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Succession
조직의 CEO가 바뀌는 이유나 과정은 다양하다. CEO가 임기를 다 마치고 자연스럽게 정해진 절차에 따라 후임자로 교체되는 경우도 있지만 불의의 사고나 일신상의 이유로 임기 도중에 사퇴할 수도 있다. 심각한 위기나 문제에 책임을 지고 퇴임하거나 해임될 수도 있다. 이런 다양한 종류의 CEO 교체를 모두 CEO 승계(CEO Succession)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승계란 장기적 관점에서 미리 명확한 기준과 절차, 계획에 따라 발굴되고 양성된 후계자에게 CEO의 역할을 원활하게 이양하는 것을 말한다. 즉 CEO 승계는 조직경영의 연속성과 지속적 발전을 이끌고 나갈 리더의 후보군을 미리 발굴해 육성하고 이 중에서 최적의 인물에게 최적의 시기에 CEO의 역할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넘겨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CEO를 교체하거나 갑작스럽게 공석이 된 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물색하는 활동은 체계적 승계와 개념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계획적 승계든 예상치 못한 교체든 CEO가 바뀌는 것은 그 조직의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은 물론 대학이나 병원, 종교단체, 정부조직 등 비영리 공공조직, 심지어 국가 전체에 이르기까지 CEO의 승계, 즉 원활한 교체는 조직 전체 역사에서 단연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예를 들어 한 나라 대통령의 교체가 그 사회 전체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면 CEO 승계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의 유고로 CEO가 교체됨에 따라 글로벌 경제계가 애플의 미래 경쟁력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교체됨에 따라 북한이 어떻게 바뀔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모두 CEO 교체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어떤 CEO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그 조직의 비전, 전략, 구조, 시스템, 제도, 문화 등은 모두 달라진다. 어떤 CEO가 조직의 수장을 맡게 되느냐가 궁극적으로 해당 조직의 성과와 경쟁력, 생존가능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영리나 비영리를 막론하고 모든 조직들은 CEO의 정상적 은퇴는 물론, 건강이나 사고 등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부재 상황에 적시에 적절하게 대응해 원활하게 후임자로의 승계를 완수할 수 있는 계획과 시스템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CEO 승계는 조직의 운명에 정말 중요한가?
CEO와 같은 리더가 조직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경영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전반에서 가장 오래된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기존 리더십 이론에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조직에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며 실행을 주도하는 CEO는 조직 성과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 발전된 새로운 리더십 이론(예: 리더십 대체이론) 가운데에는 다양한 조직시스템들로 CEO의 리더십 효과를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진정한 리더십은 우월한 존재로서 구성원들을 이끄는 전통적인 CEO의 이미지를 탈피해 구성원들이 스스로 리더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끔 권한을 위임(empowerment)하는 것이라는 관점들(셀프리더십이론, 슈퍼리더십이론, 오센틱리더십이론 등)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관점들도 리더가 조직이나 집단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한다.
더구나 그 조직의 CEO, 즉 CEO의 리더십은 그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중요성을 가진다. CEO 리더십의 대가 햄브릭(Hambrick) 교수는 CEO의 리더십은 일반 임원이나 중간 관리자들의 리더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전략적 리더십(strategic leadership)’이라고 불렀다. 햄브릭은 CEO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환경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에 따라 조직 전체의 비전과 전략을 결정하며 조직 구조와 시스템, 제도를 설계하고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단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CEO는 다른 임직원들이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업무를 수행하는 조건과 환경을 결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CEO가 전략 수립이나 조직설계를 잘못하면 다른 임직원들이 아무리 출중하고 열심히 노력해도 조직은 높은 성과를 달성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CEO의 교체는 단연 가장 중요한 조직변화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CEO 승계에 대한 연구들에 따르면 CEO 승계와 조직 성과 간 관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매우 복합적이다. 먼저 ‘CEO교체-위기’ 이론에서 CEO의 교체는 조직의 일상적 업무 활동(routines·루틴)과 권한 관계를 교란시키고 구성원의 불안정성을 증가시켜서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해넌(Hannan) 교수를 필두로 한 조직생태학자들이 이 같은 주장을 폈다. 이와 반대로 ‘CEO교체-적응’ 이론에서는 CEO 승계란 조직이 변화된 외부 환경 조건에 적응하고 내·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조직 변화에 대한 조직의 강력한 의지에 대한 시그널을 보내기 때문에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이론 모두와 다르게 와익(Weick)이나 페퍼(Pfeffer) 교수 등이 주장하는 ‘상징적 리더십’ 이론에서는 CEO가 실제로 조직 성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수행한다기보다는 내·외부에 조직을 대표하는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CEO 승계와 성과 간에는 그렇게 중요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CEO 승계에 대한 위의 세 가지 각기 다른 이론에서 볼 수 있듯이 CEO 교체와 조직 성과 간 관계는 일방적으로 긍정적 혹은 부정적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상황 요인들과의 적합성(fit), 즉 얼라인먼트에 의해 복합적으로 결정된다는 상황적합성이론(contingency theory)적 관점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CEO 승계에 대한 보다 실천적인 시사점을 찾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주요 상황 요인들에 적합한 승계 전략의 유형을 파악하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실제 조직들에서 CEO 승계가 진행되는 현황은 어떨까?
