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챌린지서 캐릭터 코스프레까지
‘팬 경험 패키지’ 전략적 설계 먹혀
Article at a GlanceK팝, K푸드 등 한국 문화를 핵심 소재로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본 오리지널 영화’에 등극했다. 단기간 전 지역, 세대를 망라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퍼포먼스를 감정 고조를 위한 장치가 아닌 스토리를 핵심 요소로 활용해 챌린지 등 관객의 참여를 이끌었다는 점이 애니메이션 IP로서 거둔 이례적인 성과다. 한국인의 뿌리를 가진 제작자들이 경험한 ‘한국성’을 과장 없이 생생하게 표현한 동시에 애니메이션이라는 비현실적 장르를 선택함으로써 글로벌 관객에게 높은 문화적 해석을 요하는 ‘무속’과 같은 한국적 요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오디언스 디자인 단계에서도 OST, 퍼포먼스, 스토리 등에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팬 경험 패키지’를 전략적으로 구축했다.
2025년 K콘텐츠 업계가 ‘글로벌 히트’를 만났다. 지난 6월 20일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동시 공개된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한인 2세 감독 매기 강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본 오리지널 영화’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글로벌 문화 현상으로 부상했다.
케데헌은 서울을 주무대로 삼아 K팝 걸그룹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한국의 신화와 무속 이야기를 미국, 캐나다, 한국 등의 다문화 인력이 버무려냈다. 미국 애니메이션이면서 동시에 K콘텐츠로 소비되고, OTT 오리지널 콘텐츠이면서도 시사회와 싱어롱(관객이 함께 노래 부르는 참여형 관람 형태) 상영을 통해 극장 집단 관람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케데헌은 2025년 한류의 성공을 설명하는 축약본이기도 하다.
OTT 플랫폼에 공개된 콘텐츠가 팬덤과 SNS를 매개로 화제성을 이어가는 가운데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골든’ 조명 이벤트가 열리는 등 도시 랜드마크로 확산되는 흐름도 눈에 띈다. 국내 담론이 주로 ‘케이팝 IP의 성공’이나 ‘한국 애니메이션의 약진’에 초점을 맞췄다면 해외에서는 ‘새로운 문화 해석 방식’과 ‘참여형 팬 경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2025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케데헌을 다시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1. ‘케데헌’ 현상 다시 보기
케데헌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후 불과 몇 주 만에 플랫폼 내 1위 영화로 등극했다. 지난 8월 기준 조회 수는 2억 회를 돌파했으며 11월 말까지 약 22주 동안 넷플릭스 영화 톱 10에 꾸준히 머무르며 각종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시청 지표뿐 아니라 소비 형태도 흥미롭다. 케데헌은 10대 혹은 어린이를 주로 타깃하는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팬층을 넘어 훨씬 넓은 연령대와 문화권에서 받아들여졌다. 젊은 세대부터 어린이, 그들의 학부모까지 모든 세대가 케데헌의 관객이다. 동서를 망라하고 사랑받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역시 이례적이다. 이처럼 전 지역과 세대에 사랑받는 애니메이션 IP로는 ‘포켓몬스터’가 대표적이다. 포켓몬스터는 1996년 게임으로 처음 시작한 이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미디어 믹스를 통해 팬들과 함께 약 30년의 세월을 보내며 팬을 축적해온 데 반해 케데헌은 단기간에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대중의 인기를 사로잡았다. 전통적인 문화 강국 프랑스의 일간지 르몽드는 이를 두고 “애니메이션의 고정 관객을 넘어서는 보기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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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문화 전문 매거진 배니티페어 역시 “K팝 팬덤과 일반 대중을 동시에 아우른 작품”이라고 언급하며 교차적인 팬층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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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케데헌이 단기간 신드롬급 인기를 끌어낸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케데헌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디즈니의 ‘겨울왕국(Frozen)’이 떠오른다. 두 작품 모두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음악과 퍼포먼스가 이야기의 핵심 장치로 작동하며 어린이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접근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특히 ‘혼문’과 ‘아렌델 왕국’이라는 현실을 벗어난 공간을 무대로 감정을 투사할 수 있다는 점은 두 작품이 공유하는 주요한 성공 요소다. 그러나 ‘케데헌’은 이 지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디즈니식 뮤지컬 애니메이션이 고조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을 배치했다면 케데헌은 K팝 퍼포먼스의 구조 자체를 서사의 추진력으로 전환한 작품이다. 짧고 반복되는 후렴 중심의 가사가 세계관의 핵심 개념을 기억에 각인시키는 장치로 작동하는 동안 퍼포먼스의 구성은 이야기의 긴장과 전환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 덕분에 관객은 케데헌을 보고 난 다음에도 OST를 스트리밍할 뿐만 아니라 안무를 따라 추거나 영상을 편집해 밈을 만들며 계속해서 케데헌 세계관 안에 머무르게 된다. 디즈니의 공식에 한류의 퍼포먼스 감각을 결합해 확장한 이른바 ‘포스트 겨울왕국’의 새로운 성공 모델인 셈이다.
