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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 인텔리전트 퍼포머(Hyper-Intelligent Performer)

AI 무기로 초격차 만드는 초고성과자
인력구조 재편 가속, 보상도 양극화 전망

권기범,정리=최호진 | 424호 (2025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과거 고성과자·고잠재력자가 HR 전략의 중심이었다면 최근 업계 최고 수준의 전문성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조직 성과의 상당 부분을 창출하는 극소수의 ‘초고지능형 성과자(Hyper-intelligent performer)’에 자원과 권한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조직 내외에서 높은 가시성과 브랜드를 확보하며 강력한 사회적 자본과 네트워크를 통해 팀 전체의 역량을 증폭시키는 특징을 가진다. AI 시대, 초고지능형 성과자 중심으로 인재 경영이 전환됨에 따라 평균 수준의 인재와 중간관리자의 입지는 점점 축소되며 ‘알파 인재 vs. 그 외 나머지’라는 극단적 파레토 인력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기준에 미달하면 급격한 보상 하락이나 해고로 이어지는 ‘급여 절벽형’ 구조가 확산될 전망이다.



01 Business Trend Insight

하이퍼 인텔리전트 퍼포머
(Hyper-Intelligent Performer)

AI 시대의 지식·기술 변화 속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업계 최고 수준의 전문성과 창의력, 협업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압도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초고지능형 성과자를 의미.




AI 시대, 벌어지는 ‘지능 격차’…
‘똑똑함’의 기준이 바뀐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막 확산되던 시절에는 ‘정보검색사’라는 자격증이 있었다. 고객의 요청에 따라 누가 더 효과적으로 정보를 찾아내느냐가 경쟁력이었고 자격증 보유 여부는 채용에도 도움이 됐다. 그러나 이 자격증은 빠르게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사람들이 인터넷 검색에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AI 리터러시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의 확산은 ‘프롬프트 작성법’이라는 새로운 스킬 교육을 유행시키고 기업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사람들은 AI 사용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것이며 AI 기업 역시 더욱 향상된 자연어 처리 능력과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할 것이다. 결국 AI는 특별한 기술이 아닌 정보 검색이 ‘구글링(Googling)’으로 일상화된 것처럼 누구나 손쉽고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유틸리티로 자리 잡을 것이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그다음이다. AI의 대중화는 단순한 기술 접근성의 문제가 아닌 ‘AI를 얼마나 효과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개인의 사고 체계에 통합할 수 있는가’에 따라 벌어지는 격차, 즉 ‘지능 격차(Intelligence divide)’를 낳게 될 것이다. 이를 기존의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AI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인지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에는 신기술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정보 습득 속도에 차이가 생겼고 이는 곧 생산성의 격차로 이어졌다. 그러나 AI 시대는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용자는 생성형 AI를 단순히 조금 더 편리해진 검색 도구로 여기며 ‘연구 보조원’ 수준의 도움만 받아 생산성을 소폭 높이는 데 그친다. 반면 다른 사용자는 적절한 질문을 던져 AI를 ‘세계적인 석학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것’처럼 활용하며 동등한 지적 파트너와 함께 일하듯 압도적인 성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지능 격차란 단순한 도구 사용 능력의 차이가 아니다. 이는 AI를 통해 인간이 자신의 사고력을 얼마나 증강시키고 스스로의 연장선이자 또 다른 형태의 지능을 가진 AI 에이전트를 창조해 내는지의 문제다. AI는 이제 마치 손오공의 분신술이나 머털도사의 머리카락 신공처럼 한 인간이 쓸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을 무한히 확장시켜줄 것이다.

