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으로 본 남성소비 트렌드

군대에서 화장 배우고 ‘여친’과 화장품 사고..‘수컷의 종말’ or ‘남성의 진화’

206호 (2016년 8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남자의 종말>의 저자 해나 로진은 변화하는 산업구조 변화로 인해 남성 우위가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가 온다고 주장했다. 물리적 힘이 지배하는 전쟁과 노동의 시대가 가고 정보와 지식이 지배하는 이른바 ‘4차 산업의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정보를 취합하고 가공하는 일에는 멧돼지를 때려잡던 수렵시대의 수컷 본능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 한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강화는 부양자로서의 남성의 역할을 더욱 축소시켰다. 가장으로서의 짐을 덜게 된 남성들이 이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마하고 있는무기는 바로신체자본이다. 남성들은 자신을 가꾸고 돋보이게 함으로써 남성성을 증명한다. 심지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생중계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전쟁이나 냉전에 대한 기억이 없다. 힘으로 수컷임을 증명해야 할 동기가 상대적으로 적어진 것이다.

 

 

시장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2012년 남성 화장품 소비량이 가장 많은 국가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2000만 명 정도에 불과한 한국의 성인 남성이 전 세계 남성 화장품의 20%를 소비했다. 무려 56500만 달러(한화 약 6500억 원)어치다. 한국 남자가 누군가. 부엌에는 출입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던 사나이들 아닌가. 그런데 화장이라니. 조상님이 놀라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노릇이다.

 

‘꽃미남’으로 대변되는 예쁜 남자들의 전성시대다. 헤어왁스로 정돈한 투블럭컷 헤어스타일, 비비크림과 틴트밤으로 생기를 준 얼굴, 그리고 시어서커 재킷에 버뮤다 팬츠를 매치해댄디 룩을 완성한 당신. 옛날이라면 일부 남성에 국한된 이야기로 생각됐겠지만 어느새 외모는 경쟁력이 됐고 미용과 패션은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형외과를 찾는 남성들도 적지 않다고 하니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메트로섹슈얼 변종들

 

1994년 영국의 문화비평가 마크 심슨은호화로운 상점들이 즐비한 대도시에 사는, 패션에 민감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남성을 지칭해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후레트로섹슈얼(retro-sexual)’ ‘크로스섹슈얼(cross-sexual)’ ‘위버섹슈얼(ueber-sexual)’ ‘럼버섹슈얼(lumber-sexual)’ 등 다양한변종이 등장했는데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섹슈얼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는 점이다. ( 1) 성적 매력은 주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덕목이었으나 이제는 남자들도 섹시하고 볼 일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세태를 두고남자의 종말혹은수컷의 멸종이라는 평론을 내어놓기도 하지만 남성성(masculinity)이란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것일 뿐 영원히 소멸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상남자로 알려진 마초(macho)의 이미지도 사실 역사 속에 잠시 존재했던 하나의 현상일 뿐 원래부터 남자라는 존재가 근육질의터프가이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귀족 남성들은 여성 못지않게 화려한 의상과 치장을 즐겼다. 당시에는 성별보다 계급이 신분적 우위를 드러내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급사회가 무너지고 성별에 따른 직업의 분화가 일어나면서 남성은 일터가, 여성들은 가정이 주된 생활 무대가 됐다. 소비생활은 주로 집안에서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의 몫이 됐으며 자연스레 여성의 취향을 겨냥한 제품과 마케팅이 시장을 지배했다.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상품은 여성의 구미에 맞도록 제작·판매됐고 남성은 여성의 소비생활을 가능케 할 돈을 벌어오는 것으로 남성성을 과시했다.

