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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고객제표 전문 위원들 대담

“재무제표, 그 자체가 목적 아냐
새로운 전략적 성과평가 도구 나와야”

김윤진 | 390호 (2024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재무제표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기업의 성과평가 체계지만 ‘전략적 성과평가 도구’로서의 가치는 점점 더 퇴색되고 있다. 재무제표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그럴듯해 보이는 재무제표를 완성하고 결과를 부풀리기 위해 전략적 의사결정을 왜곡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대안적 성과평가 도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흐름에 부응해 등장한 게 바로 기업의 핵심 자산인 고객을 중심으로 기업 성과를 평가하는 ‘고객제표’다. 보통 기업의 전략이 바뀌면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이 고객 관련 지표이고, 재무적 결과는 이 지표들의 뒤를 따라온다. 따라서 재무제표 관점에서 기업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더 세분화된 고객제표 관점에서 목표를 정교화하는 게 진정한 고객 중심 경영을 실천하면서 원하는 재무적 결과에도 더 빠르게 도달하는 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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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는 필요 없다(The End of Accounting).’

다소 극단적인 제목으로 2017년 국내 출간된 이 책의 저자 바루크 레브 뉴욕대 경영학부 교수와 펭 구 버펄로대 회계학과 교수는 “100년 넘게 변하지 않은 회계의 잣대를 버려라”라는 과감한 주장으로 학계 내 자성의 목소리를 다시 끄집어냈다. 이들이 말하려는 건 회계가 정말 쓸모 없어졌다는 게 아니다. 단지 그 도구가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미국의 철강 회사 US스틸이 과거 주주들에게 발행했던 1902년 사업연도 연차보고서상의 재무제표와 이 회사의 최근 재무제표가 양식과 구조에 있어 변한 게 없다는 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기업의 ‘진짜 가치’는 이제 재무보고서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학자들이 말하는, 낡은 회계의 유용성이 떨어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배경은 재무제표가 ‘무형자산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형자산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나날이 증대되는데 이 정보가 빠진 전통 재무제표로는 기업가치의 정확한 산정과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무형자산에는 토지, 설비, 인프라 등 유형자산이 아닌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뜻하는 사회 자본, 환경 자본, 지배구조와 리더십 등의 인적자본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재무제표가 담지 못하고 있는 정보는 수없이 많지만 업종을 불문하고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가장 치명적일 수 있는 맹점은 바로 ‘고객 정보의 공백’이다. 여러 이해관계자 중에서도 고객은 기업의 핵심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 자산을 잘 관리하는 것은 기업의 지속적인 경쟁 우위 확보와 궁극적인 매출 증대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비즈니스의 기본과 같다. 그런데 재무제표에 보이는 숫자에 매몰되다 보면 기업이 쉽게 이 기본을 놓칠 위험이 있다. 가령 기존 충성고객이 이탈하고 이들의 구매 여정에 부정적 경험이 누적되고 있는 도중에 신규 고객 대상 일시적인 판촉과 제휴로 매출과 이익이 늘었다 해서 기업 성과가 개선된 듯한 착시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듯 기업의 ‘진짜 가치’인 고객을 중심에 둔 경영을 촉진하려면 고객 데이터를 기존 재무제표에 통합하거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초대형 자산운용사 뱅가드그룹의 전 CEO이자 명예회장인 잭 브레넌은 2020년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과 인터뷰1 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은 (기업에) 더 많은 고객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하게 될 것”이라면서 “투자자들은 이제 어떤 고객이 수익성이 있는지, 회사가 언제 고객을 잃는지, 어떻게 고객을 확보하는지 등 고객 기반의 본질을 중요하게 물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어 고객 관련 지표에 대한 정보 공개가 더 많이 필요하며 당장 고객 정보의 일부가 재무제표의 일부로 표준화되지는 못하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연간 보고서의 경영 부문 기업공개와 분석 혹은 그 주석에서 요구될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한 국내 연구팀이 의기투합해 고안한 새로운 경영 평가 시스템이 바로 ‘고객제표’다. 고객제표를 개발, 연구하고 있는 김형수 한성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장영훈 노팅엄대 중국상학원 교수, 박대윤 고객경영기술원 이사, 양성병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 이현석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등 전문 위원들은 이 고객제표가 재무제표와 대등한 수준의 보완재로서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기존 회계의 한계를 보완하고 유형자산 중심, 제품 중심의 재무제표가 반영하지 못했던 고객 데이터를 통합해 고객 중심 경영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들의 바람처럼 고객제표가 국내외 시장에 새로운 평가 잣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이 말하는 고객제표의 가치와 발전 가능성, 향후 과제를 들어 봤다.