전통적으로 ‘똑똑한 사람’은 복잡한 정보를 많이 기억하고 이를 적절한 순간에 정확히 인출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앞으로 AI가 고도화되면 인간의 인지 전략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이제 정보를 굳이 인간의 뇌에 저장할 필요가 없다. AI가 기억을 대신하고 정형화된 추론까지 일부 수행하는 시대에 인간의 두뇌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는 마치 GPS가 등장한 이후 더 이상 도로 이름이나 방향을 외우지 않아도 교통량까지 고려해 목적지에 더 빠르고 정확하게 도달할 수 있게 된 것과 같다. 길을 찾고 방향을 감지하는 인간의 능력은 약해졌지만 이동의 효율성은 높아진 것처럼 AI 시대의 인간 지능 역시 일부 능력은 퇴화하더라도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고차원적 판단 역량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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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AI 도입 초기에만 해도 정형화된 저숙련 업무가 AI에 의해 대체되고 비정형적이고 창의적인 고숙련 업무는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흐름은 이와 사뭇 다르다. AI는 이제 저숙련뿐만 아니라 코딩, 디자인, 의료 진단과 같은 고숙련으로 알려진 업무까지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업무가 정형화될 수 있는지보다는 ‘지식의 변화 속도’가 AI 시대, 일의 미래를 가늠하는 더 본질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AI로 인해 정형이든 비정형이든 어제까지 유효했던 지식이 순식간에 쓸모없어질 수 있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AI가 매일같이 새로운 지식을 무한히 생성해낼지도 모른다. 복잡계 물리학자이자 응용수학자인 새뮤엘 아브스만이 지식 변화 속도 관점에서 지식을 분류한 다음 내용이 좋은 힌트가 될 수 있다.

1) 고속 변화 지식: 빠른 속도로 실시간 변동이 일어나는 지식이다. 날씨나 주가 변동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가 이에 해당한다. 의도적으로 자주 갱신되는 동시에 실제 맥락에 적용해보며 기존과는 다른 해석이나 활용 방식이 끊임없이 시도된다.

2) 중속 변화 지식(Mesofacts): 한 사람의 인생에 걸쳐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지식이다. 원소 주기율표의 원소 수나 질병 분류 체계처럼 단기간에는 고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서서히 변한다. 따라서 이런 지식에는 변화의 징후를 감지하고 과거의 지식을 빠르게 폐기하고 유연하게 재학습할 수 있는 역량과 태도가 요구된다.

3) 저속 변화 지식: 거의 변하지 않는 개념이나 원리로 구성되며 상식과 사고의 기반을 이룬다. 대륙의 수, 인간의 손가락 개수처럼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실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복 학습을 통해 장기 기억으로 축적된다.

AI 시대의 인재는 이 세 가지 지식의 속도를 구분해 인지 전략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AI가 중·저속 변화 지식을 적절히 제공하면 인간은 고속 변화 지식을 높은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으로 끊임없이 흡수하며 AI와의 협업 속에서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 이처럼 기억이라는 인지적 노동은 AI에 외주화하고, 분산된 정보를 연결해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며, 잘못된 정보(Hallucination)를 분별하고, 새로운 해결 방향을 제시하며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똑똑한 인재다.


신능력주의 시대,
‘초고지능형 성과자’ 중심 인재 경영

이런 변화는 능력주의(Meritocracy)의 정의 자체를 바꾼다. 기존 인적자본 이론의 대표적인 기본 가정인 높은 학력이 높은 소득으로 이어진다(More learnings, more earnings)는 경제학의 전제를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 AI 이전 시대에는 교육기관에서 공인해준 시험 점수, 학점, 자격증, 학위 등이 개인의 지능을 측정해주는 지표 역할을 했다. 기업들은 스스로 평가하기 어려운 인간의 지능을 교육기관의 공식적인 평가 결과에 의존해 인재를 선발해왔고 오랫동안 대학 졸업장은 높은 소득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경로로 간주돼왔다. 그러나 AI 시대의 테크 기업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중·저속 변화 지식 중심의 대학 교육보다 고속 변화 지식을 실전에 적용하는 역량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실무 현장에서의 문제 해결력이 곧 실력의 기준이 되는 ‘신능력주의(Neo Meritocracy)’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채용하면서 “학력이나 전 직장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너의 코드만 보내달라”고 밝힌 바 있다. 즉 실력을 직접 증명하라는 것이다.