 

제국주의와 1,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마초의 이미지가 남성스러움의 전형으로 떠올랐던 시기를 지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남성은 생산자(혹은 부양자), 여성은 소비자라는 이분법은 점차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맞벌이 가구의 비율이 50%를 육박하고 있으며, 드물지만 남성 전업주부도 등장하고 있다. 여성의 생산자 및 부양자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곧 남성이 소비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른바주백남들이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한다. ‘주백남이란주말마다 백화점 가는 남자를 일컫는 신조어다. 남성고객은 이제 백화점의 주된 고객층으로 엄연히 자리 잡았다. 최근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백화점을 찾는 남성고객의 숫자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자연히 매출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2015년 남성고객의 매출 비중이 32.9%에 육박했다. 또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남성들은 인터넷 쇼핑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15년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실시한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를 보면 남성의 인터넷 쇼핑 이용률은 50.3%나 됐다. (그림 1) 이는 여성의 인터넷 쇼핑 이용률(57.1%)과 비교해 불과 6.8%p 뒤지는 수치다.

 

남성이 자신을 가꾸는 데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현상은 엄격한 성역할을 기반으로 운영되던 전통적 가족의 해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독신을 선언하는 비혼족이 증가하면서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1980년에는 4.8%에 불과하던 1인 가구가 2010년에는 24.2%로 치솟았다. ‘아버지는 돈 벌어오고 어머니는 살림하는전통적 가족의 형태는 더 이상당위가 아니다.

 

남성들이 스스로 집을 꾸미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당연히 물품 구매를 위해 직접 장을 보는 경우가 증가했다. 처음에는 귀찮아 보였던 쇼핑이, 막상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는 재미가 있었다. 또 생활 속 작은 소품들을 사서 집안에 직접 진열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이혼이나 사별 등의 이유로 발생하는비자발적 1인 가구보다 혼자 사는 게 좋아서 스스로 선택한자발적 1인 가구의 경우 높은 소비 성향을 보인다. 이들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쇼핑을 하고 오직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관심이 많다.

 

‘부양자’로서의 남성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근간을 흔들었는가. <남자의 종말(2012)>이라는 저서에서 저자 해나 로진은 산업구조 변화로 인해 남성 우위가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가 온다는 분석을 내놨다. 과거에는 물리적 힘이 지배하는전쟁노동의 시대였다면 오늘날은정보지식이 지배하는 이른바 ‘4차 산업의 시대다. 정보를 취합하고 가공하고 융합하는 일에는, 멧돼지를 때려잡던 수렵시대의 수컷 본능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

 

몸을 쓰는 것이 아닌 이상 여성이기 때문에 불리한 영역의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학교에서도 여학생들의 성적이 남학생을 앞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남학생들이 남녀공학 진학을 꺼릴 정도다. 각종 국가고시에서 여성들이 수석을 차지하고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군()에까지 여성의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와 일터에서 성역할이 구별되거나 강요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남성들은 굳이 허울뿐인가장의 권위를 얻는 대가로 평생 가족을 벌어 먹이느라 뼈 빠지게 일할 이유도, 여성들 역시 돈 좀 벌어온다는 이유로 왕처럼 군림하려드는 남편을 굳이 떠받들 이유도 사라진다. 그간 남자들이 즐겨해 마지않던 가부장의 역할은 이젠 짐처럼 느껴질 뿐이다. 더구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강화는 부양자(breadwinner)로서의 남성의 역할을 더욱 축소시킨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외벌이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졌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이 보유한 문화자본, 스펙을 팔아야 한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등의스펙을 구비하고도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이젠 가진 것도 없는데 뭘 팔아야 하나. , 맞다. 남성들에겐 여태껏 팔아본 적 없는신체 자본이 남아 있다. 소위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말이 이 신체 자본과 같은 의미다.

 

외모는 사실 오래 전부터 강력한 경쟁력으로 통했다. ‘신언서판이라는 말이 왜 있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하지만 과거에는 못난 외모를 타고났다고 해서 그것을 성형수술이나 각종 시술을 통해 바꿔보자고 생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하지 않았는가. 그저 이번 생은 글렀으니(?) 다음 생을 기약할 밖에. 그러나 성형외과, 피부과, 치과 등의 의료기관들이 미용 목적의 시술을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하면서 외모는 타고난 팔자가 아닌 성공을 위해 얼마든지 투자해야 할 대상이 됐다.

