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락앤락, 신한베트남은행, 뚜레쥬르. 베트남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이들 3개 한국 기업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1. 해외 진출에는 타이밍이 생명: 락앤락은 중국에서의 임금 상승 추이가 심상치 않자 사드문제가 불거지기 전 일찌감치 생산기지를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신한은행은 베트남이 시장 개방과 더불어 해외 은행들에 은행업 라이선스를 부여할 때 첫 티켓을 거머쥐었다.
2. 브랜드 구축에 심혈: 베트남 국민들은 한 번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로열티가 강한 편. 이 같은 베트남 소비자들을 상대로 락앤락은 최고급 백화점에 매장을 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뚜레쥬르 역시 카페형 매장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무장한 프리미엄 베이커리로 포지셔닝했다.
3. 경쟁력은 ‘사람’: 결국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자들을 상대로 발로 뛰며 영업을 벌이는 것은 현지 직원들. 현지 직원을 지점장으로 임명하는 등 현지 직원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한을 부여한 신한은행을 비롯해 3개 기업은 모두 현지 직원들을 교육하고 그들에게 오너십을 주입시키는 데 주력했다.
편집자주이 기사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신지원(고려대 영어영문학과·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수는 지난해 말 기준 600개에 이른다. 1992년 수교한 지 24년 만의 성과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누적 투자금액은 역시 500억 달러를 넘어선 상황이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보다 낮은 임금, 전력, 수도 등 다양한 산업 인프라 때문에 앞으로도 베트남을 향하는 기업들의 발걸음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해도 철저한 준비와 학습 없이 향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쉬운 곳이 해외시장이다. 베트남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결코 순순히 문을 열어줄 리 없다. 따라서 10∼20년 전 한발 앞서 베트남 시장에 진입,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한 한국 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현지에서 직접 살펴본 신한베트남은행, 락앤락, 뚜레쥬르의 전략을 소개한다.
Case 1‘금융의 삼성전자는 나올 수 없다’(?)은행의 해외 진출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신한베트남한국 은행들은 해외만 나가면 고배를 마셨다. 해외 은행을 멋모르고 인수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입거나, 아니면 교민들을 상대로 손쉬운 장사만 하는 데 그쳤다. 현지인들을 상대로 영업을 해 성공을 거둔, 진정한 해외 진출 성공 모델은 드물었다. “금융의 삼성전자는 왜 나오지 않는거냐”며 금융당국은 해외로 은행들의 등을 떠밀었지만 성공 스토리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같은 우울한 은행의 해외 진출사에 새로운 가능성을 비춰준 곳이 있으니 바로 신한베트남은행이다. 글로벌 은행들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더니 최근에는 HSBC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외국계 은행 1위로 올라섰다. 숫자만 봐도 규모와 질적 성장세를 알 수 있다. 2014년 2241만 달러이던 당기순이익이 2016년 4263만 달러로 점프했다. 점포(법인, 지점, 사무소 등) 수도 같은 기간 10개에서 18개로, 직원 수는 631명에서 992명으로 늘었다.
12일 찾은 신한베트남은행 본점에서도 성장하는 신한베트남은행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한창 근무 시간인 오후 3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점 은행 창구는 현지 고객들의 발길로 북적였다. 창구 안쪽의 사무실에서는 RRM(Retail Relationship Manager)들이 삼삼오오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20여 개가 넘는 로컬은행, 글로벌 은행들과의 리테일 전쟁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는 신한베트남은행 신동민 법인장과 글로벌 사업 담당 허영택 부행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본 신한은행의 성공전략을 소개한다.
해외 시장 진출은 타이밍이 생명은행업은 정부당국으로부터의 인·허가가 필요한 업종이다. 따라서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진출 ‘타이밍’이 생명이다. 먼저 시장에 진입을 해 인·허가가 주어지는 시점에 이를 따내야 영업을 확대하며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 그런 면에서 신한은행은 빨랐고, 또 운도 따라줬다. 신한은행이 현지 사무소를 설치한 것은 1993년. 신한은행이 리딩뱅크로 시장을 이끌던 시절이 아니라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등 당시 5대 시중은행을 지칭하던 용어)와 같은 대형 은행들에 밀리던 시절이었다. 상대적으로 대기업 고객이 아니라 중소기업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신한은 신발제조업체 등 거래 중소기업들이 베트남 시장에 진출할 때 그들을 따라서 베트남 시장에 들어오게 됐다. 일동의 ‘동반 진출’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일찌감치 사무소를 개설하고 현지에 진출한 중소기업들과 거래를 지속하던 신한은행에 기회가 찾아왔다. 2006년 베트남이 WTO에 가입하며 마지못해 은행 시장을 개방하기로 하고 해외 은행에도 은행업 라이선스를 내주기로 한 것. 최종적으로 2008년 5개 은행이 함께 라이선스를 받았는데
그때 티켓을 받은 곳이 HSBC, 스탠더드차터드, ANZ, 말레이시아계 홍릉은행, 신한은행이었다. 그때 이후로 베트남 정부는 한참 동안을 해외 은행들에 라이선스를 내주지 않다가 2016년부터 다시 기회를 주고 있다. 만약 그때 ‘첫 티켓’을 거머쥐지 못했다면 꼼짝없이 8년의 시간을 허비하며 기다렸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설령 중간에 인허가를 받을 수 있다하더라도 이미 HSBC 등 외국계 은행들이 시장을 잠식한 뒤였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진출을 했기 때문에 글로벌 강자들에게 밀리지 않고 동일 선상에서 경쟁을 할 수 있었다.교민들 상대로 한 쉬운 장사 대신 현지인 겨냥, ‘잘하는 곳’에서 승부언제 진출했느냐는 진출 시기도 중요하지만 진출을 해서 어떤 방식으로 영업을 했는지도 중요한 키포인트. 사실 우리나라 은행들이 뉴욕, 도쿄, 오사카 등등에 진출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렇게 일찌감치 진출했으면 확고히 자리를 잡았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다수 은행들은 교민이나 국내 기업들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해 시장을 뚫지 못한 것. 그런데 신한은행은 베트남에서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진짜 영업을 했다. 90% 이상이 베트남 현지 고객이고, 금액 비중으로 따져도 여·수신의 50%가량이 베트남인이다.
비결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한 것이다. 기업금융에 있어서는 다양한 경험들로 무장한 글로벌 은행들에 비해 뒤처졌다. 하지만 까다롭고 성질 급한 한국 고객들을 상대하며 다져진 리테일(소매금융) 서비스의 수준이나 속도는 세계 무대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 어떤 은행들도 이렇게 업무처리 속도가 신속하지 못하며 친절하게 고객에게 응대하지 못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