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콘텐츠 전략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시대가 달라졌다. 예전에 통하던 콘텐츠 크리에이션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모든 사람이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만큼 기업의 전략도 달라져야 할 때다.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라 - 소비자가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기업과 소통할 수 있는 데이터를 모으고 관리하라. 2. 인터랙티비티를 단계화하라 - 인터랙티비티의 질과 양을 결정할 때는 마리-로러 라이언의 다섯 층위를 참고할 만하다. 3. 게임성을 도입하라 - 오늘날 소비의 주축은 게임이 일상화된 세대다. 4. 멀티플랫폼과 트랜드미디어 스토리텔링을 활용하라 - 다양한 플랫폼에서 변형된 스토리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며 시너지를 내게 하라.
A Hunter Shoots a Bear
한 사냥꾼이 양치질을 하고 있다. 그 사냥꾼 뒤로 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양치질을 하고 있던 사냥꾼이 곰의 등장을 알아차리고 허둥지둥 총을 찾는다. 그리고 엉거주춤 엉성한 포즈로 곰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사냥꾼은 곰을 향해 총을 쐈을까? 아니면 곰에게 습격당했을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질 즈음 영상이 멈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화면에 뜬다.
“Shoot the bear”
“Don’t shoot the bear”
이 영상은 Tripp-EX라는 수정 테이프 광고의 시작 부분이다. 수정 테이프라는 제품과 곰을 쏘거나 쏘지 않는 일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 기업은 왜 광고에 곰을 등장시켰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두 메시지 중 하나를 선택해서 클릭해보는 것뿐이다. 그래, 쏘지 않으면 곰이 선공을 날릴지도 모른다. “Shoot the bear” 클릭!
메시지를 클릭한 순간, 유튜브(youtube) 새 창이 뜨면서(사실 실제로 유튜브 url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 디자인을 그대로 본뜬 조작된 화면일 뿐이다) 사냥꾼이 곰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영상이 다시 보인다. 쏴라, 쏴!를 외치는 순간 사냥꾼은 영상을 보고 있는 나를 쳐다보며 “I don’t wanna shoot this bear!”라고 외친다. 그리고는 갑자기 영상 밖으로 손을 내밀어 영상 바로 옆에 광고처럼 붙어 있던 수정 테이프 Tripp-EX를 집어 들고는 제목으로 달려 있던 ‘A Hunter Shoots a Bear’에서 ‘Shoots’를 지워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동사를 타이핑해보라고 제안한다. 영상을 보는 이가 아무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화면에서 사라졌던 사냥꾼이 다시 돌아와 얼른 빈 칸을 채워보라며 재촉한다. 사냥꾼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단어 하나를 선택해 타이핑해본다. 총을 쏘지 않으면 싸워야지!
“Fight.”
엔터를 치자 영상이 다시 시작된다. 피켓 걸이 나와 시합을 알리고 종이 울리자 사냥꾼과 곰의 1대1 대결이 시작된다. 사냥꾼이 곰을 향해 달려들지만 곰은 단박에 사냥꾼을 제압한다. 그것도 잠깐, Fight가 다시 지워지고 사냥꾼은 다른 단어를 써넣으라고 부추긴다.
광고하는 제품이 수정 테이프이다 보니 빈칸에는 얼마든지 다른 단어들을 써넣을 수 있다. 다른 단어를 채워 넣을 때마다 제각기 다른 에피소드가 연출된다.
그림1 Tripp-EX의 인터랙티브 광고 'A Hunter Shoots a Bear'
앞서 언급했듯 이 영상은 틀린 글자를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정 테이프 광고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 영상이 기존 TV매체를 중심으로 하는 광고와 180도 다른 특징을 가졌다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광고는 웹을 기반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소비자 참여를 유도하는 스토리텔링 형식을 취한다. 소비자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스토리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여러 단어를 채워 넣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이 광고는 한번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보고 또 보는 반복적 시청을 유도한다.
