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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세포적 소비

정보 과잉 피로감? 가벼운 선택 선호
홈런 한 방보다 안타 노리는 전략으로

여준상 | 400호 (2024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복잡다단한 사회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정보사회의 가속화로 처리해야 할 정보가 과잉되면서 복잡한 의사결정을 기피하고 단순한 소비를 지향하는 ‘단세포적 소비’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단세포적 소비 형태로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의 감성 충족에 초점을 맞추는 소비와 한두 가지 정보에 방점을 찍고 의사결정을 단순화시키는 ‘휴리스틱 소비’가 있다. 시간 압박에 숏폼 등 ‘시성비’를 추구하는 압축형 소비, AI에 의존하는 게으른 소비, 반품이나 중고 거래 등 쉬운 처분이 가능하고 대체재가 넘쳐나는 환경으로 인해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이는 소비도 단세포화된 소비 트렌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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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 넘쳐나는 정보를 언제 다 봐? 한 가지만 보고 빨리 선택해야지.”

“요약본 영상 찾아 한번에 몰아 봐야지.”

“AI 추천 따라 무심코 보다 보니 시간 ‘순삭’이네.”

“어차피 더 나은 제품 나오면 금방 후회하니 대충 무난한 것 사자.”

“맘에 안 들면 반품하거나 당근에 팔면 되니 일단 사고 보자.”

논리와 이성보다는 순간의 감정에 따른 빠르고 가벼운 선택을 선호하고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이는 ‘단세포적 소비’의 모습이다. 이 현상은 다가올 2025년 트렌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우리 주변에서 시작되고 있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단세포는 여러 개의 세포로 구성된 다세포와 비교되는 말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무언가를 표현할 때 쓰는 용어다. 인플루언서를 무작정 따라 하는 소비, 차별 없이 단순하게 쏟아져 나오는 양산형 제품이나 콘텐츠 소비, 충동적 홧김 소비 등을 단세포에 비유할 수 있다.

마치 돌아서고 나면 잊어버리는 금붕어 같은 행동이다.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단세포적 소비는 한때의 유행이 아닌 앞으로 인류 사회의 진화와 함께 지속, 가속화되리라 예상된다. 최근에는 심지어 대표적인 고관여 제품으로 불렸던 고가의 소비재조차도 충분한 숙고를 통해 결정하기보다는 순간의 감정이나 주변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즉흥적, 단편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충분한 숙고를 통해 체계적으로 의사결정하고 선택하던 소비자들이 왜 돌변한 걸까. 왜 단세포적 소비가 만연하게 됐을까? 복잡다단한 사회의 불확실성은 점점 커지고 정보사회의 가속화로 처리해야 할 정보는 넘쳐나고 있다. 기술 발전으로 뛰어난 대체재가 금세 쏟아져나오고 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신해 체계적으로 분석해주는 세상이 우리의 소비 양상을 바꾸고 있다.

사회, 정보, 기술의 발달이 판단의 신중성을 키울 것이라 봤지만 오히려 전에 없던 불확실성과 정보 과잉에 소비자의 집중도가 떨어지면서 복잡한 의사결정을 기피하고 단순한 소비를 지향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소비의 성격이 장기, 계획, 체계에서 단기, 즉흥, 지름길로 바뀌면서 쉽고 가벼운 충동성을 띤 소비, 즉 ‘저관여화된 소비’가 늘고 있는 셈이다. 관여도는 소비심리학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온 개념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정보 탐색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정도를 뜻한다. 과거에 비해 소비에 기울이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면서 소비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다. 어떤 환경적 변화가 소비의 저관여화, 단세포화를 불러온 걸까? 단세포적 소비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커지는 불안… 현재 감성 충족에 초점

