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인재나 기술을 보유했다고 해서 혁신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상사가 받아들이지 않거나, 돈줄을 쥐고 있는 부서에서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면 그걸로 끝이다.
실제 세상을 뒤흔든 PC라는 제품을 처음 만든 회사는 제록스였다. 1973년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PARC)는 연구원 개인에게 컴퓨터를 제공하기 위해 진정한 의미의 PC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하지만 당시 제록스 경영진은 PC의 혁신성과 진보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제록스는 ‘멍청한 거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과 부서의 참여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많은 기업들은 이런 문제를 깨닫고, 임직원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수용할 수 있도록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고 있다. 그런데 조직 문화에 손대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조직 문화가 강할수록 결속력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신들의 문화와 다른 이질적 아이디어에 대한 거부감은 커진다. 반대로 다양성을 수용하는 문화에서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서로 다른 목소리가 너무 많아져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
강한 조직 문화를 가지면서도 다양성을 수용하며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묘약은 없을까. 이 문제와 관련해 독특한 해결책을 제시한 논문이 최근 발표됐다. 캐롤라인 바텔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경영학과 교수 연구팀은 세계 최고 경영학 저널 중 하나인 Organization Science(Vol.20, No.1, 107∼117)에 실은 논문을 통해 ‘혁신 이야기(innovation narrative)’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혁신 이야기란 기업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영웅담이다. 숱한 난관을 뚫고 대규모 판매 계약을 체결한 스토리, 전혀 새로운 개념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아 시장을 평정한 이야기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혁신 이야기의 3가지 효과를 강조했다. 우선, 혁신 이야기는 여러 부서의 아이디어를 조합하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한 성공 스토리가 사내에 퍼지면 연구개발, 마케팅, 관리 등 다양한 부서 직원들이 혁신 이야기를 토대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에게 이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고민하게 된다. 결국 같은 이야기를 듣더라도 다른 맥락에서 해석이 이뤄지기 때문에 다양한 혁신 아이디어가 업무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혁신 스토리는 부서 간 협업도 촉진한다. 혁신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복잡하고 불확실한 문제에 부딪힌 직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혁신 스토리는 혁신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대 상황에 맞게 혁신 스토리가 변형되고 윤색되면서 조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기업을 만들고 싶다면, 사장됐던 과거 성공 스토리를 적극 개발하고 조직원들에게 확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남국march@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