일과 경력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있는 신능력주의 시대에는 AI와 함께 사고하고 학습하며 문제 해결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초고지능형 성과자(Hyper-intelligent performer)’라는 새로운 인류도 출현할 전망이다. HR 분야에서 핵심 인재는 그동안 평균적인 성과를 내는 직원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는 직원, 즉 ‘고성과자(High Performer)’와 고성과자로의 빠른 성장 가능성을 지닌 ‘고잠재력자(High Potential)’로 정의돼 왔다. 이들은 조직 인재 분포 곡선의 상위 10%에 해당하며 HR 전략은 이들의 성과와 잠재력을 극대화해 전체 조직의 평균 성과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돼왔다. 그러나 초고지능형 성과자는 조직 내 평균을 상회하는 고성과자 수준을 넘어 업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의 혁신성, 지식 수준, 실행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며 조직 성과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극소수 인재를 말한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메타가 주도하는 인재 쟁탈전은 초고지능형 성과자에 대한 인재 경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고편이다. 메타의 전략은 더 이상 다양한 인재풀에서 일정 수준의 인재 확보 경쟁을 벌이는 ‘인재 전쟁(War for talent)’ 수준이 아니다. 이제는 경쟁사의 핵심 인재를 노골적으로 빼오는 ‘인재 약탈(Competitor poaching)’의 단계에 들어섰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오픈AI, 구글 딥마인드, 애플 등에서 활동하던 슈퍼 인텔리전스 연구자들을 직접 나서서 공격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1인당 1억~2억 달러(약 1380억~2760억 원) 수준의 보상 패키지를 제시하고 연구에 필요한 업계 최고 수준의 GPU 컴퓨팅 파워와 저커버그 CEO가 보장하는 연구 자율성까지 제공된다. 이런 압도적인 제안은 몇 시간 내, 길어도 당일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압박과 함께 제시된다. 이를 두고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우리 조직은 사명(Mission)에 기반한 연구 집단”이라며 이직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실제로는 일부 핵심 인재의 이탈을 막지 못하고 있다.

한편 메타는 인재 약탈과 동시에 전체 인력에 대한 상시 구조조정도 단행하고 있다. 지난 2월 전체 인력의 5%에 해당하는 약 3600명을 해고한 데 이어 4월에는 대표적인 적자 사업부인 가상 현실 부문의 ‘리얼리티 랩스’에서도 대규모 인력이 감축됐다. AI 도입으로 신입 개발자에 대한 채용을 축소하고 조직 수평화(Flattening)를 통해 중간관리자 계층을 최소화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저커버그 CEO는 “성과 관리 기준을 높이고 저성과자들을 더 신속하게 내보내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초고지능형 성과자에 대한 인재 약탈과 전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상시 인력 구조조정의 공존은 AI 시대의 인재 경영이 더 이상 조직 전체의 평균적인 인적자본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보다는 압도적인 영향력을 지닌 극소수에게 자원과 권한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AI보다 고용 비용이 높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평균 수준의 직원과 실리콘밸리에서 비효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중간관리자는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으며 ‘알파 인재 vs. 그 외 나머지’라는 극단적 파레토 인력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구조에선 정해진 성과 기준선을 넘는 이들에게는 초고연봉이 보장되지만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급격한 보상 하락이나 해고로 이어지는 ‘급여 절벽형 보상 구조’가 작동한다. 이는 마치 메이저리그에서 투타를 겸비한 ‘이도류(二刀流)’의 아이콘인 오타니 쇼헤이가 LA 다저스와 사실상 종신 계약인 1조 원 규모의 10년 계약을 맺은 반면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처우를 받으며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초고지능형 성과자는 어떻게 다른가?