기업들이 재무제표가 아닌 대안적 성과 평가 도구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김형수(이하 김): 재무제표는 이제 너무 ‘정치적’이 돼 버렸다. 다시 말해, 재무제표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면서 전략적 성과 평가 도구로서 가치가 퇴색됐다. 전략적 성과평가 도구란 단순히 핵심평가지표(KPI)의 모음이 아니라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이 돼야 한다. 소위 ‘갓생’을 사려는 개인들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평가하는 이유는 단지 점수를 매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틀을 잡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전략적 성과평가 도구는 기업의 경영 현황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도구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면서 기업들이 ‘그럴듯해 보이는’ 재무제표를 완성하고 재무 결과를 인위적으로 부풀리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경영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외형적인 매출액 기준을 맞추기 위해 많은 기업은 연말로 갈수록 소위 ‘밀어내기’ 영업에 몰두하고 있고, 밀어내기 영업은 결국 비식별고객, 즉 부채고객을 양산한다. 그리고 부채고객에 의한 매출 증대는 마치 거품과 같아서 금세 가라앉는다. 더 큰 문제는 갑작스러운 비식별고객의 증대로 단기적인 매출이 증가하는 재미를 보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식별고객에게 집중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매출 증폭과 폭락을 거듭하다 보면 탄탄하고 지속가능한 유기적 성장은 물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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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윤(이하 박):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동서양을 막론하고 재무제표의 조작과 부정 회계로 거대 기업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기업들은 그렇다 치고 재무제표를 믿고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어떤가? 믿음직한 재무제표에 속아 투자했다가 땅을 치는 투자자들은 지금도 넘쳐난다. 재무제표상에 드러나는 숫자에 매몰되고 단기적으로 더 높은 수익을 보고하기 위해 업무적 의사결정을 조작하는 현상은 회사의 장기적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조직을 병들게 한다. 세상에 완벽한 도구는 없겠지만 재무제표의 한계를 보완하고 의사결정의 조작을 저지할 수 있는 대안적 성과평가 도구들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고객제표가 필요한 이유와 개발 동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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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병(이하 양): 재무제표만으로 고객 중심 경영 철학을 추진하고 모니터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어떤 기업의 소비자로서, 투자자로서, 혹은 직원으로서 늘 기업을 평가한다. 그런데 과연 이 과정에서 재무제표가 기업의 실행 전략과 밀접한 경영 평가도구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기업의 고객 전략이 바뀌면 가장 먼저 바뀌는 선행 지표는 고객제표다. 그다음 후행 지표인 재무제표가 바뀐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재무제표 관점에서 기업의 목표를 세울 게 아니라 더 세분화된 고객제표 관점에서 목표를 정교화하고, 고객제표상의 평가지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원하는 바에 도달할 수 있음을 뜻한다.

김: 지난 20년 이상 다양한 업종의 기업과 CRM(고객관계 관리) 같은 고객 전략 프로젝트와 자문을 진행하면서 나름대로 성공하는 기업과 실패하는 기업의 차이를 알게 됐다.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단 하나를 꼽는다면 ‘CRM에 대한 인식 차이’였다. 어떤 회사는 CRM을 단순히 고객 데이터를 관리하거나 고객 분석을 수행하는 지원 업무로 한정하기도 했고, 어떤 회사는 마케팅이나 영업 또는 서비스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이니셔티브로 보기도 했다. 또 어떤 회사는 CRM을 전사적인 관점에서 고객 관련 경영 전략을 총체적으로 수립하고 관장하는 사령탑의 역할로 바라봤다.

