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K팝의 그림자 보여준 ‘피프티 피프티 사태’

‘중소돌’의 기적에서 논란의 그룹으로
높아진 K팝 가치가 헤게모니 갈등 불러

차우진 | 383호 (2023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피프티 피프티 사태는 K팝의 글로벌 시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벌어진 사례다. 누군가는 이것을 탐욕의 사례라고 보고, 누군가는 예의와 의리의 문제로 본다. 다만 이 사안은 넓은 의미에서 헤게모니 싸움이다. 첫 번째로, 기획사와 아티스트의 헤게모니 갈등을 보여준다. 피프티 피프티 사태는 양자의 계약을 둘러싼 역학 관계 변화가 데뷔 초에도 일어날 수 있으며 여론은 그룹의 극초기 단계에서 기획사의 기여도가 높다고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두 번째로, 글로벌과 로컬 자본의 헤게모니 갈등도 보여준다. 이 사태는 워너뮤직 등 글로벌 기업이 팬덤을 모으는 데 최적화된 K팝 비즈니스 모델에 주목하면서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음을 보여줬다. K팝은 팬 인게이지먼트를 높이고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하는 방법론이자 엔터테인먼트의 실패 확률을 낮추는 사업 모델로서 인정받고 있으며 피프티 피프티 사태는 K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시사점을 남긴다.



2023년 11월 1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2023 빌보드 뮤직어워드’가 열렸다. 이번 빌보드에서는 처음으로 K팝 4개 부문이 신설됐다. ‘톱 K팝 투어’ ‘톱 글로벌 K팝 아티스트’ ‘톱 K팝 앨범’ ‘톱 글로벌 K팝 송’ 등 4개 부문에 다수의 후보가 올랐고 결과적으로 BTS의 정국, 스트레이 키즈, 뉴진스, 블랙핑크가 각 부문을 수상했다. K팝의 현재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K팝을 제외한 다른 부문에도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톱 셀링 송’ ‘톱 듀오/그룹’ ‘톱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 아티스트’ 후보에 BTS의 지민, 피프티 피프티, 뉴진스가 각각 이름을 올린 것이다. 물론 모두 수상에는 실패했고 각각의 부문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안티-히어로’, 멕시코 밴드 푸에르자 레지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이 쟁쟁한 후보들 가운데 피프티 피프티의 이름이 유독 눈에 띈다.

20231211_111135


피프티 피프티 논란

피프티 피프티는 복잡한 이름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해도 ‘중소돌의 기적’으로 불리던 팀이 하반기에는 부정적 뉴스의 중심에 섰다. 2022년 11월 18일에 데뷔한 피프티 피프티는 데뷔 110일 만에 8위로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차트에 8위로 진입했고, 이후 역대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화제를 모았다.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는 K팝 그룹 중 데뷔 후 최단기간 내 차트에 진입했고, 25주 연속으로 K팝 걸그룹 역사상 최장기간 체류 기록을 세웠다. 스포티파이에서는 2023년 9월 기준으로 누적 스트리밍 6억 회를 달성했다. 하지만 피프티 피프티의 현재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멤버 이탈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소속사와 저작권 분쟁 중이다. 논란의 시작은 전속 계약 분쟁이었다.

지난 6월, 피프티 피프티 멤버 4인 키나, 새나, 아란, 시오는 소속사 어트랙트를 대상으로 법원에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한창 피프티 피프티의 곡 ‘큐피드(Cupid)’는 빌보드 핫 100 차트에 13주 연속 머물며 K팝 걸그룹 중 최장기 진입의 기록을 쓰고 있던 시기였다. 피프티 피프티 측은 어트랙트가 1) 정산 자료 제공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고, 2) 신체적·정신적 건강관리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어트랙트는 즉각 반박하는 동시에 외주 용역업체인 더기버스가 멤버들을 빼내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시작된 논란은 4개월 동안 드라마틱하게 진행됐다.

지난 8월, 법원은 조정 기일을 열고 2시간가량 양측의 입장을 조정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같은 달 법원은 피프티 피프티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1) 피프티 피프티가 지급받을 정산금이 없고 2) 소속사가 신뢰 관계를 파탄시킬 만큼 정산 의무 위반·건강관리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으며 3) 피프티 피프티 측이 갑작스럽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는 점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피프티 피프티 측은 즉시 항고했다. 이번에는 1) 음반·음원 수입에 관한 정산 구조 2) 음원 유통사가 지급한 선급금 중 피프티 피프티 제작을 위해 사용된 내역 및 항목에 대한 미고지 3) 대표이사의 배임 여부 등을 이유로 들어 소송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외주 용역업체 더기버스(대표 안성일)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제작사 더기버스는 2021년 6월부터 2026년 5월까지, 5년간 어트랙트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 업무 용역 계약을 맺고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를 제작했다. 멤버들의 연습을 비롯해 ‘큐피드’의 제작 및 데뷔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당했다.

