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역사

멸종을 부른 아일랜드엘크의 ‘멋진 뿔’

326호 (2021년 0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아일랜드엘크는 종의 진화 과정에서 자연선택과 성(性)선택의 균형이 깨져 종국엔 멸종에까지 이르게 된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로 내부 논리가 외부 논리를 압도하는 상황은 불행을 부른다. 감정적인 평가나 사내 정치와 같은 내부 지향적인 요인이 조직을 갉아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인정하고 시대가 필요로 하는 평가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밖에서 통하는 기준이 안에서도 인정받고, 이것이 밖에서 능력을 보여주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중세 유럽에서 신성로마제국은 유럽 역사의 한 축을 이루는 존재감 있는 나라였다. 962년에 세워져 1806년까지 844년 동안이나 존속한데다 영토도 넓었다. 지금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에 있었던 이 나라는 이름 그대로 기독교를 신봉하는(Holy) 고대로마의 후예(Roman)로서 제국(Empire)이 되고자 했다.

그런데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가 이 이름에 대해 통렬하게 한마디 했다. 신성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로마인이 세운 나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제국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으나 성스럽지 않았고 로마인이 세운 것도 아니었다. 이 나라의 주축인 게르만족은 지금의 프랑스나 스페인, 영국처럼 로마화된 적도 없어 로마와는 관련이 없다시피 했다. 또 제국은 여러 민족을 잘 리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나라는 주로 독일 지역에 있었던 많은 소국의 합병체였다.

멸종의 역사에도 이와 비슷한 이름이 하나 있다. 지금으로부터 1만여 년 전 사라진 아일랜드엘크(Irish Elk)다. 아일랜드엘크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일랜드에 살았던 사슴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이 그런 것처럼 아일랜드엘크 또한 이름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아일랜드만이 아니라 서아시아와 유럽 전역에 퍼져 살았고 엘크도 아니었다.1 사슴과에 속하긴 하지만 유럽에서 부르는 엘크와 아일랜드엘크는 인간과 침팬지가 다르고, 태권도와 유도가 다르듯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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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유럽에서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오래된 화석을 수집하는 게 고급 취미였다. 귀족들이 너나 없이 돈을 들여 화석을 수집하자 세상을 돌아다니며 이걸 발굴해 파는 이들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지금의 아일랜드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이 동물의 뼈를 자연스럽게 아일랜드엘크라고 불렀다. 나중에 ‘신원 확인’이 되면서 메갈로케로스(megaloceros, 거대한 사슴)란 제대로 된 이름을 얻었지만 사람들의 입에 익숙해진 탓에 지금도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거대한 사슴’이라는 이름은 정확할까? 학자들이 붙였으니 그럴 것이다. 얼마나 거대했길래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정말 크긴 했다. 어깨높이가 최대 2m나 됐고 몸길이는 3m였으니 말보다 큰 코끼리만 한 덩치였다. 하지만 진짜 대단한 건 엄청나게 큰 뿔이었다. 그래서 ‘큰 뿔 사슴(Giant deer)’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을 정도인데 너비가 최대 3∼4m에 무게가 45㎏이나 된다. 3∼4m면 어른 두 명의 키보다 큰 길이다. 오랜 진화의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아주 희귀한 뿔이다.

이상한 것은 일반적으로 덩치가 크면 생존력도 그만큼 강하다는 뜻인데 40만 년 전쯤 출현해 잘 살아오던 이들이 1만여 년 전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우리 사피엔스가 생겨난 지 20여 만년쯤 되니 39만 년은 대단히 긴 시간인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다. 왜 사라졌을까?

이들보다 작지만 아주 비슷하게 생긴데다가 지금도 살아 있는 말코손바닥사슴을 보면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말코손바닥사슴은 이름 그대로 말처럼 생긴 머리에, 뿔이 손바닥처럼 넓게 펼쳐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우리가 ‘사슴’ 하면 떠올리는 그런 사슴이 아니다. 앞에서 ‘작다’고 한 건 메갈로케로스에 비해 작다는 것일 뿐 사실은 엄청나게 크다. 몸무게가 600∼800㎏쯤 되니 덩치는 말과 비슷하고, 뿔의 너비는 1∼2m, 무게는 18㎏이나 된다. 이들은 왜 이렇게 큰 뿔을 갖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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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뿔의 용도는 가을에 시작되는 대대적인 ‘짝짓기 토너먼트’를 통해 알 수 있다. 일 년 중 최대 이벤트인 이 대회에는 수컷들이 선수로 참가하고 암컷들은 관람객 겸 심사위원이 되는데 쉽게 말해 수컷들끼리 일대일 승부를 벌여 이기는 놈이 암컷을 차지하는 것이다.

