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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종합

‘神話’에 안주 말고 대담한 변화를

조영호 | 24호 (2009년 1월 Issue 1)
Ⅰ. 서론
변화의 시대다. 1970년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에서 ‘항상성(permanence)’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올해는 지난해와 다르고 심지어는 오늘이 어제와 너무 달라 충격을 느끼는 시대가 온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미 이러한 시대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머리 좋은 경제 분석가들도 경제전망치를 한 해에도 수차례 변경한다. 서브프라임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는 했지만 지금 이 지경까지 되리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는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으니 자연계도 ‘미래의 충격’ 시대란 말인가.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는 자는 이미 150년 전에 찰스 다윈이 설파한 것처럼 ‘강한 자(the Strongest)’가 아니라 ‘적응하는 자(the Fittest)’다. 그래서 기업들은 정보기술(IT)을 도입하고, 마케팅 전략도 바꾸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아무리 해도 조직이 굳어 있거나 막혀 있다면 말짱 ‘도로아미타불’이다. 비즈니스(업무)의 변화는 1회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은 속성상 ‘안정’을 추구하며 ‘관성(inertia)’을 갖게 마련이다. 일하는 습관, 조직의 분위기, 사람들의 행동양식은 한 번 굳어지면 잘 바뀌지 않는다.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룰을 만들면 그 룰에 얽매이게 돼 목적보다 형식을 우선하는 ‘목적수단 전치 현상’이 일어난다. 변화의 시대에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조직을 바꿔야 하고, 조직 구성원들의 사고나 행동의 결정체인 문화까지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조직을 바꾼다는 것, 집단의 행동양식을 전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 보다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미국 하버드대의 코터 교수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에 활동한 100여 개의 크고 작은 조직의 변화를 살핀 결과 극히 일부만이 만족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고 보고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콘퍼런스보드 역시 원가절감을 위해 다운사이징을 시도한 기업 가운데 45%만이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조직변화에 대한 조언도 넘쳐나고 있다. 학자들의 연구서도 있고, 컨설턴트의 레서피도 있다. 실제 사례나 실무자들의 현장 경험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이야기도 있고, 르노닛산의 카를로스 곤 이야기도 있으며, 삼성의 이건희 회장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아직 조직변화에 대한 정형화된 이론이나 공식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것은 영원히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지침(가르침)’은 있다. 조직변화라는 것이 전혀 새로운 영역이라기보다 행동과학의 종합판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많은 문헌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을 나름대로 추려보고자 한다. 문헌에서 주장한 것에 더해 필자가 조직문화나 인력관리 변화 작업을 하면서 현장에서 경험한 것, 대학행정에 참여하면서 실제로 시행해 본 것을 다듬어서 ‘조직변화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조직변화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 할 것 같다.
 
Ⅱ. 조직변화의 신화와 진실
조직변화에 대한 많은 신화와 오해가 있다. 사실 이런 것들이 전면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부분적으로 맞고 일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믿음들은 속에 숨겨진 진실을 가릴 수도 있고, 전체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신화를 파헤칠 필요가 있다. 흔히 발견할 수 있는 4가지 신화를 검토해 보자.
 
신화 1 비전을 먼저 수립해야 추진력이 커진다. 어떤 변화를 시도하든 변화에는 방향, 곧 비전이 필요하다. 비전은 조직의 목표, 이상적인 미래상을 말한다. 5년 후, 10년 후 우리는 어떤 회사가 돼야 하고 어떤 멋진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정하는 것이 비전이다. 현대 리더십 이론도 비전에 근거해 조직을 이끌어 가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는 서둘러 비전을 선포하고, 장밋빛 미래상을 펼친다.
 
변화의 방향과 목표를 뚜렷하게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변화의 시작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비전보다 변화를 준비시키는 것,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 위기의식과 긴박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출발점이다. 거대 조직일수록, 과거에 성공한 기업일수록, 큰 변화를 노릴수록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네트워크 시대를 맞아 고전하던 IBM은 1990년대 들어 급기야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다. 침몰하는 거함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은 식품회사 나비스코의 CEO를 맡던 루이스 거스너였다. 그는 젊어서 맥킨지에서 활동한 전략 전문가였다. 1993년 4월 1 거스너가 IBM 수장으로 등장한 이후 언론과 시장에서는 전략가인 거스너가 IBM을 살릴 멋진 비전 또는 전략을 발표하기를 기대했다. 거스너의 발표를 애타게 기다리던 언론도 취임 100일까지는 그런대로 참고 있었다. 그러나 100일이 넘자 언론은 거스너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거스너도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드디어 그는 1993년 7월 27 맨해튼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제가 언제 IBM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에 대해 무수한 추측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IBM에 가장 쓸모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비전입니다.”(루이스 거스너[이무열 옮김],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p.91)
 
참석한 기자들은 깜짝 놀랐으며, 모두 자기 귀를 의심했다. 거스너는 취임 후 전 세계 IBM 사업장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시장을 파악하며, 급한 현안을 해결했다. 그리고 변화를 추진할 사람들을 모으고, 경영진을 개편했다. 거스너는 전략과 비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비전 수립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IBM의 새로운 전략과 비전을 발표한 것은 취임 1년이 지나서였다.
 
