ‘역량기반 인적자원관리(competency-based HR)’ 또는 ‘역량접근법(competency approach to HR)’이라고 한다. 국내 기업의 역량모델 도입성과는 양적 측면만 볼 때 획기적이다. 기존 연공서열형 인사관리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역량접근법을 채택한 기업이 40%를 넘는다.1 처음에는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역량모델을 도입했으나 이제는 인사제도 설계와 운영의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거의 모든 대기업과 공공조직에서 인적자원관리와 인재개발의 중심축은 역량으로 바뀌었다. 역량평가와 역량면접이라는 단어는 이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역량을 기준으로 인재를 채용하고 선발하기도 한다. 직원의 역량을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역량향상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정도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역량이라는 개념 자체에 부정적인 견해를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역량 강화로 성과를 냈다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제 역량기반의 인사관리를 종합적으로 돌아보고 한국형 성과관리 중 역량 부문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볼 시기다.
역량기반 인사관리(CBHR)의 도입
국내 기업에서 역량 개념에 처음 관심을 가진 부서는 교육부서였다. LG그룹 인화원은 교육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개발하기 위해 기존의 직무분석 접근을 탈피하고 역량 중심의 방법론을 도입했다. 국내에서 역량 접근법을 처음으로 시도한 사례다. 이후 LG그룹은 점차 역량을 인사평가에 적용하기 시작해서 기존 능력고과와 태도고과는 역량평가로 대체됐다. 직원 승진에도 반영됐다. 임원과 팀장 등 핵심 리더의 역량을 모델로 만들고 다양한 방법으로 수준을 평가한 뒤 경영진 선발과 핵심인재 관리 등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입사원 선발에서도 역량면접을 실시하는 등 역량을 기반으로 하는 인사관리가 폭넓게 적용됐다.
SK그룹은 90년대 후반부터 역량모델링 방법론을 도입했다. SK아카데미(그룹 연수원)에서는 직급별 역량을 모델링하고 이를 토대로 직급 승진자에 대한 리더십 교육훈련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리더십 역량 수준을 측정하고 이를 보고서로 만들어서 직원 개인에게 알려줬다. SK텔레콤은 2001년부터 핵심인재 육성을 위한 장기 교육과에서 사내외 전문가들이 직원들의 역량을 평가하는 ‘Assessment center 방법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다면평가를 연계해서 리더 개인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실시한 뒤 맞춤형 교육과 개인별 코칭을 연속적으로 이어지게 했다.
대기업의 인사혁신 수단이었던 역량모델 개념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정부에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정부도 역량모델과 직급구조 파괴, 성과급, 개방직 등을 추진했다. 공공 부문의 역량 도입은 민간 부문보다 늦었지만 체계적으로 도입 절차를 밟고 오랜 기간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 특히 고위공무원 후보자에 대한 역량평가는 대표적인 성과로 기록되고 있다. 2006년 7월 고위공무원제도가 도입되면서 정부는 고위공무원 후보자를 대상으로 ‘역량평가(Assessment Center)’를 실시했다. 고위공무원단 역량평가는 실제 업무와 유사한 모의상황과제를 제시하고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행동특성을 여러 내외부 인사가 평가하는 방식이다.2 고위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갖췄는지 여부를 사전에 철저하게 검증해서 적격자만 선발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20%의 탈락률을 보이고 있다. 이 역량평가 프로그램은 고위직으로 갈수록 표면적인 지식·기술보다는 문제인식과 전략적 사고, 고객만족 등의 역량이 직무성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가설에서 실시됐다. 실제로 공무원의 인사 관행을 흔들면서 사무실 분위기와 리더십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0년부터는 과장급에도 적용했고 서울시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도 역량모델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한편 역량모델은 중소기업에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직원이 100명 미만인 한 중소기업은 최근 2∼3년 뒤 퇴직할 예정인 최고경영자(CEO)를 승계할 차기 CEO 후보자를 선정하기 위해 직원 역량평가를 도입했다. 경영진에게 필요한 역량모델을 설정하고 10여 명의 관리자를 대상으로 역량을 평가했다. 마지막 후보자를 3명으로 압축한 뒤 개인별 코칭, 외부 MBA코스 등 좀 더 밀착되고 집중적인 경영진 육성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역량기반 인사관리의 문제점
역량기반 인사관리는 양적인 확대에 비해 질적 효과는 크지 않다. 아직까지도 기업의 현장에서는 역량모델이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직원이 역량모델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역량모델을 가진 기업의 현장 직원과 관리자에게 “귀하에게 적용되는 역량모델과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아무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 역량을 평가와 교육훈련에서 활용한다면 평소 직원이 역량 개념을 이해하고 의식하면서 행동하고 노력해야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대부분 직원은 역량 개념을 정확하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역량모델이 직원이 공감하는 인사관리 형태로 인식되지 못하고 인사와 교육부서 직원의 이벤트성 혁신활동에 지나지 않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기존 역량모델을 수정하거나 관리하지도 않고 있다.
둘째, 역량기반 인사관리가 성과향상이나 사업성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복합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인사 담당자에게 역량을 기준으로 한 채용과 인재개발, 평가 등으로 얻은 효과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과거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다른 기업들도 모두 역량을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도 시도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역량기반 인사관리가 채용이나 교육 등 일부에만 그치기 때문에 구체적인 성과 향상 등에는 활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셋째, 역량모델의 타당성과 현실성이 떨어진다. 역량모델은 특정 집단의 업무와 역할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인적 특성을 모은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성과를 일궈낸 사람들이 보여주는 일관된 행동특성은 직원들이 추상적으로 받아들여 공감과 수용성이 낮을 때도 있다. 이 때문에 이런 역량모델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기 어렵기도 한다. 역량모델의 타당성이나 현실성이 낮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역량의 개념에 대한 혼선도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역량의 개념에 대해선 학자들의 견해도 다양하다. 역량이 ‘직무수행의 성공을 좌우하는 결정적 인적 특성’이라고 정의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능력 요인’이라는 관점을 가진 학자도 있다. 미묘하지만 실제 업무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또 다른 기업과 직무에서 도출된 역량을 기업의 상황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다. 타사의 사례나 특정 컨설팅 회사의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역량에 따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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