대결 방식은 간단하다. 두 수컷이 치킨게임을 하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커다란 뿔이 있는 머리를 앞으로 들이밀고 말이다. 대충하는 게 아니다. 마치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권총 대결을 하듯 몇 미터씩 뒤로 물러섰다가 그대로 달려와 꽝 하고 부딪친다. 덩치가 있으니 박치기 충돌이 가벼울 리 없다. 수백 ㎏에 이르는 충돌 소리가 숲을 뚫고 1㎞까지 퍼질 정도다. 만일 이런 식으로 사람과 부딪친다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둘 중 하나가 물러날 때까지 계속한다. 지면 짝짓기는 물론이고, 후세를 남길 수 없기 때문에 양쪽 모두 쉽게 물러서지 않아 며칠씩 싸울 때도 있다. 안 되겠다 싶은 쪽이 꽁무니를 뺄 때까지 말이다.

날카롭고 커다란 뿔이 있으니 이걸 창이나 칼처럼 휘둘러 상대의 몸을 공격하면 쉽게 이길 수 있을 텐데 왜 ‘단순 무식하게’ 박치기만 할까 싶지만 여기엔 나름의 ‘심오한’ 의미가 있다. 많은 동물이 후세를 남기기 위해 이들처럼 치열하고 격렬한 대결을 벌이지만 의외로 상대를 죽이지 않는 일이 많다. 요즘 반려견으로 이른바 ‘종족 부흥 시대’를 맞고 있는 개들도 그렇다. 이 녀석들은 자신보다 센 상대가 나타나면 배를 드러내고 벌렁 눕는데 이건 ‘나의 가장 약하고 중요한 부위를 당신 처분에 맡긴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항복 표시다. 그러면 승자는 더이상 공격하지 않고 위협만 몇 번 하면서 자신이 승자라는 걸 확실히 한 후 거기서 그친다. 일종의 신사협정이다.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인데 그래서 말코손바닥사슴 수컷들도 이 ‘협정’을 지키기 위해 오로지 박치기로만 승부한다.

문제는 이렇게 험난한 대결을 통해 최종 승자가 돼도 절차가 하나 더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암컷의 ‘OK 사인’을 받아야 한다. 토너먼트가 예선이고 이게 본선인 셈이다. 본선에서는 평가 항목이 여럿 있지만 대체로 뿔의 크기와 모양새를 본다.

이유가 있다. 수컷은 짝짓기를 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암컷은 오랜 기간 임신하고 새끼를 낳고 길러야 한다. 수컷에 비해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그래서 가능하면 강한 유전자를 가진 수컷을 선택하는 게 좋은데 강한 유전자를 가졌는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방법은 강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표식을 찾는 것이다. 말코손바닥사슴에게 이 표식은 커다란 뿔이다. 그냥 큰 뿔이 아니라 크면서도 멋지고 균형 있게 좍 펼쳐진 뿔이어야 한다. 예선을 통과했는데도 뿔이 멋지지 않으면 안 된다.

왜 뿔일까? 이 뿔은 매년 만들어야 하는데 크고 멋지게 만들려면 보통 공력으로는 어림없다. 만드는 것도 힘들지만 유지하는 건 더 어렵다. 특히 크고 무거운 뿔이 있으면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쉬울 뿐 아니라 쉽게 잡힐 수 있다. 장애물이 많은 숲속에서 빨리 달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뿔을 가지고 있다는 건 생존력이 대단하다는 뜻이 된다. 한마디로 ‘나는 이런 거추장스러운 뿔을 가지고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성선택의 ‘핸디캡 원리’인데 불리한 핸디캡을 충분히 감당하고 남을 만큼 강하다는 것이다. 수컷 공작이 크고 멋진 꼬리로 과시를 하고, 부자들이 비싼 스포츠카를 소유하듯 말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성공의 저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 멋지고 매력적인 뿔과 이걸 선호하는 성향이 종족의 생명력을 좀먹는 화근이 되고 저주가 된다. 왜 이게 저주가 되는 걸까? 지금까지 설명한 상황이 이어지면 수컷들의 유일한 삶의 목표는 뿔이 된다. 삶의 온 에너지를 이 멋지고 커다란 뿔을 만드는 데 쏟는다. 경쟁 레이스가 가열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뿔은 크고 멋있어지고 암컷들의 선택 또한 더 크고 더 멋있는 뿔에 집중된다. 이런 주고받기가 계속되면 어느 순간 커져만 가는 뿔이 종족의 생명력을 떨어뜨리는 선을 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뿔이 어느 이상 커지면 수컷들의 생존력은 급격하게 추락한다.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까닭이다. 이때부터 수컷들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살려면 크고 멋진 뿔을 포기해야 하지만 이걸 포기하는 순간 후세를 남기는 것도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수컷들은 어느 쪽을 택할까?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따르면 유전자는 몸의 생존이 아니라 유전자의 생존을 원한다. 몸을 희생해서라도 짝짓기가 가능한 쪽을 선호하는 것이다. 암컷들도 ‘높아진 눈’을 하향 조정하지 않는다. 전체 상황을 보지 않고 눈앞에 있는 뿔만 본다. 뿔이 작아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집단은 이렇게 살아남은 수컷을 외면해 버린다. 이런 수컷은 생존할 수 있지만 유전자를 남길 수 없게 된다.