케데헌이 전 세계 관객에게 한국의 새로운 면모를 소개한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의 야경이나 K팝 공연장은 이미 한류를 통해 익숙해진 풍경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민화를 연상시키는 호랑이와 까치, 저승사자, 퇴마사, 노리개 등 전통적 상징물,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골목 풍경처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국성은 글로벌 관객에게 신선한 자극을 줬다.
이처럼 케데헌은 OTT 플랫폼의 파급력, 퍼포먼스 기반의 스토리텔링, 애니메이션 특유의 초현실성, 덜 알려진 한국성의 감각적 재구성 등의 요인이 결합되면서 향후 한류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전 세계가 이미 익숙해진 한국 문화의 일부를 넘어 전통, 감정, 에너지, 도시성, 생활문화 등 그 너머의 층위까지 탐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케데헌’ 현상은 일회적인 흥행을 넘어선다.
2. ‘케데헌’의 성공 요인:글로벌 관객을 사로잡은 5가지 힘
‘케데헌’의 성공을 그저 ‘K팝 아이돌이 등장하는 한국 배경의 애니메이션’ 정도로 해석하는 것은 부족한 감이 있다. 이 작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반향을 일으킨 데는 서로 다른 층위의 전략적 요인들이 교차하며 작동했다. 이 요인들은 K콘텐츠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선택 자체가 전략적이었다. 케데헌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한국적 민담, 무속적 상징, 요괴, 화려한 색감, K팝 퍼포먼스 등을 지나친 과장이나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이는 실사 영상이라면 관객에게 높은 문화적 해석을 요구하는 요소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현실 세계의 물리적 조건이나 문화적 맥락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 요소가 분절 없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녹아들 수 있다. 관객이 처음부터 현실 바깥의 세계를 전제로 작품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한국 고유의 색채가 짙은 무속적 코드도 ‘초현실적 자연스러움’으로 이질감 없이 흡수했다. 결국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 자체가 ‘한국적 낯섦’을 ‘매력’으로 전환해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둘째, 케데헌은 오디언스 디자인(audience design), 즉 기획 단계에서부터 관객을 설계하는 전략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사례다. 오디언스 디자인은 콘텐츠·경험·브랜드 메시지를 기획하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특정 관객 집단의 정체성·사회적 맥락·해석 방식까지 고려해 고객의 정의를 내리는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의미한다. 콘텐츠가 도달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이 스스로 어떤 집단으로 정체화할 것인지 설계하는 데 초점을 둔다.‘골든’을 비롯한 OST는 짧은 훅과 명료한 멜로디를 중심으로 구성돼 영화 밖에서도 바로 SNS 챌린지로 확장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안무 역시 기억하기 쉬운 포인트 동작들로 이뤄져 팬들이 자연스럽게 커버 영상을 생산하도록 유도한다. 캐릭터 디자인 또한 실루엣과 컬러, 상징 오브제가 분명해 팬아트나 코스프레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야기의 세계관 역시 팬덤이 비집고 들어가 그들만의 해석을 더할 ‘빈 공간’을 남겨 팬픽과 2차 창작을 자극했다. 이 같은 참여형 문화는 ‘팬은 공동 제작자’라는 글로벌 팬덤 생태계의 변화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포브스가 틱톡 기반 애니메이션 팬덤 사례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오늘날 팬은 밈이나 편집 영상 등을 통해 원작을 재해석하고 확장하는 주요 주체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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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리포트 역시 같은 맥락을 강조했는데 이 흐름이 케데헌 안에서 적극적인 형태로 