반도체 설계 분야의 전설로 불리는 짐 켈러는 초고지능형 성과자라는 개념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인물이다. 그는 AMD, 애플, 테슬라, 인텔 같은 테크 자이언트 기업을 모두 섭렵하며 가는 곳마다 괴물 같은 반도체를 디자인해내는 현직 반도체 엔지니어다. 켈러는 1998년 AMD의 수석 설계자로 애슬론 시리즈를 성공시키며 64비트 시대와 멀티코어 프로세서 시대를 열었고 2008년 애플에 합류해 애플이 자체적으로 칩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된 아이폰 프로세서 A칩을 개발했다. 이후 2012년에는 파산 직전의 AMD로 돌아가 리사 수와 함께 인텔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현재의 AMD를 가능케 한 라이젠 시리즈와 젠 아키텍처 개발에 참여했다. 2016년 테슬라로 향한 그는 테슬라가 엔비디아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해준 자율주행 반도체(FSD)를 개발했다. 2018년부터 인텔에 머물면서 인텔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반도체 로드맵을 만들어낸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처럼 켈러는 명실상부 반도체 설계 분야의 전설적인 인물로 가히 1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초고지능형 성과자의 대표 인물이다. PC, 모바일, AI 시대로 이어지는 기술의 격변기마다 그는 언제나 흐름을 한발 앞서 읽고, 핵심 문제를 돌파하며, 자신의 역량과 영향력을 확장해왔다. 그의 여정은 AI 시대에 ‘똑똑함’이란 무엇인지 그 본질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보여준다.

파격적인 보상과 권한을 갖는 초고지능형 성과자는 일반적인 고성과자와 본질적으로 다른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지속적으로 압도적인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이들은 단발적인 성과나 운에 기대는 이른바 ‘원 히트 원더(One-hit-wonder)’1 가 아니다. 규칙이나 절차보다 직관과 통찰을 바탕으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새로운 표준을 정의하고 오랜 기술적 난제를 돌파해낸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탁월한 엔지니어를 동료들보다 10배 더 많은 성과를 낸다는 뜻에서 ‘10배 엔지니어(10x engineer)’라 부르지만 최근 AI 인재 약탈의 주인공들은 시장 판도를 좌우할 만큼의 능력과 영향력으로 ‘1000배 엔지니어(1000x engineer)’ 혹은 그 이상으로 평가된다. 한때 이름조차 낯설었던 비영리조직 오픈AI는 챗GPT 출시 이후 급부상했고 그래픽카드 제조업체 정도로 알려졌던 엔비디아는 GPU와 CUDA를 통해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처럼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AI 분야에서는 단 한 보 앞선 기술 우위가 기업의 미래를 통째로 바꿔 놓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초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초고지능형 성과자 확보를 위해 모든 것을 베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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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초고지능형 성과자는 높은 가시성(Visibility)을 지닌다. 이들은 조직 내외에서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로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대상이다. 회의, 프로젝트, 전략 수립 과정의 중심에 서며 이들의 논문이나 관점은 공식·비공식 기준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엔지니어라고 하면 내성적이면서 은둔자 같은 너드(Nerd)나 독특한 사회성을 가진 긱(Geek)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오늘날의 초고지능형 성과자들은 유튜브 등 공개 플랫폼을 통해 기술 혁신, 조직 운영, 리더십 철학을 공유하며 자신만의 브랜드를 적극 구축한다. 이들은 테크 콘퍼런스에서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는 셀럽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중국 딥시크 창업자 양원펑처럼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AI 시대, 초고지능형 성과자는 자신의 영향력과 철학을 능동적으로 발산하며 외부와의 접점을 끊임없이 넓혀간다.

셋째, 초고지능형 성과자의 가시성은 곧 강력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과 협업 네트워크로 확장돼 조직 내외의 인재들을 연결하고 움직이는 중심축이 되기도 한다. 메타는 최근 AI 스타트업 스케일 AI(Scale AI)의 지분 49%를 약 150억 달러(약 20조 원)에 투자하며 그 수장인 알렉산더 왕을 AI 슈퍼 인텔리전스 연구소의 책임자로 영입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인맥 왕’으로 불릴 만큼 폭넓은 네트워크를 보유한 인물이다. 저커버그 CEO는 ‘더 리스트(The List)’라는 비공식 인재 명단을 직접 관리하며 영입하고 싶은 슈퍼 인텔리전스 연구자들의 이름을 적어두고 그들의 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 왕은 이 리스트에 오른 인물 중 50명을 영입해 메타가 꿈꾸는 ‘Fantastic 50’ AI 어벤저스 팀을 구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초고지능형 성과자는 탁월한 인재들을 끌어당겨 이들과의 상호 증폭형 협업을 통해 최신 고속 변화 지식을 실시간으로 흡수하고 팀 전체의 역량을 증폭시키는 ‘지적 자기장’ 같은 존재다.