신화 2 점진적으로 변화를 추진해야 저항이 적다. 한때 감수성 훈련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낯선 사람들이 2주 정도 모여 합숙훈련을 하며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훈련을 받는 것이다. 강의를 듣고 토론도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며 깊은 성찰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유서도 쓰고 관속에 들어가서 자신의 장례식을 경험하기도 한다. 참가자들은 진한 감동을 받는다. 일상에 돌아오면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이고 새 삶을 살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감동’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게 이 교육 방법의 문제였다. 수많은 감격적 소감이 나왔지만 교육 후에 조직이 바뀌지 않으며,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크게 실망한 회사가 많았다.
 
이를 개선한 게 팀빌딩(team-building)이다. 감수성 훈련처럼 낯선 사람들을 모아 교육하는 게 아니라 실제 팀원들을 모아 훈련시킨 것이다. 팀빌딩을 통해 현실 문제를 끌어내 토의하고, 조직원들의 태도를 바꿔나가는 훈련이 이뤄졌다. 이는 앞의 감수성 훈련에 비해 감동적이진 않다. 그러나 실제 조직 변화에는 효과적이다. 아직도 팀빌딩은 현장에서 자주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조직개발(organization development)이란 이름 아래 이와 유사한 방법이 많이 개발됐다.
 
결국 이런 교육 방법들이 고민하는 핵심 사안은 어떻게 변화에 대한 저항을 줄일까 하는 문제다. 개인과 집단, 시스템과 전략을 바꾸는 과정에서 점진적 접근법을 취하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방법으로는 오히려 변화에 대한 저항이 커져 변화 자체가 중도에 좌절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친 기업이 늘고 있다. 그래서 전혀 다른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한때 업계를 풍미한 리엔지니어링은 근본적이고(fundamental) 극적인(radical) 변화를 추구했다. 재무적 성과를 강조하는 구조조정 역시 한 번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리엔지니어링이나 구조조정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급진적인 변화가 큰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 같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저항이 적다고 주장한다.
 
고통을 줄이겠다고 점진적으로 변화를 진행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인원 조정을 할 때 몇 명씩 계속 감원한다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언제 내가 포함될지 몰라 불안해할 것이다. 일시에 피를 흘리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조직은 하나의 시스템이다. 여러 요소가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다. 하나를 바꾸면 다른 부분이 저항해서 바꿔 놓은 하나의 요소가 원점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사람을 바꾸면 시스템(룰과 제도)이 저항하고, 시스템을 바꾸면 사람이 저항한다. 마케팅만 바꾸면 인사제도가 저항하고, IT만 바꾸면 회계시스템이 저항한다. 일시에 한꺼번에 바꿔야 오히려 저항을 줄일 수 있다.
 
신화 3 조직문화를 먼저 바꿔야 나머지가 해결된다. 조직문화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조직원들의 일하는 습관이고, 사람들의 행동을 가이드하는 분위기다. 어떤 조직은 상하관계가 철저하고, 문서작업에 의존한다. 어떤 조직은 수평적이고 행동 지향적이다. 일시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반복된다면 그것이 바로 조직 문화다.
 
조직을 바꾼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조직의 문화를 바꿈을 의미한다. 고객 지향적인 기업으로 만들고 싶으면 조직 문화가 고객 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직원들이 고객과 밀착해 고객의 정보를 수시로 접하고, 고객에게 친절히 대할 뿐 아니라 의사결정을 할 때도 무엇보다 고객을 우선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거스너는 취임 후 고위 경영진과 상견례를 하려고 회의장에 들어섰다. 거스너는 순간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참석자 모두 진한 청색 양복에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스너만이 파란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거스너는 직감했다. “IBM의 문제가 이것이구나, 이런 획일적인 문화로 어떻게 다양해지고 다극화되는 시대에 살아남겠는가.” 거스너는 이후 IBM에 만연된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분위기와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조직문화는 하나의 영역에 국한된 게 아니다. 이것은 연구개발(R&D)에도 나타나고, 고객서비스에도 발현되며, 회계나 재무관리에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문화를 바꾸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해결될 것만 같다. 그러나 처음부터 조직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조직문화를 변화시키려 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조직문화는 조직원들의 내면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며, 공기와 같이 자연스럽고 묵시적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이를 바꾸는 것은 마치 유령과 싸우는 것과 같다.

조직문화에는 창업가의 사상과 역사, 과거의 성공이 녹아있는데 단박에 이를 문제 삼고 바꾸자고 한다면 조직에 분란만 커지고 불필요한 논쟁이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좀 더 실체적인 것, 좀 더 가시적인 것부터 시작해 차차 문화에 접근해야 한다. 새로운 업무관행이 쌓이면 조직 분위기가 바뀌고, 새로운 행동방식이 성공을 거두면 조직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물론 적절한 때가 되면 문화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하지만, 변화 초기에 추상적인 문화에 집착하면 거센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신화 4 위대한 리더가 진정한 변화를 이룬다. 변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리더가 누구보다 먼저 필요성을 절감하고 앞장설 때 변화가 일어난다. 리더의 열정과 헌신과 솔선수범이 없는데 누가 위험하고 불확실하며 귀찮기까지 한 변화를 추진하겠는가. 그러나 현실에서 변화 지향적인 리더를 발견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변화를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리더를 모시게 됐다면 그 조직은 정말 행운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추진하는 리더는 슈퍼맨이 아니다. 전지전능한 독재자여서도 안 되며, 혼자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는 ‘일꾼’이어서도 안 된다. 그는 경청할 줄 알아야 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결과가 안 나와도 격려할 줄 알아야 한다. 리더가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뛴다거나 강압적으로 변화를 추진하면 조직원들은 모두 리더만 쳐다보거나 보이는 것만 형식적으로 바꿀 뿐이다. 조직원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 진정한 변화를 이뤄내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경영혁신의 대부로 불리고 있는 손욱(전 삼성전기·삼성SDI 사장) 농심 회장은 과거 사출공장의 한 과장이 5S(정리·정돈·청소·청결·습관화)운동을 해보겠다고 자청하자 절대 직원들에게 강요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고 당부했다. 그 과장은 다음날부터 30분 일찍 출근해 공장 설비를 청소하는 등 5S를 실천했다. 직원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2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1명이 동참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뒤 전 직원이 참여해 생산성 향상과 불량률 제로를 기록했다. 한편 다른 팀이 5S를 하겠다고 해서 지켜봤더니 한 달 만에 성공했다고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그런데 그 팀에서는 6개월 후 5S 이전 상태로 되돌아갔다. 팀장이 강압적으로 5S운동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두 달 동안 외롭게 혼자 청소를 한 팀장도 대단하고,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고 기다려 준 손욱 회장도 대단하다.
 