“불확실한 미래보다 확실한 현재를 즐기자”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사회적 위협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환경 변화가 만들어내는 위험들이다. 통신과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초연결사회, 빅데이터 사회가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하지만 불확실성 증가라는 어두운 면도 드러낸다.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연결과 데이터 생성이 불확실성이라는 불안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람과 다양한 사물 간의 연결이 늘어나면서 기하급수적 정보 생성과 함께 사람들은 자신의 예측을 뛰어넘는 상황에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인터넷, 모바일의 발전으로 개개인의 소비자가 실시간으로 수많은 정보에 제각기 노출되면서 더 복잡다단한 경우의 수를 만들고 이것이 충돌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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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점점 늙어가는 고령화 위험도 겪어보지 못했기에 사회가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한 불안감을 키운다. 전 세계적인 종교, 정치적 이념 갈등으로 생겨나는 국지전과 생태계를 흔드는 기후변화,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도 무의식에 내재된 불안과 미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다. 그러다 보니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확실한 현재에 더 많은 시간 가치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먼 미래를 보고 본질을 따질 심적 여유가 없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기대하기보다 당장 현실이 중요하기에 출산과 혼인율 저하는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불확실성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결과물은 자기중심적 감정 발현이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방어기제를 발전시킨다. 살기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중심적 경로를 택한다. 확실한 상황이라면 주변 환경을 살피면서 넓은 시야에서 이성적 판단을 하려 하겠지만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불안을 느끼는 순간 시야는 좁아지며 자기중심적인 근시안이 된다. 느린 이성보다 빠른 감정이 개입된다. 순간의 자기감정에 충실한 충동적 의사결정이 일어나기 쉬운 것이다. 합리적 예측을 뛰어넘는 불확실성이 합리성 기반의 체계적 사고를 무력화하며 자기중심의 감성 발현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결국 불확실성은 소비자가 순간의 자기감정 충족을 좇게 하고 그런 자극을 유도하는 마케팅에 쉽게 반응하게 한다. ‘소확행’ ‘욜로’ ‘스몰 럭셔리’는 모두 현재의 자기 위안적 감정 소비를 의미한다. ‘홧김비용’ ‘쓸쓸비용’은 충동적 소비에 따른 후회를 표현하는 신조어인데 불확실한 사회가 만들어내는 스트레스나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방어적 감정 소비가 그만큼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감성 유발 소재로 흔히 사용하는 과거 역시 현재와 마찬가지로 확실성을 가진 시제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과거와 현재는 확실성을 가진다. 따라서 레트로(Retro) 등 과거 소재의 아이템과 ‘역주행 콘텐츠’는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기분을 자아내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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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택지가 넘쳐나는 사회, ‘휴리스틱 소비’

“대충 한두 가지 보고 선택하는 지름길 찾자”

정보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엄청난 양의 정보에 노출되면서 처리 압박을 받고 있다. 제품 하나를 구매하려는 데도 너무 많은 기능과 조건, 넘쳐나는 브랜드 탓에 ‘결정 장애’를 일으킨다.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운 기능, 속성이 빠르게 추가되면서 소비자는 늘 새로 업데이트되는 제품 정보에 피로감을 느낀다. 게다가 대부분 산업의 진입장벽이 과거에 비해 낮아지면서 같은 제품을 제공하는 플레이어들도 급증하고 있다. 제품을 살 수 있는 유통경로 또한 지나치게 다양해졌다. 제품 속성에 브랜드, 유통경로를 곱하면 소비자의 머릿속은 선택지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뇌 인지 용량은 한계가 있다. 모든 정보를 다 처리하려면 뇌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인간은 고도의 진화 동물이다. 살아남기 위해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지름길 전략을 사용한다. 전통적 정보처리 이론에 따르면 주어진 정보가 부족할 때는 자신의 경험에 기반을 둔 휴리스틱 정보처리를, 정보가 충분할 때는 체계적 정보처리를 한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기하급수적 정보 과잉 시대에는 [그림 3]과 같은 역U자형 함수관계를 띨 것이다. 정보가 너무 없어도 휴리스틱이 가동되지만 정보가 과잉돼도 체계적 정보처리를 회피하는 휴리스틱이 가동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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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가 넘쳐날 때는 오히려 한두 가지 정보에 방점을 찍고 의사결정을 단순화시키는 진화된 휴리스틱에 대한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휴리스틱의 원천은 다양하다. 특정 광고모델과 브랜드, 특정 장소와 가격, 구매 후기 등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경험칙을 바탕으로 선택을 단순화할 수 있다. 특히 사람, 장소, 브랜드는 이와 연관된 강력한 2차 연상 효과를 만들어 소비자의 판단을 단순화하는 강한 휴리스틱 효과를 발생시킨다. 최근 들어 마케팅에서 특정 사람을 내세우고, 특정 장소를 언급하며, 특정 브랜드와의 협업을 강조하는 것은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소비자를 단순화시켜 팬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유명인을 내세우는 셀럽 효과는 휴리스틱 효과의 대표적 예다. 셀럽 효과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SNS, 1인 미디어 발달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휴리스틱의 대표적 원천으로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화장품을 고르면서 장황한 설명을 다 읽고 결정하는 소비자는 흔치 않다. 제품의 기능과 같은 본질적 정보는 눈에 잘 안 들어오는 데다 이해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광고모델은 눈에 금방 띄고 판단하기 쉽다. 광고모델 한 명이 10가지 설명보다 더 효과적이며 나머지 요소의 판단을 좌우하는 후광효과를 내는 셈이다.