인재 경영의 패러다임 변화…
한국 기업의 전략은?

초고지능형 성과자 중심의 인재 경영은 고비용, 고효율 구조다.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압도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기에 기존 인재 경영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그렇다면 이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인재 경영 전략은 무엇일까.

1. 인재의 ‘조기 전력화’

실리콘밸리에서 펼쳐지고 있는 AI 시대의 인재 경영은 화려한 볼거리를 연출하며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 흐름을 구경만 하는 관중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초고지능형 성과자를 육성할 수 있는 교육 및 고용 시스템, 기업의 인사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틀에 갇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는 청년들의 사회 진입 지연이다. N수를 마다하지 않는 대학 입시와 고시 준비, 남성의 군 복무, 스펙 쌓기를 위한 무분별한 자격증 취득, 장기 어학연수와 해외 봉사활동 등으로 인해 많은 청년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20대 중후반, 경우에 따라 30대 초반이 돼서야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반면 첨단산업의 중심에 있는 글로벌 경쟁국들은 20대 초반부터 경력을 시작할 수 있는 제도적·문화적 경로를 갖추고 있다. 미국에서는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처럼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해 막대한 성공을 거둔 사례가 낯설지 않다. 영국은 학사 학위가 통상 3년, 석사 학위가 최소 1년으로 짧은 편이라 교육 제도 자체가 이른 사회 진입을 뒷받침한다. 캐나다는 Co-op(Co-operative, 산학협동) 프로그램을 통해 학부 과정에서부터 산업 현장 경험을 체계화하고 있으며 특히 토론토공대와 워털루대 같은 AI 선도 대학들은 학생들이 여러 차례 장기 인턴십에 참여하며 학습과 실전 경험을 유기적으로 순환시키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의 인재 ‘조기 전력화’는 청년들이 하루빨리 현실에 뛰어들고 실제 문제 해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대학 교육의 필요성을 부정하거나 인재를 무작정 ‘빨리 당겨 쓰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대학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학습과 실무의 연계를 강화하고 진입 시점을 전략적으로 앞당겨야 한다는 취지다. 성인이 되면서 초고지능형 성과자의 잠재력은 현실에서 발휘되며 이때부터 지능 격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중·저속 변화 지식을 암기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젊음을 보내는 이들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 위해 고속 변화 지식을 능동적으로 학습하는 이들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크게 벌어진다. 지능 격차의 시대에는 빠른 실전 경험과 성과 중심의 경험 축적이 곧 인재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지표가 된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 기업의 내부 인사 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조직 내 HR 기능은 산업화 시대에 구축된 연공서열 중심의 틀에 갇혀 새로운 HR 제도 혁신을 이뤄내지 못하고 경영의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야성을 상실한 상태다. 성공 여부를 떠나 저커버그 CEO처럼 인재 경영을 전략적 이니셔티브로 삼아 변화를 주도하는 최고경영자는 한국 기업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초고지능형 성과자에 대한 글로벌 수준의 새로운 인재 경영 방책들이 부상하고 있는 지금, 더 이상 관성에 안주할 여유는 없다. 인재 영입, 조직 설계, 보상 구조 전반에 걸쳐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는 담대한 전략과 신속한 실행이 절실하다. 지금은 HR이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설계하고 선도하는 중심축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인재의 조기 전력화를 위해 한국 기업이 참고할 만한 사례는 바로 팔란티어(Palantir)다. AI 시대의 총아로 주목받는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는 전통적인 학력 경로를 우회해 대학 진학 이전의 우수한 고등학생을 선발하고 실무 중심으로 직접 육성하는 파격적인 실험에 나서고 있다. 팔란티어는 “실력주의가 없는 대학에 다니느라 빚지지 말고 팔란티어 학위를 취득하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내세우며 고졸자를 대상으로 자체 학위 과정인 일명 ‘Meritocracy Fellowship(실력주의 펠로십)’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완전한 블라인드 채용은 아니다. 팔란티어는 미국 대학입학시험(SAT)에서 상위 5% 수준인 1460점 이상의 성적을 요구한다. 참가자는 일정 기간 동안 급여를 받으며 실제 업무에 참여하고 이후 정규직 전환 기회도 주어진다. 이는 마치 운동선수가 대학 진학 없이 곧바로 프로 무대에 데뷔하듯 전통적인 교육기관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실전 경험을 조기에 축적하겠다는 전략이다. 인지적·신체적 에너지가 인생 최고조에 달하는 경력 초기부터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그 성취가 눈덩이처럼 축적돼 고속 성장으로 이어지는 생애 전반을 고려한 패스트트랙 경력 경로를 설계하는 방식인 셈이다. 한국 기업 역시 교육과 실무의 경계를 허물고 잠재력 있는 인재를 조기 발굴·육성하는 과감한 인재 전략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채용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경력 경로의 패러다임을 재정의하고 조직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 조직 단위 인재 확보