밖에서는 어미 닭이, 안에서는 병아리가 동시에 쪼아야 부화한다는 ‘줄탁동시( 啄同時)’가 조직변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리더와 구성원들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조직변화에서 너무 리더 역할을 강조하다가 메시아 신드롬에 빠진 조직이 많다. 위대한 리더, 메시아만을 기다리거나 모든 것을 리더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위대한 리더만이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리더가 오히려 실속이 없을 수 있다. 화려한 배경을 가진 사람, 언론 인터뷰를 멋있게 하는 사람은 변화를 오히려 망칠 수 있다. 위대한 기업을 연구한 짐 콜린스(베스트셀러 ‘Good to Great’의 저자)가 발견한 것처럼, 좋은 기업을 위대한 기업으로 변화시키는 리더들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명사가 아니었다. 도도한 개성을 가진 카리스마적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조용하고 겸손하며 심지어 부끄럼까지 타는 사람들이었다. 단지 조직을 살리려는 의지가 강하고, 대의를 향한 열정을 조용히 불태우는 사람들이었다.
 
Ⅲ. 조직변화의 원리와 기법
게슈탈트 심리학의 창시자이자 사회심리학의 개척자로 알려진 쿠르트 레빈이 이미 1930년대에 변화에 대한 기본 이론을 제시했다. 개인이나 집단도 물리현상과 마찬가지로 힘의 장(force-field) 속에 존재한다. 물리 현상에서 작용과 반작용이 있듯이 우리 삶 속에는 변화를 위한 압력과 변화에 대한 저항이라는 두 힘이 병존한다. 안정된 생활이 반복되고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지만 사실 내면을 들여다보면 변화의 압력과 이에 대한 저항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변화 압력이 높아지면 상황은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다가 이내 저항 또한 높아져서 다시 평형을 되찾는다. 결국 변화의 문제는 이 두 힘, 변화의 압력과 변화의 저항 문제로 집약된다. 따라서 변화를 이루려면 다음 3가지 기본원리를 따라야 한다.
 
기본원리 1 변화의 압력을 높여라. 변화를 이루려면 변화를 위한 압력을 높여야 한다. 변화의 압력은 강제력일 수도 있고, 경제적 보상을 통한 유인일 수도 있으며, 교육을 통한 깨우침일 수도 있고, 심리적인 설득이나 동조화일 수도 있다. 정부 정책 변화, 시장 상황 변화, 사회적 변화 등과 같이 외부에서 오는 압력일 수도 있고 지배구조 변화, 인력 구성 변화, 노조 출현, 신기술 도입 등 내부에서 시작한 압력일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생긴 압력일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만든 힘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조직에서 변화를 추진한다면 의도적으로 압력을 가하거나 자연스럽게 발생한 압력을 이용해야 한다. 변화의 압력을 창출하고, 끌어당기고, 조직 내에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기본원리 2
변화의 저항을 줄여라. 두 번째로 변화에 대한 저항을 줄여야 한다. 변화에 대한 압력을 아무리 높인다 해도 저항이 그만큼 또는 그 이상 커진다면 결과는 무위에 그치거나 오히려 나빠진다. 남편더러 담배를 끊으라고 아무리 잔소리해도 거기에 저항하는 힘이 세지고 더 피우고 싶은 욕망이 강해진다면 그 잔소리는 소용이 없다. 저항은 시스템이나 제도에 기인하는 것이 있고 인간적·심리적인 것이 있다. 인력관리를 유연하게 하고 싶지만 노동 관련 법 때문에 사람을 쉽게 해고하지도 못하고 비정규직을 대폭 활용하지도 못한다. 이는 전자의 저항이다. 반면에 귀찮거나 불안하거나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후자의 저항 요인이다.
 
수많은 저항 요인이 있지만 블루오션 전략의 창시자인 김위찬 교수는 다음과 같이 4대 저항을 골랐다.
 
인지적 저항: 몰라서, 필요성을 못 느껴서 저항하는 것.
자원적 저항: 변화를 추진하고 싶어도 필요한 자원이나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
동기부여 저항: 알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
정치적 저항: 반대파가 생겨 저항하는 것.
 
김 교수는 인지적 저항 극복을 위해서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가능한 한 현장을 보여 줘야 하며, 자원적 저항을 극복하려면 다른 곳에서 예산을 절감해 필요한 곳에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기부여 저항을 극복하려면 변화를 조기에 수용하는 선도그룹을 앞장세우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으며, 정치적 저항 극복을 위해서는 잠재적 반대파를 변화 과정에 참여시키는 형태로 연합전선을 구축하라고 조언했다. 변화의 저항을 줄일수록 변화는 순항하게 된다.
 
