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SR9. 고베제강

100여 년 쌓아온 신뢰가 하루아침에...조직 간 장벽이 품질 관리 어렵게 해

이우광 | 239호 (2017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일본 3위 철강 업체인 고베제강이 품질 데이터를 수년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기준 미달 제품의 데이터를 조작해 정상제품인 것처럼 고객사에 납품해온 사실이 확인되면서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해온 ‘Made in Japan’의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조직 간 장벽을 조장하며 경영진의 통제를 어렵게 하는 ‘잘못된 현장 중심’ 문화, 기준 미달 제품도 ‘특별 채용’하는 왜곡된 거래 관행이 장기간의 실적 악화와 맞물리며 윤리 경영의 기본 원칙이 무너졌다.

20230526_163244


2017년 10월8일, 일본 철강업계 3위인 고베제강이 자사 주력 제품인 알루미늄과 구리의 강도·규격·연성 등에 관한 품질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2016년 9월부터 1년 동안 4개 공장에서 출하한 약 4만 톤의 제품이 품질 기준에 미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증명서 데이터가 조작된 상태로 출하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첫 발표 때만 해도 어쩌다 한 번 발생하는 실수에 그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조작의 여파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일본 제조업 품질과 신뢰의 근간을 뒤흔드는 구조적인 문제로 장기화되고 있다.

고베제강의 안일한 대응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키웠다. 고베제강 경영진은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공장 현장에서 문제가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고 9월 중순 고객사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시작했다. 문제가 된 대상 제품은 알루미늄·구리사업 부문 매출의 약 4%에 달하는 129억 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회사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고베제강의 무덤덤한 태도에 고객사들도 “앞으로 조심하라”며 관대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보가 감독관청인 경제산업성(이하 경산성)에 흘러 들어가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고베제강은 이번 사태를 사적인 계약 문제로 봤으며, 법령 위반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산성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고베제강에 실상을 빨리 공표하도록 압박했다. 최근 닛산 같은 다른 기업의 부정이 줄줄이 발각되는 것을 지켜본 경산성은 자칫 잘못하다간 일본 제조업 전체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에 고베제강은 10월8일 데이터 조작 내용을 공개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가와사키 히로야 고베제강 회장 겸 사장은 해외 출장 중이라는 이유로 발표회장에 나오지 않았다.

회장의 부재와 부실한 발표 내용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자동차 부품 등의 재료가 되는 철분과 DVD 부품 재료가 되는 금속제품의 품질 조작 정황이 사흘 뒤(10월11일) 추가로 드러났다. 가와사키 고베제강 회장 겸 사장이 이튿날 경산성을 방문해 이번 사태에 대해 사죄하고 13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일본뿐 아니라 태국, 중국, 말레이시아 등에 위치한 고베제강의 9개 그룹사가 제조해온 구리 및 알루미늄, 특수강에서도 품질조직 정황이 드러났다. 그 결과 품질이 조작된 제품이 납품된 곳은 당초 200여 개 업체에서 520여 개 회사로 불어났다. 당연히 불량 제품을 납품한 공장 숫자에 대한 발표도 당초 4개에서 17개로 늘어났다. 부정의 전모는 12월 ‘외부조사위원회’가 발표할 보고서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겠지만 점점 확산되는 추세다.

더 큰 문제는 고베제강이 납품한 알루미늄·구리 같은 제품이 여객기, 신칸센, 자동차 등 안전과 직결돼 있는 최종 제품의 주요 재료로 쓰였다는 점이다. 일본 최초의 제트여객기 MRJ(Mitsubishi Regional Jet)의 동체와 날개를 연결하는 접합 부문과 창틀, JR의 신칸센 차대 부품, 도요타자동차 도어와 보닛 등에 납품된 재료들이다. 최근 신칸센 차대 부품의 강도가 일본공업규격(JIS) 기준에 미달된다는 발표도 나왔다. 아직은 불량 재료가 쓰인 제품의 안정성을 조사하고 있는 단계지만 만약 이들 최종 제품에서 불량이 본격적으로 발견되면 그 파장은 더 커져 경영에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20230526_163259


이번이 처음? 고베제강은 ‘상습범’