초고지능형 성과자에 대한 노동시장이 사실상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워지고 있다. 메타의 인재 약탈이 벌어지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전직 금지 조항이 법적으로 제한돼 있어 자유로운 이직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 이직에는 비전, 조직문화, 개인의 소명(Calling)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도 고려되지만 이들 모두를 상쇄하고도 남을 거부할 수 없는 수준의 파격적인 보상과 연구 환경이 제공된다. 또한 연봉 수준은 언론 보도나 소셜미디어는 물론 ‘Levels.fyi’와 같은 연봉 정보 공유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전체 고용 시장 내 정보 비대칭성이 빠르게 해소되고 있다. 제도적·심리적 이직 장벽이 사라지면서 초고지능형 성과자 중심의 고용 시장은 더욱 빠르고 역동적인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이처럼 초고지능형 성과자 중심의 인재 경영으로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 양상은 물적자본 투자와 점점 더 유사해지고 있다. 저커버그 CEO는 슈퍼 인텔리전스 연구자 50여 명에게 아무리 많은 연봉을 지급하더라도 AI 인프라 구축에 들어가는 GPU나 데이터센터 비용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메타가 초고지능형 성과자를 VRIN, 즉 가치 있고(Value), 희소하며(Rarity), 모방 불가능하고(Inimitability), 대체 불가능한(Non-substitutability) 요건을 충족하는 전략 자산(Strategic asset)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첨단 기업에서 초고지능형 성과자는 단순히 장기 육성의 대상이 아닌 고위험·고수익의 전략적 투자처이며 단기간 내 성과 가시화를 전제로 한 집중 투자도 주저하지 않는다. 예컨대 메타의 이해관계자들은 최근 합류한 슈퍼 인텔리저스 연구자들로부터 1~2년 안에는 손에 잡히는 성과 도출을 기대할 것이다.

이처럼 노동시장이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워지고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 양상이 물적자본 투자와 유사해지는 상황에서 기업은 인재를 개인 단위가 아닌 조직 단위로 확보하고 유지하는 전략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뛰어난 개인을 영입하는 것을 넘어 서로 보완적 역량을 발휘하는 팀과 네트워크를 통째로 확보함으로써 성과 창출 속도와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높이려는 접근이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는 인재 영입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인수합병, 즉 ‘인재 인수(Acqui-hiring)’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7월 초 오픈AI가 30억 달러(약 4조1385억 원)에 AI 코딩 스타트업 윈드서프를 인수하려 했으나 계약이 무산되자 구글은 곧바로 윈드서프의 CEO와 핵심 엔지니어들을 구글 딥마인드로 전격 영입했다. 한때는 개별 기술 확보나 특정 목적에 한정된 전략적 수단이었던 인재 인수가 이제는 초고지능형 성과자 영입을 둘러싼 빅테크 간 전면전이 된 것이다. 또한 금융이나 컨설팅업계의 오랜 관행처럼 팀 단위 협업이 중요한 산업에서는 리프트 아웃(Lift-out)이나 클러스터 채용(Cluster Hiring)과 같이 핵심 인재로 구성된 팀 전체를 통째로 영입하는 방식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초고지능형 성과자를 중심으로 한 인재 경영은 이제 비용이 아닌 ‘투자’의 문제다. 몇몇 개인을 개별 영입하는 차원을 넘어 메타의 ‘Fantastic 50’과 같은 슈퍼 인재 집단을 전략적으로 구성해 조직 단위의 인적 자본을 한꺼번에 확보하고 이를 기존 조직 역량에 통합하는 인재 전략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소수 정예 인재에 자원을 집중하는 기업의 새로운 인재 경영은 조직의 전략과 성과를 단기간에 전환하는 데 용이할 것이다.