기본원리 3 변화의 저항을 줄일 수 있는 변화압력 방법을 선택하라. 어떤 사람은 변화의 압력을 높여서 설령 저항이 있더라도 이를 이겨내고 변화를 쟁취하려 한다. 필자는 이런 사람을 ‘용감한 사람’이라 부른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변화의 저항을 최대한 줄이려 하고, 이를 관리하는 데 노심초사한다. 필자는 이런 사람을 ‘사려 깊은 사람’이라 칭한다. 용감한 사람도 문제가 있다. 그는 조직에 많은 상처를 남긴다. 사려 깊은 사람도 부족한 점이 있다. 그는 시기를 놓치거나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변화 압력을 가하되 최대한 저항 발생을 줄이고 저항이 생기더라도 이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하다. 드라마 ‘대왕세종’을 보면 세종의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다. 세종은 우선 신료에게 책을 주고 경연을 한다. 그리고 변화 방안을 스스로 제안하게 한다. 또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만들도록 한다. 세종은 이를 계기로 큰 개혁을 추진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종은 정조와 비교하면 변화관리의 고수인 것 같다. 정조는 지나치게 변화의 압력만 가해 저항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
 
변화관리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변화의 압력을 높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저항 때문에 우물쭈물해서도 안 된다. 수많은 변화의 압력 방법과 수단 중에서 저항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변화의 압력을 바로 가하려 하지 말고 저항을 예측해 이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제 조직변화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앞의 기본원리 3가지가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인 실천원리를 10가지로 정리해 본다.
 
실천원리 1 희망적인 위기의식을 심어라. 변화를 추진하려면 우선 사람을 ‘편안한 소파(comfort zone)’에서 끌어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절박한 위기의식을 전사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먼저다. 정말 회사가 어려우면 위기감은 저절로 생긴다. 문제는 외형상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어떻게 위기의식을 심느냐 하는 것이다. 위기에서 변화를 추구하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잘 나가는데 위기감을 느끼고 미리 변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관점을 전환하고 이슈를 제기해야 한다. 국내시장에서 1, 2위를 다툰다면 관점을 바꿔 세계시장에서 우리가 몇 위인가를 점검해 보라. 매년 10%대로 성장해 왔다면 관점을 바꿔 경쟁사는 얼마나 성장했는지 살펴보라. 회사가 전체적으로 돈을 벌고 있다면 관점을 바꿔 사업별로 분석해 보라. 미래 사업에서도 돈을 벌고 있는가. 지식경제라는 이슈를 던져보자. 우리 조직에 무형자산이 얼마나 있는가. 인재전쟁이란 이슈를 던져 보자. 우리 회사에 인재가 오고 있는가.
 
그러나 위기의식만으론 부족하다. 자칫하면 직원들이 포기하고 오히려 움츠러들 수 있다. 가능성과 희망을 동시에 말해야 한다. 이미 조직원들의 사기가 죽어 있을 때는 자신감과 희망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위기의식을 강조했다가는 모두 도망칠지도 모른다. 이런 곳에서는 희망이 더 중요하다. 1933년 3월 대공황 와중에 미국 대통령직에 취임한 루스벨트는 취임사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라면서 미국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희망을 갖게 하려면 장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장점이 꼭 많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나라도 확실한 장점만 있으면 된다. 장점이 3개만 있어도 6개 있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연구도 있다.(조지프 포그먼, 피드백의 힘, p.134)

실천원리 2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여라. 논리적 사고는 현안 해결에 도움을 주지만 새로운 것을 찾거나 도약하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변화를 추구하려면 논리적인 ‘좌뇌’보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우뇌’를 활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병사가 전장에서 적군을 향해 돌진하는 것은 전쟁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이해해서가 아니다. 동료가 총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영어로 감정은 ‘emotion’이다. 문자 그대로 ‘motion’을 의미한다.
 
인간의 감정은 상세한 재무 분석이나 철저한 계획서에 의해서가 아니라 간단한 에피소드 하나, 짜릿한 동영상 한 편, 잠시 동안의 이색적인 체험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논리적인 숫자만으로 위기의식을 갖기 힘들다. 현장을 체험하거나 에피소드를 실감나게 전해야 한다. 1993년 삼성에서 신경영을 시작할 때 이건희 회장은 임원들을 미국에 불러 판매점을 다니면서 자사 제품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직접 보게 했다. 물론 도도한 임원들의 코는 납작해졌다. 삼성 사내방송이 찍은 세탁기 조립 과정은 충격이었다. 그 영상물에는 세탁기의 문짝이 맞질 않아 조립공들이 문짝 사출물을 칼로 깎아내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삼성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데이터가 의미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같은 상황을 분석하는 데이터라고 하더라도 단지 머리를 스쳐가는 것에 그칠 것이냐, 가슴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이냐가 문제다. 한 조선소에서 직원들의 근무 태도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새로 부임한 임원이 자료를 뽑았다. 하루 전기사용량 변화를 그래프로 그린 것이다. 오전 10시쯤이 되어서야 전기사용량이 피크에 오르고, 11시 30부터 전기 사용량이 급격히 떨어졌다. 오후에도 4부터는 전기사용량이 상당히 떨어졌다. 조선소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곧 전기를 쓴다는 것인데, 이 그래프는 아침 작업시간이 늦다는 것과 낮 12시가 되기도 전에 식사를 위해 일손을 놓고 있으며, 퇴근 시간에 임박해서도 태업이 이뤄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줬다. 이 그래프가 사내에 공개되자 아무도 시비를 걸지 못했다. 현장의 근무 태도가 바로 잡혔다.
 