  

또한 여성 화장품 시장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업체들은 남성 고객을 겨냥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화장품 소매업이 전면 개방되면서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이 자유화됐고 국내 업체들은 새로운 고객층 확보에 주력했다. 당시 태평양이 출시한 남자 화장품트윈엑스는 고등학생을 포함한 신세대(소위 ‘X세대’)를 공략했다. 기존 남자 화장품이 진한 머스크향의 애프터 쉐이브 정도가 전부였다면 이 시기부터는 남성 전용 자외선 차단제, 컬러 로션, 세안제 등 그 종류가 다변화됐다.

 

 

흥미로운 점은 남자들의 경우 외모를 가꾸는 것을 단순한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일의 연장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미용 그 자체의 목적보다는 일과 관련된 대인관계에서 자신감을 갖기 위해 외모를 꾸미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국내 최대 화장품 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이 802명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7%에 달하는 응답자가사회생활에 외모가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답했다.

 

81%외모가 업무나 비즈니스 능력을 돋보이게 한다’고 답했다. 외모를 가꾸는 남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이 곧 남자의 종말이 아닌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단지 돈을 벌어다주는 것으로 남성성을 증명할 수 없는 남성들은 이제 자신을 가꾸고 돋보이게 함으로써 남성성을 증명한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전쟁이나 냉전에 대한 기억도, 삼엄한 사회 분위기에 대한 기억도 없다. 힘으로 수컷임을 증명해야 할 동기가 상대적으로 적어진 것이다.

 

특히 21세기의 남성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전시하고 드러내는 데 익숙한 소위셀카세대. 그 누구도 지저분한 머리, 자라난 코털, 목 늘어진난닝구차림으로 셀카를 찍진 않는다. 충분히 매력적인 남성임을 증명하려면 말쑥하게 차려입은 슈트, 정돈된 헤어스타일은 필수다.

 

유독 멋 부리는 한국 남자들

 