구현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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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케데헌은 OTT를 통해 공개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공동 시청의 경험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공개 직후 시청자들의 시청 타임라인에 따라 SNS에서는 특정 장면과 OST, 캐릭터에 대한 반응이 거의 같은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스포일러 방지 문화가 형성됐다. 이어진 싱어롱 버전의 극장 상영은 OTT에서 구축된 팬덤을 다시 오프라인으로 끌어오며 콘텐츠 수용 방식을 확장했다. 이는 OTT 알고리즘이 초래하는 동시성과 팬덤의 집단 감정이 결합해 만들어낸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앞으로의 K콘텐츠가 OTT와 극장을 어떻게 연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넷째,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 본래 살던 땅을 떠나 다른 곳에 흩어져 사는 민족이나 집단) 출신 창작자들의 역할도 케데헌의 성공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감독과 주요 제작진, 성우진 상당수는 북미에서 성장했지만 한국적 감수성도 함께 체득한 이중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한국적 정서와 공간의 뉘앙스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면서도 북미권 관객에게 익숙한 서사 구조와 감정 리듬 역시 잘 알고 있다. 그 덕분에 작품 속의 서울은 과장된 관광 홍보용 이미지로 구현되지 않았다. 지하철의 리듬, 밤거리의 조도 등까지 실제 생활 감각이 생생한, 살아 있는 도시로 그려졌다. 동시에 무속이나 요괴 같은 한국적 전통 요소 또한 과잉된 이국성으로 발현되지 않고 현대적 감각 아래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결국 ‘케데헌’이 한국성의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관객에게 ‘낯설지만 부담 없는’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디아스포라 창작자들의 문화 해석 능력 덕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케데헌의 가장 독창적인 성공 요인은 ‘통합된 한국성’의 설계에 있다. 이는 넷플릭스가 케데헌의 성공을 분석하며 반복적으로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케데헌은 앞서 강조한 K팝 퍼포먼스의 에너지, 한국 간식과 음식 문화, 스트리트 패션, 편의점이나 골목 같은 일상 공간, 무속과 요괴 등 전통적 이미지까지 하나의 감각적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해외 관객들은 이 작품을 보며 현대적 라이프스타일과 전통, 감정의 리듬과 도시의 에너지까지 포괄하는 다층적 한국성 전체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즉 한국적 요소가 형식적인 배경을 넘어 서사의 전개와 감정의 구조를 결정하는 핵심 구성 요소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케데헌은 기존 한류 콘텐츠와 차별화된다. 이상의 다섯 가지 요인이 서로 따로 작동했다기보다 복합적으로 얽혀 ‘케데헌’이라는 문화적 현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구조는 한류가 단순히 음악이나 드라마 등 특정 장르를 넘어 삶과 감각 전체를 공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문화 영향력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3. ‘케데헌’이 던지는 전략적 질문:지속가능한 한류를 위한 ‘넥스트 패러다임’케데헌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올해의 화제작이기 때문이 아니다. 향후 K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전략적 피벗(strategic pivot)’을 단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류의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케데헌 사례가 시사하는 4가지 핵심 어젠다를 재정리하고자 한다.
1) 다양성은 상수, ‘고유성’으로 차별화전 세계 콘텐츠 생태계에서 다양성이 전제 조건이 된 지금, 관객은 ‘누가 나오느냐’보다 ‘그 이야기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에 관심을 가진다.