비전을 세울 때도 그렇고, 캠페인을 할 때도 그렇고, 교육을 할 때도 그렇다. 정보를 제공하고 지식을 전수하는 데 그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마음을 사로잡을까 궁리해야 한다. 가시화와 체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CEO와 변화 추진팀이 보여 주는 열정과 신념이다. 사원들은 사장의 이야기 내용보다 사장의 표정과 음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닛산의 카를로스 곤은 이방인으로서 일본에 와 일본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원가절감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그를 따른 것은 그가 책상에서 도장만 찍은 것이 아니라 현장에 내려와서 사원들과 함께 했고 누구보다 솔선수범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가슴을 움직였다는 얘기다.

실천원리 3
대담한 목표, 심플한 메시지를 반복하라. 왜 3%를 개선하라 하면 아무것도 안 되고, 30%를 개선하라 하면 때로 50%까지 개선이 될까. 자주 지각하는 사원에게 5분만 빨리 오라 하면 이 사원은 조금 일찍 일어나서, 조금 빨리 밥을 먹고, 조금 빨리 걸어 출근 시간을 앞당길 것이다. 그러나 이래서는 지속적으로 효과를 내기 어렵다. 대신 30분 빨리 오라 하면 집에서 30분 빨리 나설 것이고 길이 안 막히기 때문에 회사에는 1시간 먼저 도착할 것이다. 아니면 아예 회사 근처로 이사할지도 모른다. 목표를 높게 잡아야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할 것이며, 창의적인 해법이 창출될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부품기업 TDK의 마스지마 쇼 대표이사 전무는 공장이 ‘24시간 365일 가동에 100% 양품’만 생산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마디로 이상적인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런 대담한 목표로 원가혁신을 단행해 세계 최강의 테이프 제조업체가 됐다. 크고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BHAG: Big, Hairy, Audacious Goal)를 갖는 것은 우수 기업의 특징이다.
 
혁신활동을 하거나 변화를 추진할 때 너무 많은 목표와 슬로건이 있으면 혼란이 야기되고 추진력이 약해진다. 품질이면 품질, 고객만족이면 고객만족, 식스시그마면 식스시그마, 지식경영이면 지식경영…. 뭐 하나만 하기도 어려운데 모두 다 하자고 내세우는 것이 보통이다. 다양한 혁신 기법은 서로 다 연결돼있기 때문에 하나만 잘해도 얼마든지 성과를 낼 수 있다. 초점을 맞추고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좋다. 일본에서 가장 일을 적게 하며, 정년이 70세이고, 연공제도를 고집하는 괴짜 회사 미라이공업에는 슬로건이 하나밖에 없다. ‘항상 생각하라(Always thinking).’ 슬로건은 단순하지만 조직 문화는 강하다. 직원들이 창안한 희한한 제품이 즐비하다.
 
목표나 슬로건이 정해지면 간부들은 수없이 이를 반복해서 강조해야 한다. 출범식 할 때 한 번 외치고, 회의할 때 한 번 언급하고, 교육할 때 잠깐 논의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시도 때도 없이, 사장도 부사장도 팀장도, 사보에서도 방송에서도 게시판에서도, 귀에 못이 박히고, 눈에 깍지가 낄 정도로 반복하고 반복해야 한다.
 
실천원리 4 행동 변화를 위해 제도적인 힘을 이용하라. 행동 변화는 붐을 조성하고 말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일본 MK택시는 친절교육을 매일 반복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사는 어떻게 하고, 손님의 짐은 어떻게 받아 실으며, 청소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이 철저하다. 이를 기초로 직원 평가를 해서 부족한 경우 재교육을 실시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룰과 매뉴얼이 필요하다. 3M에서는 창의적인 문화를 대변하는 제도가 여럿 있다. 15%룰은 근무시간의 15%를 상사의 승인 없이 재량으로 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50%룰은 매출액의 50%를 최근 3년 안에 개발된 제품으로 올린다는 것이다. 제네시스 제도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 사내에 판매하는 것이다. 고객에게 적기에 상품을 공급하는 도요타의 JIT 역시 후공정 인수 제도를 통해 정착됐다. CJ에서는 수평조직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부를 때 직책이나 직급을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게 하고 있다. 하급사원이 상급자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회사에서는 점심 때 같은 팀원들끼리 자리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타 부서와도 비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라는 얘기다.
 
사원들의 행동을 결정할 때에는 인사제도가 영향을 끼친다. 평가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보상하느냐가 중요하다. GE처럼 인사고과에서 하위 10%를 매년 가리고 전보시키거나 퇴사시킨다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그러나 팀워크를 강조하는 회사에서 이런 방법을 쓰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이런 조직에선 개인 평가보다 집단 평가를 중시해야 한다.
 
제도의 힘을 빌린다 하더라도 초기부터 너무 제도에 의존하고 제도를 남발하는 것은 좋지 않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사내에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 가능한 한 사원들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제도를 도입하는 게 좋다.
 
실천원리 5 변화 성과를 공유하라. 변화는 통상 회사나 조직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직원이 일방적으로 회사를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저항하게 돼 있다. 열심히 변화에 동참해 봤자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면 누가 열심히 하겠는가. 초관리 운동으로 유명한 삼원정공의 경우 과거에 통상 2시간씩 시간 외 작업을 했다. 회사 측은 한 시간만 시간 외 근무를 하고, 10시간 분량을 생산할 경우 시간외 수당 1시간 분을 추가로 계산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직원들은 이를 해냈다. 그래서 내친김에 8시간만 일하고 10시간 분량을 생산하자고 제안했더니 직원들은 이마저도 해냈다. 그래서 8시간 근무하더라도 2시간분의 수당을 줬다. 삼원정공은 초관리 운동을 하면서 절약한 시간을 모아 유급휴가를 늘리고 급여도 올려줬다.
 