멋 부리는 남자가 대세라고는 해도 유독 한국에서 그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1990년대 일본 대중문화 시장의 개방으로 망가(만화) 및 아니메(애니메이션)가 보급되면서 마른 몸, 훤칠한 키, 하얀 피부, 쌍꺼풀 진 커다란 눈, 오뚝한 콧날, 앵두 같은 입술, 뾰족한 턱을 가진 소위만찢남(만화를 찢고나온 듯한 남자)’이 잘생긴 남성의 표본으로 떠올랐다. 특히각트(Gackt)’라르크앙시엘(Larc-en-ciel)’처럼 진한 화장이 특징인 남성 비주얼계(ビジュアル) 가수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의 대중문화, 특히 남자 아이돌들의 이미지는 이러한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빅뱅, 엑소, 샤이니 등 한류를 주도하는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때론 여자들보다 진한 메이크업을 한다. 단지 피부의 잡티를 보정하는 수준이 아닌 진한 아이라인과 섀도우로 눈매를 강조한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 여자보다 더 예쁜 얼굴을 내세워 종종 팬서비스 차원에서 여장을 하고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대표주자 중 하나는 빅뱅의 지드래곤이다. (그림 2) 엄청난 팬덤을 거느린 그는 샤넬, 지방시, 생로랑 등 해외 럭셔리 브랜들의 협찬이 줄을 설 정도로 국내를 넘어 국제적인 패셔니스타로 자리잡았다. 어떤 아이템이든 그가 한번 걸쳐주기만 하면 판매량이 치솟는다고 하니 콧대 높은 디자이너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얀 피부에 슬림한 몸매를 지닌 그는 짙은 화장, 서클렌즈, 매니큐어, 귀걸이, 목걸이, 팔찌, 심지어 샤넬의 여성 트위드 재킷마저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이러한 모습의 케이팝 아이돌이 엄청난 인기를 끄는 현상은 한국의 남성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낼까. 남성성을 규정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여성에게 얼마나 성적으로 어필하느냐가 남성성을 규정하는 큰 축임에는 틀림없다. 특정 스타일의 남성이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러한 스타일의 남성성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증거다. ‘강한 남자가 흔히꼴마초로 비하되는 사회에서 더 이상 마초를 남성성의 전형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알려졌다시피 케이팝의 주된 팬층은 여성이다. 남성 아이돌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 아이돌의 팬클럽마저 여성 팬이 더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남성이 바라는 남성상보다는 여성이 바라는 남성상이 아이돌의 모습에 투영될 수밖에 없다. 한류라는 상품 자체가 여성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류 드라마와 아시아 여성의 욕망(2014)>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이수연 박사는 가부장적 문화에서 늘 욕망의 주체이기보다 대상에 머물렀던 여성들에게 한류 드라마는 이들의 욕망을 추동하고 표현하며 해소시키는 도구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만약 한류의 주된 팬이 남성이었다면 한류 속 남자들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 아이돌의 이런 모습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권 대중들의 눈에는 전형적인 게이(gay)의 표상으로 비춰진다. 해외 한류팬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는케이팝 아이돌은 왜 다 게이처럼 보이나요?” “케이팝 아이돌 중 누가 게이인지 맞춰봅시다등의 제목을 단 글들이 자주 눈에 띈다. 남성이 분홍색 티셔츠만 입어도 게이냐는 오해를 사는 곳이 미국이다. 그러니 이들의 눈에 화장하는 아이돌의 모습이 아무리 봐도 게이처럼 보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 때문인지 남성화장품 시장점유율은 대륙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2013년 유로모니터 조사 결과 아시아태평양(호주 포함)이 전체 남성 화장품 시장에서 차지한 비율이 65%에 달한 반면, 서유럽은 21%, 북아메리카는 9%에 불과했다. (그림 3) 한국의 경우 동성애자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화장하는 남성에 대한 거부감이 서구보다 오히려 적은 것이 아이러니하다. 아마도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이 워낙 드물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동성애자를 마주할 기회가 적고, 따라서게이스럽다는 개념 자체가 서구에 비해 희박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눈치 챘겠지만꾸미는 남성의 중심에는 여성의 역할이 자리하고 있다. 아무리 남성들이 나름의 안목으로 스스로를 멋지게 꾸민들, 여성들이 이를 매력 없다고 규정하면 그 스타일은 살아남기 어렵다. 많은 남성들이 여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혹은 여자친구나 아내의 권유로 외모 가꾸기에 입문한다. 2014년 다국적 미용용품 업체도브가 남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분의 1만이 본인이 직접 미용제품을 구매했다. 달리 말하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주변에서 제품을 대신 구매해준다는 뜻이다. 대부분 아내 아니면 여자친구일 것이다.

 

아이오페가 남성 전용 에어쿠션을 출시할 때만 해도 과연 남성들이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매장에 직접 와서 제품을 사갈 것인가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의외로 이 제품은 여성들 사이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남자친구, 남편, 심지어 할아버지를 위해 여성들이 제품을 구매한 것. 또한 매장에 남성 혼자 오는 경우보다는 여성과 함께 와서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남성 화장품 시장의 팽창은 여성들의수렴청정덕분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군대에서 싹 트는 화장품 사랑?

 

이와 관련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남성들이 화장품에 처음 눈뜨는 곳이 바로 군대라는 점이다. 최근 국내의 한 온라인 쇼핑몰과 병무청이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서군대에 갈 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생활용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1%뷰티용품이라고 답해 1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2위는 과자를 포함한 식품류(24%)가 차지했다. 이제 군인들은초코파이보다비비크림이 더 절실한 것이다.

 

 

군인을 위한 화장품은 한 화장품 업체가 2010년 처음 선발된 여성 학군단(ROTC)을 위해 소량으로위장크림을 출시하면서 시작됐다. (그림 4) 그런데 이 제품은 오히려 남성 병사들에게 열띤 반응을 얻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건아들은 자외선 차단제, 비비크림, 에센스, 수분크림, 클렌징 티슈 등 다양한 화장품을 군대에서 처음 접한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4>에서 군인화장품을초틈새시장’으로 인용하기도 했다.