고베제강은 자사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11월10일 고베제강은 이번 데이터 조작 사태에 관한 원인 분석과 재발방지책을 담은 사내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서 국내외에 있는 그룹사의 17개 공장과 자회사 등에서 부정이 저질러졌고, 이 중 13곳에서는 5년 이상 부정행위가 지속됐다고 밝혔다. 알루미늄·구리사업 부문이 10곳으로 가장 많았고, 이 중 8곳은 본사가 감시하기 어려운 현장으로, 복수의 직원이 조직적으로 부정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사태의 원인으로는 “본사가 각 사업부를 평가할 때 수익에 집중해 평가한 나머지 관리 부문을 소홀히 다뤘으며 경영진도 이런 문제점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고베제강은 이에 대한 재발방지책으로 “제품의 시험 검사 데이터를 조작할 수 없도록 검사 기록을 자동화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각 사업 부문의 품질감사 상황을 일원적으로 체크하는 ‘품질감사부’를 설치, “품질을 비용 절감이나 납기 준수보다 우선시한다”는 내용을 명기한 사내 헌장도 발표하겠다고 했다.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이 데이터 조작에 관여했는지 여부는 분명히 밝히지 않았지만 외부조사위원회의 보고에 따라 임원의 책임을 물어 인사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베제강의 반성과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고베제강의 스캔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9년 주주총회 총회꾼에 대한 이익 공여, 2009년 정치자금규정법 위반 등으로 경영진이 사퇴했다. 데이터 조작 사건은 과거도 수차례 발생했다. 2006년 매연 데이터 조작, 2008년 강재의 강도 데이터 부정, 2016년 스테인리스 검사 데이터 조작 사건 등이 대표적 예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2017년 부정 사건이 또다시 터지자 시장에선 “고베제강 내에는 위기감이 없다”는 평가가 팽배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재발방지책이 나왔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번 사건이 발각되기 불과 수개월 전인 5월에도 사원의 행동규범으로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신뢰받는 행동을 하는 것이 회사의 신뢰로 연결된다”는 내용의 ‘KOBELCO(고베제강의 글로벌 브랜드 ‘코벨코’)의 3가지 약속’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 직원 인터뷰에 따르면 이 같은 부정을 알고도 묵인한 당사자가 임원이 됐고, 그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았다. 이처럼 부정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 데에는 보다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230526_163311


고베제강과 일본 제조업의 구조적 문제

1. 과도한 다각화로 인한 실적 악화

먼저 과도한 다각화에 따른 실적 악화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철강업계 1위인 신일철주금과 2위인 JFE그룹이 타사와의 인수합병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데 비해 고베제강은 다각화 전략을 추진해왔다. 철강 외에도 알루미늄·구리, 건설기계, 기계(압축기 등), 용접, 엔지니어링, 전력 등 7개 사업 부문을 두고 있다. 일본 내 소재 기업 중에서 가장 다각화된 기업이지만 실적은 갈수록 악화됐다. 2017년 3월 결산 기준 230억 엔 적자를 기록했는데 2년 연속 적자였다. 철강 산업의 비중이 적은 게 전체 적자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조강 생산량이 신일철주금의 6분의 1가량에 불과해 원료 조달 비용이 많이 든다. 철강 제품도 특별 주문받은 니치 제품이 많아 수율을 올리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알루미늄, 건설기계 등 다각화한 사업 부문도 업계 2∼3위 수준에 머무르는데 치열한 가격 경쟁에 시달려 수익을 내기 어려웠다.

실적 악화가 계속되면서 장기간 적자가 나던 사업 부문에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사태의 진원인 알루미늄·구리사업 부문은 장기간의 실적 악화로 회사 전체 실적에 부담이 되고 있던 터였다. 올해 경기 호조로 내년 3월 기준 흑자가 예상되자 제품 수율과 생산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납기를 못 맞추면 수주가 감소하고 업적이 다시 악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팽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윤리경영의 기본 원칙이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고베제강뿐 아니라 일본 기업이 지난 ‘잃어버린 20년’을 겪으면서 과도한 코스트 절감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 기업들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면서 기업 내부에서는 비용 절감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실토한다. 한국·중국 기업들과 치열하게 가격 경쟁을 하는 가운데 이전과 같은 품질 관리 방식으로는 도저히 비용을 절감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과도한 비용 삭감, 이익 창출 욕심이 품질 데이터 조작이라는 부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가입하면 무료

  • 이우광 | -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연구위원
    - <일본재발견>, <일본시장 진출의 성공비결,비즈니스 신뢰>, <도요타 : 존경받는 국민기업이 되는 길> 저자
    wklee@kjc.or.kr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