이처럼 데이터베이스(Database),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 게임성, 멀티플랫폼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이런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원고에서는 기존 브랜드 스토리텔링과 차별화된,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브랜드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브랜드는 왜 스토리를 품었을까?
사실을 내게 말하면 나는 배울 것이다. 진실을 말하면 나는 믿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스토리를 말해주면 그것은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것이다.
Tell me a fact and I’ll learn. Tell me a truth and I’ll believe. But tell me a story and it will live in my heart forever.
인디언 속담이다. 이 속담은 스토리가 사실이나 진실보다 더 설득력 있고 긴 생명력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스토리는 쓸모없는 것을 쓸모 있게, 주목하지 못했던 것을 주목하게끔 만드는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다.
스토리는 그것이 목적이냐, 아니면 수단으로 활용되느냐에 따라 두 가지 방향성을 갖는다. 목적으로서의 스토리는 일반적으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서 활용되는 콘텐츠의 핵심을 말한다. 반면 수단으로서의 스토리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도구로 활용되는 대상을 일컫는다. 스토리는 상품을 구매하게 한다거나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혹은 이념이나 핵심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활용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스토리를 통해 웃고, 울고, 감동하는 등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스토리를 활용해 재미를 추구하고 이면으로는 특정 목적을 수행하려는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다.
단편 애니메이션 ‘미트릭스(The Meatrix)’가 대표적인 사례다. 공장식 축산의 실상이라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날 것 그대로 전달하면서도 의도한 효과를 얻는 과정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대중은 바쁘고 피곤한 일상을 견디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이슈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트릭스’는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패러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스토리텔링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가볍고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고 여론을 일으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정보(information)가 사건과 사물의 순수 실체를 전달하는 선에서 그치는 데 비해 스토리는 사건이나 사물과 함께 체험한 사람의 흔적과 경험을 전달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더 효과적이다. 특히 전달되는 메시지가 매력적이라면 대중은 이 메시지를 확장시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있는 그대로를 제2, 제3의 인물에게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지를 추가하거나 삭제, 변형시켜서 또 다른 창작물로 제작해 전파한다. 오늘날 대중화한 다양한 디지털 기술들이 이런 활동을 뒷받침한다. 이런 과정 을 통해 창작된 콘텐츠들은 종전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마케팅과 스토리텔링은 모두 ‘변화’를 지향한다
브랜드를 알리고 홍보하는 데 스토리텔링 기법이 선호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마케팅과 스토리의 본질이 ‘변화’에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태생적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여 상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며 신뢰하게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스토리의 최소 필요조건은 바로 사건(event)이며 사건이란 변화를 의미한다. 서사학자인 마이클 툴란(Michael J. Toolan)은 ‘사건 또는 상태의 변화(change of state)야말로 서사의 열쇠이자 근본’이라고 말했다. 등장인물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갈 때 스토리는 가치(Value)를 갖게 된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예로 들어보자. 400년 동안 지구에 살면서 인간의 삶에 냉소적인 입장을 보였던 외계인 도민준은 천송이라는 운명의 여인을 만나면서 상태의 변화를 겪는다. 그 변화는 도민준의 몸과 마음, 자신의 별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에 영향을 미친다. 시청자는 도민준의 변화를 흥미진진해 한다. 과연 도민준은 천송이와의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초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지구별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고향별로 돌아갈 것인가? 변하는 사람은 도민준만이 아니다. 천송이도 변한다. 톱스타였던 천송이는 도민준을 만나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마녀사냥을 당하고, 조연으로 밀려나고, 도도함 대신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민준과 천송이가 변하지 않을 때 시청자는 이야기에 흥미를 잃고 채널을 돌린다. 혹은 등장인물에게 지속되던 변화가 끝날 때 드라마는 종결된다.