어트랙트는 더기버스가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을 빼돌리려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했고, 안성일 대표를 업무 방해, 전자기록등손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손해배상액은 10억 원 규모로 설정했다. 더기버스 측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고, 이때부터 어트랙트,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 더기버스의 삼자 갈등이 심화됐다.

지난 10월, 멤버 키나가 돌연 항소심을 포기하고 소속사 어트랙트로 돌아왔다. 어트랙트는 나머지 3명에 대해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어트랙트는 키나에게 정산금을 지급하고 ‘큐피드’의 저작권이 위법하게 더기버스 안성일 대표에게 이전됐다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키나 외 3명의 멤버들은 정산금 지급을 위한 내용증명을 어트랙트에 보냈다. 어트랙트는 키나를 중심으로 새 멤버를 뽑아 피프티 피프티 2기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24년, JTBC와 함께 ‘새 멤버를 위한 오디션’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까지가 피프티 피프티 논란의 개요다.

피프티 피프티가 환기시킨 문제들

사실 피프티 피프티의 논란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매우 어렵다. 법원에서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법적 문제 외에 정서적인 문제와 깊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논란이 한창이던 때에 어트랙트는 언론을 통해 ‘중소 기획사로서 회사의 정체성, 대표 개인의 희생, 더기버스 및 관계자들의 녹취록’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과정에서 멤버들과 더기버스는 진정성을 의심받는 입장이 됐다. 이런 대응을 비판하거나 가치 판단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법적인 진실 공방 외에 대중을 상대로 한 호소 등 감정적인 입장이 매우 강하게 개입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피프티 피프티 사태는 ‘당신은 누구 편이냐’를 묻는 질문을 던졌다. 이와 동시에 기획사와 아티스트의 역학 관계와 계약의 공정성, 이권을 둘러싼 갈등 등 한국 음악 산업의 단면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 됐다. 그렇다면 정서적 측면이나 감정적 입장을 배제하면 피프티 피프티 논란에는 무엇이 남을까? 피프티 피프티가 본의 아니게 환기시킨 문제들을 짚어보자.

3


1) 기획사-아티스트의 헤게모니: 계약 문제


이번 사태에서는 선입금, 정산금, 투자금 등 자본과 비용 이슈가 특히 강조됐다. 피프티 피프티 사태 이후 이승기, 첸백시(엑소의 멤버 첸, 백현, 시우민) 등도 유사한 문제를 겪었다. 아이돌 업계에서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불공정 계약의 관점으로 바라봤다. 이 문제는 2009년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등이 SM엔터테인먼트와 10년 이상의 전속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공정한 몫의 수익 정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 쟁점화됐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런 불공정 계약을 시정하기 위해 개입하면서 업계에 7년 표준 계약이 자리 잡게 됐다.

이 7년은 K팝 특유의 연습생 시스템과 해외(미국) 사례를 참고한 기간으로 나름 합리적인 대안으로도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마의 7년’ 혹은 ‘7년 징크스’라고도 불린다. 아이돌 그룹이 7년 계약 만료 후 재계약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기획사가 그룹의 인기가 떨어지고 수익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두 번째는 그룹의 멤버인 아티스트 스스로가 독립했을 때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보통 회사와 아티스트는 7대3의 비율로 계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비율은 7년 계약 기간 중 양자의 역학 관계에 따라 변동되기도 한다. 기획사와 아티스트의 역학 관계는 데뷔 전, 데뷔 후, 활동 중, 계약 만료 전 등의 시점에 따라 계속해서 변한다. 특히 미국과 일본 같은 글로벌 톱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경우 아티스트가 더 높은 비율을 확보하면서 힘의 균형이 역전되기도 한다.