당연히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두 번째보다는 세 번째 기업들이 CRM에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후자로 갈수록 최고경영진의 관심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일회성 이니셔티브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들의 특징 중 하나는 전체 매출의 회원 매출 비중, 고객 전환율, 고객유지율이나 이탈률과 같은 주요 고객지표를 재무제표 못지않게 중요한 경영평가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만약 모든 회사가 공감할 수 있는 표준화된 프레임워크에 고객 관련 주요 경영 지표들을 집대성하면 비교적 거부감 없이 수용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모니터링 체계를 갖추게 됐을 때 비로소 회사들의 관점도 조금씩 바뀔 것이라고 보고 고객제표를 개발했다.

지금도 수많은 기업이 많은 비용을 들여 CRM 컨설팅을 의뢰하고 전략을 수립하지만 말이 전사적 전략이지 지엽적인 관점의 최적화에만 초점이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CRM이 단편적인 프로젝트로 끝나지 않고 정말 기업을 먹여 살리는 진정한 고객 전략(Customer Strategy)으로 거듭나려면 고객 전략만을 위한 별도의 평가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고객제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지금까지 해외나 국내에서 이런 통합된 고객 관점의 경영 평가 시스템이 나오지 않았나?

박: 지금까지 고객 관점의 경영 평가 시스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5년 테오도르 레빗 하버드대 교수는 HBR에 실린 본인의 유명한 논문 ‘마케팅 근시안(Marketing Myopia)’을 통해 제품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경영 패러다임이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로 다양한 형태의 고객 중심 경영 지표가 학자들에 의해 발표돼 왔고, 실제로 많은 기업이 이 지표들을 활용했다. 서비스 품질을 평가하는 서브퀄(SERVQUAL)이나 고객만족도, 고객추천지수 등이 그 예다. 또한 1990년 로버트 카플란 교수와 컨설턴트 데이비드 노튼 역시 HBR에 Balanced Score Card(BSC)라는 대안적 지표를 제시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재무성과 지표들이 현대 경영 환경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문제의식하에 재무제표와 기업의 핵심성공요인(CSF) 및 핵심성과지표(KPI)와 관련된 제반 운영상의 지표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것이었다. BSC도 고객, 내부 프로세스, 직원들의 학습과 성장 및 주주 관련 재무 이슈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을 포괄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고객 중심 평가 체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평가 시스템들은 대부분이 설문조사 방식에 기반하고 있어 재무제표와 동등한 수준의 경영 평가 시스템으로 활용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설문조사 기반의 평가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인의 인지적, 주관적 평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개략적인 수준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응답자 편향이나 평가 척도 한계 등으로 인해 해석에 주의가 필요할 뿐 아니라 평가 결과가 직접적인 경영 전략으로 이어지기가 어려웠다.

김: CRM 분야에서는 회사 매출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를 최근성(고객이 얼마나 최근에 구매했는가), 행동 빈도(고객이 얼마나 자주 방문했는가), 구매 금액(고객이 얼마나 돈을 많이 지불했는가)으로 보고 이 3가지 관점에서 고객 행동을 분석하는 RFM(Recency, Frequency, Monetary)이나 고객생애가치(CLV)처럼 고객 가치를 분석하는 지표들이 개발된 바 있다. 이들은 정량적인 고객 거래 데이터에 의해 측정되는 고객자산가치 평가지표다. 하지만 이 역시 실무 중심의 지엽적인 활용만 이뤄지고 있을 뿐 재무제표와 직접 연계돼 범용 시스템으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이에 반해 고객제표는 재무제표와 유사한 형태를 갖추고 있고 정량적인 데이터를 이용해 실시간 내지는 정기적으로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 고객 중심 경영 지표들과는 다르다. 따라서 기존 시도들의 한계를 뛰어넘고 재무제표와 대등한 수준의 보완재로써 활용될 만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고객제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어려움이나 기업 내 반발은 없을까?