휴리스틱은 고정돼 있지 않고 진화한다. 소비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구매 환경과 기업 마케팅에 적응해 가면서 속단의 지름길을 만들어간다. 예를 들어 구매 후기 기능이 마케팅에 사용되던 초기에는 그 개수가 많지 않아 후기 내용이 판단의 근거로 사용됐다. 그러나 지금은 후기가 너무 많아져 비슷비슷한 점수의 내용보다는 전체 후기 개수로 품질을 판단하는 진화가 일어나고 있다. 정보가 많아진다는 것은 속단과 추단, 어림짐작할 기회가 많아짐을 의미하며 전에 없던 새로운 휴리스틱의 등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3. 시간 압박과 숏폼 시대의 압축 소비

“시간 없으니 결론부터 빨리 보여줘!”

사회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사람들은 점점 시간 압박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시간 인내심이 갈수록 줄어드는 ‘시성비’ 시대에 소비자의 시간 사용 양상 역시 진화가 일어나고 있다. 텍스트에서 이미지, 동영상, 압축 동영상으로 콘텐츠 형태가 진화하며 미디어 환경은 점점 저관여화되고 있다.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이길 선호하는 문화에 기술 발전이 뒷받침해주니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 듯 콘텐츠의 쇼츠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튜브의 롱폼 영상이 대세였다면 지금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가 새로운 대세가 되고 있다. 복잡한 생각보다는 단순하게 행동하도록 조장하지만 처리할 것이 산더미 같은 멀티태스킹 시대에 빠르고 쉬운 방식을 원하는 소비자의 니즈와 부합해 인기를 끄는 것이다.

“뭘 그리 시간 들여 어렵게 공부하려 해? 유튜브 보면 다 나와. 그것도 길면 틱톡, 쇼츠, 릴스 보면서 따라 하면 돼.” 요즘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할 때 흔히 나오는 얘기다. 인플루언서가 만든 숏폼을 보고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다. “어느 세월에 드라마를 끝까지 다 봐? 요약본으로 ‘순삭’해.” 인기 있는 드라마를 한번에 몰아보는 정주행을 넘어 이제는 1시간 요약본으로 끝내는 시대다. 음악도 긴 음악보다는 비비의 ‘밤양갱’ 같은 2분대의 짧은 음악이 ‘이지 리스닝’ 트렌드와 맞아떨어져 앞으로 더 주목받을 것이다.

가속화되는 사회 환경 변화에 맞춰 시간 압축형 소비는 더욱 진화할 전망이지만 본질보다는 겉핥기를 추구하는 이런 소비 문화의 위험성도 있다. 대표적으로 시간 압박은 행동의 충동성을 키운다. 시간이 없어 놓칠 수 있다는 걱정이 강박을 가져오는 것이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본질을 탐구하면서 의미를 찾아가는 느린 소비가 가능하지만 여유가 없으면 당장 눈에 보이는 것 위주로 빠른 소비를 해야 한다. 빠른 소비는 효율적이지만 위험을 내포한다. 올해 발표된 호주 멜버른대 알렉스 벨리의 메타 연구에 따르면 시간 압박은 고위험 성격의 행동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압박이 일정 수준의 임계치를 넘어서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충동적 소비가 일어날 개연성이 큰 것이다.


