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금치’가 됐고, 국정감사는 ‘배추국감’이 됐다. 최근 이상 기후로 배추 작황이 나빠지면서 배추값이 천정부지로 뛴 게 원인이다. 폭등 사태 예측에 실패한 정부 당국에 대한 비판, 농산물 유통구조 문제에 대한 해묵은 논란 등 말들이 많다. 왠지 식상한 3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가뭄, 태풍, 폭우 등 자연재해를 포함, 예기치 못한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급격한 기술 진보와 글로벌화로 인해 불확실성이 최대 화두인 요즘, 위기관리는 정부는 물론 기업 경영 현장에서도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위기관리의 출발은 예측이다. 문제는 모든 경우의 수를 100%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위기관리에서 논의의 초점은 예측할 수 없는 위기에 대해서까지 경영진의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적어도 예측 가능한 위기에 대해서는 미리 준비하고 적절한 대처를 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국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인 맥스 H. 베이저먼과 마이클 D. 왓킨스는 2003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예측 가능한 이변과 불가능한 이변을 가려내는 방법으로‘RPM’ 프로세스를 제안했다. 어떤 사태의 예측 가능 여부는 1)현존하는 위험 요소를 인식(Recognition)하고 2)우선순위(Prioritization)를 정한 후 3)위기 상황으로 번지지 않도록 자원을 운용(Mobilization)하는 세 가지 단계별로 따져봐야 한다는 게 요지다.
특히 이들은 각 단계별로 예측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방해 요인 중 하나로 ‘자기위주 편향(self-serving bias)’을 지적했다. 이는 쉽게 말해 ‘성공은 내 공(功), 실패는 남 탓’으로 돌리는 태도다. 넓게 보면 긍정적 결과는 과대평가하면서 부정적 결과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으로까지 해석할 수 있다.
자기위주 편향적 속성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자신이나 자신의 성과에 대해 남들보다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과잉 확신(overconfidence)’으로 발현되기도 하며, 과거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모순되는 정보는 폄하하고 기존 생각을 강화시키는 정보에만 의미를 두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기보다는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상황을 해석하게끔 한다. 결국 나쁜 일이 생길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게 함으로써, 위기에 대한 점검과 대비를 소홀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많은 기업들이 시나리오 플래닝, 리스크 분석 등 갖가지 경영 기법과 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려 한다. 하지만 이를 실제 운영하고 실행하는 조직원들이 이러한 인지 편향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관성에 빠져있다면 최첨단 위기관리 기법이라 한들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인지 편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무조건 겸손하고, 매사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미래를 암울하게 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 조직 내에 의도적인 ‘반골(反骨)’을 둠으로써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제동을 거는 장치를 마련해볼 수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을 공식적으로 지정해 참여토록 하는 방법이 한 예다. 이종 업계 전문가들을 자문단으로 구성해 전혀 새로운 견해를 들어보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어떤 방법이든 중요한 점은 의사결정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2000년 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 밖에는 보지 않는다.” 자기가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