크고 멋진 뿔을 가진 수컷은 죽기 쉽고, 작아서 살 수 있는 수컷은 외면당해 후세를 남기지 못하는 이런 상황은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갈수록 줄어들게 한다. 이들이 태어나야 할 자리에 불행을 끌어들인다. 그럼에도 게임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마냥 달린다. 모든 관심이 내부에 쏠려 있어 모두들 여기에만 신경을 쓰고 외부 상황엔 눈을 감거나 평가절하한다. 수학자 로널드 피셔가 제기한 ‘폭주 선택(runaway selection)’ 이론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살아온 구력이 있으니 어찌어찌 버티기는 하지만 환경의 변화가 조금만 강하게 밀어닥쳐도 쉽게 부서질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아일랜드엘크가 멸종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이런 지향성이 극에 달했던 상황에서 점점 생존력을 높여가던 호모사피엔스를 만났던 것이다. 그들은 이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종족 전체로 보면 작은 뿔이 유리한데 내부 논리에 따라 큰 뿔만을 선호하다 보니 스스로 불행의 근원을 키우고 말았다. 보통 멸종은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일어나는 게 보통인데 스스로 멸종을 자초할 수도 있다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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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두 축을 바탕으로 진화를 만들어간다. 자연선택과 성선택이다. 자연선택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길러 자연으로부터 선택받는 것이고, 성선택은 바로 이런 능력을 가진 상대를 선택해 더 나은 후손을 만드는 것이다. 이 둘은 우리의 두 다리 길이가 같아야 하듯 비슷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하지 않아야 세대를 이어가며 살아갈 수 있다. 아일랜드엘크처럼 성선택 기준이 자연선택이 허용하는 선을 넘으면 생존에 써야 할 에너지를 크고 멋진 뿔을 만드는 데 쓰게 된다. 환경적응력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연애를 하느라 월급을 다 써버리는 것과 같다. 생활력은 별로인데 멋진 스포츠카, 멋진 집을 가졌다고 좋은 신랑감이나 신붓감으로 인정받는다면 어떨까? 그 사회가 오래갈 수 있을까?

경제학과 진화생물학을 융합하는 연구로 유명한 미국 코넬대의 로버트 프랭크 교수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이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고 한다. 바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자연선택)이 안에서도 인정을 받는(성선택) 기준이 돼야 하고, 안에서 선택되는 기준이 바깥에서도 통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연선택의 기준과 성선택의 기준이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밖에서 인정받는 능력이 안에서도 그래야 하고, 안에서 인정받는 능력이 밖에서도 통해야 한다. 아일랜드엘크들은 결코 대충 살지 않았다. 여느 생명체가 그렇듯 최선의 노력으로 최고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균형을 잊어버렸다. 그러던 차에 강력한 상대를 만나다 보니 경쟁력을 회복할 시간이 없었다.

내부 논리가 외부 논리를 압도하는 상황은 언제나 불행을 부른다. 야생의 원숭이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먹을 게 생겼을 때 그걸 먹는 순서가 언제나 서열에 따라 이뤄지는, 그러니까 내부 서열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곳의 하위 서열들은 새로운 먹이원이 생겼을 때 집단에 알리지 않는다. 자신이 발견했는데도 자신에게 주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왜 알리겠는가? 결국 집단 모두 손해가 되는 일이 생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고 승진이 돼야 하는데 상사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고, 눈앞에 보이는 일, 하기 쉬운 일만 잘하는 내부 지향적인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고 승승장구하면 어떨까? 객관적인 능력이 기준이 돼야 하는데 학연, 지연이 기준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조직, 이런 사회는 갈수록 미래가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 이익과 가문의 이익, 당파의 이익이 나라의 이익이 돼야 하는데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했던 조선이 허망하게 무너졌듯이 말이다. 얼마나 신뢰도를 잃었는지 조선 왕조는 왕정복고 움직임이 거의 없다시피 했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말코손바닥사슴의 뿔은 더이상 커지지 않고 있다. 진화의 개념을 발견한 다윈으로 하여금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했던, 그래서 진화의 또 다른 축인 성선택 원리를 발견하게 했던 공작의 꼬리와 계속 하늘 높이 치솟던 기린의 목도 성장을 멈췄다. 수컷의 덩치가 암컷보다 서너 배나 큰 바다코끼리 수컷들도 마찬가지다. 덩치를 키울수록 경쟁자와의 대결에서 유리한데도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있다.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일까? 진짜 어느 선을 넘으면 생명력이 낮아질까?