4. AI 발전이 불러온 게으른 소비

“맡겨 놓으니 고민 없이 세상 편하네”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추천 알고리즘 기술이 계속 연관된 콘텐츠를 노출한다. 넋 놓고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온라인 쇼핑몰을 방문하면 나에게 딱 맞는, 내가 궁금해하는 상품을 보여준다. 클릭하다 보면 어느새 장바구니가 가득 찬다. 아마 많은 소비자가 공감하는 일상생활일 것이다. AI 기술의 발전으로 사용자의 패턴을 학습해 추천을 제공하는 맞춤형 마케팅이나 콘텐츠가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오고 앞으로 더 진화된 양상을 보여줄 것이다. 자동 추천 시스템은 소비자의 생각과 고민을 줄여줘 편리하게 해주는 한편 소비를 저관여화된 양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즉 자기만의 방식으로 능동적 소비를 하기보다는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이고 시스템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소비를 확산하는 것이다. 콘텐츠나 상품 구독 서비스도 같은 맥락이다. 소비자가 적합한 상품을 찾아 분석하고 고르기보다 AI가 알아서 좋은 상품을 찾아 추천하기에 의사결정에 있어 소비자의 관여도가 떨어진다.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이 확연히 줄어드는 게으른 소비는 AI 기술 발전과 함께 앞으로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 발전에 따라 소비 편의성을 높이는 서비스 개발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지만 시스템에 지나치게 예속되다 보면 저관여화로 스스로 판단하는 자정 기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가 다양한 인지를 기반으로 새로운 선택을 해 나가는 능동형 소비가 줄어들고 시스템에 의한 무의식적 소비가 이어지면 소비 편식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계에 의한 관성적 소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가끔 알고리즘을 해제하고 자기만의 능동적인 소비를 할 필요가 있다. 소비도 창의성, 주체성 회복이 필요한 셈이다. 기업도 알고리즘 개발에 있어 입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알고리즘의 진화를 기계에만 맡기는 것이 아닌 인간만의 독창성과 의외성을 개입해 인간미가 느껴지는 창의적 알고리즘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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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체재가 넘쳐나는 시대의 가벼운 소비

“더 나은 제품이 금방 출시되니 고민 필요 없어”

사고 나면 더 좋은 제품이 눈에 들어와 금방 후회하는 시대다. 생산 기술의 발전으로 더 저렴한 가격의 카피 제품이 너무나도 쉽고 빨리 만들어지고 업그레이드 버전 제품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과잉 생산 환경이 가벼운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어차피 후회할 텐데 시간 들여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고 가볍게 구매하고 넘어가자”라는 식의 소비가 만연하고 있다. 소비에 있어 가장 피하고자 하는 일이 구매 후 후회하는 것이다. 소비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라고 표현하는데 구매 후 자신의 행동과 반하는 정보를 접하면서 겪는 일이라 ‘구매 후 부조화’라고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구매 후 더 좋은 조건의 더 나은 제품을 발견하는 것이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는 스마트폰과 늘 함께하기에 매 순간 구매 후 부조화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왕 소비할 바에 조금이라도 구매 후 부조화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소비가 진화하고 있다. 투입이 줄어든 대표적인 요소가 바로 가격이다. 가격 부담이 덜한 제품은 잘못 사더라도 구매로 인해 손실이 적기에 그만큼 후회도 적다. 가격과 비슷한 논리로 구매에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도 줄어들고 있다. 같은 가격이라면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구매는 피하는 것이다.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손실이 적도록 구매 시 투입하는 인풋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한다. 이런 이유로 최근 비싸지 않은 가격에 적당한 기능이나 성능을 가진 무난한 디자인의 제품에 대한 소비가 늘고 있다. 무신사, 유니클로 등 가벼운 소비가 용이한 브랜드가 계속 주목받는 것이 대표적이다.