 

그럼 군인한테 누가 이 화장품들을 사다 나르느냐. 바로 이들의 여자친구들이다. ‘곰신쇼핑몰이라고 들어봤는가. 곰신(‘고무신의 약어)+쇼핑몰을 뜻하는 이 단어는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20대 여성들이 남자친구에게 보낼 군인용품을 판매하는 쇼핑몰을 통칭한다. 여기에서는 각종 남성 화장품은 물론 속옷, 가방, 시계, 군화 끈까지 군부대로 직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결국꾸미는 남자현상은 남자의 종말은커녕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이른바내조담론’을 부활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의 외모 꾸미기 열풍을 두고남성이 여성화된다거나남녀가 평등한 세상이 됐다고 논평하는 것은 섣부른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유리천장도,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도 여전하다. 4대 그룹 주요 계열사 51곳의 임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2.2%에 불과하며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전 세계 190개국 가운데 111위다. 이런 사회에서 남자들이 화장 좀 한다고 해서, 옷 좀 챙겨 입는다고 해서, 자기가 쓸 물건을 제 손으로 산다고 해서 양성평등의 세상이 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여성학의 유명한 이론 중젠더 하기(doing gender)’라는 이론이 있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인간에게 내재된 것이 아니라 특정 사회 안에서여성적혹은남성적이라고 규정된 행위를 재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남성이 부양자로서의 역할이 축소될 경우 이들의남성하기(doing masculinity)’가 도전을 받게 되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다른 방식의남성하기를 찾게 된다. 예를 들어, 남편이 실직하고 아내가 일을 할 경우 경제적 능력이 아내에게 있으므로 아내의 발언권이 더 커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남편이 오히려 아내 위에 군림하려 듦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방어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 화장품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어쩌면 한국의 공고한 가부장제가 아직 충분히 도전받고 있지 않음을 반증하는지도 모르겠다. 남성들의 외모 가꾸기가 경제적 능력이 탄탄한, 즉 남성성에 대한 도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이른바골드미스터중심으로 퍼져나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만약 남성이기 때문에 누려왔던 이 사회의 기득권이 진정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화장과 패션을 대하는 남자들의 태도는 지금과는 또 달라질지 모를 일이다.

 

김수경고려대 국제대학원 연구교수 sookyungkim@korea.ac.kr

 

필자는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기자로 근무하던 중 도미, 미 스탠퍼드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웨덴 린셰핑대(Linköping University) 방문학자를 거쳐 현재 고려대 국제대학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권의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DBR mini box

 

현실보다 과장된 현실, 광고 속 남자들 ‘남자다움’의 정의, 이미 달라졌다

 

교감하는 남자들의 자동차가 되다

자동차 광고는 오랫동안 남자를 편애해왔다. 고급 승용차일수록 남자의 중후함, 무게감을 표현했고 성공을 누리라고 했다. 나아가 성공을 과시하라고도 했다. 하지만 최근 현대자동차의 그랜저 광고는 매우 다른 메시지를 선보였다. 화면은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의 배우 조진웅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를 응원하는 듯한 노래가 흐른다. 삶을 관조하는 듯한 사뭇 진지한 분위기. 카메라가 돌자 그때서야 조진웅 옆에 선 배우 이성민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대화를 한다.

 

“형, 우리 잘 가고 있는 거지?”

과거 광고 속 남성들은 성공에 대해, 앞날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는완성된 모습으로 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알아서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이 길이 맞는지 물어보며 속을 털어놓는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고 보니 낯선 지점은 또 한 군데 있다. 중년 남성들끼리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라니. 고급 세단을 광고하면서도 인간적인 면을 보이는 것, 그리고 사나이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쿨 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신선하다.

  

정반대의 타깃 고객을 가진 쉐보레의 스파크는 다정한 아빠의 모습을 선보였다. 지금까지아빠들은 아이와 엄마가 다정한 가운데 그저 소극적으로, 구색처럼 껴 있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2015년 공개된 스파크 광고엔 엄마가 없다. 아빠들이 단 둘만 있기는 두려워하는 말도 못 떼는 어린 아기지만, 광고 속 아빠는 아이와 있는 게 자연스럽고 능숙해 보인다. 게다가 아기만 없었으면 젊은 미혼으로 보였을 법한 세련된 모습의 아빠다. 이제아빠는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고, 아이와 단둘이 데이트도 잘하고, 그러면서 스스로의 모습도 세련되게 가꾸는센스 있고, 아름다운 아빠의 모습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남성에게도 감성적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케터 그래미 뉴웰(Graeme Newell)에 의하면, 모터사이클에 걸터앉은 아름다운 여성이 고혹적인 자태로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식의 마초적인 남성 마케팅 시대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남자들은 연령대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보인다. 중년 남성의 경우, 가족들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보니두려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2030 남자들은부끄러움에 가장 민감하다고 한다. 자동차는 자신이잘 살고 있다라는 것에 대한 방증이다.