계약은 권력의 문제다. 성과에 대한 기여도를 합의하는 과정, 즉 헤게모니의 갈등이다. 음악 산업 관점에서 피프티 피프티 사태는 성과가 빠르게 가시화할 경우 이 역학 관계의 변화가 데뷔 초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결과적으로 이는 여론이 갓 데뷔한 그룹의 극초기 단계에서는 아티스트보다 기획사의 기여도가 높다고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왜 벌어졌을까?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한국 음악의 영향력이 커진 것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미국 시장에서 K팝의 인기가 높아진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2) 글로벌-로컬 자본의 헤게모니: K팝의 투자 가치

피프티 피프티 사태에서 흥미로운 점은 논란 초기 ‘워너뮤직’이라는 이름의 등장이다. 어트랙트는 더기버스가 멤버들을 종용하는 과정에서 외부 세력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대상을 워너뮤직코리아로 지목했다. 레이블 딜, 바이아웃, 선급금 투자 방식 등 삼자 간에 주고받은 계약의 방식과 저작권, 인접권 양수도 등에 대해서는 현재 법원에서 판단 중인 사안이므로 자세한 내용을 다루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그룹에 대해 워너뮤직이 관심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관심을 이해하려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의 관점에서 K팝을 바라봐야 한다. 알다시피 미국은 거의 모든 산업 부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이곳은 단일 시장으로 보기 어렵다. 특정 인종과 문화가 지배적이지 않고 시대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지배력을 얻거나 잃으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시장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전 세계의 문화 상품이 모이는 오픈 마켓과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국 음악 산업에 있어 K팝은 단지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는 새로운 음악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미국의 음악 산업은 크게 두 가지 양상을 띤다. 하나는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개발해 잠재력을 성장시키는 방식, 다른 하나는 해외의 가능성 있는 아티스트나 레이블에 투자해 수익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현재 미국 음악 산업계의 큰손이자 ‘빅 3’라고도 불리는 유니버설, 소니, 워너뮤직은 특히 후자의 방식으로 사업을 키워 나가고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음악 산업은 금융권과 유사한 형태로 작동한다. 빅 3도 제작사보다는 투자사에 가깝다.

따라서 워너뮤직이 피프티 피프티에 관심을 보인 것도 K팝의 작동 방식이나 원천 기술에 대한 투자 목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K팝이란 무엇일까? 재능 있는 일반인을 훈련시켜 프로페셔널한 아티스트로 데뷔시키는 K팝의 육성 시스템은 아무리 실패 확률을 낮춘다 한들 리스크가 있다. 필자가 볼 때 미국의 배급사들이 K팝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특정 음악 혹은 특정 ‘아티스트’ 때문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팬’에 최적화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2023년 현재 음악 산업에서 핵심 가치는 ‘아티스트’에서 ‘팬’으로 이동하고 있다. 팬은 단지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일회성 수익을 창출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최소 유효 시장으로서 가치를 가진다. 지금 음악 시장에서 팬보다 최우선 가치를 지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K팝은 바로 이 팬을 형성하는 솔루션이라고 할 수 있고 K팝 기획사들은 팬덤 구축에 대한 원천 기술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워너뮤직에 어트랙트와 더기버스는 피프티 피프티라는 프로덕트를 통해 ‘팬 솔루션 기술’을 증명한 회사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 기업이 자체적인 기술력을 가진 로컬 스타트업에 투자하듯이 피프티 피프티라는 신인 그룹에 투자해 K팝 팬 시장을 잡으려고 했음을 엿볼 수 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태국, 브라질 등지에서는 유니버설이나 워너뮤직이 로컬 레이블과 아티스트에게 투자해 미국 시장에 데뷔시키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음악계에서 말하는 소위 ‘메이저 데뷔’가 바로 이 방식을 가리킨다. 유일한 예외가 바로 빅 3의 투자 없이 직접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 아티스트다. 메이저 기업 입장에서 일본보다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투자 가능성이나 매력이 더 높다. 따라서 이런 미국 제작사들이 K팝 투자 기회를 엿보는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피프티 피프티 사태에 워너뮤직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특수한 사안이 아니라 하나의 징후다.

K팝, 팬덤 형성에 최적화된 비즈니스 모델

피프티 피프티 사례는 여러모로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역설적으로 K팝의 잠재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여러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이번 사례는 K팝에 대한 관점을 바꿀 때가 왔다는 점을 시사한다. 관점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2023년 1월부터 10월까지 K팝 음반의 누적 수출액은 3000억 원을 넘겼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관세청은 수출입 무역통계를 통해 1~10월 음반 수출액이 2억4381만 달러(한화 약 3184억 원)라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3% 증가한 수치다. 2022년 음반의 총수출액보다도 크다. K팝의 수익성은 결국 음반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런 음반 판매 중심의 산업 구조는 ‘K팝 위기론’이 등장하는 빌미가 됐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포럼이나 인터뷰에서 수차례 K팝 위기론을 언급했다. 여기에는 음반 판매량을 중심으로 고착화된 수익 모델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미국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미국은 콘서트 위주로 수익 모델이 정립돼 있다. 그런데 콘서트든 음반이든 저탄소 정책이라는 세계적인 방향을 고려할 경우 양쪽 모두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된다. 제3의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20231211_111151