수컷 공작의 꼬리 길이와 전체 공작새 수 사이의 연관 관계를 파악하려 했던 한 연구에 의하면 그렇다. 수컷 공작들의 꼬리가 길어질수록 수컷들의 인기가 높아져가는 상황이었다. 수컷은 꼬리를 키우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암컷은 그런 수컷을 선택하는 최선을 다했는데, 그럴수록 어느 순간부터 전체 공작새 숫자가 줄었다. 아일랜드엘크의 멸종이 증명된 것이다.

사회적 관계에서 ‘평가’는 사람들의 행동을 만들어낸다. 특정한 평가 기준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에 따라 행동한다. 공부를 잘하면 잘살 수 있다는 사회의 평가가 학생들을 책상 앞에 앉아 있게 하고, 승진 평가 기준이 모든 구성원의 일정한 행동을 만들어내고, 요즘 소비자들이 다는 배달 앱 별점이 식당 사장님들의 피를 말리게 하듯 말이다. 사람들이 거래하는 데 필요한 도량형이 잘못되면 엄청난 혼란이 빚어지는 것처럼 역할에 대한 평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 조직과 사회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유능과 무능을 구별해 성장을 도모하는 게 평가 시스템인데 이게 제대로 기능하지 않게 되면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힘을 엉뚱한 곳에 쓰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기업 포스코를 만들어낸 박태준 전 회장이 한 말이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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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은 평가하는 대로 움직이게 마련이야.
시작도 끝도 평가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1990년대 말 경영 진단을 맡은 컨설턴트들이 실태 보고를 하자 박 회장이 던진 첫마디였다. 당시에는 전략이나 마케팅 계획들이 조직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하던 때였는데 그것보다는 평가제도를 더 중시하라고 한 것이다. 탁월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과 사회는 모두 평가 시스템이 건실하다. 무엇보다 능력 중심의 평가 시스템을 갖고 있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를 제시하는 기준점이 되기에 항상 여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품질 관리의 아버지라고 하는 에드워드 데밍이 기업의 7가지 치명적 병폐에 잘못된 평가를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평가 시스템이라는 게 대단한 무엇 같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특히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사소한 평가가 중요할 때도 많다. 구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마케팅 팀장이 지켜보자니 한 직원이 일을 아주 잘했다. 그래서 구글 최고 엘리트 프로그램인 APM(Associate Product Manager)에 보내려 했다. 구글이 차세대 리더를 키우는 곳에서 능력을 키워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규정이 가로막았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이나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사람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직원은 독학으로 프로그래머가 됐고, 다른 일들도 직접 여기저기 뛰면서 배웠기에 졸업장이 없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게 뭘까? 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구글에선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뜻이다. 똑똑한 직원이 이걸 모를 리 없었고, 그래서 그는 떠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똑똑한 직원은 걸출한 실력을 바탕으로 인스타그램을 공동 창업해 10억 달러를 받고 페이스북에 매각한 주인공이 됐다. 케빈 시스트롬의 이야기다.3 능력으로 그를 평가하지 않고 졸업장으로 평가했던 결과였다.

이런 일은 지금도 수많은 기업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어디서나 존재하기 마련인 기득권의 자기 우선 정책과 이성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도 모르게 하는 감정적인 평가, 그리고 사내 정치 같은 요인들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조직들은 뛰어난 기술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낙후된 평가 시스템을 가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조직은 기술로만 성장할 수 없다. 일하는 문화가 받쳐줘야 한다. 특히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고 시대가 필요로 하는 평가 기준을 정립하는 게 시급하다. 철 지난 옷 같은 평가 기준을 갖고 있으면서 무엇이 필요한 능력인지조차 정의하지 않고 있는 곳들이 의외로 많다. 요즘 부각되고 있는 공정성은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큰 조직일수록 언제 어디서든 ‘크고 멋진 뿔’이 자랄 수 있다. 밖에서 통하는 능력이 안에서도 인정받고, 이것이 또 밖에서의 능력을 높여주는 선순환이 돼야 하는데 내부 지향적인 능력만 크고 멋지게 자라나고 있지 않은지, 또 그런 능력만 선택하고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되돌아봐야 한다. 밖에서 오는 위기는 보이기라도 하지만 안에서 생겨나는 위기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araseo11@naver.com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4호 Rebuilding a Sales Strategy 2022년 05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