이현석(이하 이):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부하기 마련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고객제표를 도입할 때 거부 반응이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 특히 경영 혁신에 익숙하지 않은 기업이라면 새로운 평가 체계 도입에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 최고경영자부터 이 필요성을 역설하며 고객제표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특히 조직마다 데이터 분석 인력의 규모와 역량에 차이가 있는데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관리하던 인력이 없는 조직, CRM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던 조직에서는 데이터를 측정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측정하지 못하면 평가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고객제표도 측정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입력값(Input)의 정확도가 중요하다. 빅데이터 시대인 만큼 대부분의 기업이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분석 역량은 기업마다 다를 수 있다. 필요하다면 외부 연구팀에서 분석 업무를 대행해야 할 것이다. 재무제표와 마찬가지로 고객제표 역시 기업 내 정확한 입력값들을 특정해 평가지표의 결과를 도출하는 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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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훈(이하 장): 결과를 도출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관행적으로 참고하던 재무 평가지표가 아니기 때문에 결과가 나온 뒤 그 피드백을 일부 부서나 팀에서 수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고객 실행 전략의 변화 필요성을 제기할 경우 단기 성과를 중시하는 기업 문화를 가진 조직에서는 고객제표 무용론을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고객제표는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객 변화를 이해하고 전략을 세우는 것이기에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기업에는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예상되는 어려움이나 기업 내 반발은 최고경영자의 의지와 지지가 뒷받침돼야 완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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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이 고객제표에 힘을 실어줬을 때 기업이 얻는 이점은?

박: 대내적으로는 직원에게, 대외적으로는 투자자와 이해관계자에게 ‘고객이 자산이다’라는 기업의 철학, 기업이 진심으로 고객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 사명이 단순히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정말 고객 중심 경영 문화가 조직 내 뿌리내리려면 경영 관리 시스템부터 고객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기존에도 마케팅, 영업, 서비스 부서 중심으로 기능 중심의 고객 지표는 사용돼 왔으나 단편적인 KPI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고객제표 도입으로 고객 경영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면 기업이 전사적인 시각에서 고객 활동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다. 고객제표의 지향점은 재무제표와 유사한 수준의 전사 경영 평가의 위상을 갖는 것이다. 그래야 ‘고객 중심 경영’이 KPI 정도가 아니라 조직의 비전(vision)으로 전환될 수 있다. 투자자들은 재무제표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기업의 실질적인 경영 현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봄으로써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경영자들은 보다 고객 중심 마인드로 의사결정에 임할 수 있다.

이: 따분하게 들릴지 몰라도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결국 고객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재무제표가 보여주지 않던 것을 볼 수 있다. 재무제표는 기업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보여주지만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고객제표는 기업 내부의 고객에 대한 이해도를 높임으로써 재무제표에 나와 있는 결과를 설명하는 근거자료가 된다. 둘째, 기업 성과와 직결되는 전략 방향을 수립할 수 있다. 재무제표상 성과가 저조해지는 추세가 발견될 때 그 원인을 고객제표를 통해 진단하고 그 개선안도 전략에 반영할 수 있다. 즉, 숨어 있는 문제 영역을 진단할 수 있다. 셋째, 과거 성과에 대한 설명은 물론 기업의 중장기 성장 패턴을 예측할 수 있다. 신규 고객 수 추이나 고객 이탈률 등을 바탕으로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얼마나 건전하고 튼튼한 성장의 발판을 갖추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으며 더 효과적인 투자 의사결정도 가능하다.


다양한 학술단체와 공공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시범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 같다.