변화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 반드시 금전적일 필요는 없다. 월마트의 샘 월턴은 매출액과 이익 목표를 달성하면 연말에 월스트리트에서 인디언 복장으로 춤을 춘다고 약속했다. 목표는 달성됐으며, 월턴은 춤을 췄다. 직원들이 받은 보상은 흐뭇한 마음과 성취감이었다. 휴렛패커드(HP)에서는 훌륭한 연구원에게 ‘황금바나나 상’을 준다. 옛날 연구소장이 연구소를 순회하다가 훌륭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한 연구원에게 줄 것이 없어 바나나를 상으로 준 일화에서 이 상은 유래했다. 조직이 성과를 알아준다는 표시다.

변화에 참여해 얻은 결과가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해충 방재회사 세스코는 쥐 잡는 회사로 출발했다. 쥐나 바퀴벌레를 잡는 직원들은 창고나 지하실에서 일해야 했으며, 제대로 전문가 대접도 못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끼리 서로 욕설하고 비하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창업자의 아들인 전찬혁 씨는 이를 바로 잡아나갔다. 멋있는 제복을 입혔으며, 서로 칭찬하는 연습도 시켰다. 아예 회사 이름을 바꾸고 TV 광고까지 했다. 이런 변화는 원래 사원들의 체질과는 맞지 않았다. 사원들은 별 수 없이 소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차차 이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느꼈다. 고객들이 자신들을 알아주기 시작했으며, 훌륭한 대접도 받으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같은 원리로 삼원정공에서는 제안할 때 생산성을 올리는 방법, 원가를 절약하는 방법, 회사를 위한 방법을 찾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이 일을 하면서 더 편하게, 더 빨리, 더 보람 있게 할 방법’을 고안하라고 요청한다.
 
실천원리 6 성공 모멘텀을 이어가라. 기업이라는 거대한 체계를 하루아침에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인내심이 필요하며, 장기적인 노력이 소요된다. 그러나 변화를 너무 장기간 끌고 갈 경우 ‘혁신 피로’가 생긴다. 단기적인 성공이 필요하다. 단기적 성공이 파도를 타고 상승 무드로 이어져야 한다. 한 번의 성공은 자신감을 가져오고, 두 번의 성공은 내부 역량을 높여준다. 반대자들의 명분도 약화시킨다.
 
특히 초기 성공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의미 있는 과제를 성공시켜야 한다. 경북 안동의 안동병원은 1992년 위기를 탈출하려고 친절 운동을 펼쳤다. 친절로 유명한 MK택시에 전 직원이 가서 친절교육을 받은 것이다. 의사, 간호사, 기사 할 것 없이 전 직원이 일본 교토에 가서 “고맙습니다”는 인사말까지 MK 방식을 통째로 배워 실천했다. 환자보고 고맙다고 하니 처음에는 환자들이 화를 냈다. “내가 아픈 것이 그렇게 고맙습니까”하고 따졌다. “그게 아니라, 다른 병원엘 가지 않고 저희 병원에 와주셔서 고맙다는 말입니다”라며 오해를 풀었다. 친절운동은 곧바로 효과를 냈다. 고객만족도를 높여서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전국 병원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올랐다. ‘우리가 의사고 간호사인데 택시회사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느냐’며 불만을 터뜨린 직원들이 순한 양으로 변했다. 여세를 몰아 삼원정공에서 하던 초관리 운동도 시작했으며, 여기서 성공을 거두자 지식경영도 도입했다.

실천원리 7
내부의 불씨를 살려가라. 내부 인력만으로 변화와 혁신에 성공하기는 어렵다. 외부인의 지식이나 내부 이해관계가 없는 중립적 인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 변화작업에 외부 컨설턴트가 동원되곤 한다. 그러나 외부인의 역할은 제한적이어야 한다. 외부 인사들은 내부의 불씨를 찾아내고 이를 확산하는 촉매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내부인사를 주축으로 변화를 추진할 ‘리딩그룹’을 만들어야 한다. 변화에 긍정적인 사람, 역량이 있으면서 동시에 신망이 있는 사람이 이런 역할을 맡아야 한다. 업무 능력도 고려해야 하지만 이보다는 태도가 중요하다. 긍정적이며 더불어 일할 수 있고,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조직 내에 이미 좋은 관행이 있으면 이를 확대시켜야 한다. 처음에 조그만 시도를 해서 성공하면 이를 적극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LG전자 창원공장에서는 제품이나 공정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 획기적 개선을 하자는 취지로 인재들을 모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다른 일은 전폐하고 오로지 개선 과업에만 전념하게 했다. 이들은 소음이 적은 세탁기를 개발하고, 생산라인을 3분의 2로 줄였다. 완전히 풀어헤쳐서 새로 설계하자는 의미에서 TDR(Tear-Down & Redesign)이라 명명된 이 혁신활동은 1996년 처음 몇 팀으로 시작해 현재 1000여 개 팀으로 확대돼 마치 GE의 워크아웃처럼 LG전자 문화의 일부가 됐다. LG의 다른 계열사도 이런 활동에 동참했다. TDR팀의 성과는 매월, 매 분기에 전사적으로 공유됨으로써 변화의 불씨가 이어지고 있다.
 