3. 성급한 모방 대신 전략적 적용

AI 시대, 지능 격차는 단순한 기술 활용의 격차를 넘어 인류의 사고방식과 인재 경영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지능 격차의 산물로 초고지능형 성과자가 등장하며 기업들은 이들에 대한 투자와 확보를 최우선 전략으로 삼고 있다. 앞서 언급한 메타의 최근 ‘인재 약탈’ 행보는 이런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흐름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기보다는 한발 물러서 글로벌 기업들의 인재 경영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단점이나 부작용을 선제적으로 파악해 보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다소 늦게 뛰어들더라도 장점은 과감히 취하고 단점은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한다면 성급한 모방이 아닌 훨씬 영리하고 지속가능한 인재 경영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2001년 맥킨지가 『War for Talent』를 통해 핵심 인재에 대한 파격적인 관리 전략을 제안한 이후 지난 25년간 고성과자 및 고잠재력자를 중심으로 한 인재 경영이 기업 HR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들 핵심 인재가 실제로 기업의 성과를 얼마나 견인했는지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뚜렷하게 검증된 바 없으며 회의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초고지능형 성과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진정한 게임 체인저인지, 과잉 기대와 환상의 산물인지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메타의 ‘Fantastic 50’ 역시 진정한 팀이 될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 뛰어난 개인들의 집합이 곧 뛰어난 팀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이다. 특히 각자의 분야에서 주연이었던 인재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시너지를 내기보다 오히려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기존 구성원들과의 형평성과 동기부여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조직 내부의 성과 보상 시스템이 극단적으로 양극화될 경우 기존 인재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곧 동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수천억 원대 연봉을 받는 슈퍼 인재들이 중심이 되는 조직 질서가 과연 지속가능할지, 소수의 천재가 아닌 다수의 평범한 인재가 만들어내는 일상적 협업 위에서 조직이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지 등 초고성과자 중심 인재 경영의 실효를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 리스크를 안고 직접 실험하기보다는 글로벌 기업의 시도와 그 결과를 분석해 국내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성적표가 나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메타가 전력을 다해 영입하려는 ‘Fantastic 50’은 곧 구체적인 성과를 통해 세간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과연 이들이 소리 소문 없이 흩어지며 또 하나의 과잉 기대 사례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AI 시대의 문을 여는 새로운 ‘포티나이너스(49ers)’2 로 기록될 것인지를 지켜보며 한국 기업은 면밀한 모니터링과 냉철한 분석을 통해 국내 기업 환경과 조직문화에 최적화된 인재 경영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인재 약탈은 조직 성과를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강력한 도구일 수 있지만 무탈하게 조직에 안착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윤리 경영, 리더십, 조직문화 등의 측면에서 비기술적 리스크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탓이다. 초고지능형 성과자를 기업 성장을 폭발시키는 슈퍼 인재로 만드는 일은 그들을 ‘어떻게 모으느냐’보다 ‘어떻게 일하게 만들 것인가’에 달려 있다. 아무리 초고지능형 성과자들이 모인다 한들 기업이라는 유기체는 전체 전략을 설계하고 조율할 수 있는 리더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핵심은 이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이며 향후 각기 다른 천재들의 역량을 조화롭게 결합해 조직 전체의 지속가능한 성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리더십과 실행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 권기범Kibum.Kwon@tamuc.edu

    East Texas A&M대 인적자원개발학부 교수

    필자는 미국 East Texas A&M대 인적자원개발 전공 주임교수로 인적자원개발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Human Resource Development Quarterly 저널의 부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LG전자 인사팀에서 근무한 후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인적자원개발 및 조직개발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인적자본 투자, 조직 혁신, 직무 몰입, 종단 데이터 분석이며 저서로는 『인게이지먼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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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최호진hojin@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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