양: 우리 연구팀은 지난 10년간 CRM 분야에서 진단과 컨설팅을 통해 다양한 평가 지표를 분석해 왔다. 고객제표는 이런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에 개별적으로 수행되던 분석을 체계적이고 통합된 경영 평가 시스템으로 발전시킨 첫 시도다. 따라서 우리의 1차 목표는 고객제표의 타당성과 유효성을 심도 있게 검증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업종별, 기업별 적용 가능성을 면밀히 평가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고객제표는 단순 상업적 목적을 넘어 공익적이고 학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학계와의 긴밀한 소통이 선결돼야 한다. 회계, 재무, 경영 정보시스템, 통계, 데이터 분석, 경영 전략, 마케팅 등 다양한 전문 지식을 융합한 접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런 복합적인 접근을 위해서는 학계의 지지와 공감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ESG, 그중에서도 사회적 가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관련 공공기관과의 협력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고객제표의 목표는 기업들이 고객 경영을 개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도록 돕는 것이다. 시범사업에서 고객제표 서비스를 참여 기업들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까닭도 기업들이 고객제표를 통해 재무제표의 한계를 보완하고 깊이 있는 전략적 통찰력을 얻길 바라기 때문이다. 파트너들의 많은 관심을 고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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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학술적 관점에서의 기여도 상당히 클 수 있다. 마케팅이나 전략 분야에서만 중점을 둬 다루던 고객 중심 사고와 이론적 개념을 회계학이나 재무학의 경영 성과 평가 방법론과 결합시키는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이다. 회계학이나 재무학에서 주로 다뤄온 재무제표 관련 연구가 고객제표 도입으로 어떻게 보완되고, 기업 성과 관리에 어떠한 새로운 시각과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앞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 다양한 산업과 업종 간 비교 연구와 고객제표의 측정 항목에 대한 방법론적 연구는 이러한 새로운 평가 방식의 실효성과 효율성을 검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고객제표의 범용성과 특정 산업이나 업종에 맞는 적용 가능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케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객제표가 다양한 기업에 적용되고 활용된다면 실제 비즈니스 상황에 대한 사례 연구가 축적될 것이고, 이는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고객제표의 유효성과 중요성을 입증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고객제표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을까?

장: 고객 중심 경영은 전 세계적으로도 기업들이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비즈니스 마인드셋이기 때문에 고객제표의 필요성과 가치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객제표 개발팀 역시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둔 다양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국내에서 시범사업과 본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안정적인 모델 운영이 검증되면 미국, 일본, 중국, 유럽, 싱가포르 등 주요 국가로 단계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고객제표 연구팀은 국내에서의 상표, 특허,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에 관한 출원을 마친 상황이고, 해외에서도 지적재산권을 확보할 예정이다. 한국경영정보학회 등 국내외 학술 단체와 후원기관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고 해외 경영 및 혁신 경영 관련 포럼에 참여해 고객제표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생각이다.


고객제표의 한계나 개선될 점은 없을까?

김: 현재의 고객제표는 어느 업종의 기업에든 적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평가 체계와 지표들로 구성돼 있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아직 개별 업종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된 평가 시스템은 아니라는 의미이며 이게 아직까지의 한계다. 그렇기 때문에 시범사업을 통해 주요 업종에 고객제표를 적용함으로써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고 평가지표의 측정 타당성이나 유효성을 검증한 업종별 버전을 구체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물론 고객제표가 갖는 철학을 위배하는 수준까지 가선 안 되지만 개별 평가지표의 실제 측정 방식과 분석 방식은 업종별 특수성과 맥락을 고려해 융통성 있게, 충분히 다르게 변용될 수 있어야 한다.

이: 그리고 고객제표가 붕 뜬 평가 체계가 아니라 경영 전략과 밀접한 평가 체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더 다양하고, 의미 있는 고객 분석 지표들을 포함해야 한다. 수십 년간 연구돼 왔지만 실제로 측정하는 데 난항을 겪었던 고객자산가치, 고객생애가치, 고객추천가치, 고객점유율, 고객전환율 등의 고객지표들을 실무적으로도 유용한 측정 모델로 단순화해 고객제표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위한 약식 고객제표 버전을 개발하는 것도 주요 과제 중 하나다. 투자 유치가 필요한 스타트업이나 초기 벤처기업에는 부실한 재무제표보다는 작지만 유기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 더 의미 있고 투자 판단의 근거로서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수명을 연명하기 위한 정부 지원 과제나 프로젝트 수주에 의한 단기 매출 확보보다는 본연의 사업 분야에서 실제 고객의 유치와 유지 현황이 투자자에게는 더 중요한 정보일 수 있다. 이렇게 기업 업종이나 규모별로 경영 성과의 맞춤형 길잡이로서 고객제표가 활용된다면 언젠가는 DART와 같은 공신력 있는 기업 공시 사이트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사이트의 기업 정보 페이지에서 재무제표 탭 옆에 고객제표 탭이 나란히 자리 잡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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