 

 

 

 

내가 남들이 갖고 싶어 하는 자동차를 갖고 있다면 어느 정도 성공한 삶이다. 그랜저는 그런 중년의 감성에 소구하고 있는 듯하다. 그랜저를 가짐으로써잘 가고 있다고 안심할 수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 이 광고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스파크는 소형차다 보니 실용성을 따져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세련된 남자의 모습을 보인다. 젊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활력 있는 삶의 이상향이다.

 

미국의 신경과학 심리학연구소는 사회적 관계의 상호작용과 관련해 4가지 감정을 강조한다. 행복, 슬픔, 두려움, 분노가 그것으로 이 감정들을 잘 이용해 광고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남자들은 실용적인 정보에만 움직이고 쇼핑을 필요악으로 보는 존재가 아니다. 심지어 때때로는 여자들처럼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이제 남자들을 대할 때도 그들의 감성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빠가 되고, 셰프테이너가 된 남성

우리나라에서 육아 예능과 이와 관련된 산업이 대세를 이뤘듯 미국에서도부드러운 아빠의 이미지가 각광을 받고 있다. 5년 만에 슈퍼볼 시리즈 광고를 내보낸도브 멘+케어(Dove Men+Care)’. 그들은 새로운남성다움을 정의했다. 어린아이부터 결혼하는 딸, 청소년 아들, 즐겁게 노는 아이들 등 광고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자녀들은 모두대디(daddy)’를 찾는다. 아주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아빠는 늘 곁에 있어주며 다정하게케어를 해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 도브는 새로운남성다움이란케어할 줄 아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대디로서 아이들뿐 아니라 스스로의 피부도 관리하라는 메시지 역시 잊지 않는다. 그리고그것이 남성들을 진짜 강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강한 카리스마로 점철됐던 광고 속남성다움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자상한 모습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이든, 외국이든 남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가족들과 더 많이 교감하고 섬세해지고 있는 듯하다.

 

남자들이 아이들 하고만 놀기 시작한 건 아니다. ‘먹방에 이어쿡방열풍과 함께 나타난 셰프들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들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셰프로서의 카리스마, 부드러움, 섬세함을 자유자재로 드러냈고, 요리 관련 TV프로그램에 주요 출연진으로 등장했다. 남자들이 장을 보는 모습이 자주 등장했고 이들은 여자들보다 섬세한 미각을 뽐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등장한 셰프들은 음식 광고뿐 아니라 여자들이 주요 마케팅 대상인 김치냉장고 광고에도 등장했다.

 

외식 전문가 백종원은 디오스 김치냉장고 광고에 등장해김치 맛을 얘기한다. 그것도 해놓은 김치를 맛있게 먹는 역할이 아니라 전문적이고 섬세하게요리전문가로서의 의견을 내놓는 존재로 출연한다. 과거 김치냉장고 광고에 배우 백윤식이 나와 아내가 만든 김치를감히짜다고 타박하던 때와는 매우 달라진 모습이다. 스스로 자신의 미각을 발휘해 아삭한 김치 맛을 유지하고 발견하는살림하는 남자의 이미지까지 주는 것이다.

 

과거 냉장고 광고의 단골 모델은 잘 생긴 남자 배우들이었다. 주 소비자인 여심을 자극하기 위해 등장했던 이들의 모습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동료 주부이자 냉장고를 직접 사용하는헤비 유저(heavy user)’로서 남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또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게 됐다. 외국에서도 이와 같은 트렌드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남성들의 식료품 구매율이 해마다 늘면서 미국의 식품기업인 제네럴 밀스, 크래프트 푸즈는 검은색을 활용한 패키지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 남성을 겨냥한 문구를 사용해 호응을 얻고 있다.