이런 맥락에서 K팝의 지속가능성은 음악 산업 혹은 엔터테인먼트의 지속가능성이란 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K팝의 정의도 달라져야 한다. 완성형 아티스트를 데뷔시켜 음반을 파는 육성 시스템이 아니라 ‘팬을 모으는 데 최적화된 사업 모델’이라는 관점으로 K팝을 바라봐야 한다.

피프티 피프티 사태는 K팝의 글로벌 시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벌어진 사례다. 누군가는 이것을 탐욕의 사례라고 보고, 누군가는 예의와 의리의 문제로 본다. 다만 이 사안은 좀 더 넓은 범위의 헤게모니 싸움으로도 볼 수 있다. 음악 시장의 미래와 로컬과 글로벌 자본의 역학 관계, 콘텐츠 업계의 특수성과 보편성 같은 복잡한 사안들이 포함된다. 많은 의미에서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진입했다. 피프티 피프티 사태를 보다 산업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이유다.

애초에 K팝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한국 음악 산업의 위기에서 주목받았다. 1990년대 후반, H.O.T.나 S.E.S.의 등장이 환기시킨 것은 음악 사업의 새로운 방법론이었다. 당시에는 칭찬보다 비판이 많았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대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아이돌은 가수보다는 엔터테이너’라는 논리로 정당화를 시도했지만 여론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아이돌은 ‘붕어’ 혹은 ‘제품’이라는 논리가 지배적이었고 산업의 가치도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 K팝이 관심을 받은 것은 2000년 이후다.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음반 판매량이 줄어들고 음악 산업이 위기에 직면했지만 아이돌 그룹들은 오히려 높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고 유지하자 K팝 시스템의 사업적 가능성이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이후 K팝은 음반 판매를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됐다. 음반이 더는 수집품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한 시대에 음반을 구매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는 곧 아티스트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동시에 음반을 구매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에서 기인한다. K팝 음반은 팬미팅, 콘서트, 팬클럽의 응모권과 포토카드라는 재화가 포함된 일종의 제품 패키지다. 이 패키지의 구매를 유도하려면 아티스트의 매력이 필수적이다. 이 매력을 키우기 위해 갖춰져 있는 구조가 연습생 시스템이다. 음악적 재능, 외모뿐 아니라 팬과의 상호작용이 이런 매력을 만들어 내고, K팝 아티스트의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가 팬 인게이지먼트를 높이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K팝은 바로 이런 구조로 작동한다. K팝은 단지 인기 있는 음악 형태가 아니다. 글로벌 시장의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들로부터 K팝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 구조에 있다. K팝은 팬 인게이지먼트를 높이고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하는 방법론이자 이를 기반으로 아티스트 육성을 골자로 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실패 확률을 낮추고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사업 모델이다. 피프티 피프티 사태는 K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K팝의 작동 방식은 음악, 영화, 웹툰 같은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넘어 팬덤을 기반으로 한 F&B나 관광, 제조업 등에 모두 적용될 수 있다. 비즈니스 모델로서 K팝은 일종의 이론적 토대나 작동 원리로서 가치가 있다.

피프티 피프티 사태에서 K팝의 투자 가치나 비즈니스 모델을 논하는 것이 논리적 비약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법적, 감정적 논란의 시시비비는 사실 이해당사자의 몫이고 그에 대해 제3자가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큰 의미도 없다. 오히려 피프티 피프티 사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K팝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할 때가 도래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K팝의 지속가능성과 위기관리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될 수 있다. 피프티 피프티 사태는 K팝의 재정의를 촉구하는 계기이자 징후다. 2023년에 피프티 피프티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이유다.
  • 차우진 | 음악산업 평론가

    차우진 평론가는 1999년부터 음악 산업에 대한 비평과 기획을 병행했다. 최근 5년간 메이크어스, 스페이스오디티 등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 및 구축했다. 2020년부터는 콘텐츠 비즈니스 관점으로 음악 산업을 분석하는 전문 미디어 TMI.FM(Tech/Media/Inspired)을 운영 중이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현대카드 뮤직 콘텐츠 기획 및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하는 대중음악백서의 기획위원을 맡았다.
    nar75@naver.com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