소비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많은 인풋을 투입해 구매하고 오랫동안 쟁여놓는 소비보다는 짧게 갈아타는 가벼운 소비가 대세다. 가격 부담을 확 줄여 구매 후 부조화를 낮춰주는 상품이나 브랜드가 인기를 끈다. 무난한 맛에 가격 부담을 낮춘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메가커피나 컴포즈커피가 잘되는 이유다. 다이소가 시장에서 강자로 자리 잡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품질이 나쁘지 않으면서 값이 싸다.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도 가격이 싸니 후회가 적다. 가격이 비싸면 따져볼 게 많아 시간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데 저렴하니 필요할 때마다 바로 선택하고 소비할 수 있다.

생산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기업들이 높은 가성비를 만들어내기가 점점 용이해지고 있다. 높은 가성비는 구매 후 부조화 발생 가능성을 낮추고 가벼운 소비를 촉진한다. 소비자 심리에 구매 후 부조화 방어기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가성비 소비 시대는 쉽게 저물지 않을 것이다.


6. 쉬운 처분 가능해 일단 사는 소비

“맘에 안 들면 반품하거나 당근에 팔면 되지”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구매 결정을 되돌리기 어려웠기에 제품 하나를 고르더라도 신중했다. 그러나 기술 발전으로 구매 결정을 번복하고 되돌리기 쉬워지면서 과감하고 빠른 구매가 늘고 있다. 특히 중고 거래 플랫폼의 발전으로 소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제품을 처분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처럼 물류, 배송망이 거미줄처럼 세밀하게 구축돼 있는 곳에서는 반품이 빠르고 쉽다. 구매 후 처분이 쉬우면 신중하지 않고 조급한 구매를 부추긴다. 마음에 안 들면 중고 거래로 팔아 현금화하거나 다른 제품으로 교환 거래할 수 있기에 일단 ‘사고 보자’는 식의 충동적 구매가 일어나기 쉽다. 최근에는 기업들이 반품 절차를 크게 간소화하거나 무료, 무조건 반품 전략을 내세우면서 충동구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IT, 물류 기술이 발전할수록 구매 결정 속도는 빨라지고 선택의 지속성은 떨어질 것이다. “마음에 안 들면 반품시키거나 당근에 팔면 되지. 일단 빨리 사놓고 보자”라는 식의 단세포적 소비가 확산될 전망이다.


지나친 단세포적 소비는 경계해야

단세포적 소비를 불러오는 환경과 관련 소비 양상을 소분류해 정리해봤다. 인터넷, 모바일에서 AI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소비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성적, 체계적, 고성능 처리는 점점 기계에 맡기고 의존할 전망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소비는 점점 감정적, 충동적, 직관적, 즉흥적, 관성적 성격을 띠면서 변해갈 것이다. 오래가는 진득한 소비보다는 톡톡 튀면서 금방 휘발되는 소비가 미래 세대 소비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기업들은 기다렸다가 기회를 보고 홈런을 친다는 전략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소비의 성격이 휘발성을 띠기에 방망이를 짧게 잡고 계속해서 안타를 친다는 생각으로 빠르고 가벼운 전략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어떤 모양의 그릇이나 컵에도 담길 수 있는 액체처럼 미래 소비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다만 미래 소비가 저관여, 단세포화되는 트렌드가 확산돼 생산이나 개발 등 다른 분야의 부작용을 낳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최근 아파트 부실 공사, 항공기 제조 결함 등 일어나선 안 될 일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체계적으로 꼼꼼히 따져봐야 할 사안들이 단기, 단발, 단순 변화의 바람에 휩쓸려 부실화되면 재앙을 낳는다. 소비의 큰 흐름을 바꿀 순 없겠지만 단세포적 소비가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에 악영향을 줄 정도로 심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성과 논리, 합리, 계획 기반의 롱텀 소비가 필요할 때는 제대로 작동되도록 기업과 국가가 주시하며 적절히 개입할 필요가 있다.
  • 여준상marnia@dgu.edu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고려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사단법인 서비스마케팅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저서로 『한국형 마케팅 불변의 법칙33』 『역발상 마케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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