  

예컨대당신이 아는 그 남자처럼 먹어요(Eat like the guy you know)”라는 문구와 함께 다양한 직업 및 계층의 남성이 벨비타(Belvita) &치즈 파스타를 맛있게 먹는 모습의 광고를 내놓은 크래프트 푸즈는 기존 타깃이었던엄마들 대신 삶을 즐기고 편리함을 갈망하는 2030 남자들에게 소구하기 시작했다. 즉 리모컨 헬리콥터 판매인, 수족관 주인, 리무진을 모는 남성 등을 등장시키며, 이들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 아등바등 사는 게 아니라 편안하고 여유롭게 사는 삶을 보여준다. 취미인지, 일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편안한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그 남자처럼 살 수는 없지만 먹을 수는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또 다른 브랜드 파워풀 요거트(Powerful Yogurt)는 고단백질을 함유해 근육 형성에 도움을 주는 요거트로, 일명브로-거트(Bro-Gurt)’라 불리며 남성을 공략하고 있다. 남성의 몸을아름답게만들어주는 성분이 들어 있다며숨어 있는 복근을 찾아라는 슬로건을 삽입했다. 남성을 타깃으로 한 미국의 최근 광고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회적 구조 변화, 경기 불황 등이 빚은 현상이 반영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결혼을 늦게 하면서 독신으로 사는 남성들이 늘었고, 이들의 소비가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남자가 요리를 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게 됐다. 심지어 이들은알뜰 주부의 면모까지 나타내고 있다. 최근 미국의 마이단마케팅(Midan Marketing)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자들은 식료품을 사기 위해 할인쿠폰을 모을 뿐만 아니라 육류를 살 때도 신중하게 부위를 따져 구매하고 있다. 또 직접 요리를 하기 위해 구매하는 식료품의 지출 규모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품 광고 속 아름다운 남자들

미국에서 각광받고 화제가 되는 남성 화장품 광고로 데오도란트류의 올드 스파이스(Old Spice)와 링스(Lynx)를 꼽을 수 있다. 글로벌 생활용품업체 P&G의 남성용 목욕용품 브랜드 올드 스파이스는 전직 미식축구 선수인 이시아 무스타파를 통해당신의 남자에서도 그와 같은 향기가 날 수 있습니다(The Man Your Man Could Smell Like)’라는 광고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하는 유머러스한 광고를 만들고 있다. 이 광고는 2010년 칸 광고제 필름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어 2015년에는좋은 냄새를 가진 아들이 데이트를 시작하자 엄마들이 질투하는 내용을 담은아빠의 노래(Dad Song)’편이 금상을 받았다. 링스는 향기만 뿌리면 여성들이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인기가 급증한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고 있다. 2016년에는 식스팩이나 슈트보다 좋은 건당신 자신이니 링스로 당신 자신의 매력을 만들라고 외친다. 대부분 좋은 화장품은 좋은 향기, 나아가 인기 많은 남자로의 변신 공식을 따르고 있다.

 

이제 여러분의 머릿속에 있는 남성과 여성의 전형은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장점으로 부각돼 온 섬세함을 숨기지 않게 됐고 여자들은 파워풀하고 독립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실제 생활에서 나타나는 트렌드보다 앞서 좀 더 과장된 형태로 등장하는 광고 세계에서만큼은 이미 굳이 남자에게남자다운 모습을 묻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이제 광고 속 세계의멋진 남성은 요리도 하고, 피부도 좋고, 대화도 할 수 있는 남자가 됐다. 여성들이 바라마지 않았던, 이상적이고 인간적인완전한 사람의 모습을 마침내 띨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숙자HS애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sjshina@hsad.co.kr

 

필자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HS애드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올해로 20년 차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LG전자 글로벌 캠페인을 비롯해 LG생활건강 화장품, 한국관광공사 등 다수의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광고 제작물을 디렉팅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