브랜드 마케팅에서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하는 것은 비슷한 논리다. 디자인 기업 UX-FLO의 책임이사인 그레이 홀랜드(Gray Holland)는 경험의 사이클(Experience cycle)을 통해 소비자가 제품 혹은 서비스를 알게 되는 과정부터 사용하고 신뢰하게 되는 과정을 구조화했다. 소비자는 제품을 발견(find) → 인지(know) → 학습(learn) → 취향(like) → 구매(purchase) → 사용(use) → 신뢰(trust)하는 과정을 거쳐 재발견(re-find)하는 단계를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다. 소비자는 이 순환적 과정을 경험하면서 제품에 대한 태도 혹은 정서적 변화를 경험한다. 다시 말해 소비자와 제품의 관계는 수시로 변한다. 제품을 향한 감정적 유대관계는 생성되거나 소멸된다. 이 사이클에서 변화가 동반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경험을 획득할 수 없고 브랜드는 소비자와의 접점을 성공적으로 이어나가지 못하며 외면당한다.
달라진 환경, 달라진 소비자에 맞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지금까지의 브랜드 스토리텔링은 브랜드와 스토리텔링의 접점인 ‘변화’를 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개해왔다. 가장 활발하게 활용된 스토리텔링 기법은 문제 중심의 스토리텔링(problem-based storytelling)이다. 문제를 발생하게 하고 중심인물이 그 문제와 싸워나가면서 변화를 추구하고 종국에는 초반에 설정된 문제를 해결하는 식의 기법이 바로 그것이다. 비교광고의 대표주자라고 일컬어지는 맥도널드의 광고로 간략히 예를 들어보자. 금발의 소년이 맥도널드 봉지를 들고 공원에 앉아 있다. 소년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감자튀김과 햄버거를 먹어치운다. 황망한 소년. 다음 날, 다시 맥도널드 햄버거를 사서 공원 벤치에 앉는다. 우르르 몰려드는 아이들, 소년은 봉지까지 다 빼앗긴다. 다음 날, 소년이 가방을 벤치에 놓느라 시선을 돌리는 사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다른 아이가 맥도널드 봉지를 채간다. 이런 상황에서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마지막 신에서 소년은 여유롭게 감자튀김을 먹고 있다. 아이들이 소년 주위를 지나가지만 아무도 감자튀김을 건드리지 않는다. 왜? 소년의 맥도널드 감자튀김이 버거킹 봉지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 50초짜리 광고는 문제 중심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소년은 감자튀김을 먹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고 여러 번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는 하는데 경쟁사 제품을 깎아내리는 방식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마주친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대부분은 이런 유형의 기법을 적용한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웹과 모바일 등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고 그에 따라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소비자가 변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는 더 이상 주어진 정보를 수동적으로 향유하는 수신자가 아니다. 정보를 탐색하고 직접 체험해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주체로 거듭난 것이다.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새로운 시대의 이 같은 인간형을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상 세계 안에서 자기 몫의 인생을 즐기고 흥미롭고 신나는 체험에 관심이 많은 세대’로 명명한다. 그들은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능력자로, 가짜든 진짜든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현실에 자신의 인격을 재빨리 적응시킬 수 있는 존재다. 유연하고 파편화된 정체성으로 가상 세계를 배회하는 ‘산책자(flaneur)’이며 디지털 장비로 무장한 채 자유로운 유목 생활을 하는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이다.
표1 그레이 홀랜드 '경험의 사이클'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혹은 경험하고 싶어 하는 새로운 이야기란 무엇일까? 첫째, 안정된 하나의 스토리가 아니라 예기치 못한 수많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탐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둘째, 자신이 직접 조력자 또는 주인공으로 참여해 사건에 개입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이야기를 원한다. 셋째, 태어날 때부터 게임이라는 뉴미디어 형식에 노출된 세대이므로 게임처럼 즉각적인 피드백과 보상, 재미를 보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미디어 혹은 하나의 플랫폼이 아니라 다수의 미디어와 플랫폼을 오가며 이야기 조각들을 맞춰 하나의 거대 서사를 완성할 수 있는 독창적인 스토리 구조를 기대한다.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창조하기 위한 전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음의 4가지를 고민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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