케데헌이 주목받은 이유 역시 특정 문화권의 디테일을 과감하게 전면에 배치하는 가운데 보편적 정서를 끌어올리는 방식에 있다. 앞으로의 한류 전략에 있어 ‘한국적 요소를 글로벌화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성을 유지한 채 글로벌 문법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 기반 스토리 IP를 발굴·심화할 수 있는 리서치 역량, 해외 스토리텔링 전문 인력과의 협업 구조, 다문화 감수성을 갖춘 해석 및 각색 파트너십과 같은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즉 깊이 파고든 지역성(locality)을 글로벌 수용자가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맥락 전환 능력’의 구축이 차세대 경쟁력이 될 것이다.2) 오디언스 디자인, 마케팅이 아닌 ‘기획 시스템’케데헌은 처음부터 관객의 참여 방식을 콘텐츠 구조에 반영한 작품에 가깝다. 밈화 가능성, 음악 활용 방식, 팬 창작 활동의 확장성 등은 사후적 현상이 아니라 기획 초기 단계에서부터 설계된 요소로 분석된다. 이는 한류 산업 전반에 다음과 같은 전환을 요구한다.
· 콘텐츠 제작자 → 팬 경험 설계자
· 마케팅팀 → 커뮤니티 생태계 디자이너
· 프로젝트 단위 → 데이터 기반 지속 운영 모델
미래의 K콘텐츠는 단일한 ‘작품’이 아니라 복합적인 ‘팬 경험 패키지’로 기획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관 기획자, 커뮤니티 전문가, 데이터 분석가, 플랫폼 전략가 등이 함께 움직이는 융합형 팀(convergence team) 구조가 기본 모델이 돼야 한다.
3) 디아스포라의 활용과 글로벌 합작, 비용 절감 아닌 정체성 설계 위한 인프라케데헌은 한국 문화를 기반으로 하지만 제작 구조는 북미와 한국의 디아스포라 창작자들이 얽힌 글로벌 협업 생태계 위에서 탄생했다. 이 사례는 앞으로의 한류가 ‘한국발(發)’ 스튜디오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세계 곳곳에서 한국적 감수성을 공유하는 창작자가 생산에 참여하는 개방형 네트워크 모델로 진화해야 함을 시사한다. K콘텐츠 기업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 디아스포라 창작자 인재풀에 대한 장기적 탐색과 육성
· 문화 정체성 설계가 가능한 글로벌 작가·감독 그룹과의 네트워크
· 동시다발적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분산형 파트너 스튜디오 체계
한류의 새로운 생태계는 ‘어디서 제작했는가’보다 ‘누가 문화적 방향성을 설계했는가’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를 앞당길 것이다.
4) 포스트 플랫폼 전략, 의존을 넘어 ‘IP 주권’으로전 세계 동시 공개와 알고리즘 기반의 확산 방식은 케데헌의 성공에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OTT 중심 구조는 다음과 같은 위험을 내포한다.
· 특정 플랫폼의 투자 전략에 한류 성장세가 과도하게 좌우될 가능성
· IP 권리 구조상 제작사가 장기적 수익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
· 팬덤이 플랫폼 안에 갇혀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문제
따라서 K콘텐츠 IP 보유자에게는 몇 가지 고민이 뒤따른다. 먼저 게임, 출판, 머천다이징과 라이브 경험 등 OTT 외부에서 IP를 확장할 수 있는 수익 다각화 모델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플랫폼 알고리즘에 기대지 않고 팬과 직접 연결되는 채널을 어떤 방식으로 구축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나아가 국제 합작이 늘어나는 환경에서 IP 소유권과 수익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요구된다. 결국 플랫폼과의 관계는 과도한 의존도 불필요한 대립도 아닌 전략적 동반자 모델로 재정렬돼야 한다. 그 핵심은 OTT가 만들어준 도달 범위를 얼마나 기업의 자체 자산으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케데헌이 2025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란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영화가 한류 산업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선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케데헌의 스케일이나 흥행 성과보다 중요한 통찰은 한국 콘텐츠가 로컬의 깊이를 글로벌 감각으로 전환하는 역량, 관객 참여를 설계하는 능력, 국제 창작 네트워크를 운용하는 체계, 플랫폼 의존을 넘어 IP를 자립적으로 확장할 전략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점검 항목이 아니라 앞으로의 한류산업이 어떤 구조적 진화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미래 지향적 과제이기도 하다. 내년 이맘때 또 하나의 ‘케데헌’이 등장할 수 있을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구조적 정비와 전략적 결단을 실행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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