실천원리 8 업무 성과에 취해 문화를 망가뜨리지 마라. 변화는 시급한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가시적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면서 현업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더욱 좋다. 조직문화 같은 다소 추상적인 분야의 변화는 성공을 경험하고 자신감을 얻은 뒤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문화가 덜 중요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는 오히려 문화가 정말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업무 중심적인 가시적인 활동에 치중하다 보면 자칫 문화를 망가뜨리는 행위를 할 수 있다. 이건 정말 안 된다. 초기 성공을 이루려고 부도덕한 방법으로 실적을 올린다거나 팀워크를 해치면서 성과를 내는 행동을 용납해선 안 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룰을 어기면 사후에라도 수상이 취소된다. 가시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성취를 해야 한다. 여기서 의미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조직문화’에 걸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조직문화 측면에서 발전시켜야 할 시도와 가차 없이 버려야 할 시도를 명확하게 가려야 한다. 더러는 반문화적인 행위나 관행을 가려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연출’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포스코는 공장 건설 과정에서 부실공사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공정이 상당히 진행되었음에도 이를 폭파한 뒤 처음부터 새로 지었다. 폭파 현장의 굉음이 직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GE
에서는 리더십을 평가할 때 성과축과 가치축을 각각 나눠서 본다. 둘 다 좋은 경우는 최상이다. 둘 다 나쁜 경우도 고민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성과는 높지만 가치가 낮다든지 가치는 높지만 성과가 높은 경우가 문제다. GE에서는 가치를 우선으로 친다. 가치가 높고 성과가 낮은 경우에는 교육을 시키고 기회를 준다. 그러나 성과가 높더라고 가치에서 문제가 있다면 해고하거나 제재를 가한다.
 
실천원리 9 변화의 단계를 밟아라. 조직 변화에도 순서가 있다. 위기의식이 먼저고 비전이 나중이며, 비전이 먼저고 제도가 나중이고 하는 식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레빈은 해빙(unfreezing)-변화(changing)-재동결(refreezing) 등 3단계로 나눴다. 오랫동안 웰치를 도와 GE에서 변화 작업을 도운 미시간대의 노엘 티키 교수는 각성(revitalizing)-비전수립(visioning)-변화추진(change institutionalizing)의 3단계로 나눴다. 존 코터 교수는 좀 더 자세하게 변화 8단계설을 주창했다. 긴박감 조성, 변화선도팀 구성, 비전 정립, 비전 전파, 행동 유발, 단기적 성공, 변화의 지속, 변화 정착 등이다. 손욱 회장은 삼성에서 7단계로 변화를 추진했다. 즉 현실인식, 위기의식, 비전·목표·역할 인식, 공감대 형성, 불씨를 바다로, DNA화·시스템으로 정착, 업그레이드 능력 배양이 그것이다.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변화에 대해 준비하고, 방향을 설정해 공유하며, 구체적인 행동으로 성과를 낸 뒤 이를 반복해서 정착시키라는 것이다. 요컨대 아무리 급해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변화에 대한 방향을 공유해야 하며, 변화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이를 정착시키는 노력을 지속하라는 의미다. 실제로 현실에서는 이런 단계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회사 나름대로 여건을 고려해 앞에서 제시한 흐름을 지키면서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설령 한 단계를 뛰어넘는다 해도 결국 나중에 가서는 앞의 단계를 다시 밟게 되기 때문에 결국 이중으로 비용이 든다. 문제는 어느 시점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현장에서의 느낌과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실천원리 10
상시 변화의 DNA를 심어라. 변화를 정착시킨다는 것은 조직원들에게 변화를 하나의 습관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이런 습관이 모여 조직 문화로 승화된다. 따라서 평범한 진리지만 지속과 반복이 중요하다. 친절 문화도 반복에서 나오고, 청결을 강조하는 5S 문화도 4, 5년 반복해야 정착된다. GE의 워크아웃 문화도 1988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반복되기 때문에 GE 문화로 불린다.
 
또 조직 발전에 도움이 되는 문화를 육성해야 한다. 창의적인 문화, 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문화, 내부 지향적이 아니라 외부 지향적인 문화, 과거 지향적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문화가 필요하다. 문화를 승화시키고 변화를 하나의 DNA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반복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언어가 중요하다. 사회 전체 문화도 그렇듯이 조직 문화도 결국 언어를 통해 유지되고 전수된다. 조직에서 변화 지향적이며, 창조적인 언어를 많이 개발해 전파해야 한다. 일정한 시점에서는 소위 바이블이나 텍스트라고 불리는 조직문화 이념서가 필요하며, 여기에 조직 나름의 경영원칙과 개념·언어 등을 담아 교육하고 활용해야 한다. SK가 가지고 있는 경영지침서인 SKMS 같은 것이 대표적인 조직문화 텍스트다. 또 한 번 이런 게 만들어졌다고 해서 결코 영원할 수 없다. 필요에 따라 개정해야 한다.
 
둘째는 교육이다. 문화는 곧 교육이라 할 수 있다. 문화를 정립하기 위해, 새 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GE는 크로턴빌의 연수원을 조직 문화 창조의 산실로 삼았다. 여기서 전 세계에 GE 문화를 전파할 리더가 양성된다. 신입사원 교육이 특히 중요하다. 신입사원들에게 어떤 것을 심어주고 보여 줄 것인가 하는 것이 곧 조직문화의 핵심 내용이다.
 