CEO 승계의 현황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CEO 승계가 조직 성과에 미치는 높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외를 막론해 체계적 CEO 승계프로그램을 보유, 운영하고 있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가족소유 기업의 경우 단순히 언젠가 자녀에게 CEO 자리를 물려준다는 정도의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절차를 거쳐, 누구에게 승계를 할 것이며, 또 이를 위해 필요한 준비에는 무엇이 있는가 등에 대해 구체적 계획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도 포춘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체계적인 CEO 승계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실제로 CEO의 교체가 진행되는 패턴은 천차만별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글로벌 전자산업에서 현재의 애플 못지 않은 위세를 떨쳤던 일본의 소니가 급격히 쇠락의 늪으로 빠진 이유는 절대적 영향력을 가졌던 아키오 모리타 회장의 후임자 선임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에 비해 GE는 잭 웰치가 자신의 후임자 후보군 검토를 퇴임 9년 전에 이미 시작했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CEO 승계프로그램이 잘 확립돼 있다는 평을 받는다.
사실 효과적 CEO 승계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실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GE의 잭 웰치 회장은 후임 CEO를 선발하기 위해 1993년부터 GE에서 22만5000명에 달하는 임직원들 중에서 CEO의 잠재력을 가진 20명의 후보들을 각 분야와 직급에서 파악했다. 그리고 그 이후 7년간 이들 20명에 대한 다양한 검증과 평가 과정을 거쳐 최종 3명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이 세 명에 대해 수많은 평가와 토론을 거쳐 마침내 제프리 이멜트를 후임 CEO로 선정했다. 이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효과적 CEO 승계를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 투자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CEO 승계프로그램은 어떤 내용들을 담아야 할까?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간 선택
CEO 승계 의사결정 과정에서 맨 먼저 선택해야 하는 사안은 차기 CEO를 조직 내부에서 물색할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 즉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간 선택의 문제다. 이 사안은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이슈다. 어느 편이 우월한 방안인지 절대적 정답은 없다.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모두 그 나름의 장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가기준에 따라서 그 상대적 장단점마저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선 CEO 교체 결과 조직이 위기에 빠지거나 성과가 그 이전보다 더 악화되는 등 승계실패의 위험 측면에서 보면 새로운 CEO로 아웃사이더를 기용한 경우가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거시조직이론의 조직생태학에서 해넌 교수 등이 주장하는 구조적 관성(structural inertia)에 따른 급진적 변화의 위험 때문이다. 해넌 교수는 조직이 전략이나 구조, 사업분야 등과 같은 핵심 요소들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급진적 조직변화를 시도할 때 높은 생존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때까지 조직운영의 핵심 기반이 돼온 내부 루틴과 권한관계가 교란될 뿐 아니라 외부 시장과 이해관계자들의 신뢰에도 타격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급진적 변화를 시도하는 대부분 기업들이 위기에 처하게 되고 반대로 기존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조직들이 살아남는 구조적 관성이 발생하게 된다. 외부 CEO의 영입은 바로 이런 급진적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내부 충원에 비해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즉 기존과 다른 새로운 비전과 가치관, 역량, 전략, 경영진 팀, 경영스타일 등으로 무장한 아웃사이더가 CEO로 조직에 들어오는 경우 그 조직은 지속성과 오퍼레이션 효율성, 기존 사업과 프로젝트들의 추진력 등에 심각한 교란이 발생할 뿐 아니라 조직의 기존 문화와 가치관, 루틴 등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구성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웃사이더가 그 조직의 내·외부 현황과 환경의 특성을 단기간 내에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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