마지막으로는 인사가 문화를 유지한다. 새로운 변화를 실천한 사람이 승진을 하고 대우를 받아야 문화가 유지되고 정착된다. 특히 변화가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변화를 추진한 리더의 후계자가 잘 선정돼야 한다. 한참 요란하게 변화를 추구했더라도 CEO가 바뀌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외부에서 CEO를 영입한 경우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길게 보면 변화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변화를 유지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다. 짐 콜린스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도약시킨 CEO 11명 중 10명은 회사 내부 출신이었고, 그 가운데 셋은 가족 세습 경영자였다. 비교 기업들은 6배나 자주 외부 인사들을 영입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속적인 큰 성과를 내는 데 실패했다.”(짐 콜린스[이무열 역], 좋은 기업을 위대한 기업으로, p.59)
 
Ⅳ. 결론
평사원들은 오늘의 일을 계속해도 월급을 받을 수 있지만 간부는 개선을 해야 월급 값을 한다는 말이 있다. 임원은 개선이 아니라 혁신을 해야 한다. CEO는 혁신을 넘어서서 재창조를 해야 제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간부의 개선은 업무를 단축시키는 것이지만, 임원의 혁신은 프로세스 전체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요즘같이 급변하는 시대에 농경시대와 같은 속도로 변화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 단기간에 신속한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변화는 천재나 영웅만이 하는 일은 결코 아니다. 변화의 챔피언들은 사실 평범한 ‘우리’다. 변화는 엄청난 과학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생활의 지혜다. 다만 위기의식과 희망, 열정과 끈기, 신뢰와 나눔이 요구되는 그런 지혜다. 우리 기업도 이제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했다. 좀 더 지혜로운 변화관리에 나서길 기대한다.

[DBR TIP] 현대오일뱅크와 KT파워텔 사례 리뷰

현대오일뱅크와 KT파워텔은 모두 단기에 조직문화를 바꾼 성공 사례다. 이들은 앞에서 설명한 성공 요인을 대부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다른 점이 많지만 두 조직 모두 조직 변화의 기본을 잘 따르고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하고 싶다.
 
첫째, 두 조직 모두 최고경영자(CEO)가 나서서 조직 내에 위기의식을 심고 타성에 젖어 있던 조직원들을 움직였다. CEO의 솔직하고 디테일한 설명에 직원들은 ‘회사가 이런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나타냈으며, 의례적인 ‘비상경영’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위기의식이 생겨났다. 사장이 현장을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직접 만나 육성으로 호소한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에서는 위기의식뿐 아니라 동시에 강점을 발견하고 자존심도 약간 자극하면서 희망을 불어 넣은 점도 높이 살 만 했다.
 
둘째, 가시적인 변화를 통해 공감대를 확산했다. 우선 사장 주변에서 가시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사장실 앞에 늘어선 결재라인을 없애고 수백 쪽에 이르던 회의 자료도 없앴다. 복장을 자율화하고, 회의실을 가장 전망 좋은 곳으로 재배치한 것도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좋은 신호였다. 적자 탈출, 원가 절감 과제를 선정해 현장 혁신을 추진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구체적인 업무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쌓여 갔다. 여기서 얻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e메일 결재, 액션 러닝, 권한 위임, 인사제도 개선 등으로 변화의 깊이를 더해 갔다.
 
셋째, 과감한 목표를 지향하면서도 내부에서 불씨를 찾았다. ‘국내 최고회사’(현대오일뱅크), ‘2년 만에 흑자전환’(KT파워텔)이라는 대담한 목표를 제시하면서도 CEO는 은행이 아니라 직원들을 먼저 찾아갔으며, 그들과 진심 어린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구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액션 러닝을 통해 직원들이 과제를 발견하고 스스로 공부해서 결과를 찾게 기회를 줬다.
 
넷째, 교육과 성과 공유 등을 통해 참여를 확대했다. 현대오일뱅크 서영태 사장은 구조조정을 하는 어려운 사정임에도 교육비는 줄이지 않았으며, KT파워텔 김우식 사장도 전사적인 원가 절감 운동을 펼치면서도 회식비와 부서운영비는 늘려줬다. 이 또한 실제로 하기 어려운 일로 높이 사고 싶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직원들이 변화의 주인으로 자리를 잡아 간 것이다.
 
다섯째, 인사제도 혁신이 잘 이루어졌다. 현대오일뱅크는 과감한 인사 개편을 통해 성과주의를 도입하고, 사원들이 회사의 재무 성과에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사실 도입 초기에 저항이 컸을 것이다. 인사관리 변화를 통해 사원 행동이 지속적으로 바뀌게 한 것은 사전에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비전에 대해서도 설득이 됐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물론 대기업인 현대오일뱅크와 KT파워텔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아무래도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제도적 장치를 많이 이용하는 데 비해 KT파워텔은 대면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을 많이 활용했다.
 
2002년부터 시작된 현대오일뱅크의 변화는 이제 상당히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KT파워텔의 경우 조직 변화가 2년밖에 되지 않았다. KT파워텔은 현재의 성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의 파도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의 자신감을 기반으로 새로운 역량을 발휘했으면 한다. 현대오일뱅크도 여기에서 그칠 수 없다. 현재의 변화 상태를 조직문화로 정착시키고 상시 변화의 DNA를 구축해야 한다.
 
필자는 아주대와 KAIST를 졸업하고 프랑스 엑스마르세유 제3대학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미시간대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조직학회 등에서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현장 연구와 기업체 컨설팅 경험이 풍부한